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안톤은 방 한가운데의 크고 둥근 식탁에 눈길을
빼앗겼습니다. 새까만 식탁보가 갈려 있었습니다.
안톤은 서둘러 그 식탁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이렇게 별난 요리가 차려진
식탁은 여지껏 보적이 없습니다!
오렌지ㅡ슈느파마울의 주장에 따르면 '핏빛 오렌지'에 거무칙칙한 굵은
소시지ㅡ슈느파마울의 자신 있는 설명에 따르면 '블러드 소시지, 햄,
푸딩, 엿과 같은빨간 빛깔의 여러 가지 음식과 과자 그리고 붉고 둥근
검이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안톤은 테이블 건너편에 서 있는 루디거를 살짝 곁눈질해 보았습니다.
루디거가 처음으로 안톤의 집에 왔던 아주 오래 전의 토요일 밤 일이
자기도 모르게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충선껌이 들어 잇는 봉지를 발견했을때,
루디거는 몹시 기뻐하며 웃었는데!
"와아, 풍선껌이다!"
라고 환성을 지르고,
"전에 나도 할머니가 주셔서 언제나 이런 것을 가지고 있었어!"
라고 말했었는데......
루디거는 조심스럽게 한 입 먹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콜록거리고 괴로워하더니 다시 뱉어 냈습니다.
그때부터 둘의 우정은 시작되었습니다. 풍선껌을 좋아하는 흡혈귀라면
무서운 상대가 아니라 동정을 해도 될 정도의 인간적인 흡혈귀라고 느꼈으니까요.
그런데 루디거가 오늘은 풍선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투명한 유리로 된 볼록한 작은 병을 집어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새빨간 액체가 들어 있었고 상표는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건 뭐예요?"
루디거가 쉰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주스야."
슈느파마울이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예쁜 빨간 주스."
"주스! 엑!"
루디거가 토해 내듯이 말했습니다.
"왜 그러니?"
룸피가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진짜 주스라면, 피로 만든 생주스라면!"
룸피가 흥분한 듯 예리한 이를 딱딱 마주치며 소리쳤습니다.
"이게...... 피로 만든 생주스?"
슈느파마울이 당황해서 어깨를 움츠렸습니다.
"우리 아주머니가 몸에 필요한 비타민과 영양소가 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시지는 않았지만...... 아 참, 그리고 첨가물은 전혀 없다고 하셨어."
"당신 아주머니가??
라고 물으며 룸피가 주위에도 들릴 정도로 거칠게 숨을 쉬었습니다.
"이 빨간 주스는 당신 아주머니네 집에서 가져온 것이군요?"
"그래, 벨터 아주머니지."
슈느파마울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벨터 아주머니라......"
룸피가 입맛이 당긴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루디거로부터
병을 잡아채 자기 눈앞에 갖다 댔습니다.
"아주 진한 주스로군."
룸피가 킥킥 웃었습니다.
"엷게 해서 마셔도 된다고 벨터 아주머니가 그랬어."
슈느파마울이 말했습니다.
"엷게 하다니? 당치 않아!"
룸피가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고 떨리는 손으로 병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병을 입데 대고 단숨에 쭉 들이켰습니다.
"엇, 폰 슈뢰데슈ㅏ인 씨, 한꺼번에 전부 다 마셔 버리다니!"
슈느파마울이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갑자기 한꺼번에 이렇게 비타민과 영양소를 취하면 모, 몸에 해롭지 않을까?"
이것은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긴 전혀 다른 의미에서 였지만.
룸피가 병을 내려놓자마자 창백한 얼굴이 아주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붉어지고 그 다음에는 새빨개지더니 마지막에는 빨간 삧을 띤
자줏빛으로 보였습니다.
"이건 피로 된 생주스가 아냐! 이건 독이야, 진짝 독이라구."
"독?"
슈느파마울이 독이라는 말을 듣자 화가 치미는 표정으로 카펫 위에 놓인
빈 병을 집어들더니,
"이건 벨터 아주머니가 오래 묵혀 둔 체리 주스란 말이야!"
하고 가슴을 펴고 말했습니다.
"젠그루베하고 나느 ㄴ매일 아침 이걸 한 잔씩 마신다고. 젠그루베는 이
주스가 약이라고 했어."
"체리 주스!"
룸피가 신음했습니다.
"가엾게도 내 위는......"
"네 생각처럼 그렇지 않아."
슈느파마울이 달래듯이 말했습니다.
"이런 광고 모르니? 당신의 위기 피곤하면 체리 주스로 활력을!"
"쳇, 내가 그런 걸 알 게 뭐람."
룸피가 몹시 괴로워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욕실이 있어요?"
"물론이지. 내가 안내해 줄까? 2층에 있어."
슈느파마울이 대답했습니다.
룸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양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신음했습니다.
"으윽, 배가 아파. 막 쑤시고......"
"자, 빨리!"
슈느파마울이 놀라서 소리쳤습니다.
"어서, 빨리!"
슈느파마울이 창백해져서 소리를 지르며 룸피의 팔을 잡고 방에서 데리고 나갔습니다.
"거품 입욕제를 조심해!"
루디거가 두 사람 등에다 대고 소리쳤습니다.
"거품 입욕제?"
하고 안톤이 물었습니다."
"벌써 잊어버렸어?"
루디거가 킥킥 웃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읽어 주었던 우리 일가의 연대기에 쓰인 그 이야기!"
"아, 그렇지......"
안톤은 그제야 생각이 났습니다.
연대기에는 흡혈귀들이 관을 얌마 골짜기로 옮긴 그 날밤, 루디거가
젠그루베의 욕실로 날아가 욕조에서 계속 물이 넘치게 수돗물을 틀어놓고
거품 입욕제를 한 벙 다 물속에 쏟아넣은 것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 날 밤, 젠그루베와 슈느파마울이 잠긴 욕실 문을 비틀어 열자마자
넘쳐 흐르는 물을 닦느라 야단 법석을 떠는 사이에 흡혈귀들은 무사히
'관 옮기기 여행'을 마칠수 있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룸피는 아주 맥을 못 추고 있는 걸까?"
안톤은 물어 보았습니다.
루디거가 히죽 웃었습니다.
"체리 리큐르(각종 발효액이나 그 증류액 또는 정제 알코올에
설탕·식물성 향료·색소 등을 합성하여 만듦)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안톤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리큐르였던 것 같은데......?"
"안톤, 너도 참! 우리가 죽은 사실을 금세 잊어버렸구나!"
루디거가 우습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괜찮아, 최악의 경우라도 일 주일 동안 위가 아파 관에서 자는 정도니까."
"아, 그래......"
안톤은 안심했습니다.
룸피를 친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상태가 심하지 않은 편이 낫다!
"나 같으면 절대로 병음료 따위로 갈증을 해소시키지는 않겠다!"
루디거가 이렇게 말하고 밉살스러운 듯이 아직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많은
병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몇 개인가는 상표가 붙어 있는, 상점에서 살 수 있는 극히 평범한 종류의
탄산 음료와 주스입니다. 그 밖의 것은 벨터 아주머니의 야채 절임과
함게 지하실에서 가져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넌 목이 마르지 않니?"
안톤은 어깨를 움츠렸습니다.
"나?"
"그래, 여기 너말고 누가 또 있니?"
라고 말하며 루디거가 크게 히쭉 웃었습니다. 그 때 날카롭게 에리한
송곳니가 보였습니다.
"모, 목말라."
안톤은 초조해하며 노란 상표가 붙은 병을 집어들었습니다.
"붉은 바르바라."
안톤은 쉰 목소리로 읽었습니다.
"진짜 찔레나무 열매 과즙이 든 슈붸덴발트 산 탄산음료야. 너무 시지
않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말하면서 안톤은 마개를 땄습니다. 이어서 컵이 어디 잇나 하고
식탁 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컵은 하나도 보이질 않습니다.
안톤은 결국 룸피처럼 병에 입을 대고 마셨습니다. 그러나 아주
조심스럽게 두세 모금 마시는 정도로 해 두었습니다.
"어때, 시지?"
루디거가 재미있는 듯이 킥킥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아니, 어느 쪽인가 하면 오히려 너무 달 정도야."
"너무 달다고? 그럼 너 충치가 생길지도 몰라. 그렇지 않니?"
안톤은 어두운 표정으로 루디거를 곁눈질해서 흘끔 보고 잠자코 병을
식탁 위에 도로 놓았습니다.
"엇, 어째서 다 마시지 않는 거니?"
하고 루디거가 물었습니다.
"충치가 생기는 것은 딱 질색이야."
안톤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슈느파마울이 돌아올 때까지 병을 완전히 비워 두어야 해!"
루디거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음식 전부...... 토마토, 햄, 이 두툼한 소시지에
오렌지...... 너 좋아하지 않니?"
"사양하겠어."
안톤은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슈느파마울이 우리에게 억지로 먹게 할걸!"
루디거가 소리쳤습니다.
"설마, 슈느파마울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너 왜 조금밖에 먹지 않니? ......그래,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 객실에
올라탔을 때, 그 열차 안에서처럼 말이야...... 안경 둔 곳을 잊어버린
그 금발의 고수머리 아주머니."
안톤은 고개를 옆으로 저었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
안톤은 지지 않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루디거가 안톤을 몰아세울 차례였습니다.
"하지만 그 열차 안에서도 너는 배가 고프지 않았고 허기진 상태가
아니었잖아. 그런데도 넌 마구 먹어댔어."
"그랬나?"
안톤은 무엇을 먹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단 한 가지 알고 있는 사실은 기프티티 부인의 바구니에는 아주 맛있는
것들이 들어 잇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내가 그 때 정신없이 먹었떤 것은 너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거야."
루디거가 몹시 화를 냈습니다.
"내가 너한테 정중하게 부탁했다구?"
루디거가 몹시 화를 냈습니다.
"내가 인간에게 부탁을 하다니...... 그것도 정중하게, 당치도 않은 소리야!"
안톤은 더욱 싱글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럼 어디 한 번 나에게 정중하게 부탁해 봐. 혹시 내가 먹어 줄지도 모르잖아."
사실 식탁에는 맛있어 보이는 것이 몇 가지 눈에 띄었습니다. 커다란
빨간 막대엿에 풍선껌, 오렌지 그리고 블러드 소시지 건너편에 딸기가
든 작은 바구니가 있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좋아!"
루디거가 더부룩한 머리의 빨간 가루가 사방에 흩날릴 정도로 심하게
흔들고 나서 말했습니다.
"부디......부탁......이니까 여기 있는 이 음식들을 좀 드십시오!"
하지만 어딘가 명령하는 듯한 투가 섞인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안톤은 그것으로 기분이 풀렸습니다.
"그래, 좋아."
안톤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딸기가 들어 있는 바구니를 집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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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th 꼬마 흡혈귀의 한밤중의 파티 [6] -빨간 주스는 영양 만점-
▷ 틱톡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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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2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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