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지세 [3] 하늘이 구해주신 땅 세종시는 서울의 지세와 흡사하게 닮았다. 서울은 북악산과 한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세종시는 원수산과 금강을 끼고 있는 배산임수의 전형적 지세이다. 더불어 주산인 북악산과 원수산의 형태까지 닮았는데, 이 유사함이 행복도시로 선정되는데 심리적 편안함과 안정적 작용을 하였을 것이다.

사진만 놓고 본다면 가슴 후련하고 탁 트인 풍광에 누구라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2004년 7월 25일 이해찬 국무총리는 이곳 금강둑에서 원수산과 장남평야를 바라보며 ‘기가 막힌 땅을 찾았다. 누가 구한 것이냐?’고 물었고 이에 김안제 당시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장은 ‘하늘이 구해주었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들이 냉철한 이성적 판단보다는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미시적 분석 ● 세종시 홈페이지의 사이트 소개 “주산은 원수산, 좌청룡은 전월산, 명당수는 금강 예로부터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으로 유명한 연기·공주는 주산이 되는 유서 깊은 원 수산과 함께 전월산 괴화산이라는 명산이 있어 삼산(三山)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동쪽의 금강과 북쪽에서 흘러내린 미호천은 다시 연기군 동면에서 합해지면서 뛰어난 풍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과 물이 어우러져 수려한 자연을 빚어내고 있는 유서 깊은 땅 풍광 이 명미(明媚)한 삼산이수의 고장인 연기·공주가 바로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입니다.” 위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세종시 입지는 원수산과 금강이 핵심 포인트이며, 그 둘을 기준으로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므로 주위 4세를 하나하나 살펴보겠다.
● 주산 세종시의 주산 원수산(254m)을 독립된 개체로 보면 우뚝 솟은 모습이 좌우 균형감 있고 험하지 않으며 빼어난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원수산을 전후좌우 자세히 살피면 하나의 봉우리가 아니고 앞뒤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보는 지점에 따라 겹산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차차 설명하겠다.


참고적으로 주산은 그 지역을 대표하고 관장하는 산으로 주산의 성품과 역량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청룡·백호

전월산(260m)은 원수산 뒷봉우리 B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전월산은 갑자기 끝에서 봉우리를 크게 솟구쳐 노골적으로 원수산을 외면하고 있는데, 주산에서 이탈하여 주산을 능가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으니 역세가 완연하다. 한편 백호는 원수산 정점 A에서 시작되었으나 끝으로 가면서 급격히 가늘어지고 있으니, 마치 놀란 뱀처럼 빠르게 도망가는 형태를 하고 있다. 즉 용호가 V자로 크게 벌어져 원수산과 등을 지면서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모습이 되었다.
● 청룡어깨 함몰

원수산과 전월산 사이는 어깨가 깊이 함몰하였고, 장남평야의 우측은 중간부 위가 허한 모습이다. 이것은 그 방향이 오랜 세월 바람의 통로이며, 그 지점이 바람맞는 땅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풍해의 심각함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하는데, 풍수가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 곳이길지라는 말이 핵심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바람이 들이치고 물이 흩어지는 땅은 흉지라는 뜻이다. 이 바람은 인간을 비롯한 만물에 지극히 흉한 작용을 한다.
最忌凹風穴 決定人丁絶 (가장 꺼리는 것이 凹風이 부는 땅이니, 반드시 인정이 끊어질 것이다.)
● 안산 및 內水 원수산에서 파생된 중출맥이 야트막한 안산 C를 형성하였으나 독립된 산을 이루지 못하고 끝에서 좌우로 갈라졌다.

이 현상 때문에 원수산의 물이 하나는 전월산 밑으로 흐르고 또 한 물은 진의리와 송담리를 거쳐 금강으로 빠지고 있다. 마치 부채살 같은 모습으로 양수양파(兩水兩破)가 되었다. 고서에서는 이러한 물길을 팔자수(八字水), 분류수(分流水)라 하여 오역(忤逆)하는 물길로 규정하였다. 청룡·백호와 안산 그리고 물까지도 양분되는 불길한 형세가 되었는데, 주산이 두 마음을 품자 모든 것이 주산을 닮았다. 결국 이곳에서 이 땅의 본심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었다.
● 수세 50도/2회

세종시가 믿고 의지하는 큰 물 금강은 동면 합강리에서 미호천과 만나 합수가 되었으나 장기면까지 약10km를 직거수에 가깝게 빠지고 있다. 여기서 직거수라 말한 이유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역사적 도시들의 강의 환포가 평균 184도로 적극적이었지만 이곳은 50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다른 도시와 세종시의 물길 비교

위 표를 보면 환포각도와 만곡횟수가 가장 크고 많은 곳은 로마이며, 파리 런던 상해 등도 굴곡이 심한 것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부여가 가장 크게 둘러주었고 평양 국내성 서울 등이 비슷한 수치이다. 또 강에는 라성이라 할 수 있는 섬이 평균 2.4개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측 그림은 중심지의 환포각도와 만곡횟수가 평균치와 비슷한 도시로 위에서부터 런던 베를린 상해이고 맨 아래는 세종시 물길인데, 많은 차이가 남을 볼 수 있다.
● 부여, 공주, 세종시의 물길 비교

위성사진을 보면 부여는 강의 환포가 여유롭고 넉넉하며, 물 나감 또한 크게 꿈틀거리는 모습이 세계적 도시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반면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 공주는 비록 환포한 각도는 크지만 감아준 형태가 촉박하고 만곡횟수도 적으며 라성도 없이 약15km를 곧게 빠지고 있다. 이는 불과 63년 만에 새로운 도읍으로 옮기게 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 본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이 수도이전을 추진했던 장기면은 강의 환포는 좋지만 역시 물이 곧게 빠지는 결함이 있다. 네 곳의 물길을 비교해 보면 세종시가 가장 취약함을 알 수 있는데, 그 옛날 백제인과 박정희 대통령은 어째서 이곳을 중심지역으로 고려하지 않았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장기면 배치도, 백지계획은 청와대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모두를 옮기는 사실상의 천도계획이었다.
● 중심행정지역

세종시 핵심인 정부청사가 들어서는 지역은 원수산의 백호에 해당하는 능선 뒤편 종촌리에 자리한다. 즉 주산과 백호의 밖으로 이러한 배치를 할 것 같으면 원수산과 전월산을 주산과 청룡이라 하지도 말았어야 한다. 그러자 이제는 원수산의 등에서 나오는 방축천이라는 실개천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는데, 초일류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행정부처가 궁색한 오수(汚水)에 의지해야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참고) 만물의 生氣는 面에서 생성되고, 背에서는 오물이 배설된다.
한편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몇몇 청사는 가늘게 도망가는 백호능선에 위치하니, 이 또한 용맥의 자질과 품성을 고려하지 못한 부적절한 배치가 아닐 수 없다. 뿌리 깊은 나무는 땅을 가리고 봉황은 아무 곳이나 앉지 않는 법이다. 결론적으로 이 지역은 남면사무소가 있던 곳으로 약 4,000명의 주민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이었으나 이제는 5,000만 명을 책임질 땅으로 바뀌었으니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지게 되었다. 비록 문제가 있는 땅일지라도 사정권내에 있으면 어느 정도 보완하고 비보할 수 있지만, 이 경우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고칠 수 없는 상식이하의 땅이 되고 말았다.
결론 종합평가 여러 사례에서 보았듯이 역사적인 도시의 입지조건은 산과 물의 흐름이 좋아야 하며, 불리한 입지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역경과 고난이 따름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물은 도시의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 할수 있었다. 2011년 2월 이집트 카이로의 반정부 유혈사태와 무바라크의 은닉재산이 무려 78조에 달한다는 보도는 그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예사롭지가 않다. 따라서 신도시의 건설은 입지환경을 주의 깊게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이곳 세종시는 주산이 겹산으로 화합하지 못하였고, 청룡·백호는 서로 등 돌리고 외면하였으며, 원수산과 전월산 사이는 깊이 함몰하였다. 또 장남평야의 명당수는 八字水로 벌어지고 금강은 직수에 가깝게 빠지는 형태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종촌리 중심행정지역은 자신의 역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짊을 지게 되었다.
이것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라면 크게 걱정할 것도 없다. 잘못되어 봐야 일부분의 손실에 국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의 중요 정책을 결정하고 나라를 이끌어나갈 중추적인 핵심 국가기관이 산과 물이 흩어지는 이러한 땅에 입지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국가정책은 갈팡질팡 할 것이고 각 부처는 화합하지 못하며, 국고는 탕진할 것이니 끊임없는 내우외환이 우려된다. 바야흐로 세계 각국은 풍수를 활용해 도시를 건설하고 있으나 우리는 선조들의 수백 년 지혜와 경험의 이치를 애써 외면하고 배척하고 있으니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보(裨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원안대로 강행될 수뿐이 없다면 몇 가지 보완책을 제시해 보겠다. ● 현재 종촌리에 위치하는 행정타운을 진의리로 전면 이동한다. 즉 비보도 중심행정지구가 주산과 용·호내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현재와 같은 배치 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 ● 원수산과 전월산 사이가 함몰되어 살풍을 불러들이는 지세이니, 그 지점에 큰 구조물을 설치하여 계곡풍을 최소화한다. 이 바람을 제어하지 못하면 신도시는 늘 좌불안석이 되어 주체적이고 소신 있는 행정이 어렵다. 단 이 구조물은 대형 광고판 또는 주차타워 등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 청룡백호가 크게 v자로 벌어진 형태를 환선형의 벨트를 조성하여 인위적인 청룡·백호를 만든다. 그렇게 되면 부채살처럼 퍼지는 물을 중심지역으로 모을 수 있게 된다. 이 물로 호수공원을 만들면 워싱톤의 인공호수 ‘타이들 베이슨’처럼 비보의 역할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 금강의 가운데 인공섬을 만들어 물길을 제어할 수 있는 羅星을 조성한다. 그 지점은 금남면 하류 용수천과 대교천이 만나는 지점이 적당하며, 2곳 정도 해서 문화 체육공간으로 꾸미면 좋을 것이다. 이 방법은 기존설계의 변경 없이도 가능하다.
忽然水口洲灘出士薦官遷秩 (홀연히 수구에 섬이나 모래톱이 생기면 선비가 관직에 천거되고 벼슬이 높아진다.)

거듭 말하지만 풍수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며, 지리적 조건이 불리한 도시와 국가들의 빈곤과 고난은 필연적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신도시가 건설된다면 그 성격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입지환경이 개선 또는 수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맺음말 하지만 비보는 만사형통이 아니다. 그런다고 해서 두 마음을 가진 원수산이 한마음 되고 도망가는 전월산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비보는 일시적인 궁여지책일 뿐이다. 즉 이 땅은 근본적으로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혼란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 가지 더 부언한다면 후일 남북한이 통일되면 세종시에 행정부처가 존속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남북간 합의에 의해 새로운 수도가 결정되면 이곳의 행정부처는 썰물처럼 빠질 것인데,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민의 몫이 될 것이다. 그때는 또 다른 갈등이 벌어질 것이니 갈등을 피할 수 없는 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각 부처 간 긴밀한 협의에 의해서 국가의 100년 대계를 설계할 행정부의 이전은 전면 재고되어야 한다. 옛 사람들이라고 원수봉의 빼어남과 푸른 들판의 가슴 후련한 풍경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곳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군읍소재지 조차 들어서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 땅의 성격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독버섯처럼 화려함에 감춰진 치명적인 독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안 이곳은 물가라는 특성을 활용해 금강 양변에 갈등의 소지가 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에버랜드나 디즈니랜드 같은 대규모 테마파크를 유치하는 것이 좋다. 놀이동산, 사파리, 워터파크, 스키장, 골프장, 승마장, 영화세트장 등등.. 테마파크는 행복도시를 능가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세종시 면적 72.9km², 용인에버랜드 면적 14.8km²) 작은 규모의 용인 에버랜드가 세계6위의 테마파크로 자리 잡으면서 지역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를 생각한다면 세종시의 변신은 아직도 늦지 않았다. (현재까지의 사업진척은 철거보상과 기반시설조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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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행정수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입지조건이나, 정부청사설계, 배치 등등 모든 면에서 세종시는 완전 실패작 입니다. 절대로 탄생하지 말았어야 할 도시 입니다. 청사는 죽은 용이요. 감옥같은 모양입니다. 행정수도의 기능은 패쇄함이 마땅할 듯 합니다.
풍수의 기본은 음용수와 방어입니다... 우리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풍수를 판단해 사실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풍수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강하고요... 산과 평지가 적국 각지에 혼재되어 있는 국내에서는 자연을 활용한 풍수가 발달해 온게 사실입니다...
그럼 예전에 왜 풍수가 중요했냐...??? 그것은 바로 식수를 구하기 수월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세종시는 산이 미약하고 평지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이루기는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러나 산으로 둘러 쌓인 한양이야 말로 지하수의 보고요... 방어의 요충지요 한강 이남과 북한산 이북으로는 농지도 풍부한 편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무학대사는 한양과 신도안을 조선의 수도로 지목했던 것입니다...
신도안은 다른 것은 모두 한양에 뒤쳐지는 곳이나... 방어면에서 만큼은 한양보다 뛰어난 곳이기에... 좀 수세적인 도시라고 봐야겠지요...
이렇듯 강물을 끌어서 식수로 쓰는 현재와 지하수를 식수로 쓰던 조선시대와는 환경 자체가 완전히 변했다는 것을 망각하시면 않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풍수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좀 곤란하겠지만, 풍수의 기본과 원리를 빼 놓고...
고전의 시각으로 현재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면 곤란하죠...
지금 윗글이 사회를 분열시키는 주범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쉽게 표현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 주거의 형태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전의 상식으로는 미친곳에서 살고 잠자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에 풍수를 하는 분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형태를 보신다면 아마도 기가 차서 말문을 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왜 우리 조선이 풍수가 발전되있는지... 발전적 배경을 직시하시고 풍수를 논하셨으면 좋겠어요...
완전히 무시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맹신 할수도 없는게 풍수라는 사실을...
풍수로 국민을 분열 시키고자 한다면... 예수를 팔아 먹는 목회자와 다를 바 없는 행태입니다... 본질을 생각해 주셨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