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1915-) 는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였으며 중앙 불교전문학교에서 수학하고 있었다. 그는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대시를 개척하고 민족어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이 땅 최고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오랜 경력에 걸맞게 관능과 허무의 초기시에서부터 한국의 전통사상, 불교적 달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적 편력을 거친 시인이다. 시집으로 《화사집》,《귀촉도》, 《신라초》,《동천》,《질마재 신화》등 15권이 있으며 대표작으로 〈화사〉,〈자화상〉,〈귀촉도〉등이 있다.
서정주 생가는 〈질마재 신화〉의 현장으로 부안면 선운리에 있으며, 현재 그의 아우인 서정태 시인이 살고 있다. 서정주 시비는 선운사 내에 있으며 〈선운사 동구〉육필 원고를 확대하여 새겼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은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니다.
-- 시 〈선운사 동구〉-
교통편 : 전주에서 자동차로 고창읍까지 한시간 반 가량 소요된다. 고창에서는 선운산 도립공원으로 연결되는 교통편이 많음.
가 볼만 한 곳 :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리한 신재효의 고택과 가비(歌碑)가 있는 읍내리. 봉암리에 있는 인촌 김성수의 생가. 육필 한시집 《동유록(東幽錄)》을 남긴 근촌 백관수의 생가가 있는 성내면 덕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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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안내 /한용훈 생가
한용운(1879-1944)은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1896년 백담사로 들어갔다. 그는 잘 알려져 있듯이 진보적인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시인으로서 격동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가장 치열하고 지조있게 살다간 근대사 최대의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한용운은 1916년 월간지 《唯心》을 발간하고,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 적이 있다. 그는 1926년 시집《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으며 대표적 작품으로는 〈님의 침묵〉,〈알 수 없어요〉 등이 있다.
한용운의 생가는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2번지에 초라하게 서 있다. 그의 시비는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홍성면에 있으며 〈님의 침묵〉을 새긴 것으로 동상과 함께 있다. 다른 하나는 홍성읍 오관리 남산공원 내에 있으며 〈알 수 없어요〉가 새겨져 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참아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갔습니다. -- 시 〈님의 침묵〉 중에서 -
이 시는 《님의 침묵》 88편의 서시에 해당하는 것으로 님의 부재를 통해 조국의 상실, 자유의 상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역설을 통해 님과의 만남을 노래하여 국권회복의 의지와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교통편 : 한용운 생가는 홍성에서 광천으로 들어서 결성 방면으로 우회전해 가면 원무량 정류장이 나오는데 거기서 3킬로미터 지점의 성곡리에 있음. 시비는 홍성 읍내에서 광천으로 3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교도소를 지나 길 옆 언덕에 있음.
가 볼 만한 곳 : 오정희 소설 〈유년의 뜰〉의 배경이 된 홍성읍의 홍주 초등학교. 남산 공원 안에 있는 허균의 스승인 이달과 국문학자 김동욱의 문학비. 홍북면의 성산문 유허비. 장곡면의 이서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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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안내 / 김동명 생가
김동명(1900-1966)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에서 태어나 함흥 영생중을 거쳐 아오야마학원 신학과를 졸업했다. 1923년 <<개벽>>을 통해 시단에 얼굴을 내민 그는 교원생활과 함께 정치에 투신하기도 했다.민족시인으로 평가되는 김동명은 일제강점하의 비애를 투명한 서정으로 감싸안음으로써 참신한 비유를 낳은 것으로 평가 된다.대표작으로는 <파초>,<내 마음은>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나의 거문고>>, <<파초>>, <<하늘>> 등이 있다.
김동명의 생가와 시비는 강원도 사천에 자리하고 있다.주문진과 강릉 사이의 미노리에 있는 김동명 시비공원에는 시비탑과 함께 시 <파초>와 <내 마음>을 새긴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시 <파초> 중에서-
강원도가 그를 이토록 사랑하는 것은 전쟁의 상처가 유독 남다른 지역이라는 점에도 그 연유가 있을 것이다. 죽임의 역사를 견딘 자들에게 시인이 들려주는 파초의 생명력은 유독 새삼스러운 것은 아닐까 싶다.
교통편: 강릉에서 10km 정도 주문진 쪽으로 올라가면 국도변에 시비공원이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닿는 석교면에는 생가가 위치해 있다.
가 볼만 한 곳: 허균의 시비가 있는 애일당 유적지. 정철의 시비가 있는 경포대. 허난설헌의 생가가 있는 초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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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안내 / 만해 한용훈 기념관
독립운동가며 승려며 시인인. 만해 한용운(韓龍雲 : 1879.8.29 ~ 1944.6.29)은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여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건양 1)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가1905년(광무9)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1908년(융희 2)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을 설립한 후 일본에 가서 신문명을 시찰했다. 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3년 귀국,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해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16년 서울 계동(桂洞)에서 월간지 《유심(唯心)》을 발간, 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의 일을 맡았다.
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월간지 《불교(佛敎)》를 인수,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35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 성북동(城北洞)에서 중풍으로 죽었다. 시에 있어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고 불교적인 ‘님’을 자연(自然)으로 형상화했으며,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노래했다.
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추서되었다. 작품으로는 상기 장편 외에 장편소설인 《박명(薄命)》이 있고,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 등이 있다. 73년 《한용운전집》(6권)이 간행되었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韓龍雲)이 승려 생활을 시작한 곳이며 <님의 침묵>을 저술한 곳인 까닭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최근 전직 대통령이 기거했다 하여 속세인들의 관심이 모아진 곳이기도 하다. 그 이후 불사가 계속되어 예전의 아담하면서도 기품 있는 사찰의 정취가 많이 훼손된 것이 안타깝지만, '나룻배와 행인'이 새겨진 한용운 시비가 굴곡된 현대사의 아픈 상처 속에서도 우리가 간직해야 할 정신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듯 서 있다. 물만 건너면 나룻배 따위는 아랑곳도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가는 나룻배의 심정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깊이 되새겨야 할 정신이 아닐까. 임이 없는 곳에서 임의 존재를 확신했고,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도록 끊임없이 자기 수양과 조국 광복에 힘썼던 만해 선사의 커다란 자태가 백담사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듯도 하다.
만해 한용운의 문학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다양한 이해와 해석이 행해져 왔다. 특히 그의 대표적 시어인 '님'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는데, <님의 침묵> 서두에 놓인 '군말'의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구절만 올바로 이해하면 '님'의 비밀은 곧 풀리게 된다.
한용운은 시인이자 논객이며 승려이면서 또한 독립지사였다. 일제 시대, 밤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작가와 논객, 성직자와 지사가 있었지만 만해의 오른편에 자신 있게 설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교통편: 승용차는 서울 망우리고개~6번 국도~양평에 이르러 44번 국도~70.7km~한계리 민예단지 휴게소앞 삼거리~미시령방면 46번 국도~교통초소가 있는 한계리 3거리~남교~외가평3거리~우회전~1.5km~공원관리소 도착. 매표소에서 백담사까지는 일반차량 통제. 봉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간성행 직행버스 50분마다 한 대 꼴(05:50~17:40). 백담사 입구까지 4시간 걸림. 9천원. 백담사 입구 매표소에서 셔틀버스가 백담사 밑까지 운행된다. 편도 1천원. 종점에서 내려 백담사까지 3.5km는 걸어야 한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나 아득히 먼길을 가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쉬엄쉬엄 1시간쯤 가면 백담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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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안내 /김수영
김수영(1921-1968)은 연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합동시집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낼 무렵부터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지성파 시인의 상징격인 그는 현실에 대한 참여의식과 날카로운 비평의식이 두드러진 시를 주로 썼다. 시집으로 <<달나라의 장난>>이 있으며 사후에 많은 유고작을 남겼다.대표작으로는 <푸른 하늘을>,<폭포>, <풀> 등이 있다.
김수영의 시비는 북한산 국립공원 안에 호젓이 서 있다. 도봉산 매표소에서 1Km 정도 오르면 보이는 시비에는 시인의 초상이 조각되어 있고 그의 대표시 <풀>이 새겨져 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시 <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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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 시를 완성한 보름 후에 귀가 도중 좌석버스에 치여 숨을 거두었다. 죽음의 운명이 그를 무덤으로 앗아갔지만 역사의 운명은 그를 영원히 살아 숨쉬게 했다.그러기에 고통받는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한 이 시는 산을 오르내리는 이들에게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교통편: 지하철 1호선 의정부행 또는 북의정부행을 타고 도봉산역에서 내려 북한산국립공원쪽으로 나가면 됨.
가 볼만 한 곳: 국립공원 안에 소재한 김성동이 쓴 소설 <<만다라>>의 배경이 된 천축사.근처 수유동의 오상순 시비와 최남선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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