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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조형예술과 후기네요.
저는 입시레슨을 받지않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혼자'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1년간 경험하고 마주치며 도움을 받은 것들이 너무많아, 1년간 준비해온 대략의 배경과 경험을 써내려갈게요. (자기소개서를 옮긴건 아닌데 그런 느낌이 들수도 있을거에요. 그리고 아마 길어질거에요 ㅋㅋ 핵심이 될만한것만 볼드체로 해놓을테니 편의대로 보시길) 사정상 비공식적으로 혼자 준비를 해야한다거나 혼자 감당할 일이 너무많아 망설이고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 스물셋. 대학 3학년까지 마친 휴학생입니다. 쉼없이 달렸다면 졸업하고 취업을 할 나이죠. 전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사회학에 강렬한 매력을 느꼈지만 생각의 표현수단을 '글'보단 다른것에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들었어요. 그렇게 '나의 배움은 내가 스스로 선택해야한다'라는 믿음으로 휴학생활의 초점을 '한예종 입시'에 맞추었습니다. 다니던 학교의 도서관은 1년간 '다독할수 있는 지식창고'로 애용하기 시작했죠. (대학교 휴학생활의 묘미입니다. 시험기간을 제외한 도서관은 꼭 제것이 된것같죠.)
사실 전, 현역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처지도 아닌데다, 누군가의 전폭적인 지원도 기대하기 힘들었고, 미대를 다니다 유사한 전공으로 이동하는 차원의 (기본기가 검증된) 입시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입시계획을 세우고 입시를 준비하는 내내 상당히 초초하고 불안했습니다. 당장 돈부터 벌어서 학원을 등록해야하나, 한예종입시.. 과연 내가 자격이 되는걸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요.
일단, 저의경우 7월까지는 맘껏 보고 경험하고 읽고 들으며 틈틈이 기초적인 표현능력을 기르는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첫번째, 학교라는 범주내에서 강의를 듣는것 말고 다른 경우를 생각해봤죠.
시야를 좀더 넓히고 늘 지나던 버스노선을 벗어나니 곳곳에 다양하고 새로운 배움의 공간들이 있더군요. 다양한 나이대의 아줌마/ 할머니/ 노총각/ 백수/ 타 전공학생/ 처음만난 동갑내기 등등/들을 만날 수 있는건 제도권의 학교가 아니라 학교 밖이었어요. 나와 다른 연령대의 사람과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엄청나게 값진 간접적 경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두번째, 나의 관심사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다양하게 배워보자였습니다.
전 예술대학이 없는!ㅜㅡ 대학에 다녔던지라 미학수업이 어떨까 너무궁금해 가장먼저 홍대상상마당에서 열리는 미학강좌를 들었고 한겨레 문화센터의 10주과정 인체해부학수업과 시간타임제로 운영되는 자율적크로키공간에서 크로키와 드로잉을 연습했습니다. (크로키와 드로잉은 연초부터 일주일에 두번씩 꾸준히 했고, 10월경 중단하고부턴 1차준비에 집중했어요) 이후 스토리드로잉수업을 들으며 다소 긴호흡의 그림책을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주제를 잡고 구상하는 훈련이 되었죠. 또한 제가 사회학을 공부했던 감을 잃지않기 위해 인문학수업과 토론식 세미나에도 참여하구요. 전문가적 입장에서보면 매우 기초적인 훈련이고 파편적일수있지만 각각의 수업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는 피드백과, 소통은 지속적으로 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수업은 보통 일주일에 한 두번 이루어졌습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하나라도 새로운 것을 더 주워담겠다는 의지로 공짜전시는 물론 공짜 강연을 발품팔아 보고들으러 다녔습니다. 대신 그날 그날의 컨셉을 잡았죠. 내 문제의식에 어떤 재료가 될 전시인가, 혹은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 강좌인가를 미리 고민해보고 참여하는 식으로요. 이런 경험을 할수있는 기관이나 학회, 세미나, 포럼, 저렴한 단기특강은 평소 양질의 정보를 얻을수있는 정보통(잡지 또는 공연센터 홈페이지 또는 믿음직한 사람)만 있다면, 의외로 찾기가 쉽습니다.
세번째, 책을 틈틈이 읽고 생각을 기록해두었습니다.
책 또한 스스로 테마를 잡고 관련도서를 읽어가면 더욱 흥미롭고 유익합니다. '읽어야할 책'을 읽어야하니까 읽는것보단 내가 스스로 구성하고 고민한 주제와 맞닿는 책을 '스스로' 골라읽는 능력이 실제 시험에서도 주제를 잡거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전 이번 2차시험 두번째 과제(주어진 대상의 형태와 구조를 이용해 자신이 상상하는 도시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라)에서 그 덕을 톡톡히 봤구요.
또한 2차시험 내내 자신의 작품을 글로 설명해야합니다. 이를위한 훈련으로는 책을읽고나서 자신만의 생각을 깊이있게 정리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되었습니다. 2차시험 세번째 과제의 경우, 오전에 재료특징을 파악한것을 바탕으로 자유주제의 작품을 만들고, 오후엔 그 반대되는 개념또는 형태를 그리고 재료특성을 반대로 이용해 만드는 것이었는데- 자칫하면 내가 놓은 덫에 내가 걸릴수도있겠다 싶더군요. 그만큼 순발력있게 생각을 전환시켜야 했습니다. 이런경우 시험이니만큼 그 힘은 평소 '정리된'자신의 생각과 지식에서 나올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번째, 8월 말부터는 난 어디도 소속되지 않는 무소속이다라는 생각으로 통신수단, 인간관계 일시정지하며 최대한 심적압박을 이겨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겐 관심이 오히려 독이될것만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 간 정보를 '입력'하는데 힘썼다면 이 시점부터 '인출'하는데 몰입했고 아이디어 노트에 모아놓은 생각과 주제들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드는데에만 집중했습니다. 일단 저같은 경우, 본격적 입시준비가 시작된이후로는 혼자 힘으로 해나가야 했기에 매 작품마다 심도있는 피드백을 받기는 쉽지않았습니다만, 어떻게든 자신의 인맥을 총 동원해서 조언또는 악담을 해줄 멘토를 옆에두거나 찾아가는게 좋을것같습니다.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만든다는 걸 떠나서(포폴은 '참고'자료로 활용되니까요) 작업과정에서 빈틈을 발견하는 센스는 나보다 남이 더 탁월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부턴 본격적으로 시험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1차
필기시험기출은 2010학년도문제를 제외하고 3-4월에 풀어봤습니다. 공부 방향을 잡기위해.
영어같은경우엔 단어의 난이도가 만만치 않구나싶어- 토플단어집으로 준비했습니다. 단어문제들만 잡아도 반은성공이겠다 싶은 마음으로 달달 외웠구요. 수능기출문제와 ebs고득점문제집사서 기본문법을 점검하고(ebs강의도 활용),독해감각을 길렀습니다. 종종 토플지문으로도 공부하고, 토플문제중 유사어 찾는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풀면서 단어점검을 했습니다.
언어는 문제풀이만 하기보다는 책을 읽고 짤막한 글이라도 써보는 것에 더 초점을 두었구요. (논술과같은 글쓰기 시험이 없는 조형예술과도 이런훈련이 필수적일거라 생각합니다. 모든 공부의 기초죠.)두 달전부터 수능언어기출을 일주일에2개씩 풀다가 10일남기고 하루에 외국어랑 언어(수능)기출을 매일 하나씩 풀었습니다.
영어: 사실 영어독해가 완벽하지 않은 실력이라 전날 밤까지 조금 긴장했어요. 하지만 긴장해봤자 나한테 좋을거 하나없단생각으로 침착하게 시험에 임했구요. 보고나서 드는생각은 독해공부좀 더 해야겠다는것/단어는 단어외울때마다 유사어랑, 다른 품사까지 한꺼번에 암기하는게 효과적이라는 것.
언어: 유형이 바뀌어 수능형태이겠거니 했지만 이전 창사 기출문제에 비해 문제가 아주 잘 빠졌단 느낌이 들었습니다.(체감 난이도가 쉬웠어요) 시간도 넉넉정도가 아니라 다풀었는데 두번더 검토할 시간이 남았구요. 제 앞쪽 학생은 풀고 엎드려 자더군요. 그정도였습니다. 전 그래도 혹시나 몰라 시험시간 5분남길때까지 계속 검토하고나서 마킹했습니다.
1차실기: 문제와 문제의도는 카페운영자님께서 자세히 설명해주셨지요. 전 콜라주과제를 받고, 우선 사실적묘사보단 사물들을 이질적으로 배치하여 조화를 이루도록하는 재치가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5분정도 간단하게 형태를 잡고(눈 코입 위치과 크기설정) 신문을 쭉 훑어보면서 쓸만한 이미지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전 색상에만 집착하여 모자이크를 하기보단 사물들의 형태와 특징을 온전히 활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기존사물에 제 3의 의미를 부여하는걸 즐겼기때문에 광고나 삽화에 들어간 이질적 사물을 모으는데 집중했죠. (이건 볼따구에 붙일 것, 이건 눈꺼풀, 이건 머리부분, 이건 머리카락용 이런식으로요) 시험시간은 상당히 압축적으로 활용해야했고, (자르고 붙이는 것이었기 때문에)결과물은 상당히 기괴스러웠습니다. 웃기기도 했구요.(한가지 예를들자면 눈동자를 도장광고에 인쇄된 빨간'날인'으로 표현했어요). 사실 시험이끝나고 완성작을 걷어갈때 다른 학생들의 작품들을 언뜻봤는데, 얼굴(이마부터 턱까지)부분만 큼직하게 클로즈업하여 색감에 집중한 작품이 대부분었습니다. 그 땐 저혼자 대세를 따르지 않았나 싶었고 좀 찝찝했습니다. 하지만 제 주관대로 한게 오히려 득이 된 것 같네요.
2차
무엇보다 2차시험을 대비하기위해서는 '그냥'을 대신할 나의 오리지날 발상과 논리력이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전 평소 작품을 만들때 제일먼저 글로 문제의식을 적고, 그에 맞는 적절한 표현을 여러차례 고민한 뒤, 완성된 그림에 대해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설명할수있을지를 염두하며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2차에서 각각 주어지는 과제 역시 설득력있는 논리과정이 수반되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세부적인 문제내용은 2차관련질문 게시판 142번글에 '미친오리'님이 달아주신 댓글을 참고하심 좋을 것 같아요 ^^
1일차: 강의+토론+설명적 글과 그림; 설계도,놀이동산지도처럼 표현
(재료: HB연필,색연필-자유롭게 사용, 종이훼손불가능)
나중에 기출문제가 어떻게 공지될런지 모르겠지만. '창의'에 관련된 새로운관점의 강의가 강당에서 이루어지고- 실기시험장으로 이동해 토론이 있고난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 3시간 남짓한 강의+토론 시간 끝에 최종으로 주어진 문제는 생각보다 간략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박쥐가 보는 이 공간(당시 시험장)이 어떨지 상상하여 표현하라 '였죠. 하지만 실제 시험상황에서는 절대!!! 섣불리 문제를 내멋대로 쉽게 요약해서는 안됩니다.
전 1일차시험이 3가지 과제중에 가장 신경쓸 부분이 많았던 시험으로 기억해요. 지금 기억이 50%가 날아가서 하나하나 언급은못하지만... 강의내용과 토론과 문제가 요구하는 결과물이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기때문에, 강의때 받아적었던 핵심사항과 , 토론때 교수님들이 강조하신부분을ㅡ 문제가 요구하는 것에 하나하나 연결지어보는게 필수적이었습니다. 강의와 토론때 적은 중요사항을 여러차례 검토하면서 아이디어 스케치를 구체화 해야했어요. 그리고 추가로 주어진 박쥐에 대한 설명에 '근거'해서 상상력을 펼쳐야했구요. 전 시험시간의 50%를 강의+토론+문제를 통합하는 과정에 할애하고 나머지 50%동안 완성된 틀에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표현과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험보는 내내 머리를 풀가동해야했던 과제였어요.
1일차 과제는 확실히 문제이해능력과 매력적이면서도 '설득력있고 일관성있는' 표현을 보고자 하는것 같았어요.(예컨대 저는 '초음파'로 공간을 파악하는 박쥐의 특성을 읽고나서, 초음파, 즉 음파를 '듣는' 박쥐의 기관이 인간의 눈,코와 같은 감각중추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초음파'를 형상화하기위해 귀형상을 띄고 퍼져나가는 겹겹이 중첩된 이미지를 떠올렸고, '촘촘한 주름GPS'라는 컨셉으로 부연설명을 써나갔죠) 그리고 강의를 들었을 때 핵심을 뽑아내는 능력과 집중력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강의와 토론에서 핵심을 놓치면ㅡ 정작 표현에서도 중요한걸 놓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몰라요.)
2일차: 슬라이드강의+주어진 대상 + 그림+A4설명 (재료:HB,2B,4B,색연필-자유롭게사용)
이 날의 핵심주제는 '도시'였어요. 강당에서 이루어진 슬라이드강의에서 현대미술이 다룬 도시이미지를 보며 교수님이 가볍게 코멘트를 달아주셨습니다. 고사장에 도착하기전에 문제를 알려주셨는데. 소비,대중,중첩,미로 등등의 도시에 적용될법한 키워드를 알려주고나서, 그 키워드와 고사장에 놓여있는 의외의 대상의 '구조'와 '형태'를 이용해 자신이 상상하는 도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거였어요. 저는 고사장으로 이동하는동안(버스를타고 이동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도시관련 책(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과 내가 썼던 글들을 떠올려 메모장에 키워드와 관련한 구체적인 생각들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고사장에서는 주어진 대상의 구조와 형태에 어울리는 키워드만 두개정도 추려서 어떤식으로 이미지화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미지가 효과적이고 설득력있을지도요. 이 구상과 대략적 스케치만 한시간 반정도 걸렸고 그 이후부터 세부묘사에 들어갔습니다. 제 나름의 생각이 있어 색연필은 사용하지 않았어요.
중요한건 자신의 표현에대한 탄탄한 근거와 설명력을 갖추는 것이라 생각해요. 상상이랍시고 주어진대상과 키워드에 대한 이해없이 막연히 '도시'를 멋지게만 표현한다면, 아무리 짧은 면접일지라도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게 다 들통나기 마련이니까요.
이게 현장감있는 실제강의를 보고 주어진 대상을 봐야 설명이 쉬운데 글로만 하려니 난해해 보일수도 있을것 같네요. 하지만 교수님들은 정말 가능한한 학생들에게 최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두세차례씩 중요사항을 말씀해주시구요. 추가로 질문시간까지 주어집니다. 이점에선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것같아요. 오히려 제가 느낀건 교수님들이 각각의 학생들이 긴장하지 않고 제 기량을 100% 발휘해서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해주길 원하시는 것 같단 느낌이었어요. 굉장히 안도감이 느껴지면서 정신이 번쩍들었죠. 그럴만도 한게. 주어진 문제에 아무리 조건이 많고 여러단계의 절차가 있다고 해도 객관식문제가 아닌만큼. 중요한건 '조건에 맞는' 자신의 '창의적 표현'이니까요.
2일차시험부터 교수님이 돌아다니시면서 작업하는 학생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는 시간이 있는데 (1-2분정도), 차례대로 순찰하듯이 질문을 하는게 아니라 지나다니시다가 표현상에 궁금증이 생기는 작품에대해 즉흥적으로 물어보는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실기종료시간이 1시간정도 남을때까지 교수님들이 말을걸지않아서 열심히 그리는 도중에도 은연중에 굉장히 초조한기분이 들었거든요. 내가 문제를 잘 못이해하고 뻘짓(?)을 하고있는건가. 나한테 왜 아무 질문을 안하나... 등등. 그런데 이런 근심걱정 다 없이 고사장에서는 문제이해만 확실히 했다면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그림에만 열중하는게 중요한것 같아요. 결국 저한테는 거의 작품이 완성될 즈음 10분간격으로 세 교수님이 연달아 오셔서 물어보시더라구요. 그땐 정말 교수님이 저를 평가하고계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손가락으로 제가그린 그림의 부분부분을 찍어가면서 이건 뭐냐고 물어보셨어요. 그외에도 그림이 복잡해보이는데 의도가 뭐냐. 건물은 어딧느냐. 키워드가 무엇이냐. 시간별로안남았다 열심히그려야겠네 등등. 당일날 집에 돌아와 "아 이렇게 말했어야하는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지만, 나름 제 의도와 키워드를 적절히 설명했고 A4에 그림설명도 충실히 했기때문에 2일차 시험은 만족스러웠습니다.
헐ㅇ_ㅇ 글이 이렇게 길어질줄은 저도 몰랐네요. 그래도 더 쓸래.
3일차: 간략한 강의(5분정도)+곧바로실기(오전 1작품/오후 1작품)+A4작품설명
(재료:두꺼운 노란시트지, 한지,알루미늄호일, 종이노끈,이쑤시개,스카치테잎,가위-이건 도구용)
이틀 연이어 평면과제였기때문에 입체가나오겠다 싶었는데 과연 입체였어요. 짧은 강의가 있었는데 재료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 특히 재료의 장단점을 고민해서 작품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이날은 재료배분에도 시간이 적지않은 시간이 소요됐기때문에 곧바로 고사장으로 입실했고, 재료를 모두 다 남김없이 사용해 자유주제로 입체를 표현하라는 게 문제였어요. 저는 일단 떠오르는 주제들을 잠시 접어두고, 나눠준 A4연습지에 표를그려가며 재료의 특성과 본래 용도 그리고 떠오르는 느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했어요. 그리고 각각의 특성을 조합해서 표현할수 있는 조금은 추상적인 주제를 택했어요.(이것까지 30분정도 소요) 그 다음에 구체적인 형태와 위치를 정하고 과감하게 재료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시험을 통틀어 가장 뒤통수 맞는 기분이었던 순간은 오후 문제를 받았던 때에요. 뭔가 다른 재료에 다른 문제가 나올줄 알았는데. 웬걸. 똑같은 재료를 다시 나눠주면서 오전에 내가 한 작품의 반대 개념 혹은 반대 형태, 재료의 반대성질로 표현하라는 겁니다. 윽. 10초간 벙떠있다가 정신차리고차서, 전 앞전 주제를 약간 추상적 개념으로 잡았기때문에 형태와 재료보단 반대되는 개념에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형태자체는 나름의 논리와 설득력을 가져야 하기때문에 오전시간과는 다르게 재료적 특성은 잠시 유보하고 어떤 형태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을 표현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확실히 알수있었던 건 3일차 과제는 재료를 이해하는 능력과 작품을 스스로 기획하고 설명하는 논리력을 측정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거였어요. 이 날도 2일차와 비슷하게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작업대 옆으로오셔서 질문을 하셨는데, 2일차보다는 3일차 질문이 좀더 세부적이고 비중이 있었던것 같아요. 대강 질문의 요지는, 오전작품의 형태와 이렇게 만든의도를 설명하고 이것으로부터 어떤논리로 오후작품을 만들게 되었는가를 묻는 거였어요. 전 오전작품의 주제와 형태를 재료와 결부지어서 설명했고 오전에 잡은 주제가 비교적 추상적이라 개념적으로 반대되는 오후작업을 하게되었다고 설명한다음 다시 오후작품의 주제와 형태를 설명했어요. 전반적인 설명이 미흡하다싶으면 교수님께서 한두번정도 다시 질문을 하셨어요. 이때 1시간정도 시간이 남은상태라 아직 추가해야할 형태가 남았었는데, 미처 교수님께 설명 못하고 지나가 굉장히 초조했고 3일차평가에서 좀 불리하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든 생각은 작품의 한부분 부분을 만들면서 지속적으로 전체적인 이미지를 조망하며 설명하는 습관이 중요하겠다는 거였어요.
저는 이번시험을 치르는 동안 문제를 출제한 교수님들의 고민과 애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담아서 학생들의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도록 유도하지만 그럼에도 평가요소들을 구석구석 배치해놓았으니까요. 문제가 특이하고 별나지만 절대로 뜬구름잡는 문제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시험장 관련 이야기는 이정도로 마칠게요.
힘겨운 입시과정에서 얻을수있는 값진 댓가중 하나는, 내 단점을 파악하고 그걸 보완할 방법에 대해 골몰하면서 위기감과 잠시동안의 만족감을 번갈아 느낄수 있다는 점 같습니다. 비온뒤 땅이 굳는것처럼 그래야만 제 자신이 단단하고 뚜렷해 지니까요.
얘기하다보니 구체적인 경험을 모두 나열할 수없어 추상적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실질적인 도움이 될런진 모르지만 할수있다는 용기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저같이 사회학을 공부하던... 그러니까 딴 동네서 구르던 사람도 있는걸요. 궁극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입시에서 요구하는 핵심만 뚜렷히 인지하고있다면 그 이후에 자신이 어떤방식으로 준비를 해나가야하는지는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예술가적 '가능성'을 지닌 인재를 뽑는다는 원칙은 있으나, 왕도도 없고 정도正道또한 없는게 한예종 입시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한예종 준비가 '입시'라기 보단 스스로하는 '공부' 혹은 '내공쌓기'라는 기분으로 1년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소서의 경우에도 형식이나 기술적인 고민보단 거울속의 내가 되어(자아도취는 금물!)내가 나를 보고 나를 설명하고 나라는 존재를 누군가에게 설득시킬수 있을정도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게 중요하다고 봐요. 전 1차결과가 나오고 자소서를 작성했는데요, 완성된 글만 쓰지 않았지. 평소 내가 왜 평탄치않게 또 대학을 가려하는지. 왜 그래야하는지. 왜 그래도되는지 등등을 고민하면서 생각나는 문장과 순간순간의 기분들을 적어두었어요. 아이러니 한건 자신이 내밷은 생각과 감정들을 다시 접하고 곱씹어볼 때 그때서야 좀더 단단하고 견고한 나만의 개성, 또는 자신감이 생긴다는거에요. 자소서의 핵심은 '어떻게'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자신이라는 거죠. 즉 하루하루 내 역사를 기록하고 복습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때때로 '내'가, '나'의 관찰자가 되고 때론 정신분석주치의가 될수도 있는거라고 봐요.
GO KNUA카페를 뒤늦게 발견했지만 생생한 정보공유장으로써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저 또한 이 공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모두 힘내세요!
첫댓글 와... 정말 철저하게 준비하시고 합격하신분 같아요. 정말 축하드리구요!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글 스크랩해가도 될까요? 비공개로요 ^^;;;; 조형예술과 지망생은 아닌데 큰 도움이 될것같아요.
저야 제 과정을 이야기로 전달했을뿐인데 도움이된다면 뿌듯하죠. 공개로 가져가셔도 됩니다 :)
대단한 각오로 하루하루 열심히 준비하신 것 같네요..될 사람은 독학해도 되는군요..
우와!! 정말 꼼꼼하게 써주셔서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다른과를 준비하지만,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글에서 매력이 마구 느껴집니다! 본받아야지 ㅋㅋ
너무 본받을점이 많은것같아요
아, 정말 이런 글 써주셔서 고마워요 :-)
정말감사합니다~
멋있으세요...
이런 글 올려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해요! ^ㅇ^ 처음읽을때 상대적으로 무력감을 많이 느꼈는데, 입시에대한 갈피도 잡고 정말 많은 도움과 자신감을 얻고 갑니다~
와우 ..열심히 하신게 정말 대단하구 부러워요 !!!
귀한 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가능하다면 입학하신 후 실제로 배우면서 느끼는 점도 올려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종이 가고싶은 이유,,, 커리큘럼이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스스로 생각해서 표현하는 힘을 기르게 하는...
오묘양님같은 분은 학교 수업도 최대한 활용하고 좋은 작가가 되실것 같아요.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또 축하드려요^^
어딜가셔도 성공하실분이세요
후기 올려주셔서 진짜 감사해요 소중한 정보에요
고생많으셨죠 진심 축하합니다!! 짝짝짝
와.,.....대단하십니다 정말 진짜 대단하세요. 용기도 주시고 정말 님의 끈기와 노력 배우고 갑니다.
많운 부분 얻어갑니다^^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너무도 막막했는데..... 이렇게 세세하게 알려주시니 왠지 힘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정말 좋은 후기네요. 감사드립니다. 비공개로 담아갈게요~
열씨미 함 해 볼 께요.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요~
친절한 경험담 감사해요~ 현장 분위기까지 디테일하게 이야기해주셔서 덜 긴장될거 같아요.^^
감동적이네요 ..정말 많이 배운글입니다. 나자신을 잘 준비해서 도전해볼께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스크랩하겟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독학으로 가능할까여????ㅠㅠㅠㅠ
메일로 스크랩 해갈게요 ...ㅠㅠㅠ 갑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진짜 멋집니다.. 저도 본 받아서 열심히 해야 겠어요 ㅠㅠ!!
스크랩 해가요:)
너무너무너무 열심히 하셔서 진짜 많이 배워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긴 글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ㅠㅠ
좋은 글 정말 감사해요~
메일로 스크랩 해갈께요!!
좋은정보 감사해요 ㅜㅠ
우와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ㅠㅡㅠ
우와 수고하셨어요 좋은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가지고있던 추상적인 생각을 구체적으로 적은 분 ㅇ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