청자문화제 야외에서 전시장에 군민들이 몰려들었다
오늘 제51회 강진청자축제가 시작된다. 올해 청자축제는 많은 군민들의 기대속에 겨울축제로서 도전하게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축제로는 3년만에 개최되면서 청자를 만들고 있는 도공들도 오랜만에 바쁘게 축제 준비에 나서고 있다.
축제장에는 청자전시를 빼놓을 수 없다. 청자전시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보자. 때는 1960년대 중반무렵이었다. 이때부터 강진 청자는 전국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청자로 인해 강진이라는 지역명이 국민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한 것인데 오늘날로 말하면 상당히 큰 홍보 효과를 누렸던 것이다.
이때 발굴작업이 진행되면서 엄청난 양의 청자편들이 출토됐지만 이들 대부분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올라가버렸고 발굴지 인근 마을 주민들외에는 강진 청자에 대해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전해들었을 뿐 청자에 대해 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이때 광양출신 김재호 군수 시절인데 김 군수는 청자 발굴작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발굴작업 현장을 직접 찾아와 발굴단에 인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기도 했다.
이때 김 군수는 공무원들에게 한가지 지시를 내렸다. 지시 내용은 강진군민들도 볼 수 있도록 청자편 전시회를 개최하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강진 군민들에게 청자에 알리고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해서 군수의 지시로 현재 청소년문화의 집이 들어서 있는 예전 강진문화원 건물 1층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때 전시할 청자 파편들은 내가 직접 마을 주변에서 모아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첫 전시회 이후 군민회관이 신축되면서 그곳에서 전시도 진행됐다. 이때는 청자재현사업추진위원회가 구성되서 청자 재현이 이뤄졌던 시기였다.
이때는 청자편들과 함께 추진위에서 재현해냈던 청자들까지 함께 전시돼 강진 군민들이 청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강진청자축제의 전신이었던 금릉문화제는 1973년 시작됐다. 이때는 군민 화합이 주 목적이었다. 이후 1996년 민선군수 시대가 열리고 금릉문화제는 청자문화제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청자로 축제의 역사 시작됐다.
첫 청자문화제는 1996년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는데 나는 청자 전시를 맡게 됐다. 전시장소는 공설운동장 야외였다.
전시작품은 청자 재현품들이었다. 청자촌 작업장에서 청자를 만들었고 완성된 청자들은 군에서 지원한 트럭에 싣고 공설운동장으로 운반했다.
전시 장소는 야외였고 길다란 탁자위에 청자 재현품들이 가지런히 전시가 됐다. 이때는 청자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내가 행사장에 상주하며 군민들에게 청자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이때 군민들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그도 그럴것이 강진에서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했던 청자를 재현해냈다는 소식이 10여년 전에 퍼졌고 군민들도 자부심에 가득찼다.
재현된 청자가 궁금했고 군민들은 행사가 열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지어 청자들을 구경했다.
군민들은 비취빛이 선명한 청자의 모습에 연신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고 그곳을 지키던 나에게 청자를 어떻게 만드는지 어떻게 비취빛이 나오게 되는지 등 여러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이때 기쁜 마음으로 설명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청자축제는 그동안 지역에서도 큰 관심이 없었던 청자에 대해 군민들에게 각인시켜주었고 자부심도 갖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앞으로도 청자축제 승승장구하길 바라며 올해 축제 성공을 빈다.<정리=오기안 기자>
카페 게시글
-------동흔 보도 스크랩
30. 청자축제와 전시회(2023.2.23 강진일보)
레몬향
추천 0
조회 15
23.03.27 13:53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