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미국에 도착하니 내게 한 통의 편지가 와 있었다. 발신자는 뉴저지에 살고 있는 42세의 재미교포 사업가로 최근 큰 수술을 받은 바 있었다. 그와는 예전부터 잘 알고 지냈지만 수술 소식은 뜻밖이었다.
그는 급하고 예민한 성격 탓에 오래 전부터 신경성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2개월 전부터 부쩍 증상이 심해져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뜻밖에도 콩팥에 암이 생겼다는 진단이 내려진 것. 콩팥암은 서양이나 한국에서 모두 흔한 암은 아니었다. 한국의 콩팥암 발병율은 1.3%. 암 발병율 17위에 해당될 정도로 드문 케이스다.
의사가 서둘러 수술 날짜를 잡으며 제법 큰 수술이 될 것이라고 말하자 그는 덜컥 겁이 났다. 하필 삼재가 나가는 해에 암 수술을 받는다는 것도 불안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뉴저지 후암정사를 찾아가 '당장 구명시식을 해야 한다'면서 급하게 나와 연락을 취했다.
나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 날짜를 보니 그가 수술을 받는 동안 한국에서 구명시식이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수술 당일. 장시간의 마라톤 수술이 시작됐다. 같은 시각 한국에선 그의 쾌유를 비는 구명시식이 올려졌다. 팽팽한 긴장감이 두 나라 사이를 오갔다.
24시간 뒤, 그가 회복실에서 깨어나자 가족들은 얼싸 안고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가장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하며 꼬박 병실을 지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반신 감각이 살아나지 않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겨우 눈만 뜨고 입만 열 수 있을 뿐 시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3일째 되던 날 밤이었다. 그날따라 병동은 유난히 고요했다. 침묵의 무게에 눌려 스르르 눈을 감았는데 그 때였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느낌의 환영이 펼쳐졌다. 분명 밤인데도 태양처럼 환한 빛이 자신을 향해 내리쬐었다. 오색찬란한 빛에 취해 정신을 놓으려던 찰나 빛을 가르며 세 사람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나머지 한 명은 바로 나였다고 한다.
세 사람은 그에게 "당장 일어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졸려서 일어날 수 없다"며 한사코 누워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내가 그 앞에 바짝 다가가 "빨리 일어나십시오"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순간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났더니 소리치던 세 사람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
눈을 떠보니 분명 침대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혼자서는 물도 못 마시는 중환자가 어떻게 일어나 앉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튿날 그는 혼자서 화장실을 갈 정도로 병세가 호전됐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구명시식 후 어떤 영가가 나를 도와줬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법사님의 호통 소리에 놀라 침대에 앉게 된 날, 모든 것이 이상했습니다.' 그가 입원해 있던 병실은 1인실이 아니었다. 워낙 예민한 성격이라 다른 환자들의 신음소리에도 자주 잠을 깨곤 했는데 그날따라 신음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또 한 시간에 한번씩 병실에 오는 간호사도 그날따라 오지 않았다. 항상 켜 있던 TV까지 꺼져 있었다.
가족들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 병원을 찾았던 가족들은 경비원의 저지로 들어오지 못했다. 평소 같으면 아무 문제없이 들어왔을 텐데 그날따라 '너무 늦었다'면서 끝까지 못 들어오게 했다. 환자 혼자 병실에 있다고 생각하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시각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는 빛 속에 나타난 세 사람이 자신을 구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완벽한 환경을 만든 뒤 영계의 기적을 선사했다고 말이다. 귀신은 공짜밥을 먹지 않는다는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는 그는 현재 빠른 속도로 회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