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말을 배우면 배울수록 영어 표현의 한계를 자주 느낀다. 한국말을 배우지 않고 한국식 표현을 모르고 살았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얼마 전에 식당에 갔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에어컨 앞에 앉았다. 앉자 마자 바로 “아~ 시원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해 깜짝 놀랐다. 내가 캐나다에서 살았다면 이럴 때 뭐라고 했을까? 생각이 전혀 안난다.
한국 학생들에게 ‘시원하다’를 영어로 어떻게 말하느냐고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이런 경우에 대해 물어보니까 모두 나처럼 한국말로 “시원하다”고 하면서 영어로는 한 마디로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단다.
물론 ‘시원하다’는 단어는 ‘cool’이나 ’refreshing’과 비슷할 텐데, 아까의 상황에서는 그런 표현이 자연스럽지 않다. 내 생각에는 이런 경우 특별한 영어표현은 없는 것같고 그냥 사람에 따라 다르게 말할 것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Oh, that’s better” “Oh, it’s nice in here” “Wow, it’s freezing in here” “Finally, a little air conditioning” 등으로 말할 수 있겠다.
또 하나, 찌개나 북어국, 콩나물국을 먹을 때 한국사람들은 “시원하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영어로는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없다. 나는 아직도 뜨거운 국을 먹거나 온탕에 들어갈 때 “아! 뜨겁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태생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한국 친구들이 이런 느낌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데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니 답답해 한다. ‘답답하다’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것도 영어 표현이 쉽지 않은 것 중 하나이다.
물론 창문이 닫혀 있는 답답한 방에 들어가면 “It’s stuffy in here”라고 말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정말 가슴이 답답하다. 예를 들어 영어수업때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 많은 학생들 앞에서 발표할 때의 느낌, 친구와 같이 식사를 하는 데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의 느낌은 한 마디로 어떻게 말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There was a really awkward silence at dinner”라거나 “No one was talking, so it was really uncomfortable”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어쩐지 좀 부자연스럽고 허전하다. 가끔 영어선생님들끼리 수업이 끝나고 “My last class was really 답답하다”며 한국말을 섞어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모두 쉽게 그 느낌을 이해한다. ‘답답하다’ ‘시원하다’는 표현이 영어에도 있으면 얼마나 편리할까? 참 답답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 외에도 영어로 딱 부러지게 표현할 수 없는 단어들은 아주 많다. 아줌마, 아저씨, 수고하세요, 떡볶이, 삼겹살, 분식, 포장마차 등은 영어로 번역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들은 문장 중간중간에 그냥 ‘아줌마’ ‘분식’이라고 한국말을 섞어서 쓰곤 한다. 영어로 번역해도 억지스럽고 한마디로 딱 맞는 표현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국에 있는 친구나 가족들에게 한국생활에 대해 얘기할 때는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말로 하면 한 두마디로 ‘시원하게’ 끝날텐데. 그것 참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