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질 수 있으나 버릴 순 없는
- 고철 ‘연’
공중에 띄우는 연(鳶)을 인연(因緣)의 연(緣)과 대비시킨 작품이다. 단순히 발음이 같은 점만을 활용했다면 말과 관념의 놀이겠으나 이 시는 여러모로 그 이상이다.
가장 특별한 점은 시를 쓴 당사자인 고철(본명 김금철)이 어려서 부모님으로부터 놓침(버림이 아닌)을 당해 홍천에 있는 명동보육원이란 곳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이어 그는 방황하던 청년기에 승려로 살아보기도 했다. 인연(因緣)의 무게가 범상함과 아주 먼 사람이다.
바람은 물기를 머금어 눅눅할 때에는 자꾸 중력에 끌려 땅으로 주저앉지만 회오리처럼 원지름을 차고 돌 때는 빛을 향해 위로 치솟는 경향이 있다. ‘나’(화자)의 소망이 닿는 성질이 상승하는 회오리바람을 닮았고, 그 바람은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평형을 이룬 채 희디희게 솟구쳐 오를 줄만 안다.
태풍을 이야기하는 것 보니 시를 쓸 당시의 계절이 늦여름 또는 초가을이었나 보다. 빗물을 동반한 태풍은 빗물과 더불어 나뒹굴지만, 나는 그 모진 바람 속에서도 한 데 어우러져 견뎌내는 희고 푸른 생명의 속성을 느낀다. 소망이 마치 연을 하늘로 띄워 올리는 평형의 바람을 닮은 까닭이다.
연줄을 풀어 연을 높이 띄워 올리고 싶다. 인연의 줄을 풀어 이제껏 찾지 못한 인연을 높은 곳에서 보고 싶다. 뿌리 부근이 흰 질경이처럼 물러터진 나는 왜 놓쳤냐고 왜 버렸냐고 탓하기보다 삶의 그 높은 어느 한 지점-아마도 부모님이 계실 그곳-에서 목을 놓아 웃고 싶다. 이제껏 살면서 울어야 만큼 충분히 울었으니 그대들이 계실 하늘에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희고 푸르게 더불어 웃고 싶다.
멀어질 수는 있으나 아주 버릴 순 없는 핏줄을 테마로 삼은 이 시가 수록된 시집은 <핏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