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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선협, 9월 정기 선교지 탐방, 조이풀 장로교회 편”
드디어 마선협 정기모임의 날이 밝아오다.
2014년 9월 2일 화요일 이날은 우리 마선협 9월 정기 선교지 탐방이 있는 날이다. 참으로 가슴이 설레는 날이다. 나는 새벽에 기도할 때 특별히 이날 있게 될 우리 마선협 정기모임을 위해 하나님이 은혜주시기를 간구했다. 9월 선교지 탐방지인 전상렬 박향록 선교사님의 사역지인 조이풀 장로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아침에 딸을 학교에 보낸 우리 부부는 부랴부랴 서둘렀다.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하고, 쓰레기를 내 놓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평소 화장을 않기로 유명한 아내도 오늘은 뭔가 손으로 깔짝깔짝 하면서 얼굴에 보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약속시간인 9시 30분이 아직 여유 있게 남아있었지만 빨리 집에서 나와 맥도로 향했다.
나의 필살기의 한토막
마선협 접선 장소인 커먼웰스 대로변에 있는 맥도에 다다랐을 때 대두되는 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주차의 문제다. 이곳 맥도날드는 평소 사람들의 출입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영업이 잘 되는 것에 비해 협소한 주차장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커브를 틀면서 나는 외쳤다. 한 자리 빌지어다. 그 순간 한 대의 주차공간이 빈 것이 보였다. 나는 에버 쪽에서 혹시 진입한차가 있을지 몰라 두 눈을 부릅뜨고 엑셀을 더욱 밟아 엔트란스에 들어섰다. 이제 추월할 차도 없다. 안심하고 돌아서자 언제 그 빈곳을 보았는지 승용차 한 대가 주차장 안 쪽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내가 보았을 때는 경쟁차가 주차장 안에는 없었는데, 나는 놓칠세라 반 박자 빨리 그 빈 주차 공간 옆에 차를 바짝 댔다. 내가 먼저 일촉즉발의 주차 전에서 선점을 하게 된 형국이었다. 상대방 차도 그 공간을 노리고 달려든 모양이다. 서로 차머리를 대고 잠시 으르렁 으르렁 신경전이 이어졌다. 으르렁 거리던 상대방 차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꼬리를 내리고 후진해서 다른 빈곳을 찾아 떠나버렸다. 나는 그 차가 확실히 떠남을 확인한 후 스무쓰하게 차를 전진해서 다시 빽 기어를 넣고 주차에 성공했다.
이렇듯 나는 종종 어느덧 필리피노가 되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 중 하나가 그날 아침처럼 운전할 때 차 대가리를 밀어 넣을 때는 여지없이 집어넣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필살기 즉, ‘필리린에서 살아남기’이다. 어찌 대 마선협 소속 문선교사가 무조건 들이 내밀기만 하겠는가! 필리핀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면서 양보하고, 베풀고, 포기하고 사는 것이 더 많다. 아마 우리 마선협 모든 선교사님들이 다 그럴 것이다.
맥도, 마선협 접선장소로 확정되나?
나와 아내는 9시 12분에 약속장소인 맥도에 도착했다. 아마 우리 마선협 정기모임과 관련해서 맥도가 마선협 공식 협력내지 후원업체가 아닌가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맥도는 우리 마선협과 나름대로 상당히 관련이 있는 듯하다. 마선협 멤버들의 소위 접선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마닐라에서 C5를 이용해 남부 고속도로를 타고 마닐라 남쪽으로 가기 위해서 만나는 장소는 까띠쁘난 아테네오 건너편에 있는 맥도가 제1의 장소이다. 제2의 접선장소로 떠오르는 곳이 있으니 거기는 ‘에버코타스코(Evercotasco) 맥도’ 이다.
이곳은 몬딸반, 페어뷰, 칼로오칸, 블라칸 등 마닐라 북쪽으로 가기위해서 거쳐 가는 접선 장소로 용이한 지점이다. 벌써 올해만 해도 7월 몬딸반 김용기 선교사님 사역지에 이어 이번 9월 역시 몬딸반 전상열 선교사님 사역지 순회를 위해서 두 번째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이곳은 커먼웰스 대로변과 에버몰 사이에 위치해 있다. 더러 그곳을 에버맥도라고 하면 혼란을 야기 시키게 된다. 에버몰 안에도 맥도가 있는데 그곳 이름이 에버맥도이기 때문이다.
맥도 에버코타스코에 모습을 보인 인사들
아내와 내가 맥도에 들렀을 때 벌써 몇 분이 미리 도착해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김해석 이목현 선교사님 부부와 문상영 임재순, 정찬준 송정희, 홍주철 이인선 선교사님 부부가 테이블에서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외톨이로는 김인효 선교사님이 와 계셨다. 이어 김대겸 선교사님이 에헴 대감님처럼 행사하셨다. 부회장 김인효 선교사님께서는 커피를 주문 받아 주문자들에게 본인 사비를 들여 대접해주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때 속속들이 마선협 인사들이 맥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남부 빠라냐께에서 김동조 최학정 선교사님께서 모습을 나타냈다. 우리는 환영하며 서로 반가이 악수했다. 이어 여장수들이 맥도로 입장했으니 조말례, 장보윤 선교사님이셨다. 계속해서 근래에 형체가 많이 변하여 알아보기가 조금 힘든 분이 오셨다. 이분은 한 10년 이상 더 젊게 보일만큼 대 변신에 성공한 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분의 별명은 흰머리 소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검은머리 소년이 되어 나타나지 않는가! 그분이 흰머리 소년이었을 때 그분의 내당마님은 자동으로 흰머리 소녀로 불려졌다. 그런데 이번에 흰머리 소년이 검은머리 소년으로 변신하게 됨에 따라 그의 안방마님 자동으로 역시 검은 머리 소녀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흰머리 소녀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 젊어져야 하는데 그만 도를 넘어서 혼자만 많이 젊어지는 바람에 안방마님은 졸지에 검은머리 누님이 되고 말 처지에 놓여있다. 이들 부부는 바로 유병국 백옥자 선교사님이시다. 약속시간인 9시 30분이 넘어 33분쯤 되었을 때 정광훈 회장님이 뉴스타렉스 12인승에다 하얀 모시옷 풍의 옷을 입고 등장하셨다. 그쯤해서 명락훈 선교사님 부부가 또 다른 뉴스타렉스 9인승을 몰고 도착하셨고, 김인효 선교사님을 외톨이로 만들었던 김정렬 선교사님이 가세해서 남편을 외톨박이 참여자에서 당당하게 커플 참여자로 격상시켜 주었다.
리텍스와 빠야따스 구간에서 들어온 풍경
맥도에서 여러대의 차량으로 나눠 타고 9시 42분 몬딸반을 향하여 출발했다. 나는 이번에도 마선협 1호차에 올라탔다. 정광훈 목사님이 우리들을 이번에도 섬겨주셨다. 우리 앞에는 김화영 선교사님이 그랜드 스타렉스를 몰고 우리차를 에스코트 하듯 앞서 나갔다. 잠시 후 커먼웰스 대로에서 몬딸반 방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진입하는 관문에 위치한 빠야따스 리텍스에 다다랐다. 아침시간 여전히 복잡하게 붐비고 있었다.
편도 1차선 도로여서 평소에도 붐비는 구간인데다 굴삭기가 땅을 굴착하고 있었다. 도로 공사중이었다. 우기철인데도 잠시 소강국면에 접어들자 공사를 재계한 것 같았다. 이곳저곳 부쩍이나 많은 공사현장을 지날 때면 필리핀의 건설경기를 보게 된다. 이날 아침 이곳저곳에서 움직이는 중장비들을 보면서 필리핀의 건설경기는 앞으로도 계속 활발할 것이라는 매우 낙관적인 전망을 해보았다.
그 구간에서 또 하나의 광경이 여지없이 들어왔다. 한 트라이시클 드라이버가 한쪽에 받쳐놓고 그만 큰 대자로 서서 짝대기를 받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짝대기는 우리 어렸을적 짐을 운반하는 도구인 지게를 세울 때 쓰는 버팀목을 짝대기라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오신 분들에게 종종 필리핀을 소개할 때 짝대기 문화도 소개하곤 한다. 우리 어렸을 때 한국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물론 지금도 한국에서도 공중화장실이 적은 시골에서는 짝대기 받치는 것은 자연스런 풍경 중에 하나이지만, 도심에서는 이제 보기 어려운 옛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필리핀에서의 짝대기 문화는 담벼락에 쓰여있는 ‘바왈 우미히 디또(이곳에 소변 금지를)’라는 글귀에서 잘 엿볼 수 있다. 하도 짝대기를 많이 받쳐서 그런지 여기 저기서 찌렁내가 코를 찌르는 곳이 많은 나라가 필리핀이기도 하다. 언젠가 필리핀이 잘 살게 되고, 시민들의 문화의식이 선진화되면 짝대기 받치는 광경은 많이 줄어들게 될 날이 도래할 것이다.
몬딸반 고개를 넘다
우리 차량은 커먼웰스 맥도날드를 출발하여, 리텍스와 빠야따스를 지나 23분 후에 몬딸반 고개를 넘어갔다. 나는 종종 몬딸반 고개를 넘을 때면 우리나라 노래 가사에 많이 등장한 고개들을 생각해 본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옛날에 서민들이 고개를 넘고 넘는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해서 유독 우리 나라 고전과 유행가에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다. ‘울고 넘는 박달제’에서 ‘한 많은 미아리 고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대관령, 추풍령 등 큰 고개에다 밤티재, 개머리재, 싸리재, 성삼재, 만항재, 정령치 등 크고 작은 고개와 재가 이야기나 노래에 등장하고 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예수를 믿고 막 은혜 받고 새벽기도를 다니던 때에 우리 동네에서 교회가 있는 마을로 새벽기도 나가려면 넘어야 할 재가 하나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자라봉이었다. 그곳에 다다르기 전에는 저수지가 있어 저수지를 지나고, 그 자라봉 재를 넘을 때면 등골이 오싹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들었던 저수지에서 사람들이 빠져 죽은 이야기에서부터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이 나타난다는 둥, 그래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담대함과 용기를 주셔서 나는 찬송을 부르며, 용기를 내어 그 차디찬 교회에 나가 은혜 받고 기도하고 돌아오던 때가 회상이 된다.
필리핀에서 몬딸반 고개 정상 부근에서 일종의 트라우마를 나는 가지고 있다. 전에 아내랑 필리핀 자매님이랑 몬딸반에 다녀올 일이 있어 들렀을 때 돌아오는 길에 차가 오버히팅 지점에 까지 이르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차를 레미콘 회사 안으로 들어가 찬물을 끼얹고, 자동차 후드를 열어 열을 다 식히고 출발해서 돌아온 기억이 있다.
아마 필리핀 사람들, 특별히 몬딸반 일대와 와와댐 넘어 깊은 산중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도 몬달반 고개는 그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곳일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다. 그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수 백 번을 그 고개를 넘고 넘었을 것이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걸어서 아니면 우마차를 이용해 넘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른 아침이면 몬딸반 고개를 넘어 쾌존이나 마닐라 일대에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산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먹고 살기가 제한되어 있는 몬딸반에서 대다수의 특히 남성들이 그 고개를 넘어 출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 빌리지에서 잡일을 하는 직원들 중 대다수가 바로 몬딸반 사람들일 정도이다. 그들은 지프니 아니면 오토바이로 몬딸반 고개길을 넘어 다니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조이풀 장로교회로 들어가는 길
이윽고 목적지인 조이풀 교회에 다다르자 동구 밖에서부터 3인조 조이풀 교회 자매들로 보이는 3인방이 차량을 교회 쪽으로 안내하였다. 만약 그들이 그곳에서 인간 신호등 역할을 하지 않고 있었으면 까시글라한으로 내려가고 말 것이다. 조이풀 교회로 통하는 마을길은 노면이 메끄럽지 않았다. 거의 래프팅이나 성난 파도를 타는 배처럼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이때 문상영 선교사님께서 우스개 소리를 하나 하셨다. 마선협 대원들과 회장님 온다고 포장 공사를 끝내놓으라고 몬딸반 당국에 지시 해 놓았는데 이행해 놓지 않았다고 하면서, 죄송하다고 말씀해 함께 웃었다. 마선협 1호차를 비롯해서 그날 동원된 모든 차량들은 조심조심 기어서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가니 또 한 개의 갈림길에서 조이풀 자매님들이 서서 우회전 수신호를 해 들어가다 보니 조이풀 교회 전경과 널따란 대지가 눈에 들어왔다.
넓은 대지위에 자리 잡은 사역지
우리 차가 조이풀 장로교회에 들어섰을 때 우람한 교회 예배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관령 어느 넓고 넓은 목장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넓은 초원위에 상당히 큰 예배당이 지어져 있었다. 우리를 태운 차량이 도착했을 때 먼저 도착한 차량 몇 대가 보였다. 이성우, 김화영, 김해석 선교사님 차량이 먼저 도착해 있었으며, 이어서 회장님의 마선협 1호차와 명락훈 선교사님, 박낭순 선교사님 차량이 뒤를 이어 입장 완료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부지가 족히 2핵타르가 조금 넘는 듯 보였다. 평수로는 6,700여평 정도 된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광활한 대지위에 조이풀 교회가 지어져 있었다.
도착이모저모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반갑게 해후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미소지으며 악수했다. 참으로 반갑고 반가운 얼굴들이다. 9월 모임의 호스트 전상렬 선교사님이 나오셔서 환대해 주셨다. 사역지와 예배당을 지키는 가드도 총을 차고 우리를 보호하며 맞이해 주었다. 우리는 인사 후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참석자들은 밖에서 그 넓은 대지를 보고 한 번 놀라고, 본당안으로 입장한 후에는 크고 웅장한 예배당을 보고 또 한 번 놀라는 기색들이었다. 예배당은 지붕이 좌우 대칭형으로 되어 있어 균형감이 느껴졌다. 바닥은 타이루가 깔아져 깨끗하고 산뜻하여 기분을 좋게 해 주었다.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옆으로 길게 만들어진 나무의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예배 당 안에서 잠시 묵도를 마친 대원들은 미리도착해 있는 대원들에게 다가가 안에서도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예배 이모저모
부회장 김인효 선교사님께서 사회자로 등단하여 ‘여기에 모인 우리’를 찬양했다. 이 곡은 우리 마선협의 순회 정기예배에서 꼭 시작과 함께 부르는 찬양이다. 이어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를 불렀다. 이후 기도는 맹일진 선교사님이 나오셔서 인도해 주었다. 기도 후 전체가 함께 말씀을 봉독한 후, 최학정 선교사님이 나와 창세기 12:1~4 본문을 가지고 “너는 떠나가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최학정 선교사님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낸 갈대아 우르, 고대 근동의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룬 수메르 인들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그들의 문명과 그 시대 사람들을 하나님이 심판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세계사의 배경을 동원해 전달해 주었다.
또 하나 나일강의 삼각주의 곡창지대의 천연 혜택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보다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애굽인들과 그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힘주어 강조했다. 우르 땅과 애굽땅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그 후손으로 하여금 들어가게 한 약속의 가나안땅에 대해서 비교하면서 은혜 스럽게 말씀을 전해 주었다. 말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 실제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지을 수 없는 척박하기 이를데 없는 가나안 땅,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이 이슬을 주시고, 시후를 좇아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셔야 파종과 추수를 할 수 있는 땅으로 들어가야 할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해서 선포했다.
적용점으로 선교사로 와 있는 우리들이 과연, 수메르인이나 애굽인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사람의 지혜와 주변의 도움만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자고 역설해 많은 공감대를 이끌어 내었다. 이어 헌금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에는 마선협 남성 중창단이 나와 특송을 해 주었다. 헌금 시간에 이어 광고는 서기 김동조 선교사님이 해주었고, 헌금기도와 축도는 홍주철 선교사님이 맡아 마무리 해주었다.
마선협 남성 중창단 탄생
이성우 선교사님의 주동으로 마선협 중찬단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첫 포섭 대상으로 우영 선교사님을 꼬셔서(?) 중창단 단원으로 가입시키더니 그 다음으로 나에게까지 접근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고 더 잘한 사람들을 찾아보시라고 말씀드렸다.(아이고 목사님 죄송합니다) 그 다음 포섭된 사람으로는 김대겸, 전상렬, 김인효 선교사님들이 타켓이 되어 이른바, 이성우의 블렉리스트에 올라 결국 포섭(?)되고 말았다. 이날 중찬단이 무대에 올린 곡은 “내 평생에 가는 길”이었다. 중찬단에 혼성으로 부르기에 마치 좋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가사의 의미도 늘 부를 때마다 잔잔한 심금을 울려주는 곡이다.
이곡을 우리 마선협 남성 중창단이 9월 정기모임 특송 시간에 무대에 올렸다. 첫 무대로서는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발전을 위해서는 뭔가 2% 이상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음악 평론가는 아니지만 먼저 좀 더 자신감 있게 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 특유의 굵직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고, 뒤로 숨어 들어갔다. 이것만 살아난다면 앞으로 그들의 앞길은 누구도 예상 못할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혹시 아는가? 미국 카네기홀에서 그들을 불러 세울지... 누군가 깨몽, 꿈깨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을 높이시기도 하고, 낮추시기도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에게 모든 절대주권이 있다. 우리 마선협 중찬단 여러분들이 먼저 과소평가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든 마선협 멤버들도 우리 자신들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좀 더 높은 자존감을 갖고, 자신감을 회복하여, 사역현장에서 무엇이든지 당당하고 담대하게 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인효 선교사님이 인도한 기도회
2부 기도회는 부회장이신 김인효 선교사님이 1부 예배 사회에 이어 기도회도 주관해 주셨다. 기도제목을 나누고 한 가지씩 통성으로 기도하였다. 매 기도 제목마다 시작 주여, 주여, 주여 주님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첫째,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는 선교사가 되기를 위해 둘째, 우리 조국 대한민국과 필리핀을 위하여 셋째, 우리 마선협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위하여 그리고 개인 기도제목을 받아 기도하였다. 조말례 선교사님께서는 교회의 전기사정의 어려움을 내 놓아 합심해서 통성으로 조속한 해결을 위해 기도했다. 장보윤 선교사님은 기도 중에 나와 앞으로 교회의 찬양팀들과 리더들을 대동해 한 번씩 몬딸반 전상렬 선교사님 사역지까지 와서 협력사역을 펼치고자 한다고 감동된 바를 말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기도, 교도소 선교와 북한 선교에 열의를 쏟고 있는 우리의 교도관 김해석 선교사님이 나오셔서, 9월 9일 부터 3일간 하나님의 벗교회에서 있게 될 탈북 형제들 간증집회를 위해 긴급기도를 요청해와서 함께 기도했다. 김인효 선교사님은 목이 약간 잠길 정도로 기도회를 뜨겁게 인도해 주었고, 우리 모두 역시 통성으로 간절히 기도에 참여하였다.
호스트 전상열 선교사에게 듣는다
김인효 선교사님이 기도회를 인도하다가 중간에 9월 모임의 초청자인 전상렬 선교사님을 앞으로 나오시게 해서 사역지 소개와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제목을 나눌 기회를 제공했다. 전상렬 선교사님은 그곳에 터를 잡고, 지금까지의 사역 소개와 그동안의 고충과 현재의 난관들 그리고 향후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조이풀 교회의 탄생은 광주 겨자씨교회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그 드넓은 땅을 매입하게 되었고, 교회 건축도 하게 된 일련의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정말 전선교사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그 넓은 대지보다, 그 큰 예배당에 감히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의 이글레시아의 방해로 복음전파와 영혼구원에 애로점이 많다고 하셨다. 특히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는 이글레시아의 도전에 직면해 흔들리는 성도들로 인해 안따까움을 표출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몬딸반 내에 있는 작은 현지 교회 목회자들을 돕고, 그들과 연대해서 지역 복음화를 위한 일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전상렬 선교사님 사역교회와 기도제목을 놓고도 합심해서 기도했다.
월례 회의 스케치
회장 정광훈 선교사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서기 김동조 선교사님이 나와 회원 점명 32명 참석이라고 말하자, 성수가 되어 회장님의 개회 선언으로 9월 월례회가 시작되었다. 굵직한 의제로는 다음 10월 마선협 선교지 순회예배는 10월 14일 화요일 홍주철 선교사님의 사역지인 까비테에서 갖게 됨을 마선협 회원들에게 공지했다. 이어 해외 선교지 탐방은 9월 28일 주일 밤부터 한 주간 일정으로 22명이 참석하여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에서 갖게 될 것임을 알렸다. 회의는 무슨 고성이나 복잡한 것 하나 없이 일사천리로 은혜스럽고 평화스럽게 끝났다.
기념촬영의 시간
예배와 월례회를 은혜스럽게 마치고 기념촬영에 들어갔다. 기념촬영 장소로서는 넓은 대지에 우뚝 서 있는 예배당 건물이 어울릴 것 같았다. 호스트인 전상렬 선교사님께서 그래도 바깥 보다는 예배당 안에서 찍은 것이 더 낫다고 해서 본당 단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먼저 그날 우리 마선협으로 월마하여 귀순용사(?)가 된 정삼식 병사가 귀순하자마자 사진 촬영에 동원되어 마선협으로 귀순 신고식을 가볍게 치렀다. 이어 자리를 바꿔서 장보윤 선교사님이 기념촬영을 맡아 디카, 폰 카메라 몇 대로 근거리, 원거리 다 소화해내면서 성공적인 촬영을 도왔다. 장 선교사님 본인은 1차 사진기에만 나오고 폰 카메라에는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귀순용사를 단상에 오르게 하고, 자신은 기념촬영을 위해 헌신하신 장선교사님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9월 선교지 순회모임 참석자들(총 33명)
부부참석자(22명)
정광훈 김경순, 김인효 김정렬, 맹일진 박남순, 홍주철 이인선, 유병국 백옥자, 문상영 임재순, 김해석 이목현, 전상렬 박향록, 정찬준 송정희, 명락훈 박경화, 문병금 이창금
외기러기 참석자(10명)
최학정, 김동조, 이성우, 김화영, 김대겸, 이용수, 임광수, 장보윤, 조말례, 박낭순
게스트, 귀순용사(1명)
정삼식(동선협)
필리핀 몬딸반 스타일 점심을 먹다
기념촬영 후 조이풀 교회 본당 옆에 있는 부속 건물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곳에는 우리를 위한 오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가 몬딸반 조이풀 레스토랑에 와 있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들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메인으로는 밥과 된장국을 기본으로 바비큐와 오징어 구이, 가지요리, 묵은지, 여기에다 여러 가지 쌈 채소들이 예쁘게 수를 놓은 듯 코디되어 있었다. 쌈은 교회당 주변에 빈 땅에 심은 무공해 야채를 뜯어 아주 신선한 것들이었다. 특별히 약간 매운 듯 쌉싸로운 맛을 주는 잎채소에 특이한 맛이 있어서 좋았다. 쌈이 나오면 으레히 나오게 되는 쌈된장, 양념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후식으로 야채 사라다, 옥수수, 망고, 노란 수박, 고구마튀김이 제공되었다. 망고는 회장님이 한 박스 제공해 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음료수로는 콜라를 따라 주었다. 우리들의 점심을 위해서 배열 해 놓은 음식들 앞에서 포리(파리)를 부지런히 좇아내는 형제자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음식에 대해서 위생상태도 각별히 신경 쓴 모습이었다. 모두들 비닐장갑을 끼고 음식을 만지거나, 부족한 음식을 그때그때 보충해 주었다. 음료수 코너를 따로 두어 두 세 명의 형제가 달라붙어 부지런히 서빙을 해주었다. 그 팀으로 필리핀 식당을 차려도 거뜬히 운영하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선교탐방팀 모임
이번 해외 선교지 탐방의 진행을 맡은 김인효 선교사님이 그동안의 진행상황과 일정등에 대해서 소상히 보고해 주셨다. 특이한 것은 둘째날 말레이시아에서 일정이 항공사의 스케쥴 변경으로 예초 새벽 출발에서 오후 3시로 순연됨에 따라 말레지아에서 일정을 더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캄보디아 선교사님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그 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주로 학교사역과 고아원 사역을 많이 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를 할 줄 아는 교사를 확보하는 일인데 캄보디아에서는 교사수급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필리핀은 영어 사용권으로 영어를 잘하면서 신앙 생활에도 신실하고, 여기에다 선교 마인드와 비전을 가진 믿음의 교사를 파견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선교 동역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기대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 마선협의 지경이 넓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날 해외 선교지 탐방 예비 모임에는 총 22명 중에서 14명이 참석하였다.
필리핀 마닐라 선교지 사수팀 모임
이성우, 김해석 이목현, 김동조, 조말례, 김정렬, 이창금 선교사님 등 마닐라 사수파가 모이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 마닐라 사수파를 깔보지 마라. 우리가 마닐라를 안 지키면 너네들은 해외고 나발이고 못간다. 소수점 이야기가 생각났다. 너희들 날 건들면 점 빼버린다. 4.5이야기이다. 점을 빼면 45가 되어 버린다는 대단한 자존감을 가진 점이야기 말이다. 아무튼 가는 사람들은 또 이곳에 남게 될 대원들을 생각하고, 마닐라 사수파들은 또 해외 탐방 팀들을 생각해주고 해야 할 것 같다. 또 처지는 언제든지 사정에 따라 서로 바뀔 것이다. 홀에비 사정은 홀에비가 잘 알고, 시엄씨 사정은 시엄씨가 잘 알고, 미느리 사정은 미느리들이 잘 안다고 하지 않는가! 여러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하지만 다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모두가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마선협으로 월마한 귀순용사
이날 우리 마선협 9월 순회모임에는 평소 우리 마선협 모임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던 한 사람이 참석하였다. 그 분은 동선협(동부 선교사 협의회) 소속의 정삼식 선교사님이었다. 정선교사님은 우리 마선협의 9월 정기모임에 참석하여서 우리 공동체의 화목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교제하는지를 보고 느꼈을 것이다. 우리 마선협 커뮤니티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발견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왜 마선협이 잘 모이고, 잘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가 되었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마선협으로 귀순을 결심하였을지 모른다.
아마 지금까지 동선협에서 대남 아니 대마(대마선협) 선전방송을 했을지 모른다. "너희들 마선협으로 넘어가면 배를 곯게 된다. 거기는 먹을 것이 없다. 추석이 돌아와도 우리 동선협은 사과 한 상자씩이라도 돌리는데 거기는 사과 캥이는 망고 하나도 주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삼식 선교사가 월마하여 마선협의 사랑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었으니 그가 마선협으로의 귀순을 결정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조만간 그의 귀순 발표가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향후 우리 마선협에서 정삼식 병사의 월남 아니 월마 귀순 기자회견과 환영회라도 열어야 할 것 같다. "문선교사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지금까지 웃자고 한 얘기이다. 실제로 이 분이 마선협 정기모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해외 선교지 탐방에 조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떡 본김에 제사지내고',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비용이 저렴하고, 알찬 마선협 해외 선교지 탐방 기회를 놓치지 않는 귀순용사가 있다는 것이 대단하기만 하다. 참말로 우리 마선협 덕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 동선협 귀순용사 외에도 필리핀에 부지기수 인 것 같다. 앞으로도 우리 마선협 덕을 볼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추석맞이 볼링교제 장소로 이동하다
마선협 9월 모임 월례회를 마치는 시간 쯤해서 특보가 발표되었다. 오늘의 모든 순서 후에 추석도 되었으니 2차로 쾌존 에버몰에 있는 볼링장으로 무대를 옮겨 볼링대회를 하겠습니다라는 회장님의 발표가 나왔다. 여기저기서 흥에 겨운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2시 8분에 몬딸반을 출발했다. 빠야따스에 이르자 차가 많이 막혔다. 편도 1차선인 도로에다 쓰레기를 싣고 마닐라와 빠야따스, 몬딸반을 오가는 차량들과 일반 차량들이 서로 얽혀 혼잡을 가중시킨 것이 트레픽의 요인인 것 같았다. 우리들을 태운 차량은 평소 35분 보다 더 많은 47분 만에 에버 몰에 도착했다.
여기에도 꾀보는 있었다. 김화영 선교사님은 몬딸반에 사역지를 둔 이유탓인지 빠야따스에 들어서자 숏컷을 이용한 것이다. 골목길로 들어가 몇 번 우회전과 좌회전을 반복하다 보니 의사당이 나오고 커먼웰스 대로가 나와 곧장 와서 미리 도착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여시(여우)가 총 맞을 때가 있다는 것임을 아시기 바란다. 때로는 여시처럼 꾀를 부리다가 지름길로 간 것이 더 막히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발짝도 한 시라도 내일 일도, 아니 잠시 후의 일도 모른다. 우리를 돕는 자가 되시는 우리의 영원한 파라클레토스, 보혜사 성령님에게 작은 것 까지도 물어야 할 이유이다.
몬딸반 고개를 넘기전 발생한 에피소드 둘
하나. 박낭순 선교사님의 기행
몬딸반 조이풀 교회를 나오는 길은 들어갈 때처럼 풍랑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처럼 이리 저리 흔들렸다. 들어갈 때 하부가 시멘트 도로 끝자락 움푹 한 지점에서 뚝 하고 맞닿아 긁혀버린 경상을 입은 마선협 1호차 운전병 정광훈 회장님은 더욱 조심스럽게 엉금엉금 기어가면서 나가고 있었다. 우리 앞선 차량으로는 박낭순 선교사님이 몰고온 엔란트라 승용차 였다. 요철이 심한 도로 끝자락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두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그곳에서 우리 앞서가던 박낭순 선교사님의 엘라트라가 왼쪽으로 자신만만하게 핸들을 꺽고 진입한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싶었다. 쾌존으로 나가려고 하면 우회전해서 조금 올라가 좌회전해야 하는데 박선교사님은 좌회전 한 것이다. 그것도 자신만만하게 말이다. 아마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내가 여기서부터는 지리를 잘 안다고 나만 따라오라고 물어보지도, 뒤 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있게 우리를 끌고 가려는 듯 한 것 같았다. 정광훈 목사님이 크락숀을 울려 창문을 내리게 하고 왜 그리 가느냐, 그곳이 아니다. 따라오라고 하고 우리 차는 기수를 정상적인 우회전을 하게 되었다. 후사경으로 보니 자기들만이 아는 지름길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큰 도로에 나아가 정차 해 놓고 기다려 주었다. 우리는 박낭순 선교사님의 기행이 시작되었다고 하면서 웃었다. 해외 선교지 탐방모임 때도 박낭순, 장보윤 선교사님 두 분은 우리 일행보다 캄보디아에 하루 먼저 날라 가게 표를 끊게 되었다고 보고 한 것이 생각 나서 아무튼 비행기인지 기행기인지 박낭순 선교사의 기행이 오늘부터 벌써 시작되었다고 해서 모두 웃었다.
둘, 홍주철 선교사님의 기행
몬딸반을 출발해 쾌존 에버몰로 이동하던 중 몬딸반 고개 못 미쳐서 이번에는 홍주철 선교사님이 큰 사고를 쳤다. 일컬어 폭소사고이다. 캄보디아에 가시게 된 홍선교사님은 탐방자 예비모임을 가지고서 흥이나셨는지 차 속에서 혀가 돌아가고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한국인(Korean)과 캄보디아인(Cambodian)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 조합을 혼자 당신께서 차 속에서 엮어낸 것이다. 한국과 필리핀계 사이에서 태어난 코피아노를 염두해 두고서 이리저리 당신 혼자 중얼 거리면서 맞춰보고 계신 것이다. 듣고 있자니 얼마나 웃기던지. 차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코캄디아. 코보디아, 코캄보아, 코디아노, 코캄보아노, 코캄보디노, 코보디아노, 나는 그만 듣고 있다가 도저히 안되어서 “오메, 그러다가 코파게 생겼네” 하고 한 바탕 웃고 말았다.
진짜 그날 코파라와 코브라만 안 나오고 거의 코와 캄의 조합이 다 나온 것 같았다. 나도 거기에 보조를 맞춰 몇 개 해보다가 그만 방언이 터지는 줄 알았다. 얼마나 내 혀가 고놈의 코캄 때문에 꼬부라져 들어가더니 이상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중에라도 그것을 여러 번 짝을 맞추다 보면 방언이 터질지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주철 선교사님으로 인해 우리들은 차 안에서 얼마나 배꼽잡고 웃었는지 집에 와서 내 배 꼽이 하나 빠져 어디선가 잃어버린 사실을 늦게 서야 알게 되었다. 어디서 잃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몬딸반 고개 넘어오기 전 그 도로 상에서 잃어버린 것 같았다. 지금도 어디선가 돌아다니고 있을 내 배꼽이여! 다음에 가면 찾아오든가 아니면 전상렬 선교사님에게 교인들을 풀어 기어코 찾아서 잘 보관해 두다가, 다음 10월 모임에 까비테로 가져다주라고 부탁드릴 까 한다. 그날 배꼽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웃어 제겼는지 밥 먹은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배불리 먹어 두었던 배가 다 소화되어 몬딸반 고개를 넘어오느라 꺼진 배를 배고파 허기진 배를 붙잡고 몬딸반 고개를 넘어오느라 혼이 났다.
마선협에서 출세하고 있는 촌놈
우리는 빠야따스의 트레픽 구간을 통과한 후 커먼웰스 대로를 달려 에버몰에 도착했다. 볼링장은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에버몰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서 살고 있고, 더러 에버몰을 이용하지만 볼링장은 처음이었다. 볼링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진짜 마선협에 들어와 수지맞고 호강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부부일 것이다. 우리는 필리핀에 선교사로 온지 7년째 보내고 있지만 통 웬만한 곳에 돌아다니지 않아, 그리 많이 가보지 못했다. 그러던 촌놈이 마선협을 통해서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곳도 가보게 되었으니 이런 출세가 어디있다는 말인가! 마선협에 들어오자마자 마따붕가이를 가게 되었지 않나, 민도르 푸에로갈레아 섬을 다녀오지 않나, 이번에는 에버몰 볼링장도 구경하고 직접 거기서 볼링도 해 보겠되었으니 나는 마선협에 들어와 지금 출세하고 있다. 촌놈의 필리핀에서의 출세가도와 전성시대가 지금 마선협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막상막하 박빙을 이룬 볼링경기
에버몰에 있는 볼링장에 당도하였을 때 무척 목이 말랐다. 점심때 쌈장으로 해서 조금 짜게 먹었는지 물이 쓰였다. 그 필요를 정광훈 회장님과 사모님께서 아시고 시원한 콜라와 오란씨를 대원들에게 제공해 주시어 갈증을 해소하였다. 팀을 나누고 본격적인 볼링 시합에 돌입했다. 처음 시합은 4개 레인을 남자들이, 1개 레인은 여자들이 사용하였다. 1차 시합의 조 명단으로는 김동조 문상영 문병금 조, 김인효 김해석 이성우 조, 정광훈 김화영 정찬준 조, 최학정 이용수 김대겸 조가 경합을 벌였다. 결과 우리 팀이 고배를 마셨다. 여자 레인에서는 이창금 임재순 박낭순 조말례, 김경순 박남순 장보윤 송정희 선수가 두 개 팀으로 나누어 시합을 펼쳤다.
남자들의 1차 시합에서는 우리 팀이 졌으나 두 번째 내기 시합에서는 우리 조의 선전으로 우리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세 번째 시합에서는 김동조 김화영 문병금 조, 맹일진 문상영 정찬준 조가 한 팀이 되었다. 또 다른 팀으로는 최학정 김인효 이용수 조, 김대겸 김경순 김정렬 조가 한팀이 되어 시합에 들어갔다. 결과는 최학정 김인효 이용수 김대겸 김경순 김정렬 팀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내기로는 반딧살 빵 두 개에 아이스크림 한 개 얘기가 나돌아 이용수 선교사님과 김인효 선교사님이 특히 배꼽잡고 함께 웃고 있었다.
특이한 결과는 양팀을 통틀어 1등에는 김정렬 선수가 166점으로 1등, 최학정 선수가 161점으로 2등 그리고 3등에는 문병금 선수가 140점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날 나의 나 된 것은 순전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볼링장을 가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제대로 스텝도, 기본자세도 볼링장 에티켓도 잘 모른다.
혹시 우리 마선협 멤버들 중에 여전히 자신을 개폼이라고 생각하고 볼링장 콤플렉스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을 위해 일부러 필자가 볼링의 기본자세에 대해 소개한 사이트를 찾아서 올려드린다. 틈틈이 자세를 교정해 가면서 기본 스텝, 릴리즈, 드로잉을 연습해서 괄목상대할만한 진보를 이루시기를 바란다. 특별히 실력이 향상된 사람에게는 볼링 장학금을 마선협 지도부에 건의해 볼 계획이다. 볼링장학금으로는 볼링비 납부제외대상 면제와 식사비 페이대상 면제권이 주어질 것이다. (행간을 잘 읽어보시면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하하하)
1)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ababa74&logNo=40107744978
2)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38431543
3) http://blog.daum.net/poliopha/36
에버몰 안에 있는 자랑스런 한국인 식당에서
추석을 앞에 두고 1차 9월 정기모임과 2차 볼링장에서 친교를 가진 우리 마선협 식구들은 제3차로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장소를 옮겼다. 에버몰 안에 있는 한국 분이 경영한다는 식당을 방문하였다. 그 식당은 정광훈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하나님의 벗 교회 안태실 권사님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이었다. 그리 비싼 음식이 아닌 필리핀 사람들 기준에 맞는 음식들을 파는 곳이었다. 우리는 안 권사님께서 한 달에 20만페소의 랜탈비용과 직원들 월급, 식재료 등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힘겹고 버거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선교사님들의 선교지에 선교 팀들이 오게 되면, 꼭 에버몰 2층에 있는 'BIG Steak Family House' 레스토랑에 들려, 안 권사님에게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안태실 권사님은 공예배는 물론 매일 사업으로 인해 피곤한 중에도 새벽기도에 나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국땅에서 부지런히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것을 보았다. 정광훈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볼링을 친 곳이 에버몰 안에 있는 데다, 유일하게 한국인으로서 그 에버몰 안에서 음식점을 하고 있는 분이 당신 교회의 권사님이어이서 우리들을 그곳으로 인도하셨음이 이해되었다. 이것이 바로 목자의 마음이다. 목자는 항상 소떼와 양떼들에게 마음이 가 있는 것이다. 양들의 기쁨이 목자의 기쁨이고, 양들의 아픔이 목자의 아픔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성도가 하는 사업에 도움이 되어줄까, 노심초사 잘 되기를 바라는 정광훈 회장님의 마음에서 목자의 양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안권사님의 식당에서 맛나게 요리된 닭요리로 저녁을 먹고 식당을 나섰다. 그 때 마선협에 개 사육사들이 계심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빠져 나가자 잠시 남아 무엇인가 주서 담은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 선봉장에 맹일진 선교사님이 이름대로 제일진, 맨일진이 되어 챙기고 있었다. 대원들이 먹다가 남기고 간 맛난 닭괴기들을 주서 담은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맹 선교사님의 센터를 지키고 있는 파수꾼이 있다. 바로 한국에서 온 진돗개이다. 그 진돌이를 위해 챙기는 주인장의 마음이 느껴졌다. 맹선교사님에게 진돌이가 있다면, 정광훈 선교사님 댁에는 진순이가 있다. 회장님도 진순이를 위해 솔찬히 살점이 많이 붙어 남아있는 닭괴기들을 싸가지고 갈 법 한데 안 챙기셨다. 다른 분들에게 양보하고 오히려 당신이 남은 괴기 까지도 싸가도록 일러주고 계셨다. 정회장님의 존경스러운 일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외에도 22명이 닭을 먹고 부스러기라도 남기고 갔으니 아직도 담을 것은 여전히 많은 법, 이어서 두 맘이 봉지를 챙겨들고 마구 주서 담았다. 송정희, 임재순 선교사님이셨다. 사위사랑은 장모님이라더니, 역시 개 사랑은 사모 선교사님들의 몫이었다. 한국인 권사님이 경영하시는 식당의 닭요리 양이 상당이 컸기 때문에 더러 배꾸리인지 밥꾸리가 작은 분들은 더러 남겼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선협 멤버를 주인장으로 모시고 있는 견선생들은 주인 잘 만나 호강하고 있구나 생각해보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행복자들이 틀림없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을 만나 모든 좋은 것들과 풍성한 은혜들을 누리고 있으니, 우리가 개 만도 못해서는 안되겠구나 싶었다. 주님 앞에 충성스런 종이 되리라 다짐해 보았다.
필리핀에 나타난 쟌다르크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안권사님 식당 앞에서 웅성웅성 하는 소리로 야단법썩이었다. 그곳에서 오늘 볼링대회에서 1등을 한 김정렬 선수가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는지 4차 모임을 선동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스타벅스 샵와이즈 자점으로 갈거나 커먼웰스 쪽으로 갈거나 장소 선정을 놓고 에버 몰 통로에서 시끌버쩍 했다. 아마 필리핀 사람들이 보면 한국 관광객들이 이런 에버몰까지 찾아 와 무었 때문에 저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에버에서의 4차 장소 선정 논쟁은 김정렬 선교사가 나섬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녀는 필리핀의 잔다르크처럼 등장해 대원들의 이 의견 저 의견을 평정하고, 나를 따르라고 대원들을 전부다 아얄라 테크노 허브에 있는 커피숍으로 몰고 갔다. 우리 마선협에는 김다르크가 있다.
아얄라 허브에서 무르익은 커피 교제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인지, 무슨 할 얘기들이 여전히 쌓여 있는 것인지 2차 볼링교제에다 3차 저녁식사에 이어 4차로 커피 마시러 에버에서 아얄라 테크노 허브로 장소를 옮겨간 것이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테이블을 한데 붙이고 우리 마선협 대원들이 들이 닥치자 야단법석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심 반기는 것은 커피 빈 샵의 메니저 일 것 같다. 종업원들이야 우리가 반갑지 않은 손님일지 모른다. 아니면 그때 까지 매상이 예상보다 적어 주인에게 월급타기가 편치 않을 그들에게 늦게 찾아온 우리가 반가운 고객이었는지 모른다.
정광훈 회장님 차가 다른 대원들에 비해 조금 늦게 커피숍에 도착했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그곳에서 우리 마선협의 열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화기애애한 정도가 아니라 이것은 명절에 모인 가족들 이상으로 끈끈한 정이 묻어났다. 형제자매들이 한 집에 모여 오붓하게 이런 저런 얘기 보따리 풀어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던 그런 장면이었다. 우리 몇 사람이 조금 늦게 도착했을 때 이미 대짜 아니면 중짜 커피를 시켜놓고 한 모금 입에 물고, 얘기 몇 마디 하고, 그런 수순을 밟고 화기애애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가 당도하자마자 4차 모임을 사실상 주도하고, 커피를 대접해 주신 김인효 김정렬 선교사님 부부가 우리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와 주문을 받은 것이다. 회장님과 나는 미디움 중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커피향이 은은하고 좋았다. 우리는 그 따끈따끈한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셔가면서 이런 저런 얘기들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지남철, 본드 보다 더 찰딱 붙은 마선협
누군가가 얘기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날밤을 세울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는 시간만 허용한다면 더 라도 앉아서 더 오래 있고 싶었다. 하지만 또 돌아가야 할 가정이 있고, 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기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여기서 끝내지 말고, 5차 모임으로 가자는 진담반 농담반 얘기가 흘러 나왔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함께 웃었다.
정말 지독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4차까지 가 놓고서도 아직도 성이 안차 5차까지 가자고 하니 이 마선협 사람들 못 말릴 사람들이다. 정말 지남철보다도 아니 강력 본드보다도 더 쎈 강력한 커뮤니티가 아니고 무엇이랴! 정말 해어지기 싫어한 친 남매, 오누이들의 모습처럼 머나먼 이국땅 필리핀에서 밤에 핀 우정의 모습이 우리 마선협의 끈끈함과 화기애애함을 대변해 주었다.
위에 계신 하나님이 내려다보시면서 우리들이 서로 성령 안에서 하나 됨을 힘써 지키고, 서로 사랑하고 모이기에 힘쓰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선협 지체 여러분! 다음 10월 달 홍주철 선교사님의 사역지 까비테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안 녀 어 어 엉... 해피 추석. 모든 영광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
첫댓글 밤 1시가 되어 겨우 글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날이 밝은대로 50장을 추려서 시간대별 모임의 흐름에 맞추어 올리겠습니다.(사진은 날이 밝은 오후 12시 55분에 올림)두서 없이 매끄럽지 않은 글이라도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썼습니다. 읽고 우리 마선협이 이렇게 모였구나 하고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긴글 읽으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하십시오.
쩡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동도 코 끝이 찡합니다.
깜쏴드립네다.
문뱅금선교사님 화이티이잉!
마선협 화이티이잉!!!!!!!!!!!!!
마선협이여!
문뱅금목사님의 글 솜씨로 영원하라!!!!!!!!
정광훈 회장님은 제 이름가지고 뱅금이라고 놀려 먹은 것에 대해 이제 재미를 붙이셨네요. 그래도 회장님이 제 이름을 뱅금이라고 부르시든, 구워 드시든, 삶아 잡수시든 저로 인해 기뻐하시기만 하시다면 천 번 만 번이라도 불러도 괜찮습니다. 부족하고 서툴기 그지 없는 글이라도 격려해주시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목사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카페를 통하여 현장감있는 소식을 들으면서 부럽기도하고 아쉽기도하고 참석하지 못한 미안함도 있군요,
문선교사님의 글을 읽으며 은혜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캄보디아 티켓까지 예매해 놓고 못가게 되어 너무 아쉽군요?
많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정말 안탑깝습니다.
정기 총회는 꼭 가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히 소식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선협 가족이 되시고, 늘 마선협 카페를 자주 방문해 주시며, 애정을 쏟고 계신 우리 문창복 선교사님! 저희도 선교사님과 함께 더 깊은 교제를 하며, 비전을 나누게 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답니다. 캄보디아 사정이 그렇게 되어 저희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음 기회에 못 나눈 대화와 교제 나눌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음 마선협 모임에 반갑고 기쁜 상봉을 기대합니다. 평안하시고, 강건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