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세종 30년 무진(1448,정통 13)
3월8일 (계사)
도성 내외의 산에서 채석을 금하자는 음양학 훈도 전수온의 상서
음양학 훈도(陰陽學訓導) 전수온(全守溫)이 상서(上書)하기를,
“삼가 《지리전서(地理全書)》를 상고하오니 감룡경(撼龍經)에 말하기를, ‘수구(水口)에 중첩(重疊)하게 괴이한 돌[異石]이 있게 되면 반드시 나성(羅星)은 물[水]을 당(當)하여 서 있게 되는 것이니, 대개 나성은 진(眞)과 가(假)가 있어서 진가(眞假)를 천연(天然)으로 재작(裁作)하는 것은 인력(人力)에 있는 것이라.’ 하였고, 곤감가(坤鑑歌)에 말하기를, ‘수구(水口)에는 관쇄(關鎖)가 조밀하게 되지 못했다고 혐의하지 않나니, 천중만첩(千重萬疊)이 모두 기이한 봉우리면 된다. 나성(羅城)·철장(鐵障)과 화표(華表)·보전(寶殿)·용루(龍樓) 따위가 모두 유여(有餘)하지 않은가.’ 하였고, 장중가(掌中歌)에 말하기를, ‘수구(水口)에는 꼭 산세(山勢)가 튼튼하고 조밀한 것이 요청되나니, 천병(千兵)이 모여 선 듯한 것을 이름하여 귀지(貴地)라 한다.’ 하였고, 착맥부(捉脈賦)에 말하기를, ‘수구(水口)를 닫아 주지 못하면 당년(當年)의 부귀(富貴)는 쓸데없는 것이나, 수구(水口) 밖으로 훨씬 내려가서 잘 잠그어 준 것이면 여러 세대(世代)를 두고 호걸과 영웅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수구(水口)라는 것은 관활(寬闊)해서는 안 되고, 나성(羅星)은 공결(空缺)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신라(新羅)의 왕업(王業)을 볼 때, 천여 년이나 된 것은 조산(造山)과 종수(種樹)를 가지고 공결(空缺)한 데를 메꿔 준 것이며, 주부(州府)나 군현(郡縣)에 있어서도 또한 모두 비보(裨補)한 것이 있사오니, 조산(造山)과 종목(種木)을 가지고 관활(寬闊)한 곳을 보충시킨 것입니다. 바로 지현론(至賢論)에서 말하는 바, ‘산(山)에 부족함이 있으면 법(法)은 증첨(增添)하는 것이 좋으니, 전맥(典脈)이 접속을 얻게 되면 기운이 오히려 타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서울[京師]은 만수천산(萬水千山)이 모두 일신(一神)으로 모여 들므로, 천형만상(千形萬狀)이 다시 다른 뜻이 없어, 오행(五行)의 기(氣)가 온전하고 팔괘(八卦)의 작용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하나의 산(山)도 공결(空缺)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의 방위(方位)도 모여 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나라 국도(國都)에 나성(羅星)이 공결(空缺)되고 수구(水口)가 관활(寬闊)하게 되었은즉, 나성과 수구를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하오나 흙을 쌓아서 산(山)을 만들어 보결(補缺)할려면 성공(成功)하기가 어려우니, 나무를 심어서 숲을 이루어 가로막게 하면 작은 노력으로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또 터룡경(攄龍經)에 말하기를, ‘나성(羅星)은 나성(羅城) 밖에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화성(火星)과 서로 대(對)를 짓는 것이다. 화성(火星)으로 용(龍)이 시작되었으면 나성(羅星)은 따라서 있는 법이나, 만일 나성(羅星)이 있다 하여도 나성(羅城) 안에 있어서는 안되나니, 나성(羅城) 안에 있게 되면 포병(抱病)한 사람이 많이 나게 되고, 또는 눈병이나 낙태(落胎)하는 산(山)이 되고 말 것이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나성(羅星)이 수구(水口) 안에 있어서는 아니 되는데, 지금 도성(都城) 안과 사청(射廳) 곁에 인조(人造)로 만든 산(山)은 어디서 의거함인지 알 수 없나이다. 보충한 자도 법(法)과 같이 하지 아니하고 세운 것도 그 방위(方位)가 아니오니, 유익함이 없을 뿐 아니라 더 해(害)만 될 것입니다. 또 동림조첨(洞林照瞻)에 말하기를, ‘돌[石]은 산(山)의 골격인데, 산에 골격이 없을 수 없다.’ 하였고, 명산론(明山論)에 말하기를, ‘산(山)이 산(山) 되기를 흙으로써 살[肉]을 삼고 돌로써 골격을 삼으며, 초목(草木)으로써 모발(毛髮)을 삼는 것인데, 옛날에는 모발(毛髮)이 있어서 수려(秀麗)하던 것이 혹 홍수(洪水)에 파손(破損)되었거나, 혹은 인력(人力)으로 상잔(傷殘)된 것을 파룡(破龍)이라 한다. 파룡(破龍)에는 거기 사는 촌리(村里)가 많이 파(破)하게 된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산에는 돌이 없어서는 안 되고 또한 파상(破傷)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지금 도성(都城) 내외(內外)에 있는 산에 백성의 거주하는 것이 숲과 같아서, 흙을 파고 돌을 벌채하여, 찢기고 무너져서 풀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게 되고, 산의 면모도 이로 인하여 피약(疲弱)하게 되어서 저렇게 벌거벗었사오니, 이것은 바로 장중헐(掌中歇)에서 말하는 바, ‘초목이 쇠잔하여 무너질 듯하거나 또 박약하면, 출세(出世)한 사람이나 들어앉은 사람이 모두 곤권(困倦)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산(主山) 이외의 다른 방위(方位)에 있는 산은 방해될 것이 없다.’ 한다면, 신은 크게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종위(從衛)의 호탁(護托)하는 것이 형세(形勢)는 비록 다르다 하더라도 모두 한 집안의 용(龍)이니만큼, 여기에 감촉(感觸)을 받게 되면 저기에 응험(應驗)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이치와 형편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지금부터는 도성(都城) 내외의 산에서 공사간(公私間)에 채석(採石)하는 것을 일체 금단(禁斷)하여 산악(山岳)의 기운을 보충(補充)하게 하소서.”
하니, 풍수학 제조(風水學提調)에게 내려 의논하게 하매, 아뢰기를,
“도성(都城) 안에 있는 산에서 채석(採石)하는 것은 이미 법(法)으로 금단(禁斷)시켰으며, 만일 밖의 산까지도 아울러 금지시키는 것은 옛적에도 그 의논이 없었사오니, 반드시 금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남산(南山)으로부터 전관산(箭串山)에까지 물을 거슬러 안(案)이 되었으니, 음양(陰陽)이 교합(交合)됨이 지극히 굳고 주밀하여 길산(吉山)이라 하겠고, 수구산(水口山)으로부터 왕심역(往心驛) 서쪽까지는 일찍이 경종(耕種)을 금(禁)하였으며, 목역리(木驛里) 이동(以東)의 전관 대로(箭串大路)의 벌아현(伐兒峴)으로부터 외면(外面)의 산허리와 산발치까지도 또한 경전(耕田)과 벌초(伐草)를 금하여 산기(山氣)를 배양(培養)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전】 5 집 53 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법-법제(法制) / *출판-서책(書冊) / *정론(政論)
[原文]
世宗 119卷, 30年(1448 戊辰 / 명 정통(正統) 13年) 3月 8日(癸巳) 1번째기사
도성 내외의 산에서 채석을 금하자는 음양학 훈도 전수온의 상서
○癸巳/陰陽學訓導全守溫上書曰:
謹按《地理全書》, 《撼龍經》曰: “水口重重生異石, 定有羅星當水立。 蓋緣羅星有眞假, 眞假天然有人力。” 《坤鑑歌》曰: “水口不嫌關鎖密, 千重萬疊摠奇岡。 羅城鐵障幷華表, 寶殿龍樓摠是强。” 《掌中歌》曰: “切要水口, 山勢固密。 千兵簇立, 名曰貴地。” 《捉脈賦》曰: “水口無關, 謾說當年富貴。 天外有鑰, 仍知積代豪雄。” 然則水口不可以寬闊, 羅星不可以空缺。 歷觀新羅之業, 千有餘年, 而造山種樹, 以補空缺之處, 至於州府郡縣, 亦皆有裨補, 造山種木, 以補寬闊之處, 則《至賢論》所謂“山有不足, 法貴增添。 典脈旣乘, 氣猶是生”者也, 而況京師則萬水千山, 俱朝一神; 千形萬狀, 更無異情, 五行之氣全, 八卦之用備, 故一山不可以空缺, 一位不可以不朝。 今我國都, 羅星空缺, 水口寬闊, 則羅星水口, 不可以不補矣。 然築土爲山而補缺, 則功不易成; 種木成林而鎭塞, 則事半功倍。
且《攄龍經〔撼龍經〕》曰: “羅星要在羅城外, 此與火星相作對。 火星龍始有羅星, 若是羅星不居內。 居內多爲抱養關, 又爲患眼墮胎山。” 然則羅星不可以居水口之內。 今都城之內射廳之傍造築之山, 未知何據? 補之不如法, 峙之非其位, 則非徒無益, 而又害之矣。
且《洞林照瞻》曰: “石者, 山之骨也。 山不可以無骨。” 《明山論》曰: “山之爲山, 以土爲肉, 以石爲骨, 以草木爲毛髮。 昔有毛髮細秀, 而或爲洪水衝破, 或爲人力傷殘, 則爲破龍。 破龍者, 村里多破也。” 然則山不可以無石也, 亦不可以破傷。 今都城內外之山, 民聚如林, 堀土伐石, 打裂崩摧, 草木以之而不盛, 山顔由玆而疲弱。 若彼濯濯, 則是《掌中歇〔掌中歌〕》所謂草木衰殘如崩, 又薄行藏困倦者也。 若曰主山之外, 餘位不妨, 則臣恐大不然矣。 從衛護托, 形勢雖異, 而皆是一家之龍, 則此感彼應, 理勢然矣。 伏望自今都城內外之出, 公私伐石, 一皆禁斷, 以補山岳之氣。
下風水學提調議之。 啓曰: “都城內山伐石, 已有明禁。 若竝禁外山, 古無其論, 不必禁焉。 且自南山至箭串一山, 泝流作案, 陰陽交度, 至爲牢密, 吉山也。 自水口山至徃心驛西, 曾禁耕種。 木驛里以東, 自箭串大路伐兒峴至外面山腰山脚, 亦禁耕田伐草, 培養山氣。” 從之。
【태백산사고본】 37책 119권 11장 B면
【영인본】 5책 53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법-법제(法制) / *출판-서책(書冊) / *정론(政論)
[출처]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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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명사전
훈도[ 訓導 ]
시대
조선(朝鮮)
분류
관직>동반>문관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① 조선시대 정구품(正九品) 경관직(京官職)이다. 해당 관서는 다음과 같다.
호조(戶曹)에 딸린 산학청(算學廳)의 산학훈도(算學訓導) 1원, 형조(刑曹)에 딸린 율학청(律學廳)의 율학훈도(律學訓導) 1원, 관상감(觀象監)에 두었던 천문학훈도(天文學訓導)·지리학훈도(地理學訓導)·명과학훈도(命課學訓導) 각 1원, 전의감(典醫監)·혜민서(惠民署)의 의학훈도(醫學訓導) 각 1원, 사역원(司譯院)의 한학훈도(漢學訓導) 4원과 몽학훈도(蒙學訓導)·왜학훈도(倭學訓導)·청학훈도(淸學訓導) 각 2원, 사학훈도(四學訓導)는 중학(中學)·동학(東學)·남학(南學)·서학(西學)에 각 1원으로 성균관(成均館)의 참하(參下)로 단부(單付)하여 30개월에 출륙(出六)하였다.
② 조선시대 동반 종구품(從九品) 외관직(外官職)으로서 지방 향교에서 교육을 맡아 보았다.
훈도는 경기도(京畿道)에 26원, 충청도(忠淸道)에 50원, 경상도(慶尙道)에 55원[부산포(釜山浦)·제포(薺浦)의 왜학훈도 2명 포함], 전라도(全羅道)에 49원, 강원도(江原道)에 19원, 황해도(黃海道)에 18원[황주(黃州)의 역학훈도(譯學訓導) 1명 포함], 영안도(永安道: 咸鏡道)에 9원, 평안도(平安道)에 31원[평양(平壤)·의주(義州)의 역학훈도 2명 포함]을 두었다.
지방의 훈도는 수령처럼 근무일수 900일이 되면 전임되었다. 훈도 가운데 뛰어난 사람은 서울의 경우 한성부에서, 지방의 경우 관찰사가 계문하여 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훈도들이 교습활동에 태만하자, 1485년(성종 16)에는 감사와 수령들로 하여금 훈도들을 감독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훈도 [訓導] (관직명사전, 2011.1.7,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찬 겨울 북서풍 막아 주는 고마운 마을숲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박찬열 연구사
겨울철 나무 주변뿐 아니라 마을까지 풍속 저감 효과
마을숲 통해 삶의 터전 보호했던 조상들의 지혜 확인
[환경일보] 여름에 잎이 무성한 숲은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준다. 그렇다면 추운 겨울에 잎을 떨구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도 바람을 막아줄 수 있을까?
“수구(水口, 물을 끌어 들이거나 흘려 내보내는 곳)는 막힌 데 없이 아주 넓으면(寬闊) 좋지 않고, 나성(羅星, 산줄기)은 비거나 결함이 있으면 좋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신라(新羅)의 왕업(王業)을 보았을 때, 천 년 역사를 가진 것은 비거나 결함이 있는 곳에 나무를 심고 산을 만들어 보(補)했기 때문입니다. 주부(州府)나 군현(郡縣)에서도 모두 도와서 보충한(裨補) 것이 있으니, 나무를 심거나 산을 만들어 보한 것입니다. 바로 지현론(至賢論)에서 말하는 바, (중략) 이제 우리나라 국도(國都)에 나성(羅星)이 비거나 결함이 있고 수구가 막힌 데 없이 넓게 되었은즉, 나성과 수구를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하오나 흙을 쌓아서 산을 만들어 채우려면(補缺) 성공하기가 어려우니, 나무를 심어서 숲을 이루어 가로막게 하면 작은 노력으로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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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국립산림과학원>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세종 30년(1448년)에, 음양학(陰陽學) 훈도(訓導) 전수온(全守溫)이 ‘지리전서(地理全書)’에 근거하면서 마을숲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과거의 기록들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마을숲. 마을숲이란 ‘한민족이 백두대간의 산악지역에서 몬순 계절풍을 이겨내고 풍요로운 마을을 환경과 조화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조성한 숲’으로, 마을 경관의 일부이거나 마을이 공동으로 소유 또는 관리하고 보호하는 숲을 말한다. 이들 중 역사성, 문화성을 유지하면서 전승되고 있는 숲은 따로 구분해 ‘전통 마을숲’이라 불렀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경북 의성군 사촌리에 위치한 약 600년 된 사촌 가로숲에서 마을숲의 풍속 저감 효과를 여름·가을·겨울에 걸쳐 측정한 결과, 풍속이 강한 여름철에는 마을숲 주변만 풍속이 감소하지만 겨울철에는 마을숲 주변뿐만 아니라 마을숲으로부터 약 200m 떨어진 마을의 풍속까지 절반 가까이 감소시켜, 마을 전체의 풍속을 저감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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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 결과 마을숲이 겨울철에도 주변 마을로 부는 바람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제공=국립산림과학원> |
마을숲 주변의 풍속이 여름철에는 83%, 겨울철에는 48% 감소했고, 마을 안쪽의 풍속은 여름철 26%, 겨울철 43%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겨울철에 풍속 저감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을숲의 여름철 풍속 저감 효과는 알려져 있었으나 겨울철에도 마을숲의 줄기와 가지가 바람을 걸러내 풍속을 낮추고 멀리 마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된 것은 의미 있는 연구 결과다.
여름철 마을숲 나무의 무성한 나뭇잎들은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 난류(turbulent winds)를 만들고 마을숲 주변의 풍속을 크게 떨어뜨리지만, 겨울철 듬성듬성한 나뭇가지와 줄기는 바람을 걸러내고 풍속을 누그러뜨려 멀리 마을까지 풍속을 낮춘다.
이번 연구 결과로 마을숲의 기상 완화 효과는 여름철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이는 북서계절풍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바람을 막아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를 과학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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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의 풍속 저감 효과. <자료제공=국립산림과학원> |
국립산림과학원의 확인에 따르면 국내에 이러한 마을숲은 2014년 9월 현재 총 1335개소에 달한다. 이 중 1헥타르(ha) 이하 크기의 마을숲이 약 78%를 차지하는데, 작은 크기의 숲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크기는 작지만 역할은 크고 강한 마을숲이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 마을을 세찬 바람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산림청은 2020년까지 문화·역사적, 경관·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은 전통 마을숲 534개소를 복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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