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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조종산(祖宗山)이자 성산(聖山)인 백두산의 천지(天池).
서파에서 바라다 본 "백두산 천지"
어제 북파에서 조망했던 백두산 천지 모습과는 또다른 풍경이다...
말 그대로 천지개벽을 보는듯....가슴이 뛰고, 마음이 급해짐을 느꼈다.
산등성이를 따라 짙게 드리웠던 구름은 일행에게 천지를 조망할수 있게 홀연히 사라지면서
광활한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어떤 단어로도 표현할수 없는 황홀함 그 자체였다....
서파(西坡)에서 올라서 "백두산 천지(白頭山 天池)"를 관람하고, 그 아래 "금강대협곡"을 구경한 이야기로 꾸며진다
호텔에서 출발하여 전용버스로 1시간쯤 달리면
위 사진에서 처럼 "장백산(長白山)"간판이 걸린 주차장에 도착한다.
우리의 백두산이 아닌 중국의 장백산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듯...왠지 씁쓸하다.
(서파 주차장엔 많은 여행객들을 볼수 있으며, 특히 한국 여행객들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건물안으로 들어서면 백두산 모형도가 만들어져 있다.
백두산의 범위는 천지 중심의 마그마 활동에 따른 화산암의 분포지로 한정해보면 현재 북한측의 면적은 8,000㎢로 전라북도의
면적(8,052㎢)과 비슷하고 개마고원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중국측의 백두산 화산암의 분포지까지 합하면 3만㎢에 이른다.
또한 해발고도 1,800m까지는 완만한 경사(8~12°)를 나타내어 방패 모양의 순상화산이나, 1,800~2,500m는 급경사로 종 모양의
화산을 이룬다. 백두산의 중앙부에는 천지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2중화산의 외륜산에 해당하는 해발고도 2,500m 이상의 봉우리
16개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데 모두 회백색의 부석으로 덮여 있다.
이 가운데 6개 봉우리는 북한에 속하며(최고봉 2,750m의 장군봉), 7개는 중국에 속하고(최고봉 2,741m의 백암봉),
3개의 봉우리는 국경에 걸쳐 있다. 따라서 천지 수면에서 장군봉 꼭대기까지는 600m의 비고로, 백두산 중앙부는 넓고
파란 호수 주변에 비고 약 500m의 회백색 산봉우리들이 둥그렇게 둘러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Daum백과사전에서...]
사진속 데크를 따라 10여분 걸으면 중국정부에서 허락한 전용버스에 탑승할수 있는 주차장이 나오고
그곳 주차장에서 다시한번 전용차량을 타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서파입구인 "서파산문"을 향하여 출발한다.
이곳은 일반차량의 출입이 제한되며 전용버스인 셔틀버스만 운행되는데
운행되는 버스의 수만 100대가 넘는다니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수를 짐작할만 하다.
버스가 출발하고 점차 고도가 높아지며 구비구비 급회전을 하며 몸이 이리저리 쏠리면서 괴성과 탄성이 절로 난다...
전용차량으로 구불구불한 차도를 따라 오르다보면 길 좌우로 하얗게 핀 꽃을 만날수 있다.
안내원 설명에 의하면 두견화라고 하는데....나중에 관련문헌을 찾아보니 만병초라고 하니 어느게 맞는지 모르겠다...
울창한 수림지대와 백색의 흰꽃으로 수놓은 지역을 지나서
전용차량으로 40여분 달려 해발 2,260m 서파 주차장에 도착, 천지를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위 이정표에서 보듯...정상(천지)까지는 900m 남았으며 1,442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다.)
천상의 화려한 야생화중 지금 시기에만 볼수 있다는 꽃, 걷는 내내 계단 좌우로 이꽃을 볼수 있다.
안내원 설명에 의하면 이꽃을 "두견화"라고 하는데...두견화란 진달래꽃을 말하는데...도감에는 "만병초"라고 나와 있으니?
1,000개의 계단위에 도착하였다.(나무계단에 숫자가 새겨져 있다)
백두산 관광객이 늘어난 것을 증명하듯 기존의 돌계단 옆으로 나무계단이 새로 놓여 있다.
오른쪽 나무 계단으로 정상쪽을 오르고 왼쪽 돌계단으로 정상에서 내려오게 만들었으니 큰 혼잡없이 오르내릴수 있다.
이곳 백두산 서파쪽에는 가마꾼이 있다.
주차장에서 백두산 정상까지 우리돈으로 5 ~ 8만원을 지불하면 가마타고 편안하게 올라갈수 있단다.
대략 40여분 계단을 오르니 해발 2,470m.....백두산 전지(天池)가 보이는 서파에 도착하였다..
이렇게 높은곳에 오니 가슴이 아프고, 숨이 차며, 계단을 걷는내내 힘들었다. 반면 아내는 전혀 힘들어 하지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화구인 천지는 백두산 최고의 자랑이다.
천지는 원형을 띠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10㎢, 총둘레 14.4Km, 최대수심 384m,
평균수심 204m에 이르는 거대호수 천지에 담긴 물의 비밀은 지하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용천수란다.
예전엔 천지 바로앞에서 맑고 투명한 천지를 감상할수 있었지만 요즘은 경관 훼손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단다....
여행 신청하기==>> http://cafe.daum.net/hoogun/JFKT/90
사진을 자세히 보면 천지 한가운에 흰 곰이 떠있는듯....
일행중 어떤이는 천지에서 사는 괴물체라고 하는데...자세히 살펴보니 얼음이 떠다니고 있었다.
6월 중순인데도 이곳 백두산은 주변에 만년설이 녹지않고 그대로 있었고 날씨는 맑았지만 쌀쌀했다...
위 사진속 오른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2,750m)"이다.
5호 경계비의 오른쪽이 북한땅이니 우리일행이 서 있는 곳이 북녁땅임을 알수 있다..
근처에 북한 병사가 서 있었지만 위험지역으로 출입하는 관람객들외에는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백두산 전체 면적 중 1/3은 중국의 영토, 2/3는 북한의 영토에 속하며.
백두산 연평균기온은 -8도로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에 달한다고 한다..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담았다.
언제 이곳을 다시 올까...통일이 되면 다시 오겠지만...이곳에 와도 천지를 볼수 있다는 기약이 없으니 말이다.
백두산은 현재 활화산으로 진도 1 ~ 2도의 미진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지역이라 내일을 예측할수도 없는곳이도 하다.
서파 주차장에서 전용차량을 이용하여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하산하는 중이다.
백두산의 수목한계선은 해발 2,000m....그 이상이면 나무 한그루 찾을수 없고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주변에 야생화 단지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7월 중순경에 이곳 백두산에서만 볼수 있는 다양한 꽃을 감상할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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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하(梯子河) 관람.
전용차량으로 하산하면서 "제자하"라는 표지판 앞에 잠시 멈춰서 협곡을 감상하였다.
제자하란 지각변동으로 인하여 지각이 양측으로 갈라져 이루어진 깊은 협곡을 이르는 말이다.
마치 아랫부분이 넓고 윗 부분이 좁은 모습으로 사다리 같은 형상이라고 해서 梯(사다리 제)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금강대협곡(錦江大峽谷) 관람
목재 데크로 만들어진 천혜의 원시삼림 사이를 지나다니며
순수한 자연의 공기와 새소리를 들으며 1시간동안 산림욕을 즐기실 수 있는 대협곡을 걸었다..
동양의 그랜드 캐년이라고도 불린다는 금강대협곡은
다양하고 특이한 나무가 우거진 숲길 사이로 난 산책로 같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웅장한 모습을 뽐내는 V자형 헙곡을 따라 만나며. 그길로 금강대협곡의 경치를 관람하면서 지날 수 있다.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여 분출된 용암이 흐르면서 V자 계곡과, 뾰족하고 기묘한 바위들이 이루어진 이 금강 대협곡은,
폭 200m 깊이 100m 길이 70Km로 백두산 서파 관광의 또다른 묘미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중의 한 곳이라 한다.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은 모양에 따라 이름들도 붙여져 관광의 재미를 더한다.
이번 백두산 서파와 북파 여행 코스의 일정 지도 입니다,,,
둘째날 서파문을 통과하여서파 일정이고 세째날 이도백하에서 주무시고
북파문을 통과후 장백폭포와 북파를 보는 코스랍니다
인천공항- 목단강- 동경성- 이도백하(1박)- 백두산(서파)-이도백하(1박)-
백두산(북파)-연길(1) - 용정 - 도문 - 목단강(1) - 인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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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을 오르는 북파ㆍ서파ㆍ남파코스. 파(坡)는 언덕이라는 중국어.
1. 백두산 지도
http://cafe.daum.net/hoogun/JFKT/68
2. 백두산 개요
▶백두산의 명칭
⊙ 백두산은 양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걸쳐있으며 북위 41˚01´, 동경 128˚05´에 위치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방 당시까지 최고봉은 병사봉(2,744m)으로 측량되었으나 현재는 장군봉으로 이름이 바뀌고 해발고도도 2,750m로 다시 측량되었다. 북동에서 남서 방향의 창바이 산맥(長白山脈)과 북서에서 남동 방향의 마천령산맥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화산으로 화산폭발에 의해서 덮인 경석이라고도 하는 부석(浮石)이 회백색을 나타내며 꼭대기는 1년 중 8개월 이상 눈에 덮여서 희게 보이기 때문에 백두산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하며, 만주어로는 “귀러민산예아린”이라고 부르는데 “귀러민”은 길다(長), “산예”는 희다(白), “아린”은 산을 의미한다.
⊙ 문헌에 나타난 백두산 최초의 이름은 (산해경 山海經)에 불함산(不咸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단단대령(單單大嶺), 개마대산(蓋馬大山), 태백산(太白山), 장백산(長白山), 백산(白山) 등으로 불렸다. 한국의 문헌에서 백두산에 관한 기록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三國遺事) 기이편에 태백산(太伯山)이란 이름으로 처음 나타나며, 고려사에도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쪽에서 살게 했다"하여 “백두산”의 명칭이 문헌상에 처음 기록되었다. 한민족이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본격적으로 숭상한 것은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부터라고 추정된다.
⊙ 백두(白頭)라는 이름은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 東國名山記〉,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 등의 문헌에 의하면 백두산의 산정이 눈이나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4계절 희게 보여서 희다는 뜻의 '백'(白)자를 취하여 이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백두산이 위와 같은 산명(山名)에 나타나는 정신적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태백산(太白山)과 백산(白山)의 의미를 살펴보면 광명사상(光明思想)과 연관됨을 알 수 있다. 먼 옛날 우리 선민(先民)들이 모여 살던 집단 거주지 부근의 고산(高山) 명산(名山)의 이름을 대개 이렇게 광명(光明) 신성(神聖)한 산악(山岳)이라는 의미로 “밝달” 또는 “밝뫼”로 불렀으며 그것이 한자명 “백산(白山)”등으로 옮겨진 것으로 판단된다.(육당 최남선의 “故事通” 참조) 따라서 백산, 태백산은 곧 우리말 이름 “밝달(뫼)”, “한밝달(뫼)”를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며, 후일 백두산의 명칭 또한 광명사상(光明思想)과 밀접한 “밝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다음으로 “불함(不咸)”과 “개마(蓋馬)”의 명칭을 주목해 보자. “불함”은 그 음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밝달”의 “밝”이나 또는 “밝음” “붉음”과 통할 수 있다. 이미 최남선의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이나 안재홍의 “조선상고사감(朝鮮上古史鑑)”에서 광명인 “밝”과 “불함”을 같은 의미로 간파하면서 “불함산”이 곧 “백산(白山)” “백악(白岳)”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고어(古語)에 있어서 “화(火)”의 의미인 “불”과 “광명”의 의미인 “밝음”의 의미는 서로 통하는 바가 있으며 “블-□[ㅂㆍㄹ]-발-밝”이 전변(轉變)하여 온 사실을 볼 수 있는 만큼 “불함”의 산명(山名)과 “백(白)”의 산명은 동의이서(同意異書)라고 말한다. 끝으로 “도태(徒太)”의 의미 역시 “한밝(太白)”의 뜻을 갖는다. 위서(魏書)에서는 “도태”의 의미를 위(魏)나라 말로 태백(太白)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고 신당서(新唐書), 말갈전(靺鞨傳)에 적힌 “태백산(太白山)”을 “도태산(徒太山)”이라고도 한다는 내용으로 보아 “도태”라는 말이 다름 아닌 우리말 “한밝달(뫼)”을 한자로 옮겨 쓴 지방어(地方語)임을 확인할 수 있다.
⊙ 백두산의 이명(異名)인 “불함(不咸)”, “개마(蓋馬)”, “도태(徒太)” 등은 모두 “밝달” “한밝달”의 의미가 한자로 이기(異記)된 것뿐이며 백두산이 명칭 역시 “밝달”에서 “백산(白山)”의 과정을 지나 정착된 고귀한 정신적 의미를 담은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흔히 민족의 성산(聖山) 또는 영산(靈山) 으로 백두산을 말하고, 이 땅의 크고 작은 산들과 그 줄기를 모두 백두의 대간(大幹) 과 연관 짓고 있다.그런 생각의 큰 틀을 일찍이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구체화해 읊은 바 있다. 이름 하여 백두산은 "우리 종성(種姓)의 근본(根本)이며, 우리 문화의 연원(淵源)이며, 우리 국토의 초석(礎石)이며, 우리 역사의 포태(胞胎)이며, 우리 생명의 양분(養分)이며, 우리 정신의 편책(鞭策)이며, 우리 이상(理想)의 지주(支柱)이며, 우리 운명의 효모(酵母)" 라고 했다.
▶ 백두산의 높이
⊙ 지금까지 알려진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병사봉)의 높이 2,744m는 1910년대 일제가 측량한 것으로 해방 이후 남한 측은 백두산 높이를 측량할 기회가 없어 일제의 측량 결과를 지금까지 지리부도 등에 그대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이 최근 펴낸 “북한 전도”에 따르면 백두산의 높이는 2,750m로 오랫동안 알고 있던 2,744m보다 6m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각종 지리부도와 초·중·고교 교과서의 내용도 이에 맞게 고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북한 전도는 최근 북한 과학원이 펴낸 지도를 입수하여 내용을 그대로 옮겨 만들었다”고 말했는데 국립지리원측은 “북한은 이 지도 제작을 위해 최신 측량기술을 총동원했다고 선전하고 있는 만큼 백두산 높이도 2,750m가 맞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지리 전문가들은 백두산의 높이가 달라진 것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꼽힌 것은 측량기기의 발달로 인한 정확도 차이. 국립지리원 관계자는 “일제 때 측량장비는 정확도가 떨어져 실제 높이를 제대로 재지 못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최신기기를 이용해 높이를 쟀다면 일제 때 측량결과보단 훨씬 더 정확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백두산의 융기 가능성도 제기된다. 백두산이 사화산이 아니라 휴화산이며 화산 활동을 통해 매년 “키”가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94년 중국학자들은 백두산 일대의 지진 기록을 연구한 결과 백두산이 매년 3㎜씩 치솟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94년 한국과 중국 과학자들은 백두산과 일대의 지질을 탐사한 결과 심저에서 화산활동이 감지됐으며 백두산이 2000~2050년 사이에 대규모 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 백두산의 역사
⊙ 백두산의 문헌에 의한 최초의 이름은 불함산으로 “산해경(山海經)” “대황북경(大荒北經)”에 기재되어 있다. 한(漢)나라 때에는 “단단대령(單單大嶺)”, 남북조 위(魏)시대에는 “개마대산” 또는 “도태산”, “태백산”으로, 금(金)나라 때는 “장백산”이라 불렸다. 고려의 기록으로는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태백산”이라 칭하였으며, “백두산”이란 명칭은 “고려사”의 광종 10년에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백두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역사상 단군조선, 부여(夫餘), 고구려, 발해(渤海), 금, 청(淸) 등 이곳과 관련을 갖지 않은 나라가 없다. 백두산은 일찍부터 한민족(韓民族)의 발상지로 또 개국의 터전으로 숭배되어왔던 민족의 영산(靈山)이었으며,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수난을 같이 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 인용된 고기(古記)의 기록에 의해 단군신화의 탄생무대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백두산이 200∼300년을 주기로 분출했던 휴화산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한민족의 직접적인 거주지였다기보다는 불을 뿜어내는 성역으로 간주되어, 인지가 발달하지 못했던 선사시대에 민족의 시원(始原)을 말해주는 신화의 무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민족의 기원설화를 안고 있는 까닭에 인간의 거주가 제한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므로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의 발굴을 기대하기 힘들며 발견, 보고된 바도 없다.
⊙ 삼국이 정립되기 이전의 시기에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남서쪽에는 고구려, 서쪽에는 부여, 북쪽에는 읍루, 북동쪽에는 숙신(肅愼), 동쪽에 동옥저(東沃沮) 등의 북방유목민족이 주변에 흩어져 살았다. 고구려가 강성해진 이후에는 고구려의 세력권이었으며, 발해의 영토 안에 있었다. 연변지역에는 발해가 건설한 많은 성지가 보존되어 있는데, 발해 전기의 도성인 구국(舊國;돈화현 오동성)과 5경중의 동경 용원부(龍原府;훈춘현 팔련성), 중경 현덕부(顯德府) 등이 이 지역에 분포하여 있다. 이후 백두산은 통일신라나 고려의 영역외곽에 위치하여 북방 이민족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 요(遼)를 건국한 거란이나 금을 건국한 여진족의 발상지도 이곳을 중심으로 하였다. 금은 1172년(명종 2)에 이곳을 산신으로 봉하여 영응왕(靈應王)이라 하였고, 1193년에는 개천굉성제(開天宏聖帝)로 책봉하였다. 고려 말∼조선 초기에는 여진족이 백두산을 경계로 흥경(興京)을 중심으로 압록강·두만강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후금이 건국되자 그들의 시원지로 간주하여 영경(靈境)이라는 제사를 지냈다. 청나라 때에는 이곳을 장백산신(長白山神)에 봉하고 출입과 거주를 제한하는 금봉책(禁封策)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에 세종(世宗)은 북방야인의 침범을 막기 위해 1434년(세종 16) 두만강 일대에 6진(경원·경흥·회령·부령·온성·종성)을 설치하였고, 1443년에는 압록강변에 4군(무창·자성·여연·우예)을 설치함으로써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천연적인 국경이 되었으나, 백두산 일대는 너무 광활하여 국경선을 확연히 할 수 없었다.
⊙ 조선과 중국의 문헌 중 1677년(숙종 3;淸 康熙 16)에 무목납(武木納) 등 4인을 백두산에 파견하여 실황을 조사·기록한 “장백정존록(長白征存錄)”이 백두산 답사기록으로는 최초일 것이다. 1712년(숙종 38) 5월에는 국경을 확실히 하자는 청의 제의에 의해 오라총관(烏喇總官) 목극등(穆克登)과 조선 군관 이의복(李義復)과 조태상(趙台相)이 백두산의 분수령인 높이 2150m의 지점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다. 이 비가 백두산에 전하는 금석문으로서는 최초의 유적이다. 이 정계비는 높이 72㎝의 6각기둥으로, 비문에 “서쪽은 압록강이고 동쪽은 토문강이다 …(西爲鴨綠 東爲土門 …)”라고 새겼다.
⊙ 그 후 1880년(고종 17)부터 청나라는 돌연 토문이 두만(豆滿)을 뜻함이라는 억설을 주장하여 논란이 되더니, 1909년(순종 3) 만주 침략의 야욕을 가진 일본이 북경에서 청나라와 회담하고 토문강에서 훨씬 남하하여 두만강이 한·청 두 나라의 국경이라고 임의로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영토이던 간도(間島) 전역을 청나라에 넘겨주었다. 이로 인하여 두만강이 중국과의 국경선으로 결정되었다. 따라서 백두산은 현재까지도 중국과 북한의 영토로 양분 되어있는 상태이다.
⊙ 일제강점기의 백두산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무력항쟁의 기지로서 더없이 좋은 곳이 되었다. 1920년 6월 백두산 기슭의 봉오동(鳳梧洞)에서는 홍범도(洪範圖)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이 일본군과 격전 끝에 최대의 승전을 하였다. 백두산은 이처럼 항일의 전승지로서 독립운동사에 그 이름이 빛날 뿐만 아니라 6·25 때에도 개마고원유격대가 전투부대를 조직하여 인민군과 싸웠던 활약은 유명하다. 한국전쟁 휴전 직후 북한과 중국 간의 담판 과정에서 ‘백두산천지의 55%는 중국령, 45%는 북한령’ 등으로 영토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백두산의 영토 및 국경문제
⊙ 한민족에게 백두산은 민족과 국가의 발상지이며, 생명력 있는 산으로서 민족의 성산(聖山), 신산(神山)으로 숭앙되어왔다. 고조선 이래 부여·고구려·발해 등이 백두산에 기원을 두고 있다. 백두산은 한민족뿐만 아니라 북방 이민족의 정신적 구심점과 활동무대가 되어왔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국경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17세기 중엽 청나라는 백두산을 장백산신(長白山神)에 봉하고 출입·거주를 제한하는 봉금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이 두만강을 넘어 이주·개척하자 백두산을 그들의 영토로 귀속시키려고, 1712년 일방적으로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그 내용 가운데 토문강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청나라와의 사이에 영토분쟁이 발생했으며, 간도 및 녹둔도의 영유권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 1909년 청·일 간에 체결된 간도협약으로 두만강이 국경선으로 결정되었으며, 지금 백두산은 천지까지도 분할되어 천지 북쪽 2/5는 중국측에, 남쪽 3/5은 북한측에 속한다. 국내 백과사전이나 전문가 견해에 따르면 중국과 북한의 국경은 두만강과 압록강이다. 이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두 강의 발원지가 곧 백두산 정상의 천지(天池)다. 따라서 두만강과 압록강의 발원지를 끼고 있는 백두산은 필연적으로 중국과 한국 두 개 국가로 나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문제는 일제의 조선반도 침략 이전엔 백두산 전체가 우리 땅이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원래 두만강 이북의 간도는 우리의 영토(백두산 정계비)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이 철도부설권에 대한 협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간도를 중국영토로 편입 시킨 것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때부터 중국과 백두산 영토를 공유하게 됐고 이는 곧 일제에 의한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전쟁 휴전 직후 북한과 중국 간의 담판 과정에서 “백두산 천지의 55%는 중국령, 45%는 북한령” 등으로 영토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백두산의 절반이 중국으로 넘어간 것은 이미 그때였다는 뜻이다.
⊙ 1982년 6월 21일자 국내 신문에는 백두산 천지의 북쪽 부분 거의 절반이 중국영토로 표시된 중국 발행의 지도와 기사를 보도하여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중국 지린성 창바이산 자연보호관리국에서 간행한 《자연보호》라는 소책자에 수록된 백두산 부근 지도는 동쪽의 비류봉(沸流峰)에서 남서쪽 마천우(麻天隅)를 향해 일직선으로 줄을 그어 ‘국계(國界)’라는 국경선 표시를 하고 있다. 북한은 1962년 초부터 1963년 4월까지 국경선 비밀협상을 벌여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선은 밝혔으나 백두산에 대해서는 일체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백두산의 기후
⊙ 백두산 기후는 전형적인 고산기후이며, 한국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심하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지리산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연평균 기온은 6∼8℃, 최고기온 18∼20℃, 최저기온 -47℃, 7월 의 평균기온은 8.5℃, 6~9월의 4개월간 10℃이상으로 오르지 않는다. 풍향은 주로 여름철에 서풍 또는 남서풍이며, 겨울철에는 북서풍이다. 풍속은 최대 초속 40m, 연평균 강수량은 1500㎜ 이며, 연중 강풍일수는 270일이나 되고 기상상태가 변화무쌍하고 천지 부근은 강한 돌개바람인 용권이 자주 일어난다.
⊙ 남쪽의 더운 공기와 몽골지방에서 오는 찬 공기가 마주치면서 구름과 안개가 많이 끼는데 7~8월에 안개가 끼는 날수는 33일 가량 되며, 구름이 많고 천둥현상이 잦으며 주로 눈·비를 동반한다. 벼락회수는 연간 48회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1,500mm이며, 겨울 날씨가 연중 230일 정도 계속된다. 백두산 산정과 천지 일대의 겨울은 사실상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지속되며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은 7,8월 두 달 뿐이다.
▶ 백두산의 봉우리
⊙ 백두산의 정상부에 있는 천지는 원형화구로 그 주변에는 해발고도 2,500m 이상의 16개 봉우리들에 의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데 원형화구로 안쪽을 내륜, 바깥쪽을 외륜이라 하며 내륜(內輪)은 경사가 급하고 외륜(外輪)은 내륜 보다 완만하다. 천지수면으로부터 500~600m 높이로 천지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이 봉우리들을 외륜봉 또는 외륜산이라고 한다. 즉 중앙의 분화구(噴火口)인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고리 모양의 산이 외륜봉이다. 천지 안쪽으로는 천지수면까지 이르는 경사를 내륜이라고 한다.
⊙ 백두산은 여러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데,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해발 2,500m이상인 봉우리만도 16개이며, 7개는 북한에, 9개는 중국에 속해 있으며, 시대에 따라 이들 봉우리의 명칭이 달랐다. 제일 높은 봉우리는 장군봉(2,750m)으로 중국에서는 백두봉이라 한다. 두 번째 높은 봉우리는 백운봉(2,691m), 세 번째가 기상대가 있는 천문봉(2,670m)이다. 중국측에서는 장군봉을 백두봉이라고 부르는 것을 비롯하여 삼기봉, 고준봉, 자하봉(2,618m), 화개봉, 철벽봉(2,560m), 천활봉, 용문봉, 관일봉, 금병봉, 지반봉(2,603m), 와호봉(2,566m), 관면봉등 16개 봉우리에 모두 명칭이 있다.
⊙ 이러한 명칭은 1900년대 초에 붙여진 이름으로 한 봉우리에 2개의 명칭이 있어 구분이 어렵기도 하다. 비류봉(2,580m), 백암산(2,670m), 차일봉(2,596m), 층암산(2,691m), 마천우(2,691m) 등의 7개 봉우리에만 명칭이 전해지고 있다. 주요봉우리로 북한지역의 장군봉(백두봉, 병사봉) 2,750m, 해발봉 2,719m, 제운봉(낙원봉) 2,603m, 와호봉 2,566m, 제비봉 2,549m, 비류봉 2,580m, 쌍무지개봉 2,626m 등이 있으며, 중국지역에는 백운봉(층암산) 2,691m, 천문봉(백암봉) 2,670m, 청석봉(옥주봉) 2,662m, 자하봉 2,618m, 녹명봉(지반봉) 2,603m, 차일봉(용문봉) 2,596m, 철벽봉 2,550m이 있다.
⊙ 장군봉(백두봉)은 천지의 동남쪽에 위치한 장군봉은 해발 2,750m로 백두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중국에서는 백두봉으로 부른다. 이 봉우리는 빙하가 깎아서 이루어진 것이다. 꼭대기에서부터 북쪽으로 천지 쪽으로 뻗은 등성이는 장관인데 맞은편 백운봉아래 등성이와 흡사하여 험한 봉우리 밑의 험한 봉우리로 알려졌다. 이것은 천지 안쪽 화산암이 이루어 놓은 지형이다. 끌차(잉크라인 철도)와 도로를 통해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장군봉은 북한에 위치하고 있어 일반인들은 오를 수 없다.
⊙ 백운봉(층암산)은 천지의 서쪽에 위치한다. 백운봉(해발2,691미터)은 중국 동북지방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북으로 지반봉(녹명봉)과 1,260여 미터 떨어져 있고 남으로는 청석봉(옥주봉)과 면해 있다. 이 산은 둥근 모양을 이룬 높은 산인데 산세가 험준하고 가파르다. 해맑은 날씨에 뭇 봉우리들이 각기 웅자를 드러낼 때에도 백운봉만은 종일토록 흰 구름이 감돌기 때문에 백운봉이라 이름 하였다. 꼭대기는 회백색, 담황색, 유백색의 부석들로 되어 푸른 하늘, 흰 구름과 서로 대조를 이룬다.
⊙ 천문봉(백암봉)은 천지 기상관측소에서 서남쪽으로 400여 미터 되는 곳에 남쪽으로 화개봉과 325미터 마주 솟아있고 북으로 철벽봉을 등진 곳에 있다. 천지의 수면에서는 476미터, 해발 2,670미터의 높이를 가진 이 봉우리는 천지 북쪽 편에서 가장 높은 산마루이다. 1958년 이 봉우리의 북쪽에 백두산천지 기상관측소를 세운 때부터 기상대를 상징하여 천문봉이라 이름하였다. 봉우리 꼭대기에서 천지로 향한 “천상은병풍”에는 오색 영롱한 비취 주옥들이 박혀 있다. “천상은병풍” 앞에는 수리바위가 있고 동쪽에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외뿔 용이 하늘에 머리를 쳐든 듯한 용각봉이 있다.
⊙ 청석봉(옥주봉)은 천지 서쪽에 서북으로 백운봉과 1,270미터 떨어져 있고 남으로 현실애, 제운봉(낙원봉)과 이웃한 곳에 위치한 해발2,662미터이다. 꼭대기에 또 오형제처럼 다섯 봉우리가 뭉쳐 선 것이 마치 하늘이 무너지면 버티고 있을 듯 한지라 '백두의 옥기둥' 이란 영예를 지니고 있다. 그 다섯 봉우리들이 푸른 암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청석봉이라고도 부른다. 해발 2,500미터가 넘는 이 봉우리들은 천지 쪽으로 향해 섰는데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에 '-'자를 가로로 그은 듯 한 큰 단층이 있다. 옥주봉 동쪽에서 솟는 샘은 금실같이 천지로 흘러드는데 이것은 금선천이라고 한다.
⊙ 용문봉(차일봉)은 천지의 서북쪽에 승사하를 사이에 두고 천할봉과 대치되어 천지의 출구를 지키는 듯한 봉우리로 해발 2,596미터이며 천지 수면에서의 높이는 401.7미터 이다. 북쪽으로 옥벽과 잇닿았고 서쪽으로 관일봉과 접하여있다. 두 봉우리가 대문처럼 솟았다고 하여 용문이라 부른다. 이 봉우리들의 겉에는 화산이 이따금씩 분출하면서 형성한 용암의 흐름층면을 드러내고 있다. 부스러져 떨어진 바윗돌들이 큰 돌사태를 이룬 면서 골짜기로 흘러내린 퇴석 위에 약한 고산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봉우리 꼭대기에 올챙이 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신비(神碑)라고 불린다. 폭포 곁으로 해서 천지에 오르는 관광노선은 이 용문봉 아래에 있다. 용문봉 북쪽에 낙차가 20미터인 은류폭포가 있어 옥벽을 사이에 두고 장백폭포와 이웃하여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 녹명봉(지반봉)은 천지의 서북쪽에 선부를 사이에 두고 백운봉과 이웃한 해발2,603미터, 천지 수면에서 꼭대기까지 409.1미터로 용문봉과 마주서 있다. 옛날에 꼭대기의 진펄에 영지가 많이 자랐다고 해서 지반봉이라 고도 부른다.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산정에 네 개의 봉우리가 진펄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그 봉우리들의 안쪽은 가파르게 생겨 천지 서북쪽의 장벽으로 되어 있다. 여름과 가을에는 녹평 등지에 사슴의 무리가 많다. 9월 중순 눈이 내린 뒤에는 여기저기서 사슴의 발자국을 볼 수 있다. 산기슭에서 사슴들이 뛰놀며 엇갈아 울 때면 산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가 듣기 좋아 녹명봉이라고도 부른다. 정상에는 화산 활동에 의해 생긴 분열구가 있다. 엄동설한에 다른 산봉우리들에는 백설이 눈부시지만 여기에는 누런 풀이 깔려 있어 늦가을의 경치를 연상케 한다. 북쪽에는 몇 십 명이 들어앉을만한 동굴이 있다.
⊙ 와호봉(2,566m)은 천지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천지 기슭으로부터 봉우리 정상까지의 거리는400여 미터이다. 북쪽으로 제운봉과 1,000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남쪽으로 관면봉과 이웃해 있다. 두 나라의 경계 봉우리로 "호수 가까이에 호랑이의 발자국이 많고 5리 남짓한 경사지에 호랑이가 다니는 길이 있다"고 하여 와호봉이라 부른다. “무송현지”에 의하면 이 봉우리는 "엎드린 호랑이 형상이라 하여 와호봉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봉우리 기슭에는 녹경(鹿經), 백화계(白花溪)등의 명승이 있다.
⊙ 관면봉은 천지의 바로 남쪽에 와호봉과 500여 미터 떨어져 있으며 천지수면에서의 높이는 370.8미터이고 해발 고도는 2,526미터이다. 이 봉우리 역시 한반도와 중국의 경계 봉우리로 솟아있다. 장백산강강지략에 "장엄한 기상으로 옹기종기 모여 선 뭇 봉우리 들이 마치 면류관 같다"고하여 관면봉이라 이름 하였는데 용문봉, 천활봉과 멀리 천지를 사이에 두고 마주서 있다. 흰 부석으로 이루어져 사철 흰색을 띠므로 눈인지 바위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천지를 마주한 쪽에는 사철 눈이 쌓여 녹을 줄을 모른다.
▶ 백두산의 폭포
⊙ 백두산에는 폭포가 60여개 있다. 높이 40m의 백두밀영폭포와 높이 20m의 백두폭포를 비롯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 번이나 꺾어 내리는 사기문폭포, 두개의 폭포가 바위벼랑에서 가지런히 떨어져 내리는 형제폭포, 물이 벼랑중턱에 뚫린 구멍에서 쏟아져 내리는 리명수폭포는 백두산의 신비감을 더하고 있다. 중국지역에는 장백폭포, 금강폭포, 옥계폭포가 대표적이다.
⊙ 장백폭포는 천지의 북쪽 천할봉과 용문봉 사이의 달문에서 흘러 1,250m 길이의 승사하를 이룬 뒤 벼랑을 만나 낙차 68m의 장대한 폭포를 이룬다. 거대한 폭음이 몇 리 밖에까지 울리며 흰 물보라를 흩날려 공중에 칠색무지개와 백룡이 날아 내리는 듯한 절경을 이루어 비룡폭포라고도 불리운다. 승사하 말단에서 폭포의 중간에는 큰 바윗돌이 노출되어 한줄기로 내려오던 물줄기가 아쉽게도 두 갈래로 갈라져 쏟아지는데 68m 높이에서 90도 수직으로 암벽을 때리며 시원스레 떨어진다. 장백폭포는 마치 흰 비단이 하늘에서 내려오다가 중간쯤에 튀어나온 바위에 부딪히면서 두 폭으로 갈라져 백두산 중턱에 걸려 있는 듯하다. 북방의 모든 폭포는 봄부터 가을까지 물이 있어 장관을 이루지만 겨울이면 물이 얼어 자취를 감추지만 장백폭포 만은 겨울에도 얼지 않고 계속 흘러 일 년 내내 볼 수 있다.
⊙ 금강폭포는 서백두의 알프스 산 속 같이 아름다운 자연정원인 넓은 초원 금강분지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다. 금강분지에서 폭포의 상류인 작은 계곡 건너 능선에 올라서 가파른 원시림 계곡을 내려가면 원시림과 깊은 계곡에 숨겨진 금강폭포가 있다. 금강폭포는 2단 폭포로 높이 74m이다. 금강폭포에서 흐르는 물은 금강대협곡으로 이어지는데 금강대협곡은 1백만 년 전 천지의 화산이 분출하여 용암이 휩쓸고 간 협곡이 수많은 세월속의 풍화작용으로 깊고 깊은 협곡을 이룬다.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고 제한된 인원만 출입시키는 서파지역에 깊숙이 있는 금강폭포는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원시림과 깊은 계곡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 은류폭포는 용문봉 북쪽 0.5km 떨어진 협곡에 자리하고 있다. 폭포 상류는 지하로 흘러 보이지 않으나 폭포부근에서 지면에 노출되면서 높이 20m의 폭포가 형성되었다. 폭포 수량은 우기에 많고 건기에는 적으며 심지어는 물이 없을 때도 있다. 이 폭포는 옥벽을 사이에 두고 장백폭포와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다.
⊙ 악화폭포는 백두산 동쪽 비탈 삼도백하 상원에 있다. 이 폭포는 태원대와 사스래수림대(악화림)의 교계처에 있어 악화폭포라 하였다. 악화폭포는 급류가 흐를 때에 20여m 되는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이루어지는데 먼 곳에서 바라보면 흰 비단이 하늘에 걸려 있는 것 같다.
⊙ 동천폭포는 지하삼림(곡지 삼림) 입구 근처에 있다. 폭포의 높이는 약 15m인데 하곡은 매우 좁아 30km 안팎이다. 폭포 밑은 지하에 있는데 모양은 원통상으로 되어 있다. 이 폭포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폭포로 모든 폭포는 지상에 있으나 이 폭포만은 지하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폭포위에 있노라면 지하에서 울려오는 폭음소리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 백두산 자연호수 천지(天池)
⊙ 천지 창조의 신비함을 간직한 천상의 호수라는 뜻으로 대택, 대지, 용왕담, 달문담, 신분, 용궁지, 천상수, 달문지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천지는 수면 높이가 해발 약 2,190m로 전 세계 화산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며 천지에 담긴 물의 양만도 소양호의 3분의 2 정도나 되며 화구벽이 터져서 생긴 북쪽의 달문을 통하여 1일 유출되는 양이 약 36만㎥에 이른다(7월 평균).
⊙ 천지는 호수면이 해발 2,190m, 면적 9.165㎢, 둘레 14.4㎞, 평균너비 1.975㎞, 최대너비(동서) 3.550㎞, 평균수심 213.3m, 최대깊이 384m이며 수심은 남쪽이 얕다. 세계 최고로 알려져 있는 '티티카카호'(최고수심 304m)와 2위인 소련의 레닌그라드 근처에 있는 '라도가호'(225m) 보다도 더 깊어 세계 최심의 산상 호수로 밝혀졌다. 화산활동에 의해 백두산 화구가 함몰되어 생긴 칼데라 호로 분화구의 전체면적 가운데 천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40.6%에 이른다.
⊙ 천지의 저수량은 약 19억5천500만㎥로 1990년 초 조사에 의하면 천지 물의 내원은 대기강수(빗물), 집수구에서 흘러드는 지표수와 지하에서 공급되는 지하수라고 한다. 세 가지 내원 가운데 지하수의 공급량은 전체 천지 공급수량의 61.5%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천지 호면에 내리는 빗물은 1년 사이에 천지에 공급하는 수량이 30.76%를 차지한다. 다음으로는 천지의 집수면적 50.57㎢로 천지의 내륜 경사면을 통해 흘러드는 수량으로 천지 공급수의 7.73%를 차지한다. 이처럼 천지의 중요한 내원이 지하수이기 때문에 여름철에도 천지 물은 차고 시원하다. 이와 같은 물의 유입과 강수량이 많고 기온이 낮아 물의 증발량이 낮아 천지의 물은 마르지 않고 있다.
⊙ 표면수온은 7월에 9.4℃, 내부수온은 연중 4℃이다. 물은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5월 중순까지 약 3m의 두께로 어는데 그 위에 쌓이는 눈의 두께까지 합하면 6m 이상 된다. 천지 일대에는 구름과 안개가 자주 끼며,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온다. 연강수량은 1,500㎜이며, 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수면 위로 최대 1~1.5m의 파고가 일기도 한다. 천지 물은 화구벽이 터져서 생긴 북쪽의 달문을 통하여 흘러내려 높이 70m의 장백폭포(長白瀑布)를 이루면서 송화강(松花江)의 상류인 이도백하(二道白河])로 흘러간다.
⊙ 천지 물은 대부분 지하수이기에 무색, 무미하고 깨끗하고 차다. 천지 물은 미생물의 번식률이 매우 낮고 적어 깨끗하다. 천지 물의 중탄산 함량은 주위 암석에 있는 나트륨장석의 분해로 일반적인 음료수에 비하여 약 10배 정도 더 많아 마시면 시원하다. 그러나 천지는 화산호이고 또 몇 곳에서는 온천이 나오기 때문에 인체에 유해한 화학원소들이 있어 음료수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
▶ 백두산 들꽃
⊙ 백두산 천지 사면의 초원과 그 아래 평원에는 고산화원으로 불리는 야생화 군락지가 드넓게 펼쳐져 백두산 트레킹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산화원으로 불리는 야생화 군락지에는 6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큰원추리, 금매화, 노란만병초, 하늘매발톱, 바이칼꿩의 다리, 산용담, 개불알 꽃 등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다양한 1,800여종의 야생화가 자태를 뽐내며 백두산을 수놓는다. 해발고도 1,000∼2,400m의 고지로 6월말에야 봄을 맞을 정도로 이맘때면 6개월 이상 눈 속에 파묻힌 채 혹독한 겨울을 견딘 노랑만병초 등이 일제히 꽃을 피워 천지 서편 아래 구릉은 온통 들꽃으로 뒤덮인다.
⊙ 백두산 트레킹의 묘미는 천지 봉우리에서 뻗어 내린 완만한 구릉의 초원을 지천으로 피어난 들꽃을 보며 걷는 것으로 누구나 걸을 수 있을 만큼 경사가 완만하여 백두산의 아름다움을 온 종일 감상할 수 있다. 찬치퍼고개, 노호배능선, 새우등능선, 고산화원, 금강분지 등은 각양각색의 들꽃으로 백두산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해 준다.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진분홍 털개불알꽃, 군락을 이루며 밭을 이룬 노란 애기금매화와 산미나리아재비, 연분홍의 구름국화 군락과 하얀 박새군락 등등…. 들꽃천지를 이룬 백두산 기슭은 거대한 천상화원이다.
⊙ 봄, 여름, 가을이 6월 중순에서 9월 중순까지 석 달에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이곳은 세 계절이 두서없이 한데 뒤섞이다 보니 백화난만(百花爛漫)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다양한 들꽃이 쉼 없이 피고 진다. 단 석 달 새에 씨앗을 뿌리고 장장 9개월이나 지속되는 긴 겨울준비를 하자면 식물 곤충 모두가 바쁘지 않을 수 없다. 개미와 파리 모기가 나비와 벌을 대신하는 자연의 이치는 이리도 묘하다. 그 꽃 중에서도 가장 기특한 꽃은 천지가의 노란 만병초다. 잔설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강인한 꽃나무지만 슈크림빛깔의 노란 꽃은 귀부인처럼 고아하다. 행여 시도 때도 없이 불어 닥치는 천지의 일진광풍에 날릴까 양탄자처럼 깔린 관목의 틈새에서 바짝 몸을 낮춘 채 여린 꽃잎을 꼭 붙들고 있는 모습은 안쓰럽다기보다는 차라리 감동을 준다. 천지주변에서 만나는 자주 빛 두메자운도, 하이얀 담자리꽃나무와 개감채도 애처롭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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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 구경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멋저요....즐감..ㅎㅎㅎ
자료좋네요.
2명 예약 신청 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ㄳㄳ
좋네요.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세요.....
구경 잘 했습니다.
백두산 풍광에 마음 쉬어갑니다. 감사합니다.
멎진자료 잘보고 갑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아요........
좋아요^^*
가보고 싶은 곳인데...
아름다운곳이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