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회 참관 후기]
피톤치드(Phytoncide) 복용기
토요 휴무가 생기고 나서 새로운 신조어가 등장했다.
‘놀토’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노는 토요일’이란 의미를 축약해서 만들어진 이 낱말은 언어의 특성이 갖는 경제성과 효율성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간결한 발음 요소 안에 유음과 양성모음의 적절한 조화로 가벼운 흥분을 일으키기에 딱 어울리는 낱말이다.
그러나 4월의 마지막 놀토는 만화방창(萬化方暢)으로 대변되는 만춘의 느긋하고 황홀한 감성을 느껴볼 겨를도 없이 여기저기서 시간을 옭아매는 수많은 행사로 인하여 그야말로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선택의 변수를 따지며 반드시 택일을 해야만 하는 고민 속에 맞이해야만 했다. 동료직원 부친 칠순잔치, 결혼식, 지역체육대회 참석요청, 등산모임 등...
그러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선택의 사다리를 타기 앞서 내 발걸음의 향방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버린 강력한 독재자가 있었으니 바로 천안에서 사는 선우 오인자 시인이렸다.
“뭣이여?... 어디 간다구?...내가 올라갈란다...잘 생각혀라잉”
이 일방적인 선언 한마디로 난 선택의 가능성을 모두 팽개쳐 버린 채 서울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탈출 가능성을 감지하고 서울 잠실에 있는 결혼식장 부근까지 짧은 발걸음에 바람소리를 내며 쫒아온 오 시인에게 붙들려 점심도 굶은 채 양평동으로 가는 택시 속에 감금되고 말았으니......
양평 주민자치 센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 갑자기 머리 속으로 경로잔치라는 이미지가 반사적으로 퍼뜩 떠올랐다. 시 낭송회와 주민자치센터의 이미지 연결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 시인의 손에 떠밀려 식장에 들어섰을 때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뒤편에 예쁘게 진설해 놓은 떡(?)이었다.
....왜냐하면....배고파서...하하
그런데, 그날 난 피톤치드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산소처럼 젊어질 수 있는 행운을 누렸으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며 오 시인의 파쇼 독재를 기꺼이 예찬할 따름이다.
대학에서 소위 문학을 전공하고 20년이 넘도록 교단에서 국어나, 문학 또는 고전과목을 가르쳐온 나의 입장에서 교실 밖에서까지 문학에 연루하여 또 시간과 마음을 기울인다는 것은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학에서 소설 창작시간에 안경 다리를 깨물면서 첫 문장 하나를 가지고 100분 강의를 유유히 이끌어 나가시던 동리 선생님(김동리 교수님)나 시(詩) 창작 시간에 칠판에 시를 써놓고 중구난방 갑론을박 싸워대는 제자들을 그저 ‘허허’하고 웃음으로 바라보시던 구상 선생님이나, 어줍잖은 시를 써놓고는 말당(미당 선생님의 ‘미(未)’자를 어떤 친구가 ‘말(末)’자로 읽어서 우린 말당 선생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의 ‘국화옆에서’ 보다 훨씬 잘된 작품이라고 박박 우기던 친구들의 객기가 생각나서 이런 행사를 보면 괜히 슬슬 웃음기가 비치던 것도 꽤 오랜 전 일이었다.
그 대학 시절 축제 때가 되면 학과 주체로 ‘시 낭송회’ 가 열리곤 했다. 대학 소강당에서 모든 학생들이 동원되어 나름대로 한껏 치장을 하고, 유명 시인을 초청하고, 음악을 고르면서 며칠 전 부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시 낭송회가 끝나고 한 초청시인으로부터 평가를 받을 때 그 시인은 준엄함 목소리로 이렇게 꾸짖었다
“난 젊은이들이 시 낭송을 한다고 해서 한껏 기대를 하고 왔다. 그런데 이게 뭔가, 왜 이리 조명은 어두컴컴하고 모두 죽어가는 목소리로 폼을 잡는가? 왜 젊은이다운 역동성이 없고 느려터진 장송곡만 틀어놓는가?”
이 한마디에 우리 모두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움찔했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도 대꾸를 하지 못했다.
어제 시 낭송회장에 들어서면서 그 부끄럽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유심히 시 낭송회를 지켜보았다.
양평동 주민 자치센터, 놀토의 적막감이 풍기는 그 작은 공간에 수줍은 시인들이 모였다. 아무런 꾸밈도 없이 가릴 것도 없이 살아온 그 모습 그대로 자기 속살을 드러내며 경사진 2층 계단을 소리없이 올라와 수줍은 나무처럼 자리했다. 요란한 치장도 없었다. 휘황한 조명도 없었다. 대단한 위세를 지닌 초빙인사도 없었다. 그저 모두가 똑같이 마을 주민들이 앉는 그 소박한 의자에 앉아 얌전하게 원고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한사람씩 준비한 그대로 읽어 나갔다. 중간에 한 시인의 아름다운 노래도 있었다. 교만이나 과시는 보이지 않았다. 가끔 배경 음악이 맞지 않아도 개의치 않았다.
그 모습은 한마디로 피톤치드가 끊임없이 풍겨 나오는 나무들의 잔치였다. 굳이 그렇게 넓지 않은 조그만 공간, 누가 우기지 않고 그냥 그대로 따랐을 동사무소 2층, 누가 오라고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이리저리 헤매이면서 찾아오시는 그분들의 찬찬한 발걸음, 때로는 격정으로, 때로는 당당한 소신으로, 때로는 격한 감동으로 실내를 쩌렁쩌렁 울리던 목소리...목소리...
그건 삶을 확신으로 살아오지 않은 사람이면 낼 수 없는 눈빛이며 목소리였다. 가식의 꾸밈도 없고 누가 내세우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나 잘났소 하는 뽐냄도 없었다. 그저 시인들은 나지막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자기들만의 나무로 색깔과 향기를 품으며 피톤치드를 발산하고 있었다.
허 일 선생님은 한하운 시인을 말하며 목이 메었다. 이미 세인들이 기억에서 자꾸만 사라지는 그 문둥이 시인의 애절한 사랑을 말하면서 목이 메었다. 이미 타계한지 30년이 지난 그 문둥이 시인의 애절한 핏빛 사랑을 30년도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 그 느낌, 그 절박한 심정을 동일시하며 목이 메이는 음성으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시인밖에 없다. 또 그 사랑을 그렇게 절절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도 시인밖에 없다.
지전 몇 푼에 마비된 로봇처럼 핏발선 눈으로 허겁지겁 살아가는 이 시대의 옹색한 군상들에게 30년 넘은 문둥이 사랑을 말한다면 그들의 반응은 어떨까? 또 그 사랑의 아픔을 직접 느끼는 감동으로 그리고 떨리는 목메임으로 말을 전하는 노 시인의 순하디 순한 눈빛을 보면 어떻게 말할까?
혹 버릇처럼 뱉아내는 바쁘다는 말과 짜증스런 욕설이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어둠속에서 별은 더욱 빛을 발하고 숨막히는 먼지 속에서 폐를 맑게 씻어주는 산소는 그 가치가 새삼 더한 것이다. 그저 앞만 보고 겨를없이 달려가야만 하는 이 현대인들의 비애와 물기가 말라서 이미 거북등처럼 갈라터진 메마른 심성에 말간 수액을 공급할 사람은 이제 시인밖에 없다. 오로지 시인의 책임이며 사명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날 양평동 일대는 피톤치드의 향내가 진동을 하였다. 소나무 향내, 잣나무 향내, 편백나무 향내, 라일락 향내, 그리고 꽃들의 향내...
아무 준비없이 얼떨결에 참석한 나에게 청정한 나무 한그루로 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그 아름다운 마음에 너무도 감사한다. 덕분에 나도 시를 낭송하는 영광을 누렸으니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돌아오는 발길 내내 허 일 선생님이 화두처럼 남겨주신 한마디가 뇌리를 감싼다.
‘감동이 없는 시는 쓰지 마시오’
그건 마치 ‘감동이 없는 인생은 살지 마시오’ 라는 준엄한 꾸짖음처럼 들려온다.
무서운 시어머니처럼 나를 시 낭송회장으로 끌어다 놓고 늦은 밤길을 헤치며 먼 길을 내려갔을 사랑하는 나의 초등학교 친구 천안의 오인자 시인이여 그대는 지금 무엇에 감동하고 있는가?
난 지금 무엇에 감동하려 하는가?
그리고 우리 모두는 무엇에 감동하려 하는가?
※ 피톤치드(Phytoncide) 는 그리스어로서 ‘식물’을 의미하는 Phyton=Plant(식물)과 ‘살균력’을 의미하는 Cide=Killer(살인자)를 합성한 말로서 “식물이 분비 하는 살균 물질” 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 소박하기만한 시골 학교에서의 6년동안 같은 반 35년만에 만나 이젠
스승이랍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평을 해 주셨군요. 멋진 시낭송과 자리 빛내 주심 감사드립니다.
시인님의 멋진 음성으로 사회를 보아 주셨기에 더 활기찬 낭송회가 되었던것 같습니다. 늘 건안 하십시요.
친구따라 강남 간다더니 친구따라 시낭송회 오셔서 이렇게 멋진 후기를 써 주시고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한비에서 다시 뵙길 바랍니다. 늘 행복하소서.
이 모두가 안시인님께서 수고 해 주신 덕분입니다. 언제나는 한비의 가족으로 만들겠습니다.
저는 오히려 오인자 시인님 친구분인 최봉원 선생님의 낭송과 참관이 피톤치드였답니다.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식사 못하고 오신 것도 몰랐으며 식사 안하고 가신 것도 송구합니다. 다음에 오실 땐 편안하게 "배고프다"고 말씀 놓아주셔요.^^* 머리고픈 많은 사람들을 위한 시인들의 발걸음에 힘보태 주시고, 아마도 선생님 제자들 중에도 멋진 작가가 나올 것이라 예상합니다.-----^^* 오인자 시인님 얼굴 곱고 예쁜 미소 이유를 알았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시인님 고우신 얼굴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친구지만 늘 야단만 치거든요. 그래서 ,, 몰래 글을 올렸는데.. 그날 책에 실린글 보구 .. 시인이 되지 말어라 라는 말만 들었어요.
참석해 주신것도 고마운데 멋진 평까지 해 주시니 고맙고 감사합니다
오인자 시인님! 저는 그날 낭송이 걱정되어서 리허설은 없냐고 몇 번이나 한영숙 시인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그런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편안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저를 안심시켜주었습다. 허일 박사님이 말씀하신 감동이 그런 마음을 그린 시가 아닐까요? 오인자 시인님의 낭송은 맑고 깨끗하여, 마치 푸른 들판에 서서 새가 부르는 노란 노래를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정진하시어 훌륭한 시인이 되소서!
최작가님 정말 잘 하셨구요, 사실 전 친구의 코치가 있었지만 친구 앞에서 한다는게 더 쑥스러웠어요. 작가님 좋은 평가 감사드리며 담에는 더욱더 다져진 낭송을 할게요.제가 회사일 하랴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 그날 친구의 도움으로 감만 잡고 해서~` 정말 죄송할따름인데~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