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하순 지금이 열매가 익을 때
미국담쟁이
담쟁이덩굴
시골 토담에는 담쟁이덩굴이 있어야 고풍스런 맛이 난다. 그러나 토담이 시멘트 담으로 바뀌면서 담쟁이덩굴은 퇴출당했고 줄장미와 능소화가 담장나무를 대신하고 있다. 담쟁이덩굴은 숲속 나무 등걸을 타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미국 작가 오 헨리의〈마지막 잎새〉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단편 소설인데 “가난한 화가 지망생 존시는 폐렴에 걸려 죽어가고 있으면서, 이웃집의 담쟁이덩굴 잎이 모두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다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몹시비바람이 휘몰아친 다음날 틀림없이 나목(裸木)으로 있어야 할 담쟁이덩굴에
마지막 잎새 하나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삶의 의욕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기운을 차린 존시에게 친구인 수우가‘그 마지막 잎새는 불우한 이웃의 늙은 화가가 밤새워 담벼락에 그려 넣은 진짜 세상의 마지막 잎새’라고 말해 준다.
담쟁이덩굴 잎은 가을이면 단풍나무를 시샘하듯 붉은 단풍이 아름답다. 담쟁이덩굴의 단풍은 단번에 잎을 떨어뜨리는‘떨켜’가 잘 생기지 않아 바로 떨어지지 않고 겨울에 들어서야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선시대 선비들은 담쟁이덩굴이 다른 물체에 붙어서 자라는 것을 두고 비열한 식물로 비하했다. 인조 14년(1636)에 김익희란 이가 올린 상소문에“빼어나기가 송백(松柏)과 같고 깨끗하기가 빙옥(氷玉)과 같은 자는 반드시 군자이고, 빌붙기를 등나무나 담쟁이같이 하고 엉겨 붙기를 뱀이나 지렁이같이 하는 자는 반드시 소인일 것이요”라고 하여 담쟁이덩굴은 등나무와 함께 가장 멸시하던 소인배에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