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중국민족의 상징이다. 용은 어떤 동물인가? 만물의 우두머리이며 사령四靈의 하나이고 ‘비늘이 달린 짐승의 대장(인충지장鱗蟲之長)' 이라고 말해진다. 용의 종류는 다양하여 ‘비늘이 있는 용은 교룡蛟龍이라 하며, 날개가 있으면 응룡應龍이라 하고, 뿔이 있으면 규룡이라 하며, 뿔이 없으면 이룡이라 한다.'
고대인의 눈에 용은 변화막측하고 신기한 동물로서 “작아지려면 누에알처럼 작아지고, 커지려면 천하를 품에 안을 수 있으며, 위로 오르고자 하면 구름위로 치솟고, 내려가고자 하면 깊은 연못 속으로 숨어 끝없이 변화하고 시간에 관계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어둡게 하거나 밝게 할 수 있으며, 작아지거나 커질 수 있으며, 짧아지거나 길어질 수 있으며, 춘분春分에는 하늘로 올라갔다가 추분秋分에는 숨어 조용해진다. ” 이처럼 신령스러운 용은 대개 신화전설에서 태양의 신인 동군東君이나 하신(河神-물의 신)인 하백河伯이라야 겨우 다스릴 수 있었다.
아득한 옛날, 용은 최초에는 씨족의 표지로서 출현하였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동물이나 식물을 이용하여 자신의 씨족을 대표하는 표지로 삼았으며, 이러한 표지를 ‘토템 (Totem)' 이라 한다 . 전설에 따르면, 서부의 강족羌族은 양羊을 토템으로, 상商나라 사람은 봉鳳을 토템으로, 하夏나라 사람은 뱀(즉 용)을 토템으로 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씨족이 매우 많아 부락 사이에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였으며, 강자가 약자를 합병함에 따라 씨족의 토템도 끊임없이 변화되었다. 예를 들면, ‘사蛇'의 씨족氏族 (뱀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은 끊임없이 ‘독수리鷹', ‘사슴鹿 ', ‘말馬 ', ‘돼지猪 ', ‘물고기魚' 등의 씨족을 합병하여 ‘뱀'에 독수리의 발톱, 사슴의 뿔, 말의 몸뚱이, 돼지의 주둥이, 물고기의 비늘 등을 증가시켜 점차 신체가 변화된 동물인 ‘용' 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대연합이며 대통일이라는 국면으로서, 중국이라는 국가가 다민족의 통일체라는 상징이다.
용에는 신화적인 색채가 농후하였으며, 봉건사회에서는 또한 황제에게 있어 ‘하늘에서 부여한 위엄'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역대의 황제는 모두 ‘진룡천자眞龍天子' 로 자부하였다. 황제는 바로 ‘진룡眞龍'의 화신이므로 용문양은 황제의 상징으로 되어 황제의 권위를 대표하게 되었다. 원대元代에서 청대淸代까지 몇 백년 동안 용문양은 임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조룡五爪龍은 황제와 궁정에서만 사용되었으며, 민간에서는 삼조룡三爪龍와 사조룡四爪龍만으로 사용이 제한되었다.
용문양의 형상에는 시대가 변화됨에 따라 각 시대의 특징이 선명하게 나타나있다. 용문양의 변화는 고대인들의 지혜와 장기간 축적된 중국의 문화적인 의미가 깊이 새겨져 있으며 제왕의 군주의식도 내포되어 있다. 특히 원, 명, 청의 용문양이 그렇다. 원명청시기의 용문양의 외형을 개괄하여 말하자면, 원대는 수려하고, 명대는 사나우며, 청대는 장엄하다(원수元秀, 명영明獰, 청장淸壯).
원대元代 용은 머리가 작고 몸뚱이가 길며, 항상 목과 다리 및 발톱은 가늘고 꼬리는 뾰족하게 표현되어, 형체가 날씬하여 춤추듯이 움직여 ‘머리를 들고 발톱을 치켜 세우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명대 용은 흉맹하고 위엄이 있다. 가슴의 앞부분에 대부분의 경우 구부러진 끈이 장식되어 있으며, 몸체는 화염문火焰紋으로 휩싸여 있고, 모든 털을 곤두세운 채 파도나 구름 사이에서 포효하며 일체를 주재하는 듯한 권위를 나타내고 있다.
청대 용은 기우가 헌앙하며 머리 뒷부분이 풍만하게 표현되고 신체가 굵고 장대하여, 방대한 몸체를 가지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원명청시기의 용문양은 비록 시기별로 국력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각각의 시대마다 특징도 분명하다. 그 특징은 주로 머리털과 눈썹과 수염 및 발톱에 나타나있다.
용문양에서 세발가락과 네발가락 및 다섯발가락의 등급을 구별한 것은 원대말기의 일이다. <원사元史 여복輿服>조의 기록에 따르면, 지원至元 2년(1336년) 원의 조정에서 “기린, 난새와 봉황, 하얀 토끼, 영지, 쌍각오조룡, 여덟마리의 용, 아홉마리의 용, 만수라는 문자와 복수라는 문자, 자황색 등의 복식을 금한다( 禁服麒麟 , 鸞鳳, 白兎, 靈芝, 雙角五爪龍, 八龍, 九龍, 萬壽, 萬福等字, 자黃等服.) ”라는 명을 내렸다 . 이 기록은 용문양이 최종적으로 봉건제왕의 권위의 상징으로 변화되는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용문양> 중국 고대의 도기陶器에 최초로 출현한 용문양은 고고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의 신석기시대였다. 그 시기의 용은 뚱뚱하고 기다란 뱀의 몸뚱이에 발가락은 3개였으며 머리는 둥글었다. 산서성山西省 양분襄汾 도사묘陶寺墓에서 출토된 용산문화龍山文化초기(약 4500년 전)의 니질갈도반泥質褐陶盤의 내부에 용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형상은 뱀의 몸뚱이에 비늘이 나 있으며, 머리는 작고 입은 약간 벌어져 있고, 아래턱은 길고, 혀는 가늘고 길게 밖으로 나와 있었으며, 혀 끝이 벼이삭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현재까지 발견된 최초의 용문양이다.
상주시기商周時期(약 3000년전)에 용문양은 옥기玉器와 청동기에 자주 나타나는 문양이 되었다. 이 시기의 용문양은 대략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 비늘 달린 형태의 용으로서 ‘뱀모양' 이며 몸체는 뱀의 형상으로 다리와 발톱이 없으며, 일수이체형(一首二體形-머리는 하나에 몸뚱이는 두개)과 일체이수형(一體二首形-하나의 몸뚱이에 두개의 머리)이 있다. 이리강문화二里岡文化 유적지에서 출토된 도기파편에 이러한 용문양이 그려져있다. '머리는 영지靈芝와 유사한 형태의 여의두如意頭이며 코도 영지와 유사한 형태인 여의상如意狀으로, 머리는 신석기시대에 비하여 크기가 작아지고 머리에 두개의 굽은 형태의 뿔이 덧붙여져 표현되었다. 이것은 용의 형태에 뿔이 형성되는 제일단계의 시기였다. 둘, 수체형용문(獸體形龍紋-네발짐승의 모습을 한 용문양)으로 그 형상은 입을 벌리고 사지와 발톱이 있으며, 몸체는 네발짐승과 유사하고, 꼬리는 둥글게 말려 있다.
춘추전국시대는 용문양이 새롭게 발전한 시기로서, 용문양이 화려하고 다채로워졌으며, 신인사룡(神人蛇龍-신인과 용)이라는 낭만적인 세계가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초楚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승인어룡(乘人御龍-용을 타고 조정하는 사람)' 이라는 백서(帛書-비단에 쓴 글씨)는 상상력과 창조력의 결합체였으며, 용거(龍車-용문양을 장식한 수레)와 용주(龍舟-용문양으로 장식된 배)가 출현하였으며, 교룡蛟龍과 비룡飛龍 및 이룡(뿔없는 용) 등으로 종류도 많아졌다. 이 시기의 옥기와 청동기 및 칠기 등의 공예품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용문양은, 네발짐승의 몸체에 발가락은 3개이며, 가느다란 꼬리는 둥글게 말려있고, 입을 크게 벌린 채 머리에는 뒤로 말린 뿔이 붙어있다.
<진한秦漢 - 위진남북조시기魏晉南北朝時期의 용문양> 진한시기秦漢時期 ,특히 양한시기兩漢時期는 봉건사회의 흥성기였으며, 이 시기의 용문양은 변화가 극히 다양하다. 진대秦代 궁전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용문공심전(龍紋孔心塼-용문양이 조각된 속이 빈 벽돌)에 나타난 용문양의 형상은 다음과 같다 : 머리는 소, 수염이 나 있고, 큰 귀에 대칭으로 가늘고 긴 뿔이 나 있으며, 뱀의 몸체에 날개가 나 있으며, 발에는 발톱이 있고, 몸에 벽璧이 붙어 있었다. 그러므로 진한시기의 용문양에는 주련합벽(珠聯合璧-하늘을 비유 또는 완전무결을 비유)이라는 설이 있었다.
양한시기에 벽화壁畵, 석각石刻, 동경銅鏡, 청동기, 금은기, 옥기, 칠기, 와당, 도기 등에 대량으로 용문양이 장식되었으며, 용문양에 대해서도 황룡黃龍, 응룡應龍, 창룡蒼龍, 교룡蛟龍, 청룡靑龍, 백룡白龍, 운룡雲龍, 이룡 등과 같이 여러 명칭이 존재하였다. 용은 사람들이 신격화한 이상적인 미의 형상으로 변화되었다.
한대漢代의 와당에 나타난 용문양은 대체로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 형체가 도마뱀과 유사하며, 몸에 날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다리는 네 개로 발가락은 말발굽모양과 발톱모양으로 나누어지고, 꼬리는 가늘며 길게 말려있고, 머리는 작은 산과 같은 형태로 가늘며, 뿔은 두개가 나있고, 눈을 부릅뜨고 혀를 내밀고 있으며, 입술이 비교적 길다. 둘, 형체가 호랑이와 유사하며, 발가락은 세 개로서 꼬리는 길게 두 갈래로 갈라져서 말려있고, 몸체에 '옥주(玉珠-옥구슬)'가 부착되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가느다란 머리는 작은 산의 형태와 유사하고 뿔은 길고 힘차며, 아래 턱에 밖으로 말린 하나의 수염이 붙어있다.
한이후의 남북조시대까지는 정치적으로는 분열의 시대였지만, 용문양의 장식예술은 기본적으로 양한시기 용의 형상과 특징을 계승하였으며, 용의 주위에 왕왕 구름이나 꽃으로 장식하여 용의 형상을 더욱 멋지게 표현하였다.
<당唐 - 오대五代의 용문양> 당대는 봉건사회의 전성기로서 경제와 문화가 모두 극히 발달하였다. 이 시기의 용문양의 장식에는 새로운 예술적인 형상이 출현하였다. 용문양은 당대의 풍만함을 미로 간주하는 미적관념을 체현하고 있었다. 동경과 금은기와 옥기 및 기타 공예품 가운데에서 이 시기의 용문양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몸체는 건장한 뱀으로서, 마름모꼴로 이루어진 그물형태의 비늘로 물고기의 비늘이 대체되었으며, 앞다리와 신체의 관절 부위에 가늘고 긴 날개가 돋아 있다. 용의 등에는 갈기가 나 있고 꼬리는 뱀의 꼬리와 유사하며 ‘S' 자형으로 구부러져 있다. 발톱은 과거의 네발짐승의 발톱에서 새의 발톱으로 변화되었으며, 약간 굽은 삼각형으로 그려진 발톱은 날카로우며 힘차다. 머리에 난 두개의 뿔은 곁가지가 많이 나있으며, 주둥이의 각도는 이전보다 깊어지고, 위 턱이 비교적 길고 특히 윗입술은 길게 위를 향해 들려져 있다. 눈동자는 과거의 둥근 눈과 삼각형의 눈에서 봉황의 눈으로 변화되었다. 봉황의 눈은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로 지혜와 총명 및 풍부한 감정의 상징이었다.
오대五代의 용문양은 도자기상에 두 종류로 나타난다. 하나,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오대五代 전원관묘錢元瓘墓에서 출토된 쌍룡포주문병雙龍抱珠紋甁이 대표적이다. 용은 네발짐승의 형태로 건장하며 물고기비늘이 덮혀 있고, 길고 가느다란 목, 꼬리는 사자꼬리와 같으며 머리는 작고 입의 각도가 깊숙하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아래위턱이 길고 주둥이는 뾰족하여 매의 부리와 비슷하고 가지가 달린 두개의 뿔이 있으며, 네 다리는 굵고 튼튼하며 세발가락이다. 둘, 뱀몸뚱이 형태의 용문양으로, 나머지 특징은 첫번째와 유사하다.
이 시기에 회수룡(回首龍-고개를 뒤로 돌리고 있는 용)이 출현하였는데, 두 마리 용의 중간부위에 ‘보주寶珠' 나 ‘옥주玉珠' 라고 불리우는 구슬이 하나 장식되어 있다. 용의 주위에 구름이나 파도로 배경을 장식하여,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바다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용의 위엄스러운 자태를 표현하였다.
<송대宋代의 용문양> 송대는 경제문화가 상대적으로 번영한 시기로서 도자업도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남북 각지에 가마가 수없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의 용문양은 극히 보편적으로 장식되었으며, 입체적으로 장식된 문양과 평면적으로 장식된 문양이 있다.
평면적인 용문양의 장식수법은 매우 다양하여 각화刻畵, 획화劃畵, 인화印畵, 첩화貼畵, 채회彩繪 등의 기법이 사용되었다. 용문양은 송대에 이르러 그 체형의 변화면에서 기본적으로 이미 하나의 틀을 형성하였다. 남송초기 나원羅願은 <이아익爾雅翼>에서 당시의 용을 아홉가지 동물과 유사하다고 기록하였다 : 뿔은 사슴과 비슷하고, 머리는 낙타와 비슷하고, 다리는 토끼와 비슷하고, 목은 뱀과 비슷하고, 배는 게와 비슷하고, 비늘은 물고기와 비슷하고, 발가락은 매와 비슷하고, 발바닥은 호랑이와 비슷하고, 눈은 소와 비슷하다. 이러한 사항은 여러 동물에서 가장 뛰어난 부위를 종합하여 용의 몸체에 갖다 붙인 것으로, 원명청元明淸시기의 용문양의 기본적인 형체의 기준이 만들어졌다.
송대 용의 몸체는 기본적으로 뱀의 기다란 몸체로 고정되어, 과거의 네발짐승의 몸체는 이미 사라졌다. 몸뚱이는 물고기비늘문양이 당대唐代의 그물문양을 대체하였으며, 다리는 점점 짧아져 강력해지고, 과거의 네발짐승의 발굽이나 말발굽이 날카로운 독수리발톱으로 대체되었다. 다리에 난 털은 비교적 길게 표현되었으며 곡선으로 표현되어, 과거의 털이 짧고 적거나 털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 변화되었다. 아래위입술에도 변화가 발생하여, 길고 뾰족한 윗입술은 축소되어 과거의 윗입술이 길고 아랫입술이 짧은 현상에서 변화되었다.
송대 용문양은 몸체가 뚱뚱하고 굵으며 발가락을 펼친 채 발을 휘두르고 있어, 사람들에게 흉맹하고 위엄스러우며 기세가 충천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문양은 매우 성공적인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원대元代의 용문양> 원대의 통치기간은 100년에 못 미치지만, 도자기에 용문양이 장식된 예는 매우 많다. 퇴첩堆貼한 문양과 유상채회釉上彩繪로 표현한 용문양이 존재하였다. 원대의 용문양은 특징이 분명하지만 변화는 크지 않다. 몸체는 휘어진 기다란 뱀의 몸체로서 뚱뚱하고 굵으며, 몸체의 표면은 물고기비늘문양이나 그물문양으로 장식되었다. 머리가 가늘고 둥글어 송대나 명대의 용머리보다 크기가 더 작았으며, 용머리에는 대부분 털이 없으나 일부 성글게 표현된 것도 있다. 아래위턱이 비교적 길며 입을 벌린 용문양과 입을 다물고 있는 용문양으로 나누어지며, 윗입술은 위로 들려 영지靈芝와 유사한 여의두의 형태(뾰족한 형태도 있다)로 길게 튀어나와 있다. 입을 벌린 용은 대부분 혀를 내밀고 있으며, 혀는 극(戟-갈래진 창)과 유사한 형태로 크기가 작고, 목은 가늘고 짧다. 네 다리는 가느다랗지만 강건하게 표현되었으며 근육도 튀어나오게 묘사하여, 뼈대와 살집이 모두 표현되어 있었다. 발가락은 길고 약간 안으로 굽어있으며 삼조三爪, 사조四爪, 오조五爪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삼조와 사조가 다수이다. 원대의 용문양에서는 참룡(站龍-서 있는 형태의 용)과 유룡(遊龍-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용)이 다수를 차지한다. 전체적으로 용문양은 사람들에게 유치한 느낌을 주지만, 강력하고 용맹하게 표현되었다. 원대의 용문양의 주위에는 왕왕 영지와 유사한 형태의 구름으로 배경을 그려넣었으며, 구름의 꼬리는 길고 뾰족하다. 이와 동시에 또 기다란 화염문(火焰紋-불꽃문양)을 배경에 그려넣기도 하였다.
<명청明淸시기의 용문양> 명청시기는 500여년간에 이르는 긴 시간이다. 도자기에 나타난 용문양은 매우 복잡하며 장식수법도 각화, 획화, 인화, 채회 등의 여러기법이 사용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강서 경덕진요의 제품이다. 용의 발가락은 삼조, 사조, 오조로 나누어지지만, 오조五爪가 주이며 관요官窯의 대표작품이었다. 민요에서는 삼조와 사조의 용문양을 그려넣었으며, 관요의 용문양에 따라 그려넣었지만, 간단하고 서투르게 그려졌다.
명청시기 용문양의 형식은 매우 다양하여 단룡團龍, 운룡雲龍, 쌍룡雙龍, 해수룡海水龍, 용봉龍鳳, 화간행룡(花間行龍-꽃사이에 있는 용), 하화연지룡(荷花蓮池龍-연꽃밭의 용), 익룡翼龍, 기룡夔龍, 반리룡蟠리龍 등이 있다. 입을 벌린 채 발을 휘젓고 있거나,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기도 하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기도 하며, 입을 다물고 날아가기도 하는 등 그 형상이 천태만상이었다.
(1) 명대의 용문양 명대 홍무연간洪武年間(1368-1398)의 도자기는 전세품이 많지 않으며, 강소성 남경시 명대의 고궁에서 출토된 홍무백유홍채용문반洪武白釉紅彩龍紋盤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용문양의 조형은 기본적으로 원대 용문양의 형상을 보전하고 있었다. 즉 머리는 작고 목은 길며, 몸뚱이가 가늘고 길고 비늘모양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용의 주위에 화염문과 영지모양의 구름으로 배경을 그려넣었다(구름의 꼬리가 짧아져, 원대의 구름처럼 가늘고 길지는 않다). 머리의 드문드문 돋아난 머리카락과 다리의 털은 원대보다 더욱 짧아져서 세 가닥이나 네 가닥에 불과하였다. 용의 발가락은 다섯개로 원대의 삼조나 사조의 형태가 변화되었으며, 이 시기의 다섯발가락은 서로 비교적 가깝게 뭉친 형상으로 그려졌다.
영락永樂과 선덕宣德시기의 용문양은 원대의 가느다란 몸뚱이와 작은 머리의 유치한 용의 모습에서 변화되어, 형체가 굵고 건장하며 흉맹스러운 커다란 형상이 되었다. 용의 머리는 원대보다 크게 변화되고, 아래위턱이 비교적 길어지고 위턱이 아래턱보다 길고 높이 튀어나와 있으며, 입을 벌린 용과 입을 다물고 있는 용문양으로 나누어진다. 입을 벌린 용은 혀를 내밀고 있으며, 초기에는 극戟처럼 비교적 길었으며, 후기에는 약간 짧아지고 미미하게 위로 들린 형태로 표현되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용은 윗입술이 영지와 유사한 모양으로, 코의 양측에 대칭으로 길게 구부러진 수염이 나 있으며, 아래턱에는 대부분 두 묶음이나 세 묶음으로 성기게 돋아난 수염이 있고, 머리털은 성기게 한 묶음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前期에는 머리털의 수가 적고 後期에는 머리털의 수가 많아졌다. 머리털이 굽어져 위로 치솟아 있어 노한 듯한 형상으로 신령스러운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발가락은 삼조, 사조, 오조로 나누어지며, 발톱은 삼각형으로 미미하게 안을 향해 굽어있으면서 매우 날카롭고 힘차게 표현되었다. 사람들은 명대의 용발톱을 독수리발톱(鷹爪)이라 한다.
이 시기에는 용문양의 주위에 파도, 전지화纏枝花, 화염火焰, 구름 등이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 구름의 모습은 원대와 완전히 달라졌다. 원대의 구름은 머리와 꼬리가 하나이지만, 영락과 선덕시기의 구름은 하나의 머리에 꼬리가 세 개이거나(일두삼미一頭三尾) 네 개(일두사미一頭四尾)이다. 원대 구름의 꼬리는 가늘고 길지만, 영락과 선덕시기의 구름의 꼬리는 굵고 짧다. 그러므로 감정할 때에 조금만 주의하면 명확하게 그 차이를 판별할 수 있다. 영락과 선덕시기의 용문양은 조형에서 표현기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공적인 예술작품이었다. 용의 몸체는 '번개가 번쩍이듯이 좌우로 휘돌아' 흉맹하고 신령스러운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명대중기 즉 성화成化, 홍치弘治, 정덕正德시기에 이르러 용문양은 또 변화되었다. 영락과 선덕시기의 입을 벌린 채 발을 휘저으며 위맹한 용문양은 감소되었으며, 입을 다물고 있는 용이 자주 사용되었고, 대부분 꽃의 가운데나 연꽃의 가운데나 바다에 출현하며, 혹은 채색구름 사이에 용문양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입을 다물고 있는 용을 제외하고 입을 벌린 용과 이룡도 소수 존재하였다.
이 시기의 용문양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입을 다물고 있는 용의 머리는 장방형(長方形-직사각형)으로 윗입술의 코 부위가 돌출되어 영지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코끝과 눈썹에 대칭으로 세로로 난 털이 있다. 머리카락은 성글게 묶여 있거나 봉두난발처럼 흐트러진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 위로 솟아 거의 수직으로 90 도를 이루고 있으며, 아랫입술에는 세 가닥의 수염이 한 묶음으로 앞을 향해 뻗어 있고, 두 눈은 병렬로 나란하며 둥그스름한 눈으로 시선은 수평을 향해있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서로 가깝게 근접하여 풍차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있다. 몸체의 물고기비늘은 초기에는 정밀하게 묘사되었으나, 후기에는 간단하고 거칠게 표현되었다.
이 시기에 또한 이룡이 출현하였으며 '초미룡草尾龍' 이라고도 하였다. 몸체는 네발짐승과 유사하고, 다리는 네발짐승과 유사한 것과 새와 유사한 것의 두 종류가 있으며, 입을 벌린 채 혀를 내밀고 있고, 위턱이 아래턱보다 길며, 위턱이 위로 들려진 채 앞으로 굽어있어 코끼리의 코와 비슷하였다. 용의 꼬리는 대부분 갈라져 있어 봄에 돋아난 풀과 비슷하며, 입에 절지연화折枝蓮花 한 가지를 물고 있다. 이러한 용문양은 이후에는 비교적 적게 나타나지만, 청대의 강희시기에 모방품이 나타났다.
성화, 홍치, 정덕시기의 용문양은 대부분 유룡(遊龍-자유로이 노닐고 있는 상태의 용)으로, 이미 전대의 입을 벌린 채 사지를 버둥거리며 흉맹하게 비바람을 몰아치는 듯한 자태는 사라지고, 성질이 온순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용의 주위에는 전지연화(纏枝蓮花-이리저리 가지가 휘감겨 있는 연꽃), 절지련(折枝蓮-연꽃의 가지), 파도문, 봉황문, 구름 등으로 배경을 그려넣었다. 구름은 전대前代와 선명하게 달라져서 머리하나에 꼬리가 하나, 둘, 셋, 넷인 구름으로 나누어지며, 꼬리의 중간에 왕왕 하나의 작은 돌기가 튀어나와 마디가 있는 꼬리 형태를 하고 있어, 원대의 가늘고 길며 구부러지거나 머리가 크고 꼬리가 특히 가늘고 긴 형태와는 상이하게 변화되었다.
명대말기의 가정, 융경, 만력시기의 용문양의 형식은 다양하지만 유룡遊龍이 대부분이다. 서로 마주보고 춤을 추는 용이 있으며, 정면을 향해 입을 벌린 채 사지를 움직이는 용이 있고, 두 마리의 용이 구슬을 쟁취하려고 다투는 형태가 있으며, 머리를 돌려 바라보고 있는 용이 있고, 용과 봉황이 상대하여 춤추고 있는 문양이 있다. 꽃 사이를 움직이는 용이 있으며, 채색 구름 사이에서 춤추는 용이 있고, 파도 사이를 노니는 용이 있다. 이 시기의 용문양은 입을 벌리고 있는 용과 입을 다물고 있는 용으로 구분된다. 이 시기의 용문양은 이미 전대와 크게 달라져서 묘사가 간단해지고 서툴러져서, 일부 용문양에서는 비늘을 간단하게 그물문양으로 그려넣어 격이 매우 떨어졌다. 수척하고 허약한 용문양도 있었지만, 하늘로 솟아오르며 풍운을 몰아치는 신위가 사라져버렸다.
이 시기의 용문양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용의 머리는 둥글며 전대보다 가늘어졌고, 머리털은 흐트러져 있으며(과거에는 성기게 난 머리칼), 머리털이 위로 솟아있거나 뒤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위로 솟아난 형태를 하고 있다. 아래위턱이 비교적 길며, 특히 위턱의 끝부분에 살집이 발달하여 높이 튀어나와 영지와 유사하게 표현되어 돼지주둥이와 비슷하므로 '저저룡(猪咀龍-돼지주둥이의 용)' 이라고 한다. 콧등의 양측에 대칭으로 기다란 수염이 위로 솟거나 앞으로 뻗어있다. 두 눈은 병렬이며 눈을 둥글고, 시선은 전방을 향해 있으며, 눈썹은 톱날모양이나 병렬로 대칭이 되는 다발로 묶여서 비수匕首처럼 전방을 향해있다. 입을 벌린 용은 왕왕 혀를 내밀고 있으며, 혀끝이 비수의 끝부분과 유사한 형태로서, 일부는 혀끝이 미미하게 위로 굽어있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전대前代처럼 풍차형태를 하고있지만, 왕왕 형태만 유사하고 힘이 부족하게 표현되어 있다.
명대말기의 용문양은 당시의 정치경제와 사회가 쇠퇴하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늙고 힘이 없게 표현되었다. 숭정시기崇禎時期(1628-1644)의 오채용문반五彩龍紋盤에서 이러한 상황을 알 수가 있다. 숭정시기의 용문양은 얼굴이 수척하면서 뾰족하고 기다란 수염에 봉두난발이며, 발가락은 게의 발가락과 유사하고, 배는 불룩하고 허리는 오목하여 죽음직전의 늙은 용과 흡사하다. 그러므로 용문양의 표현에도 그 당시의 정치경제와 사회적인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청대의 용문양 청대로 들어와 용문양의 형상은 아직 명말의 유풍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순치順治(1644-1661)의 운룡문화병雲龍紋花甁의 경우, 용은 입을 벌린 채 사지를 움직이고 있으며, 머리는 가늘고 둥글며, 아래위턱이 길고 위턱이 튀어나와 있으면서 코의 모양은 영지의 형태와 유사하고, 코의 양측에 대칭으로 기다란 수염이 전방을 향해 춤추듯이 들어올려져 있다. 머리털은 흐트러진 상태로 위를 향해 서 있다. 그러나 용의 식지食趾와 무지拇趾가 명대의 용문양처럼 가깝게 붙어있지 않고 거리가 비교적 멀며, 닭의 발가락과 같은 형상으로 펼쳐져 있다. 그러므로 고대인들은 청대 용의 발가락을 '계조鷄爪-닭의 발가락)'라고 불렀다 .
청대초기 강희, 옹정, 건륭시기는 봉건사회의 전성기였으며, 용문양에도 새로운 형상이 출현하였다. 이 시기의 용머리는 변화가 방대하였다. 과거의 기다란 돼지주둥이는 수축되어 아래턱이 위턱보다 길어졌다. 강희시기의 용의 입모양은 대개 둥글었으며, 옹정시기에는 방형方形이다. 입을 벌리고 있는 용은 혀를 아래턱을 따라 내밀고 있으며, 혀끝이 위로 말려 있어 명대초기의 극戟과 같은 형상과 달라졌고, 명대후기의 비수모양과도 상이하다. 위아래턱의 수염은 강희시기에는 톱날모양이고, 이후에는 양쪽으로 분리되어 표현되거나 두 다발의 길고 빽빽한 양털과 형태로 분리되어 표현되었다. 위턱 콧날개의 양측에 특별히 기다랗고 구부러진 수염이 뻗어나와 있다. 머리의 뿔은 길고 곧으면서 가지가 있어 과거에 비하여 크게 변화되었다. 건륭후기의 뿔의 갈래는 '산山' 자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명대의 용머리의 머리카락은 다발로 묶여 성기게 나 있으며, 위를 향하거나 뒤를 향해 비스듬히 누워 위로 솟아오르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용의 머리카락은 세밀하면서 흐트러져 있다(강희시기에는 여전히 뒤로 비스듬히 기운 채 위로 솟아 있으며, 후기에는 뒤로 늘어지거나 양측을 향해 나누어져 있다). 노룡老龍의 형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아래턱에 모두 빽빽하게 수염을 달았다. 용의 눈은 강희시기에는 약간 기다란 형태였으며, 옹정과 건륭시기에는 뚜렷하게 둥글어졌다. 용의 발가락은 명대에 독수리발가락의 형태이면서 다섯개의 발가락이 서로 가깝게 근접한 풍차형에서 이미 다르게 변화되었다. 이 시기의 용의 발가락은 무지와 식지 사이의 거리가 비교적 멀고 발톱이 작아져서, 원명시기의 삼각형의 발톱이 가지고 있었던 예리한 느낌은 없어졌다. 그러므로 청대淸代 용의 발가락은 사람들에게 무력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 시기에 배경으로 그려진 구름문양은, 구름의 꼬리가 그리 선명하지 않아 기다란 덩어리형태를 하고있거나 꼬리가 몇 덩어리로 자라나 있어, 머리 하나에 세개의 꼬리가 붙어 있으므로, 사람들에게 마치 두 가닥으로 달린 꼬리가 두 개의 날개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준다. 혹은 몇 개의 구름을 함께 합쳐서 그려, 하나의 영지와 유사한 형태를 구성하기도 하였다. 예술적인 조형미에서 전대보다 떨어진다.
옹정雍正이후에는 명대의 용문양을 모방한 표현도 존재하지만 용의 주둥이를 돼지주둥이처럼 표현하였을 뿐으로, 나머지 부분은 청대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청말淸末의 용문양은 그 정신적인 면에서 전대보다 위엄과 건장함이 부족하고 매우 뻣뻣한 형태로 늙고 허약하며 사지가 무기력하다. 이전의 용의 몸체는 좌우로 굽은 정도가 심하여 세 번 꺾이고 아홉번 휘감기는 듯한 동적인 아름다움이 넘쳤으나, 청말에 이르러서는 굽은 정도가 느슨해졌으므로 몸체가 경직된 느낌이 든다. 몸체의 비늘도 전대처럼 한 조각 한 조각 그리지 않고 그물모양으로 그렸으며, 그 안에 작은 점을 찍었다. 일부 더욱 조잡한 문양에서는 그물무늬만으로 표현하고 점을 찍지도 않았다. 용의 발가락도 뼈대와 살집이 모두 존재하는 전대의 용과 달라져서 형체가 분명하지 않게 표현되었다. 또한 이 시기의 용의 발가락은 뻣뻣하게 좌우로 펼쳐져 있어 동적인 미감이 없다.
청말의 용문양에서는 화보문(火寶紋-불길에 싸인 구슬), 화염문火焰紋, 구름, 꽃 등을 배경으로 즐겨 그려넣었다. 구름도 과거의 머리 하나에 몇 개의 꼬리가 붙은 형태에서, 두 개의 머리에 하나의 꼬리이거나(이두일미二頭一尾) 세 개의 머리에 하나의 꼬리(삼두일미三頭一尾)로 변화되었다. 혹은 꼬리에 하나나 두개의 머리가 자라나 있다. 문양의 설계에서 표현기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간단하고 서툴러 공예수준이 전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용문양은 자기의 장식에 있어 의미가 풍부하고 품위가 있는 제재로서, 감정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문양장식의 특징만을 파악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현대의 위조자들은 도록에서 획득한 지식으로부터 이미 모조품의 외형면에서는 진품에 극히 접근해있기 때문이다. 진품을 찾으려면, 감정가는 고대자기의 내재적인 방면의 지식에 대한 식별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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