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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091228월] 가슴 뿌듯한 한국형 원전 첫 수출 개가
한국이 사상 최초로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한다. 한국전력 컨소시엄은 27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자력발전사업 프로젝트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UAE 원자력공사(ENEC)는 가격과 건설공기, 안전성과 운용실적 등을 종합 평가, 한전 컨소시엄을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수주에 성공한 UAE 원전 프로젝트는 1,400㎿급 한국형 원전 4기의 설계와 건설(200억 달러), 준공 후 60년 동안의 원전 운용 및 유지보수, 연료공급 (200억 달러) 등을 포함한 일괄 수출로 단일 수출계약으로도 사상 최대인 총액 400억 달러 규모다. 이로써 한국은 1978년 미국 기술로 고리 원전 1호기를 도입해 운용한 지 31년 만에 독자형 원전 수출에 성공했다.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조선 등의 분야에 이어 원전건설은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원전 수주는 무엇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뤄진 꾸준한 기술개발의 성과다. 1984년 '원자력 발전 경제성 제고방안'이 중점 추진 정책으로 수립된 이래 관련업계는 전남 영광 3ㆍ4호기 건설에서부터 독자기술 개발과 적용에 힘써왔다. 그런 노력은 1,000㎿급 한국형 경수로(OPR 1000)를 거쳐 1,400㎿급 신형경수로(OPR 1400) 개발로 이어졌다. 한국형 경수로의 안정성은 중단된 대북 경수로 제공 사업의 주사업자 결정 단계에서 확인된 바 있고, 이번 UAE 원전 수주를 통해 국제적 인정을 받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강조해 온 실용외교의 뚜렷한 성과이기도 하다. 프랑스 아레바와의 경쟁이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이 대통령은 직접 UAE로 가 국가적 지원ㆍ보증 의지를 과시해 UAE의 결정에 힘을 실어 주었다. 기술력과 외교력이 결합한 대표적 모범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물론 한국이 완전한 원전 수출국이 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한전 컨소시엄에는 국내 건설ㆍ중공업 업체 외에 웨스팅하우스와 도시바 등 외국 업체가 참여했다. 이들 외국업체가 맡은 설계코드와 냉각계통, 제어계측계통 등 원전 핵심기술에 서둘러 다가가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091228월] 원전 수출이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
한국인 손으로 설계해 짓고 운영하는 원자력발전소가 수출되는 시대가 열렸다. 한국전력이 중심이 된 컨소시엄은 아랍에미리트가 발주하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를 놓고 프랑스 컨소시엄과 막판까지 경합을 벌여 사업을 따냈다. 설계, 시공 등의 비용만도 200억달러에 이르리라는 이 사업 수주를 돕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현지를 방문하기까지 했다.
원자력발전소 수출은 우선 한국인의 기술이 국제적으로 안전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첨단기술의 결합체인 원전은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 까닭이다. 게다가 원전은 거대 장치산업이어서 산업계 전반에 끼치는 경제적 효과도 크다. 이것만으로도 원전 수출의 의미는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원전 수출 시대가 부를 몇 가지 문제를 냉정하게 따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의미있는 일이다. 먼저 현실적인 측면에서 원전 수출은 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 일종의 ‘모험사업’이다. 각종 기술을 결합해 정밀하게 작동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건설 과정부터 시련이 따른다. 게다가 원전 운영 과정에서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타격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이 때문에 과거의 공산품 수출 정책처럼 정부가 원전 수출을 독려하는 것은 위험하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원전 수출은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싹부터 자를 위험이 크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가 요즘 세계인의 주목을 받자, 정부는 원자력발전이 ‘녹색 에너지원’인 것처럼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으로 볼 때, 원전은 결코 바람직한 에너지원이 아니다. 원전에서 쏟아져나오는 냉각수는 주변 환경을 황폐화시킬 위험이 있고, 원전 폐기물은 당대는 물론 후대의 건강까지 위협한다. 이런 위험들을 비용으로 계산할 때 ‘원전의 경제성’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원전보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다양한 대체에너지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하는 건 단지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은 기술 선진국들도 경제성 있는 대체에너지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기술이 실용화 단계에 이르면, 그 기술을 무기로 삼아 한국 경제를 옥죄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바싹 서둘러 대비하지 않으면 이 예고된 재앙을 피할 길 없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원전 수출에 앞장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다양한 대체에너지 개발을 독려하는 대통령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아일보 사설-20091226월] 北의 ‘생화학 도발’ 대비하는 주한미군 가족들
만약 북한이 서울 시내 지하철역 같은 곳에 세균이나 화학물질을 뿌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주한미군은 북이 생화학 무기를 살포해 대규모 인명 살상을 노릴 가능성이 항상 있다고 보고 대비한다. 한국 거주 미군 장병들의 전 가족에게 방독면을 지급한다. 8세 이하 자녀들에게는 이달 우주복처럼 생긴 신형 방독면으로 바꿔주고 있다. 신형은 빨대가 달려 우유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민간에 방독면 지급은커녕 훈련도, 대비책도 없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미군 당국은 장병 가족들이 외출할 때 반드시 방독면을 챙기도록 당부했다. 미군은 대한(對韓)방위공약을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 가족들도 3년간 한국에서 함께 살도록 하고 있다. 미군 가족들 사이에서 생화학 무기 공포가 확산된다면 미군의 안정적 주둔이 흔들릴 수도 있다. 시민이 많이 몰리는 곳에 생화학 무기가 뿌려진다면 대규모 인명 피해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엄청난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 틀림없다. 만사 불여튼튼이다.
위협적인 북의 대량살상무기(WMD)는 핵과 미사일뿐이 아니다. 북은 1961년 김일성의 ‘인민군의 화학화’ 선언 이후 생화학 무기 개발 및 생산에 힘쓰고 있다. 1980년부터는 독가스와 세균 무기 생산에 주력했다. 현재 2500∼5000t의 화학 무기를 분산 저장하고 있다. 탄저병과 천연두, 콜레라 등 10여 종의 세균 무기 생산능력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은 유사시와 평상시를 막론하고 생화학 무기를 사용해 후방지역 교란에 나설 위험성이 있다. 치명적 질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세균 무기는 여느 화학 무기나 핵무기보다 살상력이 높다는 평가도 있다. 북이 특수전 병력을 활용해 본격적인 화생방 공격을 감행한다면 정규부대보다도 훨씬 위협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한미군 가족들이 방독면을 상비(常備)하는 것을 보면서 먼 산의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20091226월] 저소득층 초등생에게 '사교육' 베푸는 한양대 교수들
한양대 교수 6명이 새해 1월부터 학교 부근 서울 성동구에 사는 초등학생들을 무료로 가르친다. 영문과 교수가 영어를,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글 읽기와 논술을, 관현악과·응용미술교육과·무용학과 교수들이 음악·미술·무용을 주말에 2시간씩 가르친다고 한다.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자녀 80명이 1차 대상이다. 교수들이 성동구에 의뢰해 학생들을 모집하자 지원자가 많아 동마다 2명씩으로 제한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교수들이 사교육을 못 받는 초등학생 교습 봉사에 나선 것은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한양대 교수들은 형편이 어려워 영어나 예·체능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재능을 발견하고 살릴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떤 봉사보다 보람있는 일로 여겼다고 한다.
작년 초·중·고 학생 전체 사교육비가 20조9000억원이다. 그 중 소득 상위계층의 사교육비 지출이 저소득층보다 8.8배나 많았다. 서울 6개 외국어고 재학생 6747명 중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는 0.18%밖에 안 된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자기에게 어떤 재능이나 잠재력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는 사이 좋은 교육 기회와 좋은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 좌절을 겪는다. 한양대 교수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접할 수 있게 하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나섰다.
우리 사회 지도층이 돈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살려 자신이 받은 교육의 자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봉사는 그리 흔치 않았다. 더 많은 대학 교수와 공직자, 변호사·회계사 같은 지도층이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꿈과 기회를 주는 봉사에 나선다면 우리 사회의 희망도 함께 커 갈 것이다.
[서울신문 사설-20091228월] 예산안 대치로 국회의장 옷까지 벗기려나
김형오 국회의장이 어제 초유의 준예산 편성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초강수를 던졌다. 새해 예산안을 연내 처리하지 못하면 사퇴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김 의장은 무엇보다 예산안 처리 불발을 국회 기능의 정지로 규정했다. 국회가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데에 책임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여야 지도부의 동반 책임론도 내걸었다. 한편으론 엄포성 승부수로 보이기도 한다. 그보다는 대통령에 이어 대한민국 서열 2위인 국회 수장이 대화와 타협을 촉구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능국회에 엄중한 경고를 던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새해 예산안은 금액면에서 1.2%에 불과한 4대강 예산에 발목 잡혀 표류 중이다. 오늘로 예산안 처리 시한은 나흘밖에 남지 않아 파국이 초읽기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이런 벼랑 끝에서도 민주당은 “4대강 의심 예산 전액 삭감”을 외치고, 한나라당은 “살을 깎을지언정 뼈는 안 된다.”고 버티면서 상대방의 양보를 강요하고 있다. 양측이 막판 대타협을 위한 채널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면 충돌에 대비하는 자세가 심상치 않다. 정면 충돌 대비는 작전용에만 그치고 결국 대타협으로 가기를 기대해 본다.
여야는 최악의 상황을 마음속에 그려보면서 한발씩 물러서야 한다. 예산안 연내 처리가 불발되면 김 의장은 사퇴하게 되고, 그러면 여야 원내 지도부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김 의장이 당내 강경파들에게도 근본적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 만큼 그들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로 이어진다면 강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답답하고 백척간두에 서 있는 심정이라는 김 의장의 고백에 여야 지도부와 강경파들은 귀 기울여야 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091228월] 노조법 개정 노ㆍ사ㆍ정 합의안 존중해야
복수노조 노조전임자임금 문제 등 노조법 개정을 논의하는 국회 환노위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추미애 환노위 위원장 주도로 네 차례나 열린 노 · 사 · 정 8인 연석회의도 여와 야, 노와 사 간의 이견만 확인한 채 활동을 끝냈다. 과연 약속대로 28일까지 합의안을 도출(導出)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노조법 개정 문제가 좀처럼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치권이 복수노조 도입을 2년6개월 유예하고 노조전임자 임금은 노사교섭 산업안전 등의 업무에 한해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를 인정한다는 노 · 사 · 정합의안을 무시한 채 제 주장만 펴고 있는 까닭이다. 한나라당은 타임오프 대상에 '통상적 노조관리업무'를 포함시키자며 전임자 무임금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민주당 등은 복수노조 즉각 허용 및 전임자 임금 노사자율 결정 등을 고집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추 위원장의 중재안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추 위원장은 타임오프제 문제를 중앙노동위원회 산하에 '근로시간면제 심의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자는 안을 제시했지만 이는 노사자율에 위임하는 것과 다름없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노조에 대한 처벌 조항마저 없애버린다면 관련법은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노조법 합의처리가 결국은 무산되고 현행법대로 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내년부터 전면시행되는 경우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혼란과 부작용이 야기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해법은 각 당사자간 이해(利害)의 최대공약수인 노 · 사 · 정 합의를 존중하는 길 뿐이다. 물론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선 찬성하지 않지만 노 · 사 · 정 합의안대로의 시행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선 달리 방법이 없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제는 남은 시간도 거의 없다. 국회는 하루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매일경제신문 사설-20091228월] 엉터리 `아파트 가격지수`로 뭘하겠다는 건가
국토해양부가 2년여에 걸쳐 개발한 `아파트 실거래 가격지수`가 시장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지수를 보면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전달에 비해 1.14% 오르는 등 10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는 지난 10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제2금융권까지 확대한 이후 2개월 이상 하락세 또는 약보합세다. KB국민은행 주간 아파트 등락률도 지난 24일 현재 10주 연속 `0.0` 또는 마이너스 행진이다.
이는 국토부 지수가 석 달 전 거래 데이터로 지수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실거래가 테이터로 산출한 지수를 12월 말에 발표하니 참고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헷갈리게 만든다. 대학의 연구용 지수라면 몰라도 소비자가 아파트 매매시점을 잡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수는 시장흐름을 즉각 반영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물론 거래 특성상 모든 거래가 전산시스템에 의해 리얼타임으로 이루어지는 주식시장의 종합주가지수처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1주일, 길어도 1개월 이내 데이터가 반영된 지수라야 시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의 주택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S&P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1개월 전 데이터로 지수를 산출한다. IT 인프라스트럭처가 잘 갖춰진 한국에서 3개월 전 가격으로 지수를 만든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제대로 된 아파트 지수를 만들려면 우선 실거래 신고의무기간을 계약 후 60일 이내로 규정한 현행 공인중개사 업무 및 부동산거래 신고에 관한 벌률 27조를 고쳐 길어도 30일 이내로 줄여야 한다. 중개사나 거래 당사자의 저항이 있겠지만 기술적으로는 계약 즉시 온라인으로 집계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지수 자체가 현실과 따로 놀면 주택정책 역시 `뒷북 행정`을 면키 어렵다. 특히 부동산시장도 주식이나 금융시장처럼 체계화되고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드는 데도 제대로 된 지수가 필요하다고 본다.
* 오늘의 칼럼 읽기
[중앙일보 카럼-분수대/허귀식(경제부문 차장)-20091228월] 원전 수출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는 원자력을 싫어하는 나라다. 다 지은 뒤 가동하지 않는 원전이 하나 있긴 하다. 츠벤텐도르프(Zwentendorf) 원전이다. 반핵 여론에 밀려 국민투표 끝에 1978년 11월 문을 닫았다. 반핵을 주도한 노벨상 수상자 콘라트 로렌츠는 “원전은 가장 비싼 고철 덩어리가 됐다”며 좋아했다.
몇 달 뒤인 79년 3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섬의 원전에서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오스트리아의 선택이 선견지명인가 싶었다. 당시 카터 미 행정부는 “새로운 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86년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이 방사능을 뿜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원전에 등을 돌렸다.
프랑스는 달랐다. 자국 원전회사인 프라마톰을 앞세워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기종 하나로 10년간 내리 6기를 건설했다. 기술을 익히자는 계산이었다. 82년엔 일감이 없어 고전하는 웨스팅하우스를 꼬드겨 원천기술 사용권까지 사들였다.
원자탄 두 방을 맞고 손든 일본도 50년대부터 원자력 정책을 줄기차게 밀어붙인 나라다. 일본 원자력의 대부는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 야스히로. 55년 원자력기본법 제정에 앞장서고 59년 과학기술청 장관에 취임해 일본을 원자력 대국으로 이끌었다. 일본은 사용후연료의 재처리시설까지 세우고, 원조 미국업체를 인수해 원천기술을 손에 넣었다.
한국도 배짱 좋게 원전을 세워나갔다. 80년대부터 방폐장 선정을 놓고 반핵 시위가 일어나고, 각종 괴담이 난무했으나 한눈을 팔지 않았다. 한국의 원자력 대부는 이승만 대통령이다. 발상지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전 중앙연수원 부지다. 딱 50년 전 바로 이곳에 이 대통령은 ‘원자력연구소’를 출범시켰다. 지금도 연구용 원자로가 남아 있고, 가까운 곳엔 이 연구소에서 갈라져 나온 원자력병원이 있다. 30년 반핵 운동이 지나가자 원전은 더욱 안전하고 온실가스 배출도 거의 없는 청정에너지로 재조명됐다. 프랑스·일본·한국이 수천조원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마침내 27일, 한국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사업을 수주하며 원전 수출 시대를 열었다. 삶의 터전을 원전 부지로 내놓은 이들의 희생, 과학자의 땀, 그리고 역대 지도자의 꿈으로 버무린 원자력 50년의 결실이다. 이 땅의 원자력을 가꿔온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경향신문 칼럼-여적/박래용(논설위원)-20091228월] 심리적 부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사랑을 얻지 못한 자기 삶을 권총 자살로 마감한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의 중립국을 택한 뒤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진다. 많은 문학 작품에서 자살은 낭만적이거나 유의미한 죽음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살은 삶의 벼랑에서 내리는 충동적인 선택인 경우가 허다하다.
통계 분석은 이런 자살에 일정한 유형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60대 이후 노인층과 이혼자들에게서 자살률이 훨씬 높다는 것은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종교 신자들의 자살률이 낮은 것은 공동체의 관심과 배려가 있을 때 자살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입증되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모두 1만2000여명. 인구 10만명당 24.8명 꼴로 세계 5위를 기록했다. 국민 사망 원인 중 자살은 암,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 다음으로 많았으며 전도 양양한 20~30대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 이미 자살자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추월했다.
더 부끄러운 것은 상황이 이런데도 지금까지 왜 여성보다 남성의 자살률이 높은지, 어떤 사람이 자살할 가능성이 높은지, 자살자는 어떤 예고행동을 보이는지 등과 같은 체계적이고도 면밀한 연구가 없었다는 점이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자살 시도자는 1년 이내에 9~32%가 다시 자살을 감행한다고 한다.
자살자의 사망전 심리를 재구성해 원인을 규명하는 ‘심리적 부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연구가 처음으로 이뤄져 발표된다는 소식이다. 흔히 부검을 통해 ‘죽은 자가 말한다’고 하듯이 자살자의 행적과 글, 주변의 진술을 바탕으로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원인을 가족이나 사회가 분명히 알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심리학적 부검은 다른 사람의 자살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부터 미국·영국·호주 등에서는 국가 검시관이 신체부검과 함께 심리부검을 병행하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자살은 예방이 가능한 사회적 문제이다. 1990년까지 ‘자살의 수도’라고 불렸던 핀란드의 경우 국가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해 인구 10만명당 30명이었던 자살률을 18명까지 낮췄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심리적 부검을 통해 근거 있는 자살 예방대책을 수립해 나갈 계획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서울경제신문 칼럼-기자의 눈/김태성(생활산업부)-20091228월] 대형마트, 원가절감부터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개설한 생필품 가격정보 사이트 '티프라이스(T-price)'로 유통가가 발칵 뒤집혔다. 서울시내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11개 유통업체에서 판매되는 20개 생필품에 대한 가격 정보가 게재된 이 사이트의 내용에 대해 대형마트들 사이에서는 때아닌 신경전이 벌어진 것. 같은 제품인데도 업체별로 가격 차이가 최고 4,000원 이상 나타나는 등 특정 업체가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것으로 알려진 업체는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다. "서울 특정 지역의 점포만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지역별 가격 격차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에서부터 "가격이 유달리 싸게 나온 업체의 경우 타 지역의 점포에서는 더 비싼 가격을 적용하고 있다"는 경쟁사 '고발'까지 그 내용도 다양했다. 이제까지 가격 경쟁력을 최고 장점으로 내세운 대형마트들에 이번 가격 정보 공개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업체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와중에 드는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까지 대형마트들이 생필품 가격 절감을 위해 과연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되짚어볼 때 마땅한 대답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소비자단체협의회 주최로 열린 '생활필수품 소비자 가격 안정 방안 토론회'에서 지적된 같은 제품 간 가격차이와 과도한 묶음판매에 따른 가격 부풀리기 등을 '제조업체 탓'으로 일관하던 마트 관계자들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제조사를 대표하는 식품공업협회의 한 관계자가 "현재 최종 소비자가격은 유통업체가 대부분 결정한다"며 생필품 가격 상승 원인의 책임이 마트에 있다고 설명하자 대형마트의 관계자들은 "대형마트 제품이 간혹 비싼 것은 제조업체의 출고가가 높기 때문"이라며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고 항변했다. 생필품 가격 공개에 과도하게 반응하던 대형마트들에서 책임 떠넘기기의 구태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번 가격 정보 공개의 정밀성과 타당성을 문제 삼기 이전에 대형마트들은 먼저 적극적인 원가 절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비자원의 가격공개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보다는 합리적인 유통판로 개척과 판촉행사 비용 축소를 포함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