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 쉼표 사용
문장부호 중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은 쉼표(반점)의 사용례이다. 쉼표는 현행 한글맞춤법 규정 부록의 ‘문장부호’에서 15가지 항목을 들어 용례를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언어생활에서 이를 엄격히 적용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12번째 항목의 ‘문맥상 끊어 읽어야 할 곳에 쓴다’라는 규정은 애매모호하기까지 하다. 또 4번째 항목의 ‘대등하거나 종속적인 절이 이어질 때에 절 사이에 쓴다’는 규정도 현실 언어생활에서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조사 결과 교과서도 일정한 기준이 없이 쉼표를 사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동일한 책 내에 동일한 문장구조인데도 어느 곳은 쉼표를 넣고, 어느 곳은 넣지 않았다. 교과서마다 이런 문장이 수두룩해서 여기에 일일이 열거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그중 특징적으로 소개할 만한 것들만 뽑았다. 편의상 원문 중 쉼표가 들어갈 만한 곳을 ‘( )’로 표시했다.
1.쉼표를 넣지 않으면 어색한 경우
◇그림이나 사진에 뿌리, 줄기 잎, 꽃( ) 열매 등의 특징을 나타내기
같은 자격의 말을 나열하면서 한 곳은 빠뜨렸다. *5과,129
◇우리는 빨래를 하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 요리를 할 때와 같이 여러 상황에서 용액을 사용합니다.
같은 자격의 어구를 나열하면서 한 곳은 빠뜨렸다. *6과,59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지역 주민들과 대화와 타협을 하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기도 하며( )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기도 합니다.
앞의 문장과 같은 형태다. ‘하고’와 ‘하며’는 같은 자격의 어구를 연결하므로 ‘하며’ 뒤에도 쉼표를 넣는다. *4사,83
◇민경이네 마을 하천 주변에는 주차장이 있고, 방치된 쓰레기의 악취가 심하며( ) 하천 물이 썩었다.
앞의 문장과 같은 형태다. *6과,154
◇해가 진 다음 자신이 본 달의 모양과 위치를 말하고( ) 매일 달을 관찰한다면, 그 모양과 위치는 어떻게 변하는지 생각하여 봅시다.
문맥상 단 한 곳에서 끊어 읽는다면 ‘말하고’에서 끊어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관찰한다면’보다는 ‘말하고’의 뒤에 쉼표를 넣는 게 더 바람직하다. *5실관,20
◇즉 늘 공손하게 행동하고( )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우며, 사람들 사이에 믿음이 있고( ) 자기가 맡은 일을 잘 해내며, 널리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원문의 ‘하고’와 ‘하며’는 같은 쓰임을 보인다. 즉 다섯 개의 절이 같은 자격으로 나열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고’와 ‘하며’ 뒤에 모두 쉼표를 넣는다. *6도,190
2. 쉼표를 넣는 게 좋은 경우
◇환경 단체와 국제기구 등은 사람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고( )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 방안을 실천하도록 돕고 있다.
연결어미 ‘고’가 겹쳐 나온다. 그런데 각각의 쓰임이 다르다. 첫 번째 ‘고’는 두 절을 대등하게 연결하고, 두 번째 ‘고’는 절 내의 구를 연결한다. 이 경우 첫 번째 ‘고’ 뒤에 쉼표를 넣어 끊어 읽도록 하면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다. 물론 표현을 바꾸어 ‘고’의 겹침을 해소하면 더 바람직하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기 마음속의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하고( ) 다른 사람들과의 대립과 갈등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이처럼 대등절로 구성돼 있을 때는 문장부호 규정대로 절과 절 사이에 쉼표를 넣는다. 더욱이 이 문장처럼 글이 다소 길 경우 쉼표를 생략하면 읽어 내려가는 데 숨이 찬다. *5도,46
◇혼합 계산의 순서를 나타내고( ) 순서에 맞게 계산하시오.
대등절로 연결되면서 의미가 전화될 때는 문장이 짧더라도 쉼표를 넣어 주는 게 좋다. ◇즉, 알에서 태어난 왕은 하늘이 보낸 뛰어난 인물로( ) 백성들은 왕을 존경하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로’가 자격을 나타내는 ‘로서’의 의미를 지닐 때는 수단, 자격, 방향, 결과 등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로’의 기능과 달리 앞뒤 절의 의미를 전화하므로 쉼표를 넣는 게 좋다.
◇첫째 정류장에서 8명이 내리고( ) 탄 사람은 없었습니다.
‘내리고’ 뒤에 쉼표를 넣지 않으면 ‘내리고 탄 사람’으로 읽히기 쉽다. *4수,76
◇하지만 새롭게 일을 시작하신 어머니와( )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느라 지친 모습으로 늦은 시각 집에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투정만 부릴 수는 없었습니다.
원문은 ‘어머니와 (함께) 힘든 일을 하다’라는 뜻으로 읽히기 쉽다. 쉼표를 넣으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6도,195
◇그러나 기쁨도 잠시( ) 곧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잠시’는 명사로 쓰였으며, ‘잠시였고’의 ‘였고’가 생략된 형태다. 이처럼 조사가 생략되었을 때는 쉼표를 넣어 그것이 생략되었음을 암시하는 게 좋다. 원문처럼 쉼표를 넣지 않으면 ‘잠시 곧’이라는 부사어처럼 해석되기 쉽다. *4생길,99
◇교통의 발달은 산업 발달과 어떤 관련성이 있으며( ) 지역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해 보자.
대등절로 구성되어 있을 때는 문장부호 규정대로 절과 절 사이에 쉼표를 넣는다. . *6사,34
◇그러나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 약속을 하기는 쉽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문장의 흐름상 끊어 읽는 것이 좋다. *4도,57
◇그럴 만한 것이( ) 가끔 쓰레기통 주변에 쓰레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 청소함뿐만 아니라 여러 사물이 정돈되지 않은 채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장 흐름상 끊어 읽는 것이 좋다. *5도,121
◇아버지께서는 이 낡은 신발을 신으시면서 항상 수영이에게 뭐 필요한 것은 없는지( )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물어 보시며 용돈을 쥐어 주시곤 하십니다.
피수식어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끊어 주는 것이 좋다. *5생길,39
3. 쉼표를 생략하는 게 더 나은 경우
◇충청남도 부여군 송국리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이 있다.
관형어 뒤에 쉼표를 넣는 경우는 그 관형어가 뒷말을 직접 수식하지 않을 때다. 이 문장은 ‘최대의’가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 전체를 수식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굳이 쉼표를 넣지 않아도 된다. *5사탐,14
◇여러 성과들은 북한의 ‘조선 장애자 보호 연맹’에서 발간한 신문이나, ‘평양 타임즈’에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나’는 대등적인 절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므로 쉼표를 넣지 않아도 된다. 쉼표를 넣으면 오히려 ‘-이지만’이라는 역접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5생길,87
◇개인이나 기업들은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이익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경제 활동을 해 나간다.
이때의 ‘고’는 대등절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므로 쉼표를 넣을 필요가 없다. 특히 길이가 비교적 짧고 구성이 복잡하지 않은 문장에서, ‘A하고 B하는 C’처럼 ‘-고’가 붙은 앞말(‘A’)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뒷말(‘C’)을 꾸미거나 뒷말에 종속될 때는 쉼표를 넣지 않는 게 낫다. 본문의 ‘~누리고 ~얻기 위해 경쟁하다’는 ‘누리고’가 ‘~위해 경쟁하다’에 종속되는 형태다. *6사,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