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없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 없는 신앙은 신앙다운 신앙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고난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당하지 않는 자가 있다. 어떻게 해야 고난을 면할 수 있다.
또 고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피하라
이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고난을 그대로 인정하고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피할 생각 말라 피해서 될 일 아니다
늙어가는 것 피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늙어가면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최선의 길을 가는 겁니다
늙어 가는 것도 감사함으로 받아 드릴 때 내 몸에 유익한 것입니다
늙어가는 것 원망 불평해도 불로초를 먹어도 젊은 사람들의 피를 수혈해도 늙고 죽는 것입니다
내게 당한 고난이 피할 수 없는 고난 이라면 은혜로 받고 감사함으로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미남 미녀가 서로 한눈에 반해 결혼을 하여 행복한 결혼 시절을 보내다가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 두세 살을 먹으면서 아이얼굴의 윤곽이 선명하게 들어 나기 시작합니다
이쯤 되어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이를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그 누구를 닮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집 쪽에서 의심하기를 시작합니다
처녀 때 행실이 좋지 않은 것 같더니 어디서 도독 씨를 가져온 것이 아니냐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누구를 닮아 저리 못생겼느냐는 의문입니다
하는 수 없어 두 부부는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이아이가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못생겼는지 그게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의사선생님은 두 부부를 자세히 쳐다보더니 말하기를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이아이도 두 분 처 럼 성형수술을 하면 예뻐질 것이라는 답변입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한마디 덧붙이기를 아마 두 분이 성형수술하기 전에 이아이의 얼굴과 똑같았을 것입니다
속인다고 피한다고 될 일 안입니다
현실적으로 인간은 3가지 고난을 피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애매하게 고난을 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죄 없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애매히 당하는 고난이요 참으로 억울한 고난이 있습니다
애매한 고난이란 "아디코스"라고 부당하게 당하는 고난이란 뜻입니다.
나에겐 잘못이 없습니다. 실수도 아닙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런 경우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웃집의 부주의로 불이 났습니다
그 불이 꺼지지 않고 번져 내 집 까지 불이 번져 가제도구에 상당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불은 저쪽집의 실수로 낫는데 피해는 내가 보는 것입니다
이게 애매한 고난입니다
몆달 전에 우리 집에 교회 주변에 사는 어떤 분이 전화를 했습니다
하는 말이 새벽4-5시 사이에 어떤 사람이 자기차를 박고 갔는데 자그마치 견적이 70만원이 나왔는데 혹시 그런 사람 못 봤느냐는 것입니다
남에 차를 박고 도주한 불량한 인간이 있습니다
이럴 때 참 애매한 것 아닙니까
이럴 때 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참으라는 것입니다
(벧전2:19)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이럴 때 에는 억울해도 참는 길 박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억울하다고 씩씩거리고 복수하겠다고 분풀이하지; 말고 여기 무순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참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참는 것은 더 잘 참는 것이라
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무순 죄가 있어 십자가에 못박히셔나 죄없이 고난 받으시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하고 참으라
둘째--죄를 짓고 당하는 고난은 당연한 고난이므로 칭찬받을 생각 말라
미움을 받아도 욕을 먹어도 누가 내게 돌을 던져도 죄짓고 당하는 일이라면 그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흉을 보고 미움을 받아도 당연히 여기라 변명하거나 동정 받을 생각 말라 이런 경우입니다
도독질 하다가 교도소간 사람 판사가 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살인죄를 짓고 옥살이 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면해 줄 수 있습니까
벧전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몇 칠전에 이런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6살둔 아기엄마가 이혼청구소송을 법원에 냈습니다
이혼 사유는 성격이 맞지 않아 못 살겠다는 이유입니다
5000만원 위자료에 아기 양육비로 월50만원을 달라는 청구내용입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6살 먹은 아이가 부모를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머니 되는 분이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아이 모발을 수거하여 유전자 감식기관 두 곳에 보내어 감정을 의뢰한 결과 그 아이는 그 집 자손이 아니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결과를 법원에 제출한 결과 판결이 이렇게 나왔습니다
부인이낸 청구는 받아드리되 위자료나 양육비는 불가하며 오히려 남편에게 위자료로 12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입니다
기가 막 히 다는 생각입니다
죄는 본인이 지어놓고 성격이 맞지 않아 못 살겠다고 이혼청구 소송에다가 위자료에다 양육비까지 청구 할 수 있는 마음이 어떤 마음일까요
무순양심이 이런 양심이 있습니까
화인 맞은 양심 이예요 저주 받은 양심이입니다
(딤전 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화인 맞은 양심은 죄를 짓고도 뻔뻔해 집니다
성경은 이런 마음을 화인 맞은 양심이라 저주받을 양심이라 심판받을 양심이라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위선에 거짓말까지 천연덕스럽게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거짓을 해도 위선을 해도 씨 도독을 해도 양심이 무뎌져서 아픔을 모르는 것입니다 -소위 양심이 죽은 사람입니다
ꃨ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이 뜻은 문자적으로 '인두로 도장을 찍은'이란 뜻 인 데요
화인의 유래는 노예 매매시 주인소유의 표시로 인도에 새겨 불에 달군 다음에 노예의 신체 부위인 팔이나 어깨 같은 곳에 불로 지진 자욱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 몸에 불도장을 찍어 놓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불로 지지고 나면 그 자리가 굳어져서 만져도 꼬집어도 때려도 감각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게 이렇게 해서 그렇게 되는 일입니다
자꾸 거짓말하고 속이고 그러다보면 그 마음이 굳어져서 나중에는 그런 흉악한 죄를 짓고도 가책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화인 맞은 양심이요 마음입니다
여러분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심으면 거둔다는 것을 잊지 말일입니다
부모가 심고 자식이 거두고 여러분이 심고 자식이 거둡니다.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였습니까? --내 눈에 피가 날 날이 있습니다
이제 죄짓고 고난 받는 사람이 할일이 무엇입니까
또 죄를 지어야 합니까 --이제는 회개하고 남은 삶을 마감할 때입니다
마무리 인생을 깨끗하게 할 때입다
셋째-- 의를 위하여 스스로 선택해서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벧전 2:20)후반절-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절에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이 여기에 속한다 설명하시고 있습니다
(벧전2: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의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 복이 있다 하십니다
능력이 있다 능력이 나타난다 하는 것이요
우리가 서부영화나 한국영화를 볼 것 같으면 영화의 흐름 두가지가있습니다
하나--주인공은 언제나 고난을 당합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손해나는 일을 수없이 당합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더하게 합니다
둘째--주인공은 절대로 불행하거나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총알도 피해가고 화살도 피해가고 그렇지 않다면 의인이 나타나 꼭 도와 줍니다 === 그리고 박수를 받으면서 해피엔드로 끝납니다
이것이 주인공에게 나타나는 시나라오입니다
하나님의 시나리오라는 것이 있는데 선택적 고난을 받는 사람에게는 절대 고난은 화가 아니요 불행이 아니요 고난도 복이 되고 은혜가 되게 하십니다
성경한곳을 봅시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예수믿게 되었나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두 가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
하나--복주시고 천국가게 하시려고 특별이 택했다 믿어지십니까
둘째--때로는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복 받아야 한다고 생각될 때에는 다같이 자원해서 구하지요
몇 날 몇 달을 구합니다 금식기도하면서 래도 구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하여 고난 받을 일이 있을 때에 선택받은 사람은 이런 마음으로 돌아가는 법입니다
하나님 제가 그 고난을 짊어지게 해주십시오
제가 그 십자가를 지고 가겠습니다 --이렇게 자원하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이것이 선택된 자들이 고난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사도베드로는 선택된자의 고난은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
어디까지나 선택적으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게 고난이리는 것을 알면서 받는 것입니다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 자원해서 행하는 수고가있습니다
(벧전2: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확실한 것은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어디까지나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죽으시는 일입니다 === 대신 고난 받는 일 자원하는 일에 본이 되심이라
여러분, "쿼바디스"라고 하는 유명한 영화가 있습니다
거기 보면 로마라고 하는 도시가 맘에 안 들어서, 소위 예술가로 자처하는 네로 황제가 사람을 시켜서 불을 지릅니다.
나름대로 로마를 다시 건설 하겠다는 것 이 겠지요
불을 지른 다음에 원망이 너무 많으니까
이것을 기독교인에게 뒤집어 씌워버립니다.
기독교인들이 항상 불로 심판한다고 하다가 불을 지른 것이라고.
이거 정말 애매하지 않습니까?
불은 네로 황제가 지르고 죽기는 기독교인이 죽습니다.
수만 명을 잡아다가 원형극장에서 죽입니다.
이렇게 억울하고 분통한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던 베드로가 같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도망을 합니다.
그 무렵 로마 땅을 빠져나가는데 반대쪽에서 예수님이 죽음의 도성인 로마성을 향하여 가고 계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이 말이 이말입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그때에 예수님께서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베드로에게 선택의 감동을 주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버린 로마를 향해서 내가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 한다"
그때 베드로가 무릅을 끊습니다 "아닙니다. 주님 제가 가겠습니다."
다시 발걸음을 돌이켜서 로마로 가서 복음를 증거 하다가 십자가에 못박여 순교하게 됩니다
그는 십자가에 죽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내가 감히 어떻게 같은 모양으로 죽겠느냐? 거꾸로 매달아라."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서 베드로가 순교를 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잠시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가 도망가다가 붙잡혀 순교한다면 그 순교가 얼마나 가치가있습니까
얼마나 의미가 있습니까 --억지로하는 봉사 얼마나 의미가 있습니가
억지로 받는 고난 --억지로 하는 감사--억지로 나와서 드리는 예배 얼마나 의미가 있습니까
베드로의 순교가 의미가 있는 것은 억지순교가 아니라 자원해서 받은 고난 이기에 그 의미가 크고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정치적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 갈 때 입니다
유명한 말이 있죠, 악법도 법이라고. 악법에 의해 그는 처형이 되는데,
처형장에 나갈 때에 그의 제자들이 따라가면서 "억울합니다. 분합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무슨 죄가 있어서 선생님이 이렇게 죽으십니까?"
그러면서 따라오니까 아주 유명한 말을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돌아서서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이,
야 "이놈들아, 그럼 내가 죄가 있어서 죽어야 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까?
적어 도 죄가 없이 죽어야지. 그게 멋진 죽음 입니다
철학자다운 명언입니다
죄짓고 죽는다면 뭐가 억울한 것입니까 당연한 죽음 입니다
죄 없이 억울하게 고난을 당해야 그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요구 하시는 고난이 이것이며 죽음이 이것입니다
죄 없이 죽고 죄 없이 고난당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