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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젠 문제로 설원에 하강한 후 올려다 본 정상벽 상단에 6피치를 올라서는 대원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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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인도 라다크 히말라야의 캉야체1봉 원정대는 시간 내기 어려운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출국을 한 달도 남겨 두지 않은 상태에서 몇몇 대원들은 휴가를 내지 못해 꿈에 그리던 히말라야 등반을 포기해야 했다. 아쉬운 일이다. 결국 6명의 대원이 처음으로 다 모인 것은 출국 당일인 7월 21일 이었다.
7월 21일 인천공항 출발 10시간 15분 만에 인도의 수도 델리 외곽에 위치한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1993년 겨울 도착했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은 간데없고 현대식 건물에 인천공항과 비슷한 시스템으로 입국수속은 15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라다크의 주도 레(Leh)로 가는 비행기는 날씨가 안정적인 새벽시간에 뜨는 관계로 공항 주변의 호텔에서 잠깐 잔 후에 새벽 4시 공항으로 나갔다. 국내선 역시 신속한 수속으로 비행기는 오전 5시45분 정시에 날아올라 1시간쯤 지나자 왼쪽 창밖으로 우리가 오를 캉야체 1봉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아침 7시10분 가랑비가 오는 가운데 레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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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 시내의 체모곰파에 걸린 타르초.
- 비행기로 도착한 해발고도 3,500m는 분명 대원들에게 부담스런 현실이다. ‘티베트’스런 청사 안에서 간단한 서류를 작성해 제출하고는 청사 밖으로 나서자 스리나가르가 고향인 30세 청년 라쥬(가이드)가 환하게 웃으며 대원들을 반겨 주었다.
숙소로 이동해 여장을 풀고는 대원들에게 고소적응을 위해 ‘심호흡’, ‘가능한 물을 많이 마시고’, ‘천천히 걸을 것’ 등을 당부했다. 시내에 인접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레왕궁과 체모곰파를 다녀 오는 것으로 고소적응을 대신했다. 저녁시간에는 등반을 함께할 셰르파들이 대원들의 장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고 하여 각자 장비를 착용하고 셰르파들의 검사를 끝낸 후에는 본격적인 캐러밴이 시작되는 내일을 위해 일찍 쉬기로 했다.
숨쉴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당나귀 오줌 냄새
7월 23일, 캉야체로 가기 위해 트레킹 기점인 칠링으로 가는 날이다. 사륜구동 차에 올라 2시간30분 달리자 인더스강과 잔스카르강의 두물머리. 여기서 잔스카르강을 따라 1시간 정도 비포장 길을 달리자 다리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트롤리(두레박)가 쉴새없이 오가며 사람과 짐을 강 건너로 보냈다. 쿡 치링(25)은 대원들의 도강에 맞춰 라면을 끓여 놓았다. 우리를 기다리며 레에서 그가 직접 담근 김치 역시 일품이다. 얼마 전 에베레스트를 마지막으로 히말라야 14봉을 완등한 김창호 대장의 원정 때 여러 차례 쿡으로 참가했다는 그의 이력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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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링에서의 도강 수단인 트롤리(두레박).
- 마르카 밸리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건조한 가운데 태양을 받으며 걷는데 목이 타들어온다. 1시간여 걷자 패러슈트(군용 폐낙하산을 이용해 그늘을 만들어 놓고 음료와 과자 등을 파는 곳을 ‘패러슈트’라고 부름)가 반갑게 맞아 준다. 잠깐 휴식 후 다시 땡볕으로 나서서 2시간 걷고 나자 스키유마을. 황량한 계곡에 녹음이 짙은 마을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함이 느껴졌다. 마을 끝 숲 속에 자리 잡은 잔디밭에 텐트를 친다. 레보다 고도가 낮아 다행이다. 해발 3,300m.
새벽부터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트레킹 시작 이후 물갈이로 설사를 하는 대원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푸른 잔디밭이 인상적인 패러슈트에서 캔맥주 2개를 시켜 놓고 한 잔씩 마셨다. 길은 여전히 걷기 좋은 상태다. ‘비스따리(천천히)’를 외치며 여유롭게 걷는다. 7시간 만에 도착한 마르카 캠프지는 초원 위라서 기분마저 상쾌했다. 3,755m.
오늘은 고도 4,000m대 이상으로 올라가는 날이라 대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나타났다. 고소적응은 이미 적응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개인차는 있으되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라서 무리하지 않고 고산병이 오지 않도록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다.
타충체 캠프에 도착해서 맨 위쪽 사이트에 텐트를 쳤는데 바람에 실려 오는 당나귀 오줌 냄새 때문에 숨을 쉴 수 없다. 다행히 밤이 되자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고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아 잠을 잘 수 있었다. 고산병 예방을 위해 대원 모두 남기탁 선배께서 준비해 주신 약을 한 알씩 먹도록 했다. 4,2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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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발 4,000m의 고지대 항카르 마을을 지날 때 만발한 유채꽃밭은 잠시나마 고소를 잊게 했다.
- ‘하늘에 다다르는, 지상(地上)의 다른 길은 없습니다’ - 권경업 시인의 ‘오솔길2’
7월 26일, 드디어 캉야체 베이스캠프에 입성하는 날이다. 고도가 5,000m를 넘기 때문에 휴식을 자주 갖고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산중 호수에서는 시원한 풍경과 함께 30분 이상 쉬었다. 대원들의 설사 증세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푸른 초원을 가로질러 베이스캠프로 들어선 후, 차를 마시고 쉬다가 대원텐트를 치고 나자 흐리던 하늘이 맑아져 캉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길남 대원이 조금 힘들어 했고 다른 대원들은 다행히 눈에 띄는 증상은 없었다. 편안하게 쉬는 것이 상책이다. 5,050m. 본격적인 등반을 앞두고 장비 점검도 할 겸 캠프 옆 경사면에 로프를 걸고 등반과 하강 연습을 한 번씩 했다. 이런 연습은 한국을 출발하기 전에 충분히 했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미 늦었지만 안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원 중 3명은 오늘 연습이 처음이라고 했다. 고도 5,000m가 넘는 곳에 야생화가 만발한 푸른 초원의 베이스캠프는 정말 환상적이다.
이튿날 역시 고소적응 일정으로 오전 내내 휴식을 하고 오후에는 가볍게 짐을 지고 하이캠프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빙하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40분 정도 걷자 하이캠프로 가는 너덜지대가 이어졌다. 고소적응을 위한 운행이기에 천천히 걸었다. 급경사의 너덜지대가 시작되기 전의 능선 위에 올라섰다. 한국에서 올 때는 이곳이나 빙하지대에 하이캠프가 있다고 알고 왔는데, 뒤따라 온 가이드 라쥬의 말로는 급경사 너덜지대 위가 하이캠프란다. 우리가 있는 위치가 해발 5,300m이므로 라쥬의 말이 맞단 얘기다. 적응이 덜 된 대원들을 무리해서 하이캠프까지 올릴 필요는 없었다. 푹 쉰 다음 BC로 돌아 왔다. 다행히 날씨는 맑았고 앞으로 맑은 날이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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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카 밸리의 짐수송은 말과 당나귀가 포터를 대신한다.
- 아침을 먹고 등반 준비를 했다. 대부분의 짐은 현지 스태프들이 어제 하이캠프로 올려놨기 때문에 대원들의 짐은 그리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고소적응 정도가 문제였다. 어제 고소적응 훈련 차 갔던 5,300m까지는 무난했다. 앞에 놓인 급사면 너덜지대는 천천히 고도를 올려 베이스캠프 출발 4시간30분 만에 전 대원 하이캠프(5,550m)에 도착했다. 다만 텐트가 비좁아 맑은 날씨 속에서 박광식 대원과 필자는 비박을 하기로 했다.
삼중화 뒤축 떨어지면서 아이젠 고정 불가, 아뿔싸!
오늘 밤 12시 하이캠프를 출발하기로 했다. 2개의 돌탑 사이에 걸쳐 있는 오색 타르초를 보며 무사등반을 속으로 기원했다. 하이캠프 주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대원들은 모두 급한 볼일을 보기 위한 움직임들이었다. 대원들에게 컨디션을 물었는데 모두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움직임은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쉬고 나면 좋아지길 바랐다. 비박을 하며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보며 다시 기도했다. ‘무사히 등반을 마치도록 도와주소서!’.
밤 12시 정각 하이캠프 출발. 두 명의 등반 셰르파와 고산 등반 경험이 많은 쿡 치링까지 따라 나섰다. 총 9명. 그런데 한 명이 없다. 헤드랜턴을 여기저기 비춰 보니 심재석 대원이 텐트 옆에 주저앉아 꾸물거린다. 12시 전 이미 30분의 출발 준비 시간이 있었는데 벌써 12시25분. 근 1시간째 출발준비를 못하고 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똑같은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결국에는 물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금방 돌아오는 대답, “아니유. 다 됐시유.” 목소리는 다행히 우렁차서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출발한 대원들은 저만치 설사면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대원들의 뒤를 좇아 사면을 갈지자로 조금 빨리 따라붙었다. 사면 상단의 120m 픽스로프가 시작되는 곳에서 합류했고, 첫 고정로프 구간은 생각보다 쉽게 올라섰다. 설릉을 넘어서자 아이젠을 벗고 너덜지대를 가로질러 다시 위쪽의 사면으로 접어들었다. 40m 고정로프를 올라선 후에는 완만한 설사면이 이어지다가 급경사가 버티고 있는 곳에는 25m 고정로프가 있어 어렵지 않게 넘어섰다. 그 위로는 설원을 가로질러 정상벽 하단까지 가는 길이 이어졌다. 비교적 쉬운 설원을 걷다 보니 해가 카라코룸 위로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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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캠프 직전의 너덜지대를 오르는 박광식 대원(맨 앞)과 대원들.
- 설사로 고생하는 대원들은 등반 중에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벨트를 풀고 볼일을 봐야 했다. 그로 인해 중단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예상시간보다 1시간30분 정도 늦은 시간에 정상벽에 설치한 고정로프를 등반하기 시작했다. 첫 피치는 비교적 완만한 사면을 쉽게 올라갔는데 2피치부터는 경사가 급해졌고 사면은 눈이 아니라 얼음이라서 속도가 떨어졌다.
급경사 정상벽에는 6피치의 고정로프가 설치되었다. 4번째 피치를 올라가는데 아이젠이 벗겨졌다. 다행히 떨어뜨리지 않아 로프에 매달린 채 다시 고쳐 묶고 올라가는데 다시 풀린 아이젠. 이상하다 싶어 살펴보니 14년째 신어오는 삼중화인 원스포츠 등반슈즈의 밑창 뒷부분이 떨어져 아이젠을 고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뿔싸!
남은 피치를 급히 올라가서 뒤따라오는 대원들을 기다렸다. 이 상태로는 나뿐만 아니라 나로 인해 대원 전체가 위기상황에 처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아래에서 느리게 올라온 김성민 대원과 이길남 대원, 등반 셰르파 잔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그들을 올려 보내고 나는 조심스럽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젠이 떨어져 나가지 않아 픽스로프를 다 내려서서 완만한 설사면에 피켈을 깊숙이 박고 확보한 후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머리 위쪽에서는 고정로프의 마지막 피치를 올라서는 대원들이 보였고, 느리긴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시야에서 모두 사라졌다.
기다렸다. 위쪽에서 가끔씩 소리가 들려왔다. ‘정상에 갔나보구나’.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기다린 지 3시간째. 정상에 갔다면 벌써 내려오고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모습도 보이지 않다가 맨 위쪽 고정로프에서 하강하는 심재석 대원이 보이더니 곧이어 한 사람씩 느릿느릿 하강을 하고 있다. 많이 지쳐 보였다. 맨 아래 고정로프까지 다 내려서는 데 1시간 이상 걸렸다. 맨 먼저 설원에 내려선 심재석 대원은 눈밭에 주저앉아 멍하니 나만 바라보고 일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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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발 4,800m의 고지대에서 만난 아름다운 호수.
- 두 번째, 세 번째 내려선 대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내려오긴 했지만 걸음을 걷지 못했다. 게다가 박광식 대원은 설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가까스로 멈춰 섰다. 덩치가 큰 김성민 대원이 미끄러졌을 때는 아이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면을 가로질러 뛰어가서 잡으려고 했는데 다행히 조금 위쪽에서 멈추었다. 대원 중 누군가가 내 곁을 지나다가 말했다.
“아무도 정상에는 못 갔어.”
내 시야에서 사라진 지 4시간 만에 내려왔는데 정상에 못 갔다니 믿기지 않았다. 대원들과 셰르파들은 정상을 앞두고 허리까지 빠지는 눈밭에서 더 이상 전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정상을 50여m 남겨 둔 지점에서 하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조금 상태가 좋은 대원과 셰르파가 많이 지친 대원과 한 명씩 짝을 이뤄 길고도 지루한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맨 뒤에 서서 대원 모두가 느리긴 했지만 하이캠프로 내려서는 것을 확인한 후 그때서야 이미 해가 졌음을 알았다. 무려 20시간 동안 사투 끝에 대원들은 녹초가 되어 각자의 텐트로 들어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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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캠프에서 본 등반루트와 캉야체1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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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하이캠프 철수. 아침이 되어도 대원들은 쿡 치링이 만들어 준 누룽지를 먹기도 힘들어 한다. 9시부터 하산하기 위해 준비하고 정시에 하이캠프를 출발한다. 급경사 너덜지대를 어렵게 내려서자 조금 여유가 생겼다. 힘들긴 했어도 모두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각자 텐트에 돌아가 곧장 잠에 빠져 들었다.
가이드 라쥬를 시켜서 캔맥주와 음료수를 사오도록해서 저녁 식사 때는 껄끄러운 식사를 입에 대는 둥 마는 둥하고는 캔맥주와 콜라를 잔에 따라 들고는 캉야체1봉 등반과 무사 하산을 감사하며 건배를 들었다. 정상에 서지 못한 아쉬움을 대원 누구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다만 고소적응을 위해 ‘2~3일 정도의 여유 있는 일정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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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이 밝은 후 정상벽을 오르고 있는 대원들. 아래쪽은 설사면이었으나 2피치 부터는 빙벽이라서 힘든 등반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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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베이스캠프에서 철수한다. 마르카 밸리의 최고 비경은 공마루 라에서 보는 풍광이라고 했다. 하산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다. 그런데 베이스캠프를 출발해서 내려간 4,800m의 니말링 패러슈트에서 고도차 500m의 오르막길은 만만치 않다. 결국 많이 지친 대원 3명은 말을 타고 올랐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는데 이도 쉽지 않아 올라올 때보다 더 천천히 걸어서 해발 4,200m의 초스카유로모에 도착한 뒤에야 마음이 놓였다. 대원들은 아직도 힘들어하는 표정들이다.
8년 전 일본 원정대 대원 한 명이 유일한 등정 기록
8월 1일, 캠프 옆 개울가에 있는 탄산수 샘물을 마시고 출발. 고도가 4,000m 아래로 내려오면서 힘들어하던 대원들도 조금 좋아져 보인다. 레, 공마루 라, 샨의 세 갈래 갈림길이라는 의미의 샹슘도에 도착하자 대원들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시원한 음료수 한 병씩을 마시며 차 출발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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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벽 아래 비교적 완만한 설사면을 오르는 대원들. / 정상을 50m 앞두고 아쉬운 하산을 하기 전에 재직 중인 학교 표식을 들고 기념 촬영한 조성웅 교수. 65세의 나이에 대원들 중 가장 뛰어난 고소적응과 활동력을 보여 주었다. / 등반을 마치고 베이스캠프에 모인 대원들. 왼쪽부터 이치상, 가이드 라쥬, 박광식, 등반세르파 잔, 심재석, 등반세르파 니마, 조성웅 교수, 이길남, 김성민 대원.
- 레로 가는 길에 라다크 최고의 사원인 헤미스곰파를 둘러보고 맑은 대기에 여과 없이 쏟아지는 따가운 해살 속을 가로질러 2시간 만에 레 도착. 10일 동안 씻지 못했던 몸과 머리를 감자 개운함이 절로 느껴졌다. 한식당에서 등반 뒤풀이를 간단하게 하고 일찍 각자의 방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레를 떠나기 전, 셰르파 니마로부터 최근의 캉야체1봉 등정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8년 전 일본의 한 원정대가 업다운을 거듭하고 고소적응을 한 후 정상에는 가장 적응이 잘 된 한 명의 대원만 올라갔었다고 한다. 쉽지 않은 등반루트가 정상까지 이어진 캉야체1봉을 15일 만에 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문제는 고소적응이다.
레에서 스리나가르로 육로 이동을 하루 만에 하는 일은 모험이 될 수도 있다. 새벽 5시 출발하려던 것을 중간 도시인 카르길(Kargil) 부근에 폭우로 길이 끊겼다며 복구를 감안해서 9시 출발한다. 카르길까지 시원하게 달렸다. 곳곳에 밀려 내려와 길을 막아선 흙과 돌무더기들이 밤사이 상황을 짐작케 했다. 얼마를 더 가자 길 복구 중인 포크레인의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출발하는데 흙더미 아래에 차 한 대가 처참하게 구겨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조지 라를 넘어섰고 밤 10시30분 레를 출발한 지 13시간30분 만에 가이드 라쥬의 말대로 ‘very lucky’ 하게 인도 북부의 휴양도시 스리나가르에 도착해 달호수의 명물 하우스 보트에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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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을 50m 남겨 두고 지친 상태로 천천히 하산 중인 대원들.
- ※ 지면 관계상 출입국과 현지정보, 등반 정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싣지 못하였습니다.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메일 (leecs1965@ hanmail.net)로 문의하시면 보고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필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