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Selmer(셀머)사가 1954년에서 1974년까지 제작하였던 마크식스는 생후 48년, 사후(?)2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세계 색소폰시장의 최고 인기제품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지금도 계속 올라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과연 마크식스는 어떤 악기인가? 왜 50년이 다된 녹이 쓸고 이곳저곳 흠집도 있는 악기가 최고명품의 권좌에서 도도하게 폼을 잡고 있는 것일까?
이 기회에 하나,둘 그 감추어진 비밀을 파헤쳐 보기로 하자.
아시다시피 저는 악기전문가도 아니고 마크식스 Expert(원 생산국인 프랑스 보다 일본,미국에 식스 전문가가 더 많다)는 더더욱 아니지만, 비록 얄팍한 지식이나마 어차피 색소폰과 인연을 맺으신 우리 회원 여러분들께서도 눈높이의 앎을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글을 올립니다. (그런 만큼 어떤 경우에도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주제의 꼬리를 살짝 틀어서 색소폰을 즐기시는 우리 동호회원들의 유형을 이제마(李濟馬)선생식의 사상(四象)분류법의 유사형태로 한번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째는 기강기강(器强技强)으로 악기에도 밝고 연주테크닉도 뛰어난 경우이니 양반가문 최씨성을 가지신 모학교 선생님이 해당되고, 둘째는 기강기약(器强技弱)이니 악기에는 관심이 높으나 연주 실력은 형편없는 경우로서 또다른 최모가 여기에 속한다. 세번째 부류가 기약기강(器弱技强)으로서 악기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오로지 연주에만 신경을 쓰는 형이니 이는 마치 여자를 사귈때 인간적인 감정의 교분에는 관심이 없이 오직 ‘짝짓기, 이층 만들기’ 에만 열중하는 쌕깔남과 같다 할 것이다. 다들 짐작을 하시겠지만 안모씨, 김모 고문님 등이다. 네 번째가 가장 문제가 많은 경우인데 기약기약(器弱技弱)이다. 이것저것 집중은 안하고 왔다 갔다만 하는, 인간미는 좋으나 실속은 전혀 없는 형이다. 다행이 우리 회원님들 중에는 비스~읏 한분들은 있어도 딱 해당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쏭모,꽉모씨가 조금 위험함)
자기가 어디에 해당되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기왕에 색소폰을 들었고, 어루만지고, 침을 바르기 시작 했으면 색소폰이란 악기의 역사적인 고찰과 기능적인 비교내용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다면 기술의 완성도도 더욱 깊이가 있을 것이다.
서론이 길어졌다.
자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 보자.(계속)
1.색소폰의 약사(略史)
수업의 첫시간은 색소폰의 간략한 역사로 부터 시작하자.
밸기에 태생의 프랑스인 Adolphe Sax(1814-1894)가 처음 발명하였기 때문에 색소폰(Saxophone)으로 이름 붙여진 이 매혹적인 악기는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인 1842년에 최초로 제작되었다.(우리는 장죽이나 지게 작대기로 바가지 두드리며 흥타령을 읊던 시절에 코큰 애들은 이렇게 앞서갔네요)
아버지가 악기제조상 이었던 관계로 일찍부터 다양한 악기를 제작하고 Test 하곤했던 Sax는 현악기의 유연함과 목관악기의 다양한 음색 그리고 금관악기의 풍부한 음량을 고루 갖춘 악기를 만들고자 많은 실험을 하였다.
갖은 실험끝에 1842년의 어느날,마침내 오늘의 Seven Brasses가 있게한 우리의 호프 '색소폰'이란 옥동자가 탯줄을 끊고 복식호흡 크게하곤 Long Tone을 불어재낀 것이다.
색소폰 가족에는 최초로 제작된 Bass 색소폰을 필두로 Contra Bass,Baritone, Tenor, Alto, Soprano 및 Sopranino 등의 다양한 음역과 음색을 자랑하는 식구들이 있다. 일반 동호인 들은 Soprano, Alto, Tenor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Alto가 가장 무난하다.
아시다시피 저도 처음에는 Alto로 시작했다가 Stan Getz나 Sonny Rollins의 부드럽고 유연한 소리의 혼에 매혹되고 때로는 강진한(iTV 악단장)의 카페연주곡에도 혹하여 미처 Tone이 자리 잡기도 전에 Tenor로 바꾸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Tenor와의 교제기간을 좀 오래 하고 싶었지만.......... 어이구우~~ 지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김모 고참의 학대,이지메,성희롱,공갈,협박,압력,유혹,마타도어,꼬집기,비틀기.....에 견디다 못해 다시 Alto 나라에 합류한 기억이 지금도 끔찍하다.(그때 내 고통을 방관만 했던 모씨,모씨 그리고 모모모모씨들 언젠간 당한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 처음에는 반대론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치기도 했지만 몇 년간의 투쟁과 저항을 견디면서 우리의 연인‘색소폰’은 드디어 1846년 3월에 프랑스정부의 공식 특허를 받으면서부터 본격적인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한편, 유럽을 주무대로 색소폰을 보급하던 Adolphe Sax는 점차 바다건너 큰 시장인 미국으로 눈길과 발길을 돌리게 된다. George Bundy(후에 Bundy Selmer를 만든 인물), E.A.Lefebre(유명 연주자 이며 최초의 미국산 제조자)등 몇몇 거래선 들과 친분을 돈독히 하면서 본격적인 시장 확대가 이루어진다.
미국에서는 색소폰이 1889년에 Indiana주의 Elkhart에 있는 악기공장인 CONN사에서 최초로 제작되었고, 이 공장의 제작주임 이었던 Ferdinand 'Gus' Beurscher가 1895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흔히들 ‘부샤’라고 부르는 제품)를 설립하면서 이후의 King,Martin사 제품 그리고 1922년도 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프랑스의 Selmer와 함께 전세계의 색소폰 시장은 군웅이 활거하는 전국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지금의 LG전자가 있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박통시절의 ‘농촌에 라디오 보내기운동’에 힘입은 바가 크듯이, 미국에서의 색소폰 보급,확대 또한 다소 정치적인 요인이 포함된다.
위에 언급한 CONN사의 설립자인 C.G CONN은 1892년에 미의회에 진출했고, 이때를 놓칠새라 미국육군에 연대단위로 Band를 두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하여 통과 시켜서 CONN악기의 큰 Boom과 색소폰 보급확산 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김씨성 가진 모모 학원원장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모든 쭉쭉빵빵 언니들은 모모학원 등록증이 있어야 결혼 허가를 한다는 것과 같을 것..##$$??.. 같진 않구나!)
농담 그만하고 다시 본강의로 돌아가자.(농담을 섞어가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도대체 이해를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자꾸 곁가지로 빠지네... 그게 누구누군지 자기들은 알지?)
비록 공인(특허)은 받았지만 여전히 냉냉하던 유럽시장 보다는 화끈한 미국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색소폰은 최고의 대중악기의 반열에 오를 태세를 갖추게 된다.
색소폰은 보급의 증대와 함께 기계공학적인 Mechanism도 개량과 진화를 거듭하게 되고, 때맞추어 불어온 Jazz열풍에 어울리면서 남부 New Orleans에서의 Blues를 시작으로 Dixieland band,Swing을 넘나들며 전문 Jazz악기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Jazz만 가지고도 한학년이 가니까 이 분야는 각기 자습 하도록 할것! 자습이 어려우면 압구정점의 김진호님께 무릎꿇고 한 수 배울 것!)
(계속)
2.Selmer제국(帝國)의 역사
고리타분한 세계사강의를 계속해 봐야 교실에 남는 건 낙서쪽지요! 들리는 건 코고는 소리(누구는 수술도 했지? 아마..)뿐일 테니 분위기를 좀 바꾸어 보자.
기왕지사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방향을 틀려면 수강생도 많고 다른집에서 청강생들도 기웃거릴 '색소폰을 잘부는 요령' 같은 것이 좋겠지만, 문제는 이걸 내가 지금 하기에는 한마디로 무리란 점이다.
앞에서 일찍이 두손번쩍 들고 고백했듯이, 워낙에 기약(技弱)한 편이라 내실력 형편무인지경인 것은 천호점 문화센터 청소아줌마도 다 안다. 제일 중요한 앙부쉬르도 Condition따라 왔다갔다하고 호흡도 어깨춤을 추며 허덕허덕 한다.
Scale도 몇몇 자주나오는 조(調) 이외에는 더듬수를 놓는 수준이다. 이러니 타고난 재주도 없는 주제에 연습도 열심히 안하면서 소리가 좋아지고 안정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욕심이다.
모쪼록 실력파 고수들이 자기의 어려웠던 과거를 되집어보는 경험론적 멋진 출강을 기대 해 보며 어쩔 수 없이 역사공부를 쬐끔 더 하기로 한다. 조금만 더 참으면 재미있어지니까 뒤에서 졸지 마세요!
앞에서 색소폰의 세계사를 중세의 춘추전국편까지 쭈욱 훑어 봤으니 오늘은 Selmer제국(帝國)의 화려한 역사편을 살펴 보자.
이 시간 역시 내 교육 방법인 망원경 다음 현미경 방식으로 하겠다.
먼저, 총괄편!
Selmer색소폰의 창업자인 Henri selmer(악기 Logo에 이름이 적혀있는 바로 그 사람)와 그의 동생인 Alexander selmer는 원래 프랑스에서도 알아주는 클라리넷 연주자 였다. 악기연주로는 부족한게 있었든지 1900년대초에 Henri는 부업으로 클라리넷 공방(工房)을 열었고,사업에 차차 자신을 얻어 아예 직접 제작업으로 뛰어 들었다.
한편, Alexander는 자유의 땅, 신천지 미국으로 건너와 Boston symphony, Cincinnati symphony, NY philharmonic orchestra 등의 쟁쟁한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수석 클라리넷 연주자로 맹활약을 하였다.
그런 한편으로는 사업수완을 발휘해서 NY시에 작은 소매점을 열고는 France에서 자사제품을 수입,판매 하기 시작하였다.
열심히 하니까 운도 따랐다. 1904년 미국 St. Louis에서 열린 '국제악기박람회'에서 Selmer의 클라리넷이 대망의 '금메달'을 획득! 세계적인 명품으로 Selmer의 이름을 드높이는 결정적인 계기를 맞게된다.
이후, Alex.는 날로 커지는 Henri의 사업을 돕기위해 1918년에 미국생활을 접고 Paris로 금의환향 하였다. 이때 Selmer는 미국에서의 독점판매권을 Alex.가 그의 제자이자 극장 Musician 이었던 George Bundy에게(헐값에) 넘겼다.
Bundy는 한 마디로 땡!잡은 거다.(후에 Bundy는 Selmer USA company를 설립하여 France selmer의 부품을 수입,그 유명한 American selmer 제품을 조립 생산함과 동시에 자체 Brand인 Bundy selmer를 만들게 된다)
1910년~1920년 사이에 Selmer는 주종목인 클라리넷에다가 Oboe와 Bassoon을 추가하여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그간 주문품만을 간간히 생산하던 색소폰의 가치와 향후의 시장성을 정확히 예측하여 1922년에 마침내 최초의 공식Series제품인 'Model 22'를 탄생시켰다.
날로 커가던 색소폰 사업은 1928년에는 Adolphe sax(앞에서 배웠으니까 누군지 아시겠죠?)의 색소폰 공장을 인수하여 본격적인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었다.
1941년에 Henri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Maurice가 가업을 승계하여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Selmer는 2차대전의 혹심한 불황기를 어렵사리 잘 넘기고는, 근대 색소폰 Mechanism의 표준이라 할 'Balanced Action' Series가 본격적으로 판매(1936년 부터 생산)되면서 세계최고의 확고한 기반을 잡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1954년에 역사적인 명품 'Mark vi'가 나오자 전세계의 연주자들은 이 악기의 우수성에 경악을 금치 못 하였고 50년 가까이 정상의 권좌에서 군림하면서 오늘날 동방의 쬐끄만 나라, 어느 이름없는 동호인 하나가 이글을 쓰기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후유~우 숨차다. 물 한잔 마시고 다음주에 다시 올께요(계속)
3.Selmer의 악기 군단(軍團)들
이제 이 보잘것없는 졸강(拙講)도 숨이 허덕대는 꼭지 고비에 다다랐으니 하산하기 전에 왜? 무슨 이유로? 이 못난 기약한(技弱漢)이 이런 시건방진 주제로 쉰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하겠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동호인 모두 음악이 좋고 색소폰이 좋고 사람이 좋기 때문에 오늘날 여기에 까지 왔으니, 악기(색소폰)중에 최고의 고전명품(Vintage)이라는 Mark vi가 도대체 어떤 악기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가 쓰는 악기의 역사를 알고, 악기의 기능과 악기를 볼 줄 아는 심미안(審美眼)이 생기면 이 또한 동호인 으로서의 기쁨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우리가 생각하는것 과는 달리 이름이 잘 알려진 전문연주가들 중에서도 자신이 애용하는 악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는 것이다.
물론, 비행기 기장(機長)이 비행의 공학적인 원리나 복잡한 기계,전자 System을 알아야 하고, Golf선수가 Golf Club의 탄성(彈性)이나 물리학적 원리를 꿰뚫고 있어야 하는것은 아니지만 안다면 더 좋은 것 아닌가?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글을 쓰는 본인이 절대로 맹목적인 Selmer 추종자는 절대로 아니고, 더더구나 Mark vi 이외에는 악기도 아니라는 논리는 더더욱 아니라는 점이다.
고전명품은 당연히 소리가 좋고 잘 길들여 지긴 했어도, 음정이 불안 할 수도 있고 운지(運指)가 불편한 단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당연히 악기의 질도 천차만별로서 신제품 보다 실패할 위험부담도 그만큼 크다는것도 정확히 직시(直視)해야 한다.
그렇지만 확실한 현실은 Modern Jazz의 본고장인 미국과 일본의 전문연주가 상당수(약 80%라함)가 사용하고 있는 악기가 바로 Mark vi 이며, 지금 이시간에도 동호인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가 이루어 지고 있고, 또 뜨겁게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는 유일한 악기도 바로 Mark vi 라는 것이다.
또 잡설이 길어졌다. 약(略)하옵고, 악기소개에 들어가자(시간관계상 Mark vi 이외에는 자세한 기능소개는 생략!!)
1)Selmer의 개발기
Selmer가 색소폰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04년 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여러 실험 과정과 전시용,홍보용,주문제작용
등을 약18년 정도(Serial no. 1~749)만든 다음에 최초의 공식 Series 제품을 만든것이 1922년에서 1925년 사이에 만든 Model22 (1922~1925,S#750~4450)이다.
이 모델은 Henri selmer의 싸인과 각종문양등 아주예술적인 조각과 세공기술을 자랑했으며, 색소폰의 매력에 마악 빠져들기 시작한 고급 소비자를 현혹 하기에 충분 하였다.
이어서 Model26(1926~1929 S#4451~11950)이 본격적인 대량 생산 되었고 26은 22에 비해 다소 무거운 소리가 나게 해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에 발을 맞추었다.
Selmer의 좋은 악기만들기에 대한 도전은 이 다음의 세종류(Cigar cutter/Super sax 1930~1933 S#11951~18700, Radio improved 1934~1935 S#18701~21750)에서 집중되고, 이들 제품들이 Selmer가 1920년대에 색소폰제품 시장에서 업계의 Leader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것이다.
이어서 1936년 부터 역사에 남을 획기적인 제품들이 출현하게 된다. (계속)
2)Selmer의 전성기
1936년에 개발된 Balanced Action(1936~1947 S#21,751~35,800)과 Super Balanced Action(1948~1953 S#35,801~55,200)은 Selmer의 전성기의 서막을 연 제품이다.
이후부터 현재까지 Selmer가 만들고 있는 명품들의 표준모델이 된 것도 바로 이 Balanced Action(BA)이다.
1950년대에 들어서 Buffet(Dynaction)나 SML(Rev.C)등의 제품들이 경쟁에 뛰어들때 까지 BA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특히 화려한 문양(紋樣)이 멋진 지금도 귀하게 여겨지는 Vintage 명품이다.
이어서 1953년에 이 글의 주인공 Mark vi(1954~1974 S#55,201~220,800)가 탄생했다.(상세한 설명은 뒤에서..)
3)Selmer의 안정기
이후 vi의 후속모델인 Mark vii(1974~1980 S#220,801~315,500)이 개발되었으나, 너무나 화려했던 조상 탓에(?) 크게 빛을 못보고 생을 마감 하였다.
1981년도 부터는 너무나 치열해진 국제적인 경쟁(특히 일본의 YAMAHA)을 감안, Super80 Series1,2,3(1981~2,3는 현재까지 생산 S#315,501~ )를 생산,판매하기 시작 하였다.
Super80 Series도 역시 Mark vi의 복원 모델로서 개발되었으며 그래도 vi에는 못미친다고 판단한 Selmer사는 2000년에 Balanced Action 과 Mark vi의 순수 복원품인 Reference 36과 54를 새롭게 개발하여 시판을 개시 하였다.(Tenor에 한정)
자아~ 이제는 복잡하고 지루한 족보캐기는 그만하고 Mark vi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 결론의 시간, 하산 할 시간이 가까워 왔다.
위의 자료에서 보듯이 '6'는 1974년에 생산이 끝나고 Mark vii으로 명함을 바꾸었지만, Alto와 Tenor이외의 모델들은 Super acion 80 모델로 바뀔때 까지 '6'의 명패를 그대로 달고 다녔다.
이전의 모델인 Super Balanced Action 에서 각종 Key의 모양과 조작 Mechanism을 훨씬 부드럽고 편리하게 개량하여 한단계 Upgrade 시켜 탄생된 것이 바로 '6' 이다.
'6'는 색소폰 시장에 소개 되자마자 프로연주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게 되고 이후 3선,4선개헌을 거쳐서 장기집권을 하게된다.
'6'의 특장(特長)은 여러가지로 서술될 수 있지만 무었보다도 a.가장 효율적인 인체공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근대 색소폰 형태의 표준 모델이 된 점(구조) b.가장 중요한 음색,음질,음향등이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점(성능) c.재질이 워낙 튼튼하고 좋아서 잘 손상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만일 심하게 상해를 입는다 해도 쉽게 수리가 가능 하다는 점(재질)등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6'는 20년의 통치기간동안에 시대적인 요구와 자체적인 기술개발에 따라 조금씩 제품의 질(質)을 변화 시켜 왔는데 대체적으로 1965년을 분기점으로 한다.
초기에는 예쁘고(약간은 어두운) 고른 소리, 즉 클래식 취향에 맞는 편이었지만 점차 미국시장을 겨냥한 밝고 Powerful한 소리의 Jazz적인 악기로 변화 되어 갔다.
색소폰이란 악기는 500개에 달하는 부품의 결합과 3000번이나 되는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으로서 전자, Computer의 자동화 시대인 지금도 수공(手工)이 많이 가는 편이다.
그러니 그 옛날 '6'의 시대에는 더더욱이나 사람의 손을 많이 필요로 했다. 게다가 주문 수제품이 많았기 때문에 악기마다 특징도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제품개발의 큰흐름은 일관성이 있었는데, Serial no. 8만번대(1958~1960)부터 Neck의 내경(內徑)이 약간씩 넓어지기 시작해서 클래식과 Jazz에 모두 효용이 있는 악기로 개선되어 간다.
10만5천번대(1963년대)에 오면서 Neck의 내경과 Ring의 디자인이 다시 작은 변화를 보였는데 아주 밝고 약간은 거친 소리의 다양성을 갖게 된다.
13만번대에 오면서 다시한번 Neck의 내경이 조금더 넓어져서 연주 하기도 훨씬 더 쉽고 밝은 소리가 나게 되었는데,13만번대 에서 15만번대(1965~1968년)의 제품들을 '6'중에서도 최고의 명기(名器)시대 라고들 말한다.
15만번대가 지나면서 '6'는 약간씩 재질(Metal)이 변화 되어서 이전보다 무게가 조금 가벼워 졌다. 이에따라 소리 또한 밀도(密度)있고 간결했던 장점이 약화되어 소리는 커졌지만 음향의 짜임새는 조금 줄어 들었다.
따라서 요약을 한다면 대체로 15만번대 이전의 전기 모델들이 좋은 점수를 받지만 일부 연주자들은 오히려 소리의 파워가 좋은 후기(後期)에 생산된 '6'를 더 선호하기도 해서 18만8번대 에서 19만2천번대(1971년)와 20만2천번대(1972년)의 제품을 최고로 치기도 한다.
이 문제는 연주자 본인이 선호하는 음색(音色)이나 추구하는 음악의 장르에 따라 판단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견(異見)이 있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6'의 재질이 이렇게 뛰어난 이유가 2차세계대전당시 전쟁에서 쓰인 탄피와 총신,포신 등을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이라서 그렇고 더 이상 못 만든 것은 '6'생산용 기계(Mold)가 다 닳아서 그렇다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6'를 굳이 그 쓰임의 용도에 따라 평가해 본다면 다른 악기, 즉 Big band용 으로는 Conn의 M 시리즈가 나을 수도 있고 순수 Jazz용은 King의 Super 20, 클래식용은 Buescher의 Aristocrat이 더 좋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6'는 각기 필요한 용도에 따라 고르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종합평가상 최고의 악기인 것이다. (계속)
2)American selmer(A6)
어물어물 넘어가다 보니 어언간 하산 할 때가 되어간다.
악기도 잘 못 불면서 이런 글을 올리기가 어쭙잖아서 처음에는 망설망설 하고 민숭찔끔 했지만, 연재동안 많은 분들이 격려 해 주신덕에 종착역 까지 오게 되었다.
모쪼록 우리 Brasses 동호회원 여러분의 색소폰 사랑,음악사랑에 조금 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덜 부끄러울 것 같다.
'6'편을 마무리 하면서 'American selmer(A6)'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France제 Original Selmer의 부품을(때에따라 반제품 상태로) 수입해서 조립,생산한 미국시장용 Made in france selmer를 American selmer라 한다. 따라서 Mark vi인 경우에는 약칭으로 American vi, 더 줄여서 A6라고 부른다.
앞에서 설명 했지만 Selmer는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발 하면서 보다 미국적인 악기,즉 Jazz에 맞는 악기를 만들 필요를 느껴서 A.selmer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A.selmer는 Bundy(땡! 잡은 그 사람 기억 하시죠?)가 독립적으로 미국내에서 미국산 재료와 양키들의 손으로 만든(지금도 만들고 있는) Selmer USA 제품과는 완전히 다르다.
Selmer가 A.selmer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은 Super Balanced Action 시대(1948~1953)다. 이때부터 알금알금 미국내 Bundy의 악기공장(Elkhart,Indiana)에 보내져서 양키들의 입맛을 맞추어온 Selmer는 '6'시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A.selmer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F.selmer와 A.selmer는 각기 개성을 자랑하며 시장을 석권해 왔는데 소비자의 Needs에 따라 각기 선호하는 것이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체적으로 A.selmer를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한가지 어려운 문제는 악기의 외관을 보고서 A6 인지 F6 인지를 구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A6가 F6에 비해서 색이 좀더 짙고(Rose gold) 문양도 훨씬 화려한 편이다. A6는 Powerful한 소리가 장점이어서 Jazz의 본고장 미국인의 취향에 딱!이었다.
A.selmer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면,프랑스에서 미국 Indiana주(州) Elkhart의 공장으로 보내진 물건은 도착 즉시 Bundy가 고용한 장인(匠人)들에 의해서 우선 완전히 분해된다.
그리고 나서 복잡하고 철저한 검사과정을 거친 다음 문양도 조각하고 Lacquer칠도 새로한 뒤 재결합 되어 완성품이 된다.
완성된 악기는 하나하나 Test를 해서 가장 뛰어난 최고품은 Selmer의 후원을 받는 전문 연주자용 으로 쓰이고 그 다음 등급품은 NY이나 LA의 대형 점포용으로 그 나머지가 일반 Shop으로 공급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색소폰의 명품 '6'는 Selmer사를 아니 세계의 색소폰 시장을 대표하는 주전선수로 확실히 자리 잡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계의 각종 색소폰 경매 Site와 악기점에서 또는 동호인들 간에 가장 따끈따끈하게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상 얼치기로 나마 Selmer의 Mark vi를 중심으로 색소폰의 세계사를 한번 돌아다 보았다.
졸필을 마감 하면서 동호인 여러분들께 이 기회에 악기의 선택에 관해서 몇몇 유의 하셔야할 사항들을 느낀데로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 Vintage를 선택할 때는 반드시 전문 연주가나 레슨 선생님과 동행해서 Test를 하는 것이 좋다. Vintage 제품은 신제품과 달리 악기마다 특징이 다양하고 출생후의 성장내력이 어떠냐에 따라 상태 또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둘째, 악기의 구매는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악기사를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제품도 믿을 수 있고 A/S도 완벽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 으로는 낙원의 새음악기사와 시온악기사(Vintage전문점)를 추천 하고 싶다.(어! 이거 간접광고 아닌가??)
셋째, 초보자라도 형편이 닿는다면 고급악기를 선택 할 것을 권한다. 소리를 같이 만들어 갈 수도 있고 장기적인 투자효과도 있기 때문이다.(이 경우 반드시 형편이 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퍼가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