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리뷰
평등과 평화의 세상을 꿈꾸며
박구경, 『형평사를 그리다』
하상일(문학평론가, 동의대 교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 의식
서정시의 시간 의식은 ‘역사적 현재’에 근본 바탕을 둔다. 역사적 현재는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의 시간이 분리되거나 구분되지 않고 계속해서 지속되는 것으로, 발화 내용의 시간은 과거이지만 발화의 시간은 현재인 통합적 시간 의식을 지향한다. 서정시의 본질적 세계관이 자아와 세계의 성찰적 시선에 있는 것도, 그래서 시인은 궁극적으로 앞을 바라보기보다는 뒤를 돌아보는 시선에 익숙하기 마련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시인은 지금에 안주하기보다는 현실 너머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상적 존재이므로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올곧게 견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미래는 과거와 현재가 융합된 미래라는 점에서 과거 혹은 현재를 돌아보는 성찰적 시선은 시인의 본질적인 세계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박구경의 시집 『형평사를 그리다』를 읽기에 앞서 이전의 시집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책만드는집, 2008), 『국수를 닮은 이야기』(애지, 2017), 『외딴 저 집은 둥글다』(실천문학사, 2020) 세 권을 통독했다. 사람과 세상 그리고 가족에 대한 여느 시인의 관심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제재들로 이루어진 시였지만,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이러한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저 지금의 모습을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모습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그 연원을 탐색하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는 동안 겪어야만 했던 상처와 고통의 자리를 아프게 들여다보는 공감의 시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제적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시선이 특별히 주목해서 바라보는 지점이 개인의 일상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역사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목소리가 시인의 시 세계를 집약하는 일관된 어조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형평사를 그리다』는 그동안 시인이 걸어온 시적 행보를 총체적으로 담아낸 결정판이 아닐까 싶다. 사람과 생활과 역사를 돌아보는 깊이 있는 시선으로 평등과 평화의 세상을 꿈꾸는, 그래서 차별과 모순, 전쟁과 대결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미래지향적 의지를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간곡하게 형상화한 것이다.
2. 불평등과 대결의 시대를 넘어서
그동안 박구경의 시는 우리 역사의 모순을 정직하게 응시하고 비판하는 실천적 태도를 강하게 드러냈다. 또한 자본과 문명의 세계가 펼쳐내는 화려함과 요란함에 익숙해지기보다는 그 이면에 소외되고 은폐되고 사라져 가는 전통적이고 반문명적인 것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시인은 “자가용은 너무나 미끈하고/핸드폰은 점점 작아지”는 “디지털의 표정”을 보면서도, “어둠 속을 달려온 시커먼 그 쇳덩이가/쉭쉭, 숨을 몰아쉬는”, “육중한 열 량 스무 량의 기차가/거친 쇳내를 풍기며 들어서는 바닷가 역사驛舍”(「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12~13쪽)를 떠올리는 데 집중했다. 자본주의 문명에 길들여진 인간의 삶은 점점 더 개인화되어 가고, 기계적인 것에 의존하며 편리를 추구하는 세상의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웃고 떠들며 즐기는 공동체의 생활만큼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끝끝내 지켜내고 싶은 바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신분, 학벌, 지역, 나이, 성별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차별과 갈등을 넘어서는, 그래서 모두가 하나로 통일되고 화합하는 세상을 진정으로 꿈꾸는 데 시인의 궁극적인 시선이 닿아 있었던 것이다. “양반 출신 지식인들과//백정 출신 지식인 장지필//재력가 이학찬//진주 중앙시장 정육점 상인들” 모두가 어떠한 차별과 구별도 없이 “한날한시 한자리에 모여/한마음으로 봉기한 사건이자 혁명”(「형평사·1 – 서시」, 『형평사를 그리다』, 11~12쪽)인 ‘형평사 운동’을 주목한 이번 시집은, 바로 이러한 그의 시적 지향을 총체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전략적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형평사」연작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지켜내기 위해 1920년대 초반 진주 지역에서 일어났던 신분 해방 운동인 형평사 운동을 제재로 삼은 서사시다. 대개의 서사시가 그러하듯 역사적 사건에 바탕을 둔 증언과 기록의 형식이다 보니 시적 형상화에 있어서 다소 소홀해지는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즉 서사시는 역사의 유장한 흐름을 율격적 호흡에 담아냄으로써 역사의식을 미적으로 감각화하는 동시에, 역사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전언을 앞자리에 내세우는 주제 의식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구경의 시 역시 이러한 서사시의 난경을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진주’라는 지역성과 민중성의 결합 그리고 이러한 과거의 역사가 식민과 분단 시대를 넘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적 태도를 담은, 역사적 현재로서의 서정시의 시간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으로 다가온다.
“사람은 모두 똑같은 사람이다/백정도 사람이고 양반도 사람이다/인간은 저울처럼 평등하다”//그러나 강상호는 이에 굴하지 않고/스스로 ‘신백정’의 길을 걸어 나갔다//한편으로/경찰들 역시 형평사의 세력을/적대시하는 것은 물론//식민 통치에 방해되는/불온한 사회운동이라고/방관과 경멸의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었다//양반가들은 물론/문중의 외면과 따돌림들이/강상호의 슬픔과 외로움이었다//황소가 굴러도 꺼지지 않는다던/집안의 재력도//그가 추구했던 평등의 신념 앞에서/촛불처럼 사위어 가고 말았는데//해방 후 북한군 점령기에/억지로 덮어쓴 좌익 감투가//다시 또,/그를 찍어 누르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그가 일찌감치 좌익들과 척을 대고 지내왔지만/남은 재산까지 반공 세력들에게 빼앗기고 나니//말년의 현실 앞에서는/자식들 교육에도 허덕이고/땟거리까지 마땅치 않은/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가//1957년 쓸쓸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갔다
「형평사·6 – 진주, 진주 사람들 3」(『형평사를 그리다』, 45~47쪽)중에서
조선 형평사 본부가 있었던 진주의 양반가 자제이면서 “사람은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평등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신백정’의 길을 걸어 나갔”던 형평사 대표 강상호의 삶을 요약적으로 서사화한 시이다. 형평사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강상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특별히 주목하는 이 시에서, 강상호라는 개별자는 단순히 한 개인의 삶에 국한되지 않고 구한말에서 식민지 시절 그리고 분단 시대를 관통해온 올곧고 실천적인 반봉건적 인물의 보편성을 담은 특수자의 성격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형평사」연작에서 강상호라는 인물은 전형성을 지닌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스스로 신분의 권위를 깨뜨리고 백정의 편에 서서 “인간은 저울처럼 평등하다”라는 가치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의인義人’이었음에도,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질책당한 채 “슬픔과 외로움”을 짊어지고 살았던 그의 일생은 곧 우리 현대사의 상처와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전형적 상황 속 전형적 인물의 현실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의 상처는 해방 이전과 이후 권력과 폭력의 주체만 달라졌을 뿐 민중들의 처참한 현실은 그대로였던, 아니 오히려 더욱 극심한 이념의 굴레와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야만 했던 민중들의 상처와 고통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진주 사람 강상호는 양반이라는 신분의 벽을 스스로 버리면서까지 인간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좌익들과 척을 대고 지내왔”음에도 “남은 재산까지 반공 세력들에게 빼앗기”는, 좌우 모두로부터 핍박받았던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강상호의 불우한 인생이야말로 해방과 분단을 거쳐오면서 역사 바로잡기에 실패한 우리의 지난 역사가 지닌 명백한 과오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연작시 「형평사」는 과거의 역사에 대한 증언과 기록의 차원을 넘어서 지금 우리가 당면한 역사의 불구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역사적 현재로서의 성찰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천금의 유혹으로 첩 돼 달라 했다는데/일언지하 거절하기를,//세상이 대감을 오적의 우두머리하는데//내 비록 천한 기생이긴 하나/어찌 역적의 첩이 되겠나이까”(「형평사·8 – 기생 산홍이」,『형평사를 그리다』, 54쪽)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기생 산홍이’의 목소리로부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목소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형평사」연작에서 보여준 민중들의 반봉건의 기치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의 모순을 넘어서는 것이면서 권력화된 인간의 탐욕을 냉정하게 꾸짖는 비판적 목소리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 성찰은 인간 세상이 어떠한 대립과 갈등도 없이 조화로운 공동체의 삶으로 변화되길 바라는 본질적인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동안 박구경의 시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패권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을 비롯하여 전쟁이 아닌 평화의 시대를 강조해왔던 것도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낸 결과였다. 언제나 세계는 봄을 기다리듯 평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로는 얘기해 왔지만, 정작 그 봄은 “어미와 반대쪽에 있는/저 마음”처럼, “휴가 나와서도/발모가지를 향해 반듯하게 서 있는/저 군화!”(「군화」, 『국수를 닮은 이야기』, 76쪽)처럼 현실에 안주하여 일상의 모순을 넘어서지 못하는 소극적이고 이중적인 세계였을 따름이다. 그래서 시인은 “지난밤 우리는 너무 떠들었다/바다 건너의 전쟁만을/바다 건너올 평화만을”, “우리 시대의 대부분은 이러한 평화만을 그려왔다”라고 일상에 안주해버린 평화 담론의 허위성을 철저하게 반성하면서, 이제는 이 “봄의 모순”(「미조에서」, 『형평사를 그리다』, 117쪽)을 극복하는 진정한 평화 운동을 실천적으로 수행해야 함을 역설했다.
이런 점에서 1970년대 대표적인 공안 사건인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가 마지막으로 법정에서 했던 말 “‘열 살 막내가 보고 싶다’”(「‘열 살 막내가 보고 싶다’,『형평사를 그리다』, 78쪽)」라는 절규를 반드시 기억하고자 했던 것도, 지금까지도 이념의 제약과 불평등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가장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사회의 모순이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식민과 분단의 시대를 넘어서 평화의 시대로 올바르게 이행되지 못한 우리 역사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자 한 것이다. 형평사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강상호의 불우했던 인생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불행을 고스란히 보여주고자 한 데서, 이제는 이러한 불평등과 대결의 시대를 넘어서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역사의 전환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시대적 소명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3. 따뜻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세상을 그리며
박구경 시인은 형평사 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면서 ‘그리다’라는 표현을 썼다. 하늘 아래 누구나 평등한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를 찾기 위한 진정한 인간 해방의 실현을 목표로 한 운동이었지만,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수많은 민중들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가혹한 역사의 시간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리다’라는 낭만적 표현은 형평사 운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표현으로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인은 형평사 운동을 민중들의 희생이라는 차원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민중들의 승리라는 문제의식으로 읽어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리다’라는 말에서 아주 단단한 시적 긴장을 의도한 시인의 탁월한 언어 감각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적 긴장은 따뜻한 사람의 세상을 그리고자 하는 시인의 본질적 시 세계를 향하고 있어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새해 새 아침/붉은 해가 떠오르는/그런 시는 쓰고 싶지 않다//붉은 해 대신/그리운 사람의 얼굴/따뜻한 마음이 떠오르는 시를 쓰고 싶다//세상은 권위만이 우선이었으므로/커다란 하나만을 지향했으므로/나는 지금 허술한 찻집의 창가에 앉아 있다//입김을 불어 넣으며 잊혔던 이름들을/적어 넣고 싶었다//그런 이름들이 해처럼 떠오르면 싶어졌다
「신년의 시」(『형평사를 그리다』, 83쪽) 전문
시인의 시론으로도 읽히는 인용시에서, 인간의 생활이 배제된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그리는 “그런 시는 쓰고 싶지 않다”라고 시인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붉은 해 대신/그리운 사람의 얼굴/따뜻한 마음이 떠오르는 시를 쓰고 싶다”라는 소망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새해 새 아침/붉은 해”가 “잊혔던 이름들”이기를, 그래서 그 이름들에 “입김을 불어넣”는 일이 자신의 시가 되기를 바란다. 이처럼 박구경의 시는 본질적으로 자아와 세계의 조화와 통일을 갈망하는 서정시의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러한 시인의 소망을 여지없이 무너뜨려 자아와 세계의 갈등이라는 서사적 대결 의식에 깊이 빠져들게 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박구경의 시가 역사와 현실의 모순을 직시함으로써 이러한 부조리한 세계와 맞서 싸우는 적극적인 투쟁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거니와, 계급 투쟁을 통해 진정한 인간 해방의 가능성을 열어낸 형평사 운동을 시적으로 형상화했던 것도 이러한 현실의 모순을 더욱 분명하게 각인하고자 한 역사의식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시의 내면을 깊숙이 흐르는 본질적인 세계는 등단작이기도 한 「진료소가 있는 풍경」연작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들의 일상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려는 조화로운 태도에 있다는 데서, 지금까지 시인의 시가 걸어온 지독한 아이러니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적 세계 곳곳에 최소한의 인간적 삶마저 무너진 현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시인은 이러한 세계를 극복하는 대결과 투쟁을 주저하지 않았을 뿐이었지, 시인이 진정으로 소망하는 세계는 “사람들이 사철나무 울타리에 깃들어/아침 햇살과 바다 물결을 길게 이고 지고”(「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13쪽) 살아가는 따뜻한 사람들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의 시가 세상과의 불화를 노래하면서도 가족과 이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시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형평사를 그리다』는 그동안 시인의 시 세계가 펼쳐놓은 여러 자리를 한데 모아 놓았다는 점에서, 그의 시 세계 전체를 종합해 놓은 듯한 다양성의 면모를 드러낸다. 야만의 시대를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 야만의 탈을 써야만 했던 것이 시인의 운명이었다면, 이제는 이러한 가면을 내려놓고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시적 성숙의 세계를 엿볼 수도 있을 듯하다. 아마도 이러한 시의 다양성과 이질성은 투쟁과 대결의 시대를 지나 평등과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시적 전환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따뜻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세상을 그리고 싶은 시인의 본질적 세계관이 비로소 새로운 시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앞’을 바라보는 시선에서가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시선으로부터 가능한 세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시집에서 「형평사」연작과 「진료소가 있는 풍경」연작이 나란히 실려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의미로 다가온다. “장롱을 정리하다 예전에 폐교된 사동초등학교 가을 운동회를 알리는 붉은 타올 한 장이 눈에 띄었습니다//西紀 1996년 9월 20일//철봉대에 매달려 두 팔로 끌어내린 그날의 파란 하늘이 생각났습니다”(「진료소가 있는 풍경·7 – 사동초등학교」, 『형평사를 그리다』, 67쪽)에서처럼, 사라지고 잊힌 기억을 떠올리는 ‘뒤’를 돌아보는 시선으로부터 역사적 현재라는 시간 의식을 시적 방향으로 삼아온 시인의 시적 토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하상일
문학평론가, 동의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평론집 『‘뒤’를 돌아보는 시선』, 학술서『한국 근대문학과 동아시아적 시각』외 다수.
고석규비평문학상, 애지문학상, 심훈학술상 등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