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와 가수 연예인 이야기
유행가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흥얼거린 노래가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이다.
곡조가 빠르고 흥겨워서 자주 들으면서 저절로 익혀져 부르고 다녔던 것 같다.
근데 알고 보면 실제로 가사 내용은 슬픈 곡이다. 그게 1961년 초등2학년때다.
오래동안 잊고 안부르던 노래지만 지금 들으니 또 좋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노래가 최무룡의 외나무다리(1962), 박재란의 창살없는
감옥(1963),남일해의 빨간구두 아가씨(1963), 쟈니브라더스의 빨간마후라(1964),
이미자의 동백아가씨(1964),김상국의 불나비 사랑(1965),최희준의 하숙생(1965)
등이다.여기에 배호, 패티김. 현미 등 이 세대 까지가 정통가요 세대였다고 본다.
남진,나훈아 세대에는 너무 한 두 사람으로만 치우친 분위기로 바뀌고 말았다.
이른바 싱깅스타(가수겸 영화배우)였다. 그러다보니 상업적으로는 많이 성공했다.
남진은 '71,'72,'73년 3연속으로 MBC10대 가수가요제 가수왕 상을 받았고 또한
TBC동양방송(지금의 KBS2방송)에서'71년,'73년 남자부문 최우수가수상도 받았다.
나훈아는 '72년도에 TBC동양방송(지금의 KBS2방송)에서 남자부문 최우수가수상
을 받았다.영화부문에도 남진은 60여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나훈아는
30여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남진이 앞섰었다.
그런차에 포크송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유석씨로 부터 시작하여 이른바 세시봉의 조영남,송창식,윤형주,이장희,김세환
을 비롯하여 박인희,이연실,양희은,사월과오월,어니언스,둘다섯 등 기라성 같은
포크가수들이 탄생하였다. 그 중에서 송창식과 김세환이 제일 인기가 있었다.
김세환은 당시 TBC동양방송(지금의 KBS2방송)연말가요대상에서 남자부문 최우수
가수로 선정되어 '74년,'75년 2년 연속 남자부문 최우수 가수상을 받았고,
송창식은 MBC문화방송 '74년 연말10대가수 가요제에서 최우수가수로 선정되어
가수왕 상을 받았다. '75년은 하춘화,'76년은 송대관이 MBC 가수왕을 차지하였다.
'75년 여름 금지곡 파동이 있었고 '75년 연말에는 대마초 파동이 있었다.
많은 포크 록 가수들이 구속되면서 한참 피어오르던 포크송 붐도 꺽이고 말았다.
그 후 태동 한것이 록 트로트 즉 트로트 고고이다. 최헌,조용필,최병걸,윤수일,
함중아 등 록 그룹 출신 가수들이 트로트 고고 노래를 불러 유행시켰다.
개인적으로 포크송이 나오기 전인 중고교 시절에는 남진씨를 좋아했었고 포크송
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73년도 부터는 김세환씨를 좋아하게 되었다.
비틀즈,비지스.CCR,크리프리차드등 외국가수도 좋아했었다..
우리 가요계의 최대의 황금기 였던 남진,나훈아 라이벌 시대에 대해 논해 보겠다.
남진은'65년 가수로 데뷔하였으며 '66년 울려고 내가왔나,가슴아프게,'67년 우수의
대히트로 최고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랐으며 1968년2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
하고 '68년8월 해병대에 입대 '69년7월 청룡부대 소속으로 월남에 파병되었으며
'71년4월 귀국후'71년6월말 제대하여 님과 함께, 그대여 변치마오 등을 발표하여
나훈아와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였다. 나훈아는'67년 가을 서울서라벌예고1학년
중퇴하고'68년 가수로 데뷔하였으며 '69년도에 사랑은 눈물의 씨앗, 님그리워 등의
대히트로 최고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랐으며 '71년 이후 머나먼 고향, 고향역 등
고향 시리즈 노래를 불러 남진과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였으며 1973년7월 공군
연예대 사병으로 입대하여 3년 동안 군생활 한 후 1976년7월 제대하였다.
그 당시 나이, 데뷔년도, 학력, 수상경력 등 모든 면에서 남진이 나훈아 보다 항상
앞서 나갔다. 거기에다 남진의 아버지는 목포에서 국회의원을 지낸후 목포일보사
사장을 하고 있었으며 나훈아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외항선원으로 근무하고 있었
으니 집안 내력도 상반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훈아는 오직 노래 부문에서 이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선천적인
자질을 바탕으로 작곡,공연등 음악활동에 매진하여 오늘날 가황으로 불리게되었다
그리고 남진과 나훈아의 실질적인 라이벌 구도는 남진이 군에서 제대한 '71년7월
부터 나훈아가 군에 입대한 '73년7월 까지의 만2년여의 세월 이었다.
나훈아는'76년 제대한 후 김지미와의 결혼으로 가수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남진도 '76년도에 윤복희 와의 결혼으로 가수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았고 '80년대
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조용필이 가요계의 제왕으로 군림하였다.
영화배우로서는 남정임씨를 제일 먼저 좋아했고, 장미희, 정애리 씨로 넘어갔다.
요즘 여배우중에서는 손예진씨를 제일 좋아한다,가수는 에이핑크의 부산 혜화여고
출신 정은지가 가창력도 있고 좋더라. 전통 옛가요를 맛깔나게 부른는 조명섭이도
좋아한다. BTS(방탄소년단)는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가수이고 사람들이 많이 좋아
하지만 내 취향에는 안 맞는것 같아 아는 노래도 없다. 맴버중에 부산출신이 두명
있고 맴버들 중에서도 제일 인기가 좋다는 것 정도는 애들 한테 들어서 알고 있다.
공무원에서 퇴직하고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시작한 '2000년도 부터는 중고딩때
빠져 있던 음악과 영화 소설에 다시 한번 빠져 들었다. 헌데 그 때와는 달리
모든 걸 인터넷에서 공짜로 다운 받아 볼 수 있었다. 음악은 소리바다에서 영화
다큐멘타리 등 동영상과 텍스트 소설, 만화는 토렌트 등 각종 사이트에서 무료로
다운 받았었다. 그래서 모은 MP3 음악이 3만여곡, 영화와 다큐멘타리가 이천여편,
소설,만화가 3만 여권이 되었다.그 자료들을 저장하기 위해 테라급 외장하드를
몇개 구입하여 저장해 놓고 수시로 보고 듣고 하였다.
2010년도 부터는 저작권보호법이 강화되어 불법 다운 로드 단속이 심해져 공짜
다운로드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그전에 자료를 많이 확보해서 별 아쉬움은 없다.
그리고 요즘은 유튜브 등에서 거의 모든 음악이나 영화,동영상을 볼 수 있고
카톡,밴드,페이스북,에스엔에스 등에서 서로 자료를 공유하고 있으니 모두가
정보의 바다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세계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한다.
거의 모든 자료들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참고로 초등학생 이상이면 거의 가지고 있다는 핸드폰은 컴퓨터이고 카톡과
밴드와 각종 어플은 인터넷이라고 보면 된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하여 잘 찾아내는 사람이 전문가이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책으로 된 사전이 거의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종류의 책 들도
별로 팔리지 않다보니 예전에 흔하던 서점이 거의 없어졌다.
영화와 음악과 소설,바둑,축구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었던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후회스런 맘도 들지만 그 시절의 낭만과 추억은 남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첫댓글 생각없는 망나니 이였지만 그래도 추억을 남겨눟으니 중년을지나는 지금 인생의 뒤안길에 좋은 한페이지가 아닐까 생각 해본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