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승좌(陞座)
약산(藥山)이 오랫동안 법당에 오르지 않자, 원주(院主)가 여쭈었다.
“대중들이 오랫동안 가르침을 고대하고 있으니, 화상께서는 설법을 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사람을 시켜 종을 치게 하여 종을 치니, 대중들이 모였다. 선사가 법상에 올라 양구했다가 이내 내려와서 방장으로 돌아가거늘, 원주가 뒤를 따라가면서 물었다.
“화상께서 아까 대중들에게 설법해 주겠다고 하시더니, 어째서 한마디도 하시지 않습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경에는 경사(經師)가 있고, 논(論)에는 논사(論師)가 있거늘, 날더러 어찌 하라는 것인가?”
천동각(天童覺)이 송했다.
어러석은 아기는 울음 달래는 거짓 돈에 정신이 끌리고
좋은 말은 바람결 좇아 채찍 그림자를 돌아본다.
구름 걷힌 끝없는 하늘, 달에 깃들인 학이
싸늘한 공기, 뼈에 사무쳐 잠을 이루지 못하네
또 송했다.
가문의 법칙이 간결하고 엄하니
둘도 아니요, 셋도 아니로다.
달이 돋아 밝아지니 물이 맑아지고
구름이 흩어지니, 싸늘한 바위가 드러난다.
참 기미[眞機]를 몸소 얻으니
묘한 경지를 누가 참구(參究)할꼬?
문수가 죽비를 치지 않았더라면1)
천고에 헛수고하는 구담(瞿曇)이 될 뻔했네
설두현(雪竇顯)이 염(拈)하였다.
“아깝도다. 약산 노장이 평지 위에 쓰러졌는데, 온 누리 사람들이 아무도 붙들어 일으키지 못하는구나.”
낭야각(瑯琊覺)이 염하였다.
“약산이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 의심스럽기는 했으나 원주가 살짝 건드리자 한쪽 눈을 잃었구나.”
취암지(翠嵓芝)가 염하였다.
“약산이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원주는 그가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지 않는다고 의심했으니, 가히 삼군(三軍)의 운명을 그르쳤다 하리라.”
해회연(海會演)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비록 자기로써 남에게 견주었으나 도적의 몸이 이미 드러났으니 어찌하랴? 여러분은 약산을 알고자 하는가? 한가로이 경권(經券)을 들고 소나무에 기대서서 손님은 어디서 오시느냐고 웃으면서 묻는다.”
영원청(靈源淸)이 이 이야기를 들고 이어 운암(雲嵓)이 말하기를 “약산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 한 데까지를 들어 말하였다.
“대중들아, 약산이 이렇게 남을 위한다면 경(經)이나 율(律)이나 논(論)을 강론하는 좌주(座主)의 경지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가려 보라. 만일 가려낸다면 약산을 구제할 뿐만 아니라 운암까지도 숨통을 트여준다 할 것이요, 만일 가려내지 못한다면 나 대평(大平)도 오늘 밤 연루(連累)의 죄를 범하리라.”
운문고(雲門柧)가 이 이야기에서 “방장으로 돌아갔다”고 한 데까지를 들어 말하였다.
“군소리가 적지 않구나.”
도 “날더러 어찌하라는 것인가?” 한 것을 들어 말하였다.
“사람을 몹시 웃기는구나.”
밀암걸(密庵傑)이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고, 이어 취암지(翠嵓芝)의 염을 들어 말하였다.
“취암은 한쪽 눈만 있어서 약산이 방장으로 돌아간 일이 삼군(三軍)을 괴롭힌 것임을 전혀 몰랐구나.”
1) 제 1권 제6칙 참조.
說話
“오랫동안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久不陞座]”고 한 것에 대해 만송(萬松)이 이르기를 “주린 이는 쉽게 먹고 목마른 이는 쉽게 마신다. 그러므로 세 분[三家1) : 解脫月請 大衆請 如來請]이 다섯 가지 청[五請 : 怪黙騰疑請 法深難受止 嘆衆堪聞請 不堪有損止 雙嘆人法請]을 하매 보살(菩薩 : 金剛藏)이 나무 위로 올랐고 반 게송에 온 몸을 바치니 야차가 법좌에 올랐다” 하였으니, 대중들로 하여금 갈앙(渴仰)하는 마음을 내게 하려는 것인가? 설법할 인연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사가 사람을 시켜 종을 치게 하였다[師今打鐘]”고 한데 대해 만송이 착어(着語)하기를 “우레가 호령을 친다[雷霆驅號令]”고 하였고, “자리에 올라 양구하였다.[陞座良久]”에 대해서 만송이 착어하기를 “성과 두가 찬란하게 빛난다[星斗煩文章]”고 하였다. “이내 내려와서[伊下座]……”라 함은 그런 일이 없기 때문이요, “경에는 경사가 있고[經有經師]……”라 함은 선사는 의당 이러해야 한다는 뜻이다.
천동(天童)의 송에서 첫 구절은 “오랫동안 가르침을 고대하고 있다”고 한 대목을 송한 것이요, 둘째 구절은 만일 상근대지라면 당장에 알아들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나머지 두 구절은 약산의 경계가 바로 존귀한 행리[尊貴行李]라는 뜻이니 옛사람이 이르기를 “몸을 연마하여 학같이 되었다[鍊得身形似鶴形]”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을 이루지 못하네[不成眠]”라고 했으니 공(空)에 빠지거나 적멸(寂滅)에 막히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또 송한 것에서 처음부터 “셋이 아니로다[非三]”까지는 편(偏)과 정(正)을 아득히 뛰어넘었다는 뜻이니 “달이 돋아 밝아지니 물이 맑아진다”고 한 것은 편위(偏位)요 “구름이 흩어지니 싸늘한 바위가 드러난다”고 함은 정위(正位)이다.
“참 기미를 몸소 얻으니[眞機自得妙]……”라 함은 약산의 뜻을 알기 어렵다는 뜻이요, “문수가 죽비를 치지 않았더라면[不是文殊]……”이라 함은 법왕의 법을 자세히 관찰하니 법와의 법이 이와 같습니다. 함이니 그렇다면 군생(群生)을 위하여 설법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라는 뜻이다.
설두(雪竇)의 염은 한결같이 존귀한 곳에 쓰러졌다는 뜻이다.
낭야(瑯琊)의 염은 약산이 법좌에서 내려온 것에 무한한 뜻이 있다는 내용이니, “경에는 경사가 있고[經有經師]……”라 한 것이 남을 위해 말하지 않겠다는 입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취암(翠巖)의 염에서 “삼군의 운명을 그르친다[誤他三軍]”함은 말해 주지 않은 것이 벌써 말해 준 것일 분만 아니라 다 설해 주었더라도 삼군의 운명을 그르치는 것이란 뜻이다.
해회(海會)의 상당은 일 없는 곳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영원(靈源)이 들어 말한 이야기에서 “하나만 알고[只知其一]……”라 함은 다만 존귀한 쪽의 일만 알았고, 이쪽에서 중생을 위하는 일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경이나 율이나 논을……벗어날 수 있겠는가?[還出經律論]”라 함은 갈등이 적지 않기 때문이요, “종문의 취지에 맞겠는가?[還當宗門]”함은 운암도 역시 종문의 향상사(向上事)는 알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약산도 운암도 모두 몸을 솟구쳐 낼 길이 없는 것이다.
“나 대평도 오늘 밤[太平今夜]……”이라 함은 모두 긍정치 않는 곳에 역시 설 곳이 있다는 뜻이니, 그렇다면 약산과 운암의 경지에 무슨 허물이 있는가 함이 된다. 그러므로 “약산을 구제할 뿐만 아니라 운암까지도 숨통을 트여 준다[非唯救出藥山 亦與雲岩出氣]”고 하였으니 이 도리이다. 이렇게 해야 가히 가려냈다고 할 수 있다.
운문(雲門)의 거화(擧話)에서 “군소리가[葛藤]……사람을 몹시 웃기는구나[殺人]”라고 함은 대중들을 위해 설법해 주지 않은 점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밀암(密庵)의 거화에서 “삼군을 괴롭혔다[勞他三軍]”함은 그들을 위해 설해 주지 않은 것이 도리어 고단함을 더해 주었다는 뜻이니, 취암은 그를 칭찬했고 밀암을 그를 깎아내렸다.
1) 원문에는 “삼가(三加”로 되어 있으나 『종용록』을 참조하여 “삼가(三家)”로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