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위하여 10
윤효
따분한 백 마디보다 따끔한 한 마디, 정문일침頂門一針.
혹은
천년도 훨씬 전에
의상대사가 설파한 그 구절,
티끌 하나에 우주가 다 들어 있다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결국은
따뜻한 활구活句.
―2016년 <현대문학> 6월호
영등포
윤효
버스기사가 잠시 차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때까지 네거리 신호등이 기다려주고 있었다.
―2015년 <작은詩앗·채송화> 제14호
느티나무
윤효
잠시 앉아 허리를 펴거나 둘러앉아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던 아름드리나무를 베어낸 그 자리에 새마을회관이 들어섰다.
준공식 날, 면장이 오고 군수가 오고 국회의원이 왔다.
오색 테이프를 끊고 사진을 찍었다.
동네가 훤해졌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읍내 장을 보고 돌아올 때마다 길을 잃었다.
들녘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소들도 음매 음매 목을 놓았다.
―2015년 <유심> 7월호
박용래朴龍來 3
윤효
1973년 8월 어느 저녁, 대전 목척교 옆 허름한 탁배기집.
옥천 출신 이 아무개 시인이 박용래 시인 앞에서 제 고장 산수만을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끝내 시인 정지용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내가 옥천을 기억하는 건 오로지 시인 정지용을 낳은 땅이기 때문이오."
"그런가요? 나는 정지용이가 우리게 사람인 줄도 몰랐네."
순간, 바람벽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터졌다.
"야, 이문구, 너 정말 한심하구나. 너는 이런 것밖에 친구가 웂네? 시인 정지용이 제 고장 선배인 줄두 모르는 이런 무녀리두 시인 명색이라구 하냥 댕기는겨? 이런 것두 사람이라구 마주앉어 술 마시네?"
술잔을 벽에 던져 박살내고도 성이 안 풀렸다 한다.
내내 화가 안 풀려 그 눈물 많은 시인이 그날은 울 겨를도 없었다 한다.
소설가 이문구의 '박용래 약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2015년 <인간과문학> 겨울호
수어지교水魚之交
-익병에게
윤효
한강대교에는 중간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어쩌다 몇 사람 타고 내린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과 마포역 사이에도 역이 생기면 좋겠다.
그 하저터널구간에 정거장이 있으면
어쩌다 잉어나 쏘가리 몇 마리…….
또 모르지,
도랑물 수놓던 어릴 적 그 참붕어 새끼들
만날 수 있을지.
그 은비늘에 반짝이던 네 눈빛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안 그래?
익병아, 안 그래?
※윤익병(尹益炳) : 1956년 충남 논산군 부적면 부황리에서 태어나 부적초등학교와 논산중학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성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를 거쳐 1982년 1월 KIST 박사과정 수학 중 교통사고로 요절한, 죽마고우이자 지음. 향년 27세.
―2016년 <시와정신>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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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尹曉) 약력
1956년 충남 논산 출생. 본명은 창식(昶植)
1984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물결』 『얼음새꽃』 『햇살방석』 『참말』
시선집 『언어경제학서설』
편운문학상 우수상, 영랑시문학상 우수상, 풀꽃문학상 수상
<작은詩앗·채송화>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