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3월 28일 문병란 시인이 태어났다. 문병란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직녀에게〉일 듯하다. 〈직녀에게〉는 통일의 염원을 노래한 절창으로 역사에 기록될 명작이다. 이 시는 1999년 박문옥 작곡, 김원중 노래를 거쳐 더욱 대중과 친숙해졌다.
노랫말은 대중가요의 곡조에 맞춘 것이므로 본래 시어와 차이가 있다. 이때 원작을 찾아 감상하지 않으면 시인에게 큰 결례가 된다. 시인의 시집을 구할 수 없으면 ‘서은 문병란 문학연구소’ 누리집을 방문할 일이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중략)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문병란의 시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한 편은 〈식민지의 국어 시간〉이다. 이 시는 읽고 감동한 일본 극작가 오리 교시小里淸가 시의 내용을 극화해 도쿄 고엔지高円寺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공연 때 제목은 〈국어의 시간〉이었다. 〈식민지의 국어 시간〉을 읽어본다.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 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중략)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선생)는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 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중략)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써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 시간이여.”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민족문학 창작에 전념했던 시인은 2015년 9월 25일 타계했다. 광주 동구청은 밤실로4번안길16 시인의 생가를 매입해 ‘시인 문병란의 집’이라는 이름의 문학관으로 만들었다. 2021년 9월 10일에 개관을 했으니 올 가을이면 2주년이 된다. 그때에 맞춰 방문을 해보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뜻대로 할 사정이 안 되면 다른 날에라도 꼭 한 번 가보리라.
대구는 문병란보다 72년 먼저 타계한 현진건에게도, 현진건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이상화에게도 ‘시인 문병란의 집’과 같은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던데 대구는 ‘한나라’가 아니라 ‘딴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