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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이스라엘이 다시 접붙임 받는 날이 다가온다! 이스라엘을 축복하라! 하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에도 이스라엘에 대해서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대체 신학이 모든 교회에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돕고 그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도와드리고 전도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일에 대해서 대부분의 교회들이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이고 성경을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한 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들어가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교회가 이해하고 있는 바울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이 하는 말을 구약을 모르다 보니 자꾸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1부 2부에 걸쳐서 바울이 했던 로마서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에 대해서 더 깊이 전하고자 합니다. 또 구원의 의미에 대해서도 더 깊이 전하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20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지난주에는 율법이 무엇인가 말씀드렸습니다. 율법은 모세 오경이며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언약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사람이 맺은 약속이고 이것을 토라 라고 합니다.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법이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 가르침 중에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구약 말씀에 나오는 가르침과 약속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제사법이라든지 월삭과 절기를 지키는 예법들이 없어졌습니다. 예법은 예수를 알기 위해서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그런 제사법은 사라졌지만 구약에 나오는 가르침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가르침은 약속을 이룹니다. 약속은 지키려고 합니다. 약속이 결국은 마지막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율법이 이루어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 무엇일까요? 그 약속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이룰 것이라고 하십니다.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극히 작은 것을 빼지 말라.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수없이 빼고 있습니다. 천국에 가서 목사님들이 면류관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설교를 혹시 듣는 목사님이 계시면 싹 바꾸십시오. 아니면 차라리 성도로 사십시오. 하나님께 가서 왜 그거 뺐니? 그럼 뭐라고 할것입니까? 신학교에서 빼라던 것은 하나님께 안통합니다. 신학이 가르치는 교리가 중요합니까? 성경이 중요합니다. 놀라운 것은 밑에 말씀이 무엇입니까?
20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은 천국 복음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주신 복음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5장 6장 7장을 명심해야 됩니다. 그런데 천국 가지 못하는 자에 대한 말씀을 함께 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다 천국 간다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너희 의가 낫지 못하면 천국에 못 갑니다. 예수님이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따라 구원론을 확립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못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의'는 히브리어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미쉬파트]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의’라고 말씀할 때는 반드시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여기서 출발을 합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점에서 ‘의’는 심판에 관한 관점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씀하시는 ‘의’는 심판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긍휼과 사랑의 관점입니다. 그것을 [체다카]라고 합니다. [체다카]는 자선, 구제, 정의 라고 번역을 합니다. 교회가 이것을 ‘의’라고만 번역을 했습니다. 곧 ‘정의’라고만 번역한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십니다. 자선, 구제가 무엇입니까? 불쌍하니까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의’는 우리 인류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곧 누구입니까? 눈에 보이신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나타나셔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죄를 지고 가신 것입니다. 나를 믿기만 하면, 십자가의 은혜만 붙잡는다면 내가 너희를 구원하리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가 우리의 주인 된다는 뜻입니다. 영접이라는 의미를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자꾸 착각을 합니다. 믿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주인이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그가 나의 주인 되시면 그런 자가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주인을 바꾸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의미는 그분이 나의 주인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천국을 가셨으므로 나도 그분 따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의인이시므로 그분에게 속함으로 같이 가는 이것이 구원론입니다.
그래서 너희 ‘의’가 할 때 이 ‘의’는 바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왜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말씀하실까요?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어떻게 믿었습니까? 그들이 겉보기에 잘 안 믿었습니까? 너무너무 잘 믿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만큼 잘 믿습니까? 예수님 하신 말씀은 그대로 실행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너희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하실 때 그들은 '의'를 뭐라고 받아들였을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라고 받아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의를 [체다카]로 받아들입니다. [체다카]는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구제라는 뜻입니다. 구제는 내가 남에게 불쌍히 여기는 자비로운 행위가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웃을 돕는 일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체를 체다카 공동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부를 생활화해서 넉넉한 사람은 소득의 5분의 1을 그리고 일반 보통 사람들은 소득의 10분의 1을 기부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체다카]를 실천하게 하기 위해서 저금통 2개를 부모가 선물을 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현재를 위하여 혹은 미래를 위하여 저금하게 하고 나머지 저금통은 체다카 저금통을 해서 이웃을 위하여 자선하라고 어릴 때부터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 개의 저금통을 주어서 이웃을 생각하게 합니다. 왜 그렇게 하냐면 내가 이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나도 위하실 것이라는 [미쉬파트]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똑같이 사랑하시고 또한 모든 인류를 평등하게 대하시며 심판하실 거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가 이웃을 생각해 줄 때 이웃을 사랑하고 구제할 때에 그분이 나도 기억해 주시고 사랑할 거라고 자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체다카]는 우리가 생각하는 구제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체다카]를 ‘정의’라고 번역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될 일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이 그분도 나에게 [체다카] 하실 것이며 그분의 [미쉬파트]가 지나갈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그분의 심판이 내 곁을 지나갈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다 깜짝 놀랐는데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십일조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이 많은 지식인들이 나오고 전 세계에 부를 축적하는 이유는 그들은 [체다카]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웃을 긍휼히 여길 때 그분이 나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내가 하는 일에 복을 주시고 또 내가 많은 일에서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부를 또 자선에 기부를 합니다. 미국의 많은 부유한 기독교인도 이웃을 위하여 자선을 하였지만 유대인이 더 많이 합니다. 미국에서 오히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보다 훨씬 더 자선을 많이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줄 거라 믿고 돈은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하나의 물과 같이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잠언에 나오는 대로 돈을 움켜쥐면 오히려 가난이 등 뒤로 너희를 덮친다라고 하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나팔절에 석류를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석류는 풍요와 사랑을 상징합니다. 석류에는 613개의 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율법이 613개라서 그들은 율법을 긍휼과 사랑으로 생각합니다. ‘정의’도 긍휼과 사랑으로 생각하듯이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나도 그 사랑을 실천할 때 그분이 나를 사랑하실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율법과 전혀 다른 의미로 율법은 사랑해서 주셨고 복 주기 위해서 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체다카]에 대해서 보시려면 【더 펠로우십 코리아】에 들어가면 《체다카 패밀리 멤버십》이라는 유대인처럼 실천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구제하며 살자는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을 좋게 생각하고 용서하게 됩니다. 자꾸 율법으로 얽매이다 보면 용서가 안됩니다. 얽매이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기독교의 율법은 사랑과 자비가 원래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했습니까? 만일 그렇게 했으면 바리새인 얘기를 안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율법을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라 생각할까요? 창세기 18장 보겠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자선을 베풂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신 이유는 유대인이 선택받은 민족이고 우리만 잘 되면 된다고 착각하고 이방인을 무시하고 사람으로 취급도 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히려 미워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가 우리만 택함 받았다는 것은 큰일 날 소리입니다. 똑같은 전철을 밟는 것입니다. 창세기 18장 17절에서 19절 보겠습니다.
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자기가 하신 일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왜 숨기지 않으실까요? 이것으로 선지자에게는 숨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선지자라는 의미와 아브라함의 의미는 같은 것입니다. 왜 숨기지 않으실까요? 18절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이스라엘이 착각한 것은 우리는 복을 받은 민족이고 이방인은 저주받은 자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돌로 취급한 것이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가 되면 이방인도 함께 축복받는 것입니다. 이방인도 그를 인하여 복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복이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회복되면 전 세계가 구원을 받습니다. 처음부터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19절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이 도는 우리 입장에는 길 (道) 도 입니다. 이스라엘이 같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 다니는 길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마갈] 이라 합니다. 뜻은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도는 여호와가 지나간 자국, 곧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였으므로 너희도 나를 따라 오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으니. 여기에 나오는 의가 무엇입니까? 바로 온 인류를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아브라함도 해달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법을 지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배워서 나도 그 사랑을 실천하고 살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스라엘이 의와 공도를 지켰습니까? 안 지켰습니다.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의와 공도의 길을 따라가는 자에게 미리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8장 20절 21절에는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20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과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믿는다는 것은 행함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여기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한 것과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보고 알려 하노라 하십니다. 이 땅에 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치 않기 때문에 이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믿는다는 자유주의 국가에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까?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떠났습니다. 미국에 수많은 교회가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왜 멸망당합니까? 그곳에 동성애가 만연했습니다.
이 세상이 타락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는 남자와 여자가 구분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전 세계가 소돔과 고모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를 보면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자에게 미리 말씀 해주십니다. 저는 말씀으로 말씀드립니다. 온 세계는 심판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도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분의 뜻대로 행하여 살지 않고 인간의 생각이 더 앞서는 마지막 때 끝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정신 바짝 차립시다. 창세기 12장 1절과 4절 같이 읽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뭐라 하십니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 메시지를 듣는 많은 분들이 자기 뜻대로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야 되고 하나님이 가신 그 바퀴 자국을 따라가야 됩니다. 내가 간 길을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그 길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제시하신 길을 따라갈 것이냐, 내가 원하는 길을 갈 것이냐 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갈 때 어떻게 됩니까?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로 인하여 전 세계 인류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구원이 나누어집니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놀랍게도 우리 시대는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가 축복을 받고 이스라엘 저주하는 자가 저주받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가 끝이 나면 이스라엘 축복했던 나라와 민족만 살아남습니다. 저주했던 민족은 망해서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시면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주하는 족속은 사라지고 멸망 당합니다. 성경을 깊이 보셔야 됩니다. 모든 민족이 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민족으로 바뀐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저주하던 민족은 다 사라져버리고 없어집니다.
우리 민족의 흥망이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대체 신학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큰일 납니다. 그렇게 따라가다 교회도 민족도 망합니다. 우리 한국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국민이 많고 점점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중심 국가가 한국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회복하시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에게 분노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분노하시는지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말씀하시고 그들을 따라갔던 이스라엘은 그로 인하여 멸망당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5절부터 9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찾고 찾아야 하고 배우셔야 됩니다. 예수를 찾고 배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배부를 것이며 복을 받을 것이다. 평안을 얻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를 알게 되면 그때 복을 받게 될까요? 밑에 답이 나옵니다. 긍휼히 여겨지게 됐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배웠더니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됩니다. 예수를 만나봤더니 예수님은 사랑하고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고 나도 그분의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를 내가 긍휼히 여기고 반드시 구원할 것이라는 두 가지 말씀이 섞여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긍휼을 기뻐합시다.
긍휼은 히브리어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라함]이라 합니다. 이것은 자궁에서 파생된 [레헴]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뜻이 엄마가 뱃속의 태아에 대해 느끼는 애틋하고 각별한 사랑입니다. 엄마가 뱃속에 아기를 품고 있으면 얼마나 애틋하겠습니까? 저는 여성들이 자기 몸매가 파괴됐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배를 자랑스럽게 안 여기는 분을 못 봤습니다. 왜 자랑스러워하십니까? 아기를 사랑해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뱃속의 아기같이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여러분을 너무너무 사랑하십니다.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한다는 [라함]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인류를 내 생명보다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기 외아들을 대신 죽이신 하나님의 [라함]이 실천된 것이 바로 [헤세드] 긍휼 이라는 뜻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기의 생명보다 사람을 더욱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 있나니 예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예수를 얻을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바리새인은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를 붙잡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부터 16절 같이 보겠습니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면 너희는 나를 본받아 세상의 소금이 될 것이며, 너희를 희생할 것이며, 사랑 때문에 너희는 세상에 빛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너희의 긍휼과 사랑 때문에 나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이방인 중에도 이 사랑을 실천하는 자는 이스라엘이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혈육적인 이스라엘이 있고 영적인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혈육의 이스라엘이 죽은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너희가 나의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라고 우리 이방을 축복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을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이기적이라고 보면 큰일 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넓어져야 됩니다. 사랑하고 용서해야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부터 48절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당부하신 것입니다.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은 악인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은혜를 내리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도 이와 같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우리 의가 큰 것입니다. 그들같이 법을 잘 지키라는 뜻이 아니라 마음을 체다카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어떻게 합니까?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만든 가짜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정복자가 미우니까 말씀을 변개시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미워하지 마십시오. 중국도 미워하지 마시고 일본도 미워하지 마시고 정치에 관심 갖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정치에 관심 갖지 마십시오. 미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용서해야 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합시다.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의 종교입니다. 위의 구절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가르친 것에 대해서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가르쳤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긍휼과 사랑을 율법으로 바꿨다는 것입니다. 법으로 바꾸지 말고 긍휼과 사랑으로 말씀을 받아들여다오 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분노하셨는지 마태복음 6장 1절 보겠습니다.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도 했지만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합니다. 자기가 의로운 척하면서 자비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체다카가 정말 정의롭게 한다는 뜻입니까? 예수가 없는데 그들은 왜 체다카를 실천할까요? 그래야 돈 많이 벌 줄 알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부유하게 되고 삶이 풍요로워질 것 같으니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잘못하면 유대인 따라갑니다. 하나님께 십일조하고 헌금 드리는 것이 내가 복받으려고 하면 안되고 감사해서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구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구제하는 목적은 남에게 보이려고 합니다. 이것을 '외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은 히브리어 [하네프]라 하며 진실되지 않은 경건치 않은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배교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실되지 않고 외식을 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이 외식을 배웁니다.
하나님이 왜 그들을 분노하고 계시냐면 그들이 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고 사람과의 관계만 중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겉보기엔 율법을 잘 지키고 마음으로는 멀리합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은 계속 외식에 대해서 나옵니다. 그들의 외식에 대해 따라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첫 번째는 구제이고 다음은 기도할 때도 외식한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대표 기도 왜 없겠습니까? 대표 기도 나오면 보이려고 기도합니다. 대표 기도 나와서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분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교회도 바리새인의 외식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기도를 남에게 보이려고 합니다. 새벽 기도할 때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기도할 때 아무도 몰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외식하기 쉽습니다. 기도할 때 외식하지 말고 금식도 외식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적나라하게 꾸중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부터 24절 같이 보겠습니다.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무엇을 사랑해서 자선도 베풀고 기도도 할까요? 마음속에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헌금하는 이유와 목적도 돈을 사랑해서 구제하는 이유와 목적도 돈을 사랑해서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뭐라 하십니까?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하신 것입니다. 그들과 같이 살지 말아라. 돈에 욕심내고 살지 말아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헌금의 목적이 나옵니다. 돈을 사랑하면 그들이 믿는 신은 돈 입니다. 바알을 안 섬기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풍요의 신입니다. 겉보기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실제 바리새인들이 금송아지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안 그렇습니까? 교회와서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원입니까? 풍요와 축복입니까? 이 땅에서 잘 되고 잘 먹고 잘 살고 천국은 자연히 가려는 대부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다를 게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만 섬깁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합시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복은 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합시다. 그러면 이런 것들은 아버지가 알아서 주십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보실 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행적과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비교하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따라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결과이지만 보겠습니다. 호세아 8장 1절부터 4절 같이 읽겠습니다.
1 나팔을 네 입에 댈찌어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2 저희가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3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싫어 버렸으니 대적이 저를 따를 것이라
4 저희가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저희가 방백들을 세웠으나 나의 모르는 바며 저희가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파멸을 이루리라
나팔을 네 입에 댈찌어다.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환난의 나팔입니다. 그들을 내가 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무엇입니까? 그렇게 여호와의 성전이 멸망됩니다.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예수님도 아까 내가 율법과 선지자를 온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율법과 언약을 범하였도다. 그러나 이런 이스라엘에 다른 날이 장차 어떻게 옵니까?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이제 하나님을 압니다 하는 그날이 곧 옵니다.
3절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싫어 버렸으니 대적이 저를 따를 것이라. 4절 저희가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 저희가 방백들을 세웠으나 무엇입니까? 그들의 지금 앞에 선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지키며 따르게 합니까? 하나님과 멉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아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똑같습니다. 그들이 왜 하나님을 섬깁니까? 복 받으려고 이 세상에 물질 축복받으려고 나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상이고 오늘날 교회도 통회하고 자복하고 돌아와야 됩니다. 이것은 교회를 파멸로 이끕니다. 파멸을 이루리라 주님께서 경고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이 일이 일어납니다. 호세아 8장 11절부터 14절 같이 있겠습니다.
11 에브라임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되었도다
12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 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13 내게 드리는 제물로 말할찌라도 저희가 고기로 제사를 드리고 먹거니와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저희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이스라엘이 어떻게 됐습니까? 다시 애굽으로 갔습니다. 이스라엘이 전 세계에 퍼져버렸습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제단을 이루었지만 성전을 세우고 기도하였고 예배드렸지만 그 예배가 하나님께로 향한 것이 아닌 자기 범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왜 범죄한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들은 물질을 숭상했고 돈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은 저희를 위하여 율법 곧 언약을 지으셨지만 그들이 그 언약을 멀리했습니다. 그들이 겉보기에 율법을 지킨 것은 자기들이 복받으려고 지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는 나의 긍휼과 사랑을 너희도 배워 너희도 긍휼하고 사랑하는 자가 되어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 있는 율법의 정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그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은 다르게 받아들였습니다. 그 율법을 가지고 우상을 삼아서 이스라엘이 오늘날 전 세계에 흩어졌습니다. 교회는 안 그렇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대회개 운동이 일어나야 됩니다. 과거에 우리가 믿었던 것은 가짜 믿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본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만두실까요? 반드시 회복시킵니다. 장차 우리가 하나님을 아나이다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절부터 3절 같이 읽겠습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원하십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소원을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왜 멸망당했습니까?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는데 지식을 좇지 않았습니다. 곧 예수의 말씀, 그 은혜를 좇지 않은 것입니다. 지식을 아는 것이 우리를 구원시킵니다. 지식은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고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밑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헤세드]이신 예수를 모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기도 왜 했습니까? 구제 왜 했습니까? 금식 왜 했습니까?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한 것을 하나님은 외식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외식했기 때문에 멸망당한 것입니다.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를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리 구제를 많이 하여도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것은 헛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9절 같이 보겠습니다.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이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이 시기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합시다. 우리에게 그 일을 하나님이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축복하고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우리 의무입니다. 로마서 11장 11절 12절 같이 읽겠습니다.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우리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이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게 왜 중요할까요? 그들이 충만해지면 온 인류가 구원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꿈이고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뱃속에 있는 아기같이 긍휼히 여기시고 자식같이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구원받기를 소망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일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루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1장 13절에서 18절 같이 읽겠습니다.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존하는 것이니라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왜 버리셨습니까? ‘의’이신 예수를 받아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어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됐고 우리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버려졌습니까? 대체 신학은 이스라엘이 버려졌고 우리가 이스라엘이라 합니다. 이것은 버려졌다는 의미만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버려졌지만 하나님이 회복되게 하시고 살리려 하십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한 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처음 익은 곡식입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거룩하니라. 뿌리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아니라 뿌리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바로 이스라엘 입니다. 이스라엘이 꺾여졌는데 대신에 우리가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원래 가지였던 이스라엘은 꺾였고 그들에게 돌감람나무인 우리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너희가 받느니라. 이 뿌리를 잘 이해하셔야 오해가 안됩니다. 이스라엘도 가지이고 뿌리는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11장 19절부터 24절 같이 읽겠습니다.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돌감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바울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원 감람나무 이스라엘이 다시 접붙임을 받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뒷말은 빼고 그들이 떨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원 감람나무에 있던 그들이 꺾였습니다. 우리 돌감나무가 접붙임 받았으면 다 구원받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 안 버리실까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두려워하라. 너희도 꺾이리라.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까?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라와야 됩니다. 그것이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감람나무인 너희도 꺾이리라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명심합시다.
하나님이 이 땅의 교회들에 분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생각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하나의 말씀은 축복으로만 받아들입니다. 천국은 아무나 다 간다고 얘기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변개한 것입니다. 원 가지인 그들도 접붙임 받으리라. 구원받게 되리라. 바울은 미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 시대입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회복됐고 예수를 믿는 자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말씀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계속 돌아오고 있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오실 때가 다 됐다는 증거입니다. 로마서 11장 25절부터 32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이스라엘이 마지막 때에 다 돌아오리라는 그 일을 알기를 원하노라 하십니다. 27절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이 이스라엘이 다 돌아갈 때 이루어지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택하심으로 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택하심으로 하면 하나님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까? 전적인 그분의 사랑으로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똑같다고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께 불순종하였으나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십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으로 구원받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 얘기입니다. 로마서 11장 36절 같이 읽겠습니다.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로다 아멘
이스라엘이 돌아오면 그들이 불의를 행하였으나 하나님이 사랑하심과 긍휼하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이방인도 마찬가지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고 온 인류가 구원받는 것은 불순종하는 우리를 사랑하고 헤세드로 구원받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다 구원하려 하십니다. 다 주에게서 나오고 다 주께로 돌아갑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곧 그날이 옵니다.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그들을 회복시킵시다. 주의 길을 평탄케 합시다. 이것이 마지막 때 교회가 해야 될 일입니다. 우리가 바울에게 졌던 그 빚을 갚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왜 마지막 때 교회가 이스라엘 회복시켜야 되는지, 이스라엘 축복해야 되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 모든 인류가 구원받게 됨을 우리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되는 그날까지 우리가 이스라엘을 돕겠습니다.
주의 길을 평탄케 하겠습니다.
주여 우리 한국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