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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사에서
단풍은 가지 끝에서 물들고
식은 등에는 찬바람이 스몄네
갓바위 계단을 내려오는데
선본사의 종이 울었네
땅거미는 내리고
스님의 가사는 신나무 단풍보다 붉었네
그 앞에서
종은 거듭거듭 울고 있었네
목어가 머리를 들이받고
서너 번을 더 망설여 다시 들이받았네
기둥의 염주가 한 알로 남을 때까지
종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십 수 번
이윽고 다하여 그칠 때에
스님은 감았던 눈 조금 열고
목어의 등지느러미 그 어디쯤에
산사의 자물쇠를 채웠네
속계의 시선으로부터 돌아섰네
흰 고무신 소리 없이 끌며
사라졌네, 산에 기댄 몇 채 절간 속으로(2010/10/17)
* * *
합천을 지나며
땅거미 지는 어스름에 내렸다. 아이들은 넓은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뛰고 떠들면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좁은 방에 둘러앉아 아이들 이야기며, 처음 본 듯 지난 밤 별이 쏟아진 이야기를 젊은 선생들은 서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불빛 몇 점에 기댄 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슬픈 영혼들이 반짝이는 것. 낯선 곳에서, 낯선 얼굴들 위에서, 걸어 온 길이며, 걸어갈 길이며, 그 위를 구르는 바퀴들의 숱한 고뇌를 나는 잠시 만났었다. 그러나 오고가며 우리들은 어떤 부대낌도 없이… 저물어 불이 꺼지듯 구월 들길을 되돌아 나올 때,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을 어둠 속에서 잠시 보았다. 나의 길이며, 그들의 길이며, 그 하루며, 한 일생이 흩뿌리는 세상의 고단한 흔적들이 지는 소리를 들었다. 혼자 합천을 지나오며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내 안의 무수한 말들에 관해 잠시 바퀴가 구르듯이 생각하였다. ‘거대한 석상의 그늘’을 생각하였다.(2010/09/20)
* * *
흉내 낼 수 없는
앞산에서 걸을 때 내내
하루살이가 와서 엉기었다
스물다섯번의 허물을 벗고
호수 밑에서 천일을 기다린다는 하루살이가
한 마리 큰 짐승의 목덜미에 붙어 다녔다
기억 속의 암소가 길 위에서
세운 꼬리의 채찍으로 쇠파리들을 쫓아내듯
나는 흉내를 내었다, 한 마리의 소처럼
모자를 벗어 거듭 털어내면서
태풍이 온다 하므로 비는 소리 없이 내린다
사람에게도 먼 데서 바람보다 큰 것이 불어오고
그 속이 먼저
소리 내지 않고 밤새 젖기도 한다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하루살이들의 하루처럼
흉내 낼 수 없는 외양간의 되새김질처럼(2010/08/11)
* * *
어라연 느릅나무
가문 동강을 내려오다 어라연에 이르렀네
물이 잠시 머무는, 거기 해 뜨는 곳 바위 뒤
느릅나무 한 그루, 그늘을 이고 서 있었네
나지막한 키, 수령은 한 이백년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합장인 양
강 위의 길손들을 보고 있었네
물이 흐르고
사람들은 그 위를 흘러갔네
무수한 시간 위를 또 흘러갔네(2010/07/22)
* * *
교문을 나서는데 …
학기 내내 4교시를 마치면 책상 서랍에서 수저를 챙기고
나는 5층의 번잡한 교실에 올라가서 밥을 먹었다.
아이들과 내가 얽혀서 먹는 밥은 늘 맛이 없었다.
한번은 멀건 유부국에 단무지 두어 조각, 만두 떡볶이 두어 개
말라빠진 신김치를 올려놓았길래 나는 교실에서 내려와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어떻게 이걸 먹으라는 거냐, 따진 적이 있었다.
급식을 담당하는 직원이 무안하였는지 덩달아 화를 내면서
급식회사에 직접 따지라 하고, 나중에 들리는 말로는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괜히 그런다,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러고도 나는 소금덩어리 미역국을 먹고 내려와서 또 고함을 질렀다.
식용소금이 맞느냐며 억지를 부리기도 했었다.
학교에 급식할 수 있는 식당을 지어서 직영을 하면 된다
나더러 자기만 아는 듯이 하소연을 또 해대길래
하나 마나 한 소리 말라고 다시 면박을 주었다.
오늘, 아내가 학교 근처 시장에 볼일을 보러 왔다길래
밥 한 그릇 같이 먹으려고 교문을 나서는데, 급식업체 사람들이
실어 온 밥통이며 국통이며 찬통 백 여 개를 다 내리고 옮겼는지
땀에 젖은 채, 학교 앞의 샛골목 담벼락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서
생수를 마시고, 그래도 더웠는지 흰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었다.
아직 빈속으로 그 여남은 사람들은 땀을 닦으며 갈증을 누르고 있었으리라.
교실에서 내려 온 백여 개의 통들이 전부 다시 실리고
그 빈통들을 덜그럭거리며 이윽고 회사로 돌아가서나
늦은 밥 한 술, 허기진 입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아, 어쩌면 내가 모르는 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먹이고
아이들은 또 저 사람들의 늦은 끼니 한 그릇을 이어가게 하는지도 모른다.
탈 많고 속 좁은 나는 아이들에게도, 밥을 실어 온 그 사람들에게도 미안하였다.
아내를 만나러 가는 버스 위에서 마음이 자꾸 덜컹거렸다.(201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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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염전
우기(雨期)다
흐르는 것이 비뿐이랴
갯고랑 너머에는 풍랑이 인다
우기의 바람이다(201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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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예식장
일요일 이른 아침 두류공원 앞길에서 인부들은
길게 줄 서서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있었다
옛날 달성군청 앞 횡단보도에서는 촌부가
갓 캐어 온 마늘을 접으로 팔고 있었다
수수하던 목화예식장, 그 언덕 너머에 살던 여선생이
오늘은 결혼을 한다
이제 처음 부부가 되려고, 살림을 차리려고
신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앉아 웃었고
손 내밀기가 쑥스러울 만큼 멀쑥하여서
신랑이 하객들을 맞고 있었다, 오월 어느 날
옛 이름 따라 저 언덕 어디에서
목화 몇 송이 바람결에 가벼이 날아들었으면
저기 저기 저 신부의 눈썹 위에나
혹은 땀 흘리는 신랑의 어깨 위에
수고했다, 그러며 연신 솜털처럼 내려앉았을 것이다
이른 혼례를 다 마칠 무렵
늦깎이 신부가 친정을 향해 절하고 돌아설 때
어느 싯구처럼 그녀는 목화 꽃 지는 냄새를 맡았을까
눈가에서는 눈물이
아침의 이슬처럼 젖었다(201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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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우산을 훔쳐 쓰고 오다가
낮부터 내린 비가 퇴근 녘에도 그치지 않아
무연히 초록 잎 도는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태워주기로 했던 김 선생은 차가 먼 데 있다고 하네
어쩔까, 저 비 속을 걸어서 가나
이런 날 차를 가져왔어야 하는 건데 …
교무실 책상 아래 서랍 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퇴근한 허선생님이 주워두었음직한, 노는 우산 하나를 훔쳐서 나오는데
낡은 꼭대기의 덮개는 없어지고
단추를 눌렀더니 접쳐진 곳에는 이미 붉은 녹이 슬고
살이 뻗쳐 해진 끝은 하얀, 굵은 실로 동여매었다
대칭이 허물어져 우산 같지 않은 것을 쓰고 십 여분을 걸었다
다시 지하철을 내려 언덕을 올라 육교를 건너는데
바람이 우산을 휘몰아쳤다
불어오는 곳을 막으면서 나는 잠시,
이렇듯 필사적인 이 무엇이 내 속의 비겁인가 여기었다
빗속을 다 와서 해진 우산의 뼛속을 펴 말릴 때 예전,
흘려 읽은 한 구절이 내 가슴에 비수처럼 와서 꽂히었다
망설이기를[與] 겨울에 시내를 건너듯, 겁내기를[猶] 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듯(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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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이발관에서
4월 어느 날, 퇴근하는 길
가로수는 길 위로 가지를 버리고 있었다
하늘로 뻗은 가지는 잘리고 더 잘게 분질러져서 트럭에 실리고 있었다
근골을 보여주고 있었다
늘어 선 몇 그루 플라타너스가 부러웠다
이발관으로 갔다
산발이 아니어도 잘라버리고 싶었다
휴지통에 처박히든, 그 어디에서 태워지든
바람에 흔들리는 것 없이
플라타너스처럼 서 있고 싶었다
가윗소리가 서걱이는 동안에 잠시,
눈부신 새 잎이거나 여름의 그늘이거나
아직은 잎 내밀지 않은 그 플라타너스들처럼
이발관 의자 위에서 나는 잠시, 봄꿈을 꾸었었다
움트기 전, 그저 플라타너스이고 싶었다(201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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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른다 - 시대의 죽음들을 애도하며
나는 한 준위의 사인(死因)을 모른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생물학적 원인에, 미안하지만 나는 관심이 없다. 민간에 늘린 것이 감압 챔버인데 그가 왜 남의 나라 구조함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아야 했는지, 그리고 아까운 목숨을 버려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의 빈소에 바쳐지는 보국훈장 광복장이며 관 위에 덮이는 태극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의 이름 앞에 바쳐지는 솔선수범이니 살신성인이니 하는 수식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한다. 왜 늙은 군인이 희생해야 하는지, 죽어서야 영웅이 되고 전설이 되어야 하는지, 왜 죽은 그에게 세상은 사명감으로 칭송하는지 알지 못한다. 왜 그가 죽어서, 국회의원과 장성들이 얼굴 들이밀며 찍어대는 사진의 배경이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모른다.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 박지연의 사인(死因)을 모른다. 그리고 스물셋의 노동자가 왜 “개인 질병” 백혈병으로 죽어가야 하는지 그것도 알지 못한다. 그 공장의 회장이 어떻게 부를 쌓았는지, 무슨 이유로 사면되고 복권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눈뜨고 본다, 세상의 높은 곳에서 늙은 것들이며 낡은 것들이 자기들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난장판을. 그 돈 많고 권력 많은 머슴들은 왜 솔선수범하지 않는지, 왜 살신성인하지 않는지, 왜 살아서 비리를 휘덮고 부귀영화를 누리는지 나는 본다. 그래서 어찌하여 낮은 자들은 죽어서야 거룩해지는지, 죽어서도 억울해야 하는지. 이유 없는 죽음에 드리워지는 아 , 저 상찬과 변명의 사슬소리를 듣는다.
모르는 나에게 누가 답을 주겠는가. 지금은 곤란하므로 기다려야 하는가.
송나라 사람이 밭을 갈고 있었다. 밭 가운데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가 달리다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 후로 그는 쟁기를 버리고 그루터기만 지키면서 다시 토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토끼는 다시 얻지 못하고 송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되었다. 지금 선왕(先王)의 정치로 오늘의 백성들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그루터기를 지키고 있는 부류와 같다. - 한비자, 「오두(五蠹)」편에서(2010/04/02)
* * *
다시 영미에게
종일 비가 내리는구나, 저 속에 아늑함이 깃들어있구나.
낮에 네 후배들과 둘러앉아 책 읽은 이야기를 하였다. 당신들의 천국을 들고 난해한 길을 더듬었다. 아이들은 당신들과 우리들, 혹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사랑과 자유의 함수를 그려보려고 길 위에서 짧고 좁은 것을 더듬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든 무서운 동상들과 우상들과 그 안의 탈출을 이야기하였었다. 탈출할 수 없는 안락과 절망을 이야기하였다. 가라앉은 배를 건져 올리는 것처럼, 그 생과 사의 시계(視界)를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곁에서 서성이는 불가항력의 힘. 나는 네 마음속에 못 박혀 울먹이는 아픈 이야기를 생각하였다.
네가 모르는 어떤 후배가 그랬었다. 미국은 부자의 나라지만 불행한 사람이 많고, 아프리카는 가난한 나라지만 행복한 사람이 많다고. 가난하면서 행복하지도 않은 나는 누구인가, 소음이 부유하는 세상을 향해서 그 아이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기숙사의 주소와 번지를 적은 책갈피를 잃어버렸다. 몇 줄 나의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 여전히 나는 세상의 불가항력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와 지혜를 담고 있지 못하니, 희뿌연 밤비는 더 길게 내리나보다.
영미야, 동생을 사랑하여라. 방황과 슬픔을 쓰다듬어 주어라, 언니의 마음으로. 여태 그 누구도 너의 어깨 어루만져 세상의 고단함을 달래주지 않았겠지만.
출근길에 따뜻하게 입어라. 아침은 아직 차다.(201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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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생의 한가운데서
비가 대지 깊게 내렸다. 날이 풀렸다. 봄인가 싶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누군가 그 무엇을 높은 데에 걸어두었다면 이제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개학하면 아이들은 몰려올 것이고, 그 손에는 책이 들려있고, 눈빛에는 봄의 내음을 담고 있을 것이므로.
근본 없는 것들이 표류하였다가 그 어디로 밀려가 안식하는 것처럼, 우리들은 모였다 흩어지고 해매고 흔들릴 뿐 생의 뿌리를 성찰하지 못하였다. 신문을 들고 교양을 말하고, 말 속에 다만 겸양과 가식과 무지의 변명들을 거듭 얹을 뿐이다. 한 줄의 책도 읽지 않았다. 긴 시간을 두고 가르치는 자의 성장에 게을렀으니 밥벌이를 위한 위안이 지겨울 때도 되었다. 낡은 것에 기대어 늙어가고, 껍데기를 잡고 하소연할 뿐이다. 단 한 번도 생의 깊은 데를 응시하지 않고, 더러 높은 지붕 아래에 기어들어 교만스럽게 불렀으리. 사랑 없이 밥상 위에 놓인 것을 삼켰다면, 그 한 끼가 초라하지 않을 수 있으랴. 흔한 군상에 끼어들어 소진(消盡)된 생의 나머지를 채우려한들 누가 그 손의 타락을 탓할 수 있으랴. 기만하는 자의 품에 안겨 자기를 속이는 사람들, 권력과 안락을 좇아가는 풍경. 어렵던 한때,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 하였던가. 무너져 있으니 의식의 가난은 신도 구제할 수가 없다. 편견과 아집을 모시고 좁은 길로 가거나 가느다란 탄식을 남길 뿐이다. 다만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낙후된 채로.
퇴임하는 선생이, 삼십 년 교직을 대과(大過)없이 마치게 된 것을 그 아내의 내조에 있다 하는 것은 선한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 누구인들 그러고 싶지 않으리. 생의 한가운데서 봄이 오는 소리는 이렇게 들려오는데(201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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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의 카프카
카프카를 읽었다. 아이들과 함께 토론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가족은 무엇이며, 희생은 또 어떤 것이며, 인간의 희망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훼손되는 것인지, 카프카는 왜 우리에게 변신의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는지, ‘맷돌 아래에서 좁쌀알이 생각에 잠길 수 있다고 한다면’ 카프카의 벌레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아이들과 앉아서 그러나 토론을 하지 못했다.
나도, ‘여기 이 끝없는 겨울에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했고
여기 ‘시대의 혹한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아이들에게나 또 다른 이들에게 할 말이 없어 여전히 서성였을 뿐.
카페에 가서 아이들의 이야기에 하나마나한 몇 줄 나의 말을 달고, 하나마나한 칭찬을 하고, 난쏘공을 나누면서 하나마나한 다음 약속을 잡기만 했다.
나는 아이들이 이런 것을 어떻게 읽었을지 물어보고 싶었다.
이를테면, ‘내가 돌아왔다. 누가 나를 맞아줄 것인가? 누가 부엌문 뒤에서 기다리는가? … 저 유년의 나날에서 들려오는 시계소리를 … 문 앞에서 오래 망설이면 망설일수록 그만큼 더 서먹해지는 법’등의 불경스럽지 않은 것에 관하여.(201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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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성탄이 오고
직장의 실내, 바닥은 진흙을 밟아 온 말발굽의 족적인 듯 더럽다
지나던 새가 쪼고 남긴 음식이 어지럽거나 흩어져 있다면 꼭 우리들의 협탁 같을 것이다
비정규직 급사의 손이 닦아낸다, 부유하는 것마저 닦아낸다
공부하면서 잡일들을 하루같이 복사해 내는 것을, 지순이가 예수처럼 사는 것을
나는 본다, 커피를 뽑아내고, 전화를 받고, 수많은 글씨를 타이핑하고
연구실에 공문을 넣고, 심부름을 하고, 은행을 다녀오고
심지어는 몇 병의 음료수를 빛나문구에 가서 빵으로 바꿔오기도 하고
만약 세상의 힘겨움을 누군가가 지고 간다면 저런 모습일 거라 나는 생각했다
거리의 겨울나무는 어두울수록 전구의 불빛이 반짝인다, 찬란하다
바람 불던 어느 날, 사다리 위의 사람들이 깍지발을 하고
저 무수한 빛의 발광체를 내 거는 것을 나는 보았다
집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소박하고 말없는 영혼의 현(絃)이 가지를 잡고 흔들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세상에 온 것이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고통을 안고 가는 약자에게
세상의 평화와 평등에 관하여, 천국에 관하여
보이지 않고, 보지 않은 것에 관하여 믿음을 믿게 하시려고
사랑하게 하시려고
슬픔과 분노와 지극한 용서에 이르게 하시려고(2009/12/24)
* * *
겨울 운문사
겨울 사리암에서 내려왔을 때 겨우 새 두어 마리가
말세의 복 밭, 그 어디쯤의 산협을 날고 있었다.
불이문 안은 적막하였는데, 한 학승이
마루를 닦듯 몇 움큼 적막을 밀어내고 있었다.
어둠은 산에서 내려와 스미고
공양간 저녁연기는 염불처럼 새어났다.
저무는 대웅보전에서 가슬갑사와 부처의 수인과
탱화 속 원효의 해골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너무 늦게 당도하였으므로 추워졌고
너무 이르거나 너무 닳았으므로
우주의 한 가닥이 끼쳐온다는 사연을 무심하게 흘려버렸다.
작압전(鵲鴨殿)에서 돌아 선 여승은
한 달을 더 머물다 다른 데로 간다고 하였다.
마을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아무도 떠나 온 운문사를 더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곳의 밤바람도 맵고 찰 것이다.
* * *
몇 마리의 연어들
슬픔이 없는 친구들은 모여서 회를 먹고 소주를 마시고 자리를 옮겨 노래를 불렀다. 이십 년이 흘렀다. 이십 년의 술을 마시고 이십 년의 노래를 부르려 했다. 한때 문학을 하겠다고 모였던 우리들은 은행원이거나 인력용역회사의 사장이거나 주부이거나 건축자재를 파는 도매상이거나 문학의 박사이거나 한결같았다. 흐른 것은 세월이고 지워진 것은 기억이었다. 나는 국채보상공원 수은등 아래로 걸어가면서 남아있지 않은 흔적을 더듬어보려고 저만큼 떨어져서 혼자였는데, 승은이가 겨울나무의 가지 같은 팔을 내밀면서 팔짱을 껴도 되느냐고 물으며 한참 나에게 바다와 그늘의 사연을 들려주려 그랬는지 말도 않고 곁에서 걸었다. 친구가 화원의 교도소를 드나들면서 울었던 캠퍼스 어디에서의 한 때, 말하지 않더라도 함께 걸었던 그 때를 나는 안다. 몇 마리의 연어가 바다로 나아가 대양의 소금물을 마시고 뼈가 자라고 영혼이 살진 세월과 기억에 대해 귀환한 민물의 그 어느 굽이에서 다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변한 것은 세상이고 감춰진 것은 진실이었다. 명함을 건네면서 남은 하루의 시간과 생에 관해 변명하고, 보여 줄 수도 없는 세상의 여백을 보여주려 노력해야 했었다. 오지 않은 친구들이 마음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오고, 나는 문득 고향집에서 세 살 아기 같은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아 끼우거나 그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골목을 돌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였다. 주둥이와 지느러미 그 어디에 상처가 생기고 아물기를 수십 번, 다시 이십 년이 더 지나 만나더라도 우리는 슬픔 없는 듯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말도 없이, 지나 온 바다의 깊고 어두운 빛깔에 대해 말할 것이다. 전화 안에서 잠시 그 빈자리를 생각하다 귀가할 것이다. 귀환하지 못한 것이 세상과 진실을 더 더듬고 있을 때 귀환한 것은 바다로, 다시 헤엄을 칠 것이다. 몇 마리의 연어들, 그저 연어들.(2009/12/14)
* * *
원주 찻집 소롯길
겨울 원주에 가서 하루를 자고 온 적이 있었다.
처음 간 곳은 갑갑하고 사람이 낯설기도 하여 배회하였다.
초저녁 하늘에 별이 많았다.
샛별과 초승달이 빛났다.
수련원 운동장에 키 큰 자작이 서 있었다.
뒤란에도 하얀 자작 몇 그루가 더 있었다.
불혹 같은 나무들은 그 뿌리도 순백일 것 같았다.
내가 어딘가를, 무언가를 기웃거리며
내 마음 그 어디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며
결국 자작 한 그루의 양식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여전히 별들은 멀리에서 출렁이고
나무는 서서 세상의 깊은 곳을 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상원사 입구에 갔다.
찻집 소롯길에 이르는 길은 겨울눈이 조금 있었고
아직 짧은 해가 남아 있었다.
바깥에 걸린 남포등
철 지난 단풍은 나무문 낡은 데서 흔들리고
통장작 세 개가 벽난로에서 타고 있었다.
원주에서 나고 자란 오 선생님이 아끼는 곳 같았다.
그의 추억이 그곳 어딘가에 있었겠으나
내게 어떤 말을 하지는 않았다.
모과차 한 잔을 마시며 생각하였다.
순한 영혼이 비길 데 없는 고독에 이른다면
꼭 이런 곳에 깃들어 있을 것 같은
그래서 어쩌다 저 창 밖의 흰 눈이 언 땅 속으로 녹아들 듯
장작이 그 온기를 언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옮겨 가듯
그렇게 사람들에게 녹아들 것 같이
원주의 하룻밤이 문득 왔다가 사라졌다.
그곳에는 지금 눈이 내렸을 지도 모른다.(2009/12/02)
* * *
불편한 밤
설거지를 하고 일찍 누웠다.
한숨을 자고 기척에 깼다.
큰딸 아이가 옆에 와서 누웠다.
나는 졸린 소리로
그만 하고 자거라.
아냐, 아직 할 게 있단 말야.
벽시계는 한 시 반
잠결에 걷어놓고 간 이부자리가 허전하였다.
야속하였겠거니.
잠시 잠이 달아났다.
몸이 말 듣지 않는 이런 날은 나에게도 미안하다.(2009/11/23)
* * *
동행
나는 사람에게서 가끔 나무를 본다.
나무에게서 사람이 보일 때도 있으나
나는 나무를 숭배하는 부족의 한 사람이 아니니
사람에게서 나무를 볼 때가 더 흔하다.
어린 나무 같던 때, 내가 만난 나무는
꿈꾸는 것만큼 막연하였으나 그 무엇이
오지 않았으므로, 없었으므로
그 막연함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흐린 것은 등이 없으니
내가 기대었던 곳, 내가 머물렀던 것
무성한 잎과 수피 터지는 줄기
나무가 내미는 그늘에 기대어
오래, 나는 가슴이 설레이었다.
겨울 밤길을 오가는 사람의 한기같이
나무를 휘감은 바람소리는 매웠다.
이는 바람과 오지 않는 시간 위에서
내가 억지로 상상하지 않았으나
나무가 나무로 성장해 온 곳
형형한 빛을 띤 눈으로만, 말로써만 이십여 년
이 먼 길을 돌아왔다는 것도 나는 안다.
내가 모르는, 가지 않은 곳에서
그가 나무처럼 자라며 키운 것
결에 꽂혀있는, 겹겹의 상처와
상처가 남겼을 것, 사금(砂金) 같은 것
나는 이제 나무에게서 가끔
사람의 얼굴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예정된 것은 아니나 피할 수 없는 것
감당할 수 없는 숲의 풍경을 사람에게 보여주는
상처가 표 나지 않을 만큼
생채기를 안고 가는
내가 보았던 사람의 나무는 낡아간다.
바닷가 마을의 부음을 오가며
어둠 속에서 오래 생각하였다.
서러웠을, 그리웠을(2009/11/20)
* * *
만촌육교 위에서
안개가 내렸네
어제 내가 안개를 끌어당겼듯이 사람들은
안개를 안고 달려가네
사람들의 사이에서 길을 잃었듯이
안개 속에서 나는 넋을 놓았네
바람이 내렸네
안개를 쓸어가진 못하네
사람들은 안개를 당기며 달리고
길은 열리며 물러나는 시늉을 하네
집 나온 사람들이 길을 가네
어제의 그 길을 가고 있네
계단을 오른 사람이 지나며
모르는 나의 등을 치고 가네
해가 떠 있듯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알 수 없네
새들이 숨죽이고 하루아침을 굶으며
젖은 날개로 저 안의 먹이를 찧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길을 가네
머리 위의 안개는 발아래에 깔렸으나
자욱하게 엉긴 것은 불붙지 않고
내 속으로 자꾸 내리네
산책하듯 안개가 하는 말, 알아들을 수 없네
보이지 않더니 귀마저 멀어서 나는 육교를 건넜네(200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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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상적인 글, 주의깊게 보고갑니다.
선생님, 이리도 많은 글들을 왜 이제사 보여주십니까. 과식한 듯 가슴이 무겁습니다. 내신 책이 있으면 여기에 소개하여 주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