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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학, 영원한 현재진행형! 원문보기 글쓴이: 動友齎
이야기와 시, 시조가 있는 풍경(1)
남진원
목차
( 목차1. - 19. 이야기와 시, 시조가 있는 풍경(1) )
( 목차20 - 34. 이야기와 시, 시조가 있는 풍경(2) )
1. 울밑에 선 봉선화 1
2. 난의 향기 1
3. 매화가 있는 풍경 3
4. 풍물치는 여울목 5
5. 우주와의 깊은 숨쉬기 6
6. 인생은 외로움이라 8
7. 평안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시 11
8. 무채색 경전 14
9. 아름다운 한의 덩어리와 검은 소 16
10. 삶의 곡진함 20
11. 입명을 따르는 시심 24
12. 무욕빈자의 시 28
13. 적출적멸의 도 31
14. 여유와 여백의 자유로움 35
15. 허허진경의 세계 39
16. 무위. 사랑. 삶 43
17. 눈물은 슬플 때 할 수 있는 큰 말 46
18. 백아절현과 용담지촉 50
19. 무릉도원 이야기와 어떤 가난 54
20. 산낙을 배우다 59
21. 술과 시조에 깃든 풍류 63
22. 깊이를 없앤 고요와 도가의 미학 67
23. 미늘 없는 시조의 낚시를 읽다 72
24. 눈. 달 77
25. 시조 속에서의 사랑 81
26. 허구의 아름다움 86
27. 사색의 깊이에 빠지다 91
28. 매화를 품다 96
29. 소인배는 체념을 군자는 달관을 100
30. 평범해 보이는 듯 하지만 104
31. 가을에 생각나는 월산대군의 시조 107
32. 천년 학이 춤을 추고 111
33. 봄빛 머금은 시조 114
34. 바람소리와 흰 달빛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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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밑에 선 봉선화
봉선화
남진원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 살던 마을
고향집 울밑에 선 봉선화 한창 피면
노을도 붉게 물든 채 한참 동안 서성였지.
우리네 사랑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삶 속에 스며있습니다. 흙과 나무와 천연의 생명수와 함께 해 온 삶이 우리네 삶이고 사랑입니다.
나는 고향 마을인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골지리(지금은 문래리로 변경)에 있는 문래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내 고향집 울밑에는 봉선화가 많이 피었습니다. 봉선화를 생각하면 향토색 짙은 그리움의 늪으로 빠져들곤 하였습니다.
전에 내가 살던 곳은 옥천동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텃밭이 조금 있었습니다. 단층 목조 슬라브 집이어서 여름에는 억수로 덥고 겨울에는 난방비가 장난이 아닌데도 땅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덕분에 나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텃밭에 상치, 고추, 가지, 토마토 등을 심어놓고 그걸 들여다보는 재미로 지낼 때가 많았습니다.
텃밭 담 밑에는 봉선화도 줄줄이 피어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건 봉선화 핀 걸 보면 내 유년의 여름 고향집으로 성큼 다가선 나를 발견합니다. 고향의 여름은 참으로 넉넉한 곳이었습니다. 뒷 산등성이를 넘으면 산딸기가 지천으로 깔려있고 마을 앞 논으로 흐르는 봇도랑 양쪽에는 커다란 뽕나무가 달콤한 오디를 검붉은 빛으로 익혀내고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서늘한 저녁이면 별이 쏟아질 듯 빛나고, 옥수수와 호박 익는 냄새가 섞여 여기저기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마을은 한 폭의 수묵화였습니다. <봉선화>에는 이런 나의 여름 향기가 묻어 빛나고 있습니다. 나는 <봉선화>를 통해 잠들었던 내 고향을 그려내고 고향에 스며있는 무한한 우주의 생명적 에너지를 찾아낼 수 있다는데 큰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2. 蘭의 향기
난초를 바라보며
蘭 화분 곁에 두니 저절로 수수해져
단아한 맵시가 미인과 같아라
한 모금 녹차 향기가 흥취를 더하네
자동차가 거대한 기계 띠를 이루며 내달리고 도시 하천은 생명을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거리에서 부딪치는 사람을 보면 옷차림도 한 가지, 얼굴 모습도 한가지입니다. 그 사람들 얼굴에서 따뜻함이나 신선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전에는 가끔 가난한 모습이긴 했지만 깨끗한 옷차림을 한 수수한 여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내 마음도 어느새 문명에 찌들어서일까? 햇볕을 받고 창가에 앉아 있는 난을 보면 절로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조용한 시골 여인네 같으면서도 단아한 맵시가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나는 난을 좋아하는데 특히 동양란을 좋아합니다. 서양란은 외양은 제법 그럴듯하고 화려하지만 사로잡는 끌림이 없습니다. 동양란은 떠들썩하게 크지도 않을 뿐더러 꽃의 향이 은은하여 더욱 마음에 듭니다. 난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잎 새의 부드러움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난의 곁에 머물러 있으면 큰 깨달음이 없어도 좋습니다. 그저 내 마음이 난 곁에서 무심으로 깨다가 졸다가 하면 그만입니다.
난처럼 향기를 발하는 좋은 작품은 마음을 위로해주고 혼탁함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좋은 작품처럼 좋은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서는 좀처럼 향기를 맡기가 어렵습니다. 세월 탓일까? 뜻이 서로 멀기 때문일까? 하고 반문을 해 보기도 합니다.
그렇지요, 사람을 만나도 서로 뜻이 멀면 생각 못하는 돌이나 불덩어리와 다를 게 없지요. 공부를 많이 해서 알려진 유명한 학자나 사회활동을 많이 하여 인정받는 문학, 예인을 만나보면 똑똑함은 있으나 다른 한쪽이 어둡습니다. 그래서 소통이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운 게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은 오만한 권위가 사람을 멀리하고 재력이 있는 사람은 더욱 많은 것을 얻기 위한 탐욕의 미망(迷妄)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없는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은 어떤가요? 제대로 배우지 못해 막돼 먹은 사람, 지위가 낮아 출세욕에 눈이 먼 인간, 돈이 없어 더욱 탐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언제나 외로운지 모릅니다. 외로움은 그리움을 동반합니다.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보면 허전하고 쓸쓸해집니다. 공유할 부분이 적기 때문입니다.
거리에 나서도 사람
산 위에 올라도 사람
발길 닿는 곳마다 사람인데
푸근히 마음 둘 사람,
만나기가 쉽던가
코가 비슷해 말을 건네 보고
귀가 비슷해 악수를 하지만
이게 아니야
허전해지는 세상살이
- ‘세상살이’ -
사람의 행복은 정신세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지, 물질에 집착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물질은 삶을 잘 살아가게 하는 필요한 조건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욕심쟁이들은 물질을 많이 얻어야 행복하게 사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니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그리고 깊은 단절감 속에 쓸쓸하게 살다가 죽어갑니다.
탐욕과 집착의 세상살이에서 어지럽게 뒹굴다가 난초를 대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비껴가는 햇살은 난초와 어우러지며 소박한 아름다움과 은근함을 함께 비쳐줍니다.
난초를 바라보면 평화롭습니다. 생명이 시들어가는 문명세계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너그러움을 일깨워줍니다. 마치 깊은 산중에서 녹차 향을 음미하는 것 같습니다.
3. 매화가 있는 풍경
梅妻鶴子
임포는 서호 안에 초당을 지어놓고
매화를 처로 삼고 백학을 날게 하니
구름과 햇빛이 모두 그곳에서 놀더라
초당의 매화나무 2월이면 망울 부퍼
설렘 반 기대 반 종종걸음 찾아가니
그대도 나의 妻인가 눈빛 반겨 웃는다
입동의 절기가 시작되면 계절은 겨울이지만 이미 양기(陽氣)가 꿈틀거립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겨울을 생각하면 그 너머에 기다리고 있는 봄이 있어서 즐겁습니다.
봄 속에는 기쁨과 설렘이 있습니다. 매화나무 꽃망울의 가지를 만져보고 싶은 것은, 겨울이란 아픔과 고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계절이 시작된다는 것은 새로운 움직임을 뜻하는 것이고 거기엔 새로운 생명감이 핏줄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겨울은 사람이 생활하기에 추운 계절이라서 별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겨울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겨울을 들인다’, ‘겨울을 세운다’는 뜻으로 쓰이는 입동(立冬)’이란 말을 더 좋아합니다. 세운다거나 들인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적극적인 의지 같은 것이 스며있어서 색다른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년의 고향집 겨울은 매우 추웠습니다. 세수를 하고 문고리를 잡으면 문고리가 쩍쩍 달라붙어 손이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새벽녘에 어머니는 가마솥에 쇠죽을 끓이느라 바쁘셨습니다. 아궁이엔 송진 내음을 내며 장작이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쇠여물이 끓으면서 아랫목도 자글자글 끓었습니다. 이윽고 할머니께서 쇠여물을 푸면 부엌이 온통 희뿌연 수증기로 가득하였습니다. 황소가 열심히 여물을 먹을 즈음 꽃잎 같은 눈이 내리면 제격이었지요. 눈은 회색빛 나뭇가지 사이로 자꾸 내리고 길은 숨어버렸습니다. 굴뚝에선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쌓인 눈 때문에 마을은 점점 깊어져갔습니다. 고향집 초가지붕 아래엔 소년이 생각을 뒤집어쓰고 그 눈을 맞고 있습니다. 소년은 회색빛 목도리를 두르고 문밖을 나섰습니다.
1960년대, 그때엔 정말 눈이 집의 지붕을 덮을 정도로 많이 내렸습니다. 그렇게 많은 눈이 와도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눈 굴을 뚫으며 이웃집을 드나들며 생활을 이겨냈습니다. 눈이 푹 쌓이면 누룩으로 빚은 막걸리를 먹고 새끼를 꼬며 겨울밤을 지새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엔 너무 편하게 지내려고 하다 보니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안절부절 못합니다. 조금만 자신의 이익에 어긋나면 머리에 띠를 두르고 투쟁을 벌입니다. 좀 어렵게 살아도 참지 않습니다. 그저 욕심을 내어 제 것 챙기기에만 골몰합니다.
내게는 겨울이란 상쾌한 낭만입니다.
겨울의 끝에 있는 봄! 그리고 설렘!
설렘은 삶의 생명력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싱싱한 생명력을 느끼는 것은 설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렘’은 진시황이 찾았다는 불로초보다 좋은 명약인 줄을 아는 사람은 압니다.
강릉의 초당동에는 허난설헌 생가가 있습니다. 그 주위에는 오래된 벚나무도 있지만 매화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었습니다. 겨울철, 회색빛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던 때처럼, 이른 봄이 되면 나는 그곳 매화나무 가지에서 피어나는 매화를 보려고 갑니다. 힘든 세상사 잠시 내려놓고 토담집에 비치는 2월의 볕을 벗 삼아 막걸리도 한잔 쭈욱 들이키면서 말입니다.
(지금은 아쉽게도 허난설헌 생가에는 매화나무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모두 베어버렸습니다.)
4. 풍물 치는 여울목
또 한 방울 떨어지는 소리! 매미가 바둑돌을 놓듯 소리를 놓아둡니다. 그 무늬 사이에서 자명깨명 대나무 잎을 보는 재미를 누가 옛스럽다고 말 할 것인가요.
매미소리를 들으며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 사이에 끼어든 것을 생각하고 또 그 속에 눈뜨고 있는 시조 한 수가 떠오릅니다.
내 못 잴 여울목에 눈썹이 하얀 사랑
철마다 단비 내려 무성하게 자라나도
망치여 가슴의 못질, 앓을수록 푸른 깊이
- ‘여울목’ -
이눔의 시조 한 수 때문에 절망하고 환장한 적이 있었지요. 그럭저럭 20여년이 훌떡 지나버렸다. 절망은 늘 서성이던 사랑처럼 매달렸습니다.
내 이제 매미소리에 눅눅하게 묻은 절망에 대해 말문을 열고자 한다.
살다보면 미운 친구처럼 찾아오는 게 절망입니다. 절망은 육신을 지치게 하고 영혼을 피폐하게 합니다. 사람살이를 하면서 어디 몇 번 씩, 절망을 만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요? 크건 작건, 무겁던 가볍던, 절망을 만나면 유쾌하지가 않습니다.
나 또한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절망에 시달리며 지냅니다. 불쑥불쑥 찾아드는 절망이란 고달픈 친구, 나는 허기진 강 언저리에 기대어 방랑하다가 물풀처럼 떠다니는 잠을 자기도 한다.
몸과 정신이 극도로 궁핍했을 때 나는 분노하고 또 분노하며 잘못의 원인을 다른 사람과 사물에게 돌리며 악귀 같은 생각에 날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절망의 깊은 어둠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절망 속에서 만난 것은 이호우의 <바위 앞에서> 였습니다.
‘바위 앞에서’는 내게 과분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절망을 배워 바위 앞에 서는 마음은 절망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비 오고 바람 부는 무수한 세월의 주름살을 새기는 바위 앞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바위도 세월도 아파서 또 한 줄 금을 긋는 수용(受容)의 미학을 나는 배울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상처를 아파하는 미움의 덩어리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인가요.
절망이 데리고 가서 나의 손에 쥐어 준 것은 ‘불안’이라는 지팡이였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절망의 늪에서 불안의 지팡이에 의지하며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리고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적적(寂寂)하고 멸멸(滅滅)하였습니다. 무엇이 없으면서도 무엇이 가득하였습니다. 그 사이를 뚫고 무엇인가 또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빗소리였습니다. 빗소리가 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빗소리를 흠뻑 맞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몸은 앉아 있었지만 시골 마을 고향의 여름 하늘 아래 누워 있었습니다. 매미소리가 들렸습니다. 푸른 파도 소리 같은 바람이 숲을 흔들고 계곡 사이에서 또 무엇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빗소리 같은 물소리였습니다. 물이 계곡 사이를 열어젖히고 내려옵니다. 산 밑에 모여 소(沼)를 이루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모난 돌을 쓰다듬기도 하고 막힌 곳에서 고였다가 넘쳐흐르고 바람보다 부드러운 살이 되어, 가는 곳마다 그 모양새로 변해 흐르면서 멀어져갔습니다. 딱딱한 것 앞에서도 소리 없는 부드러움으로 감싸고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물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물이 되거라!’물이 되거라!’ 절망은 어둠 속에서 조용한 소리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강기슭 숲 더미 아래에서 차를 마시며 매미소리를 듣는다.
5. 우주와의 깊은 숨쉬기…
※ 선정주의 ‘비시(非詩).75’
‘ 저 청청한 슬픔은’
선정주 시백(詩伯)의 ‘비시(非詩).75’는 가을에 읽으면 더욱 맛이 난다. 그리고 청청한 슬픔의 즐거움에 빠진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두 가지 즐거움을 더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고요하고 적적한 즐거움이고 천부경의 ‘삼일신고’에 나오는‘ 하늘이 전하는 존재와 비존재의 명상적 아름다움’이다.
아무 미동도 없고 퇴색도 않는 것은 이름 붙일 수 없다고 한다. 왜 이름붙일 수 없는 걸까? 아름다움의 끝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노자가 말한 적적하고 고요한 즐거움이며 홀로 있어도 변함이 없는 무위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무위(無爲)의 즐거움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노는 난봉꾼이나 백수 건달이 즐기는 즐거움이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두루 통하고 청청하면서도 슬픈 빛깔의 즐거움이다.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不殆 可以爲天下母 五不知其名 字之曰道
-도덕경 25장-
슬픔 하나 만을 보면 답답하고 처량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괴로움과 눈물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홀로 적적하고 고요하여 변함이 없는 상태는 슬픔의 최고 경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청청한 슬픔이기 때문이다.
蒼蒼非天 玄玄非天 天無形質 無端倪 無上下四方 虛虛空空 無不在 無不容
-천부경의 삼일신고 ‘천훈’편-
하늘에 대한 표현을 전부 ‘비(非)’자로 표현하였다. ‘창창하지도 않고 검지도 않다.’ 즉 푸른 것도 아니고 검은 것도 아니다 라고 하였다. 하늘은 형태도 없고 바탕도 없고 사방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부정에서 시작하였지만 텅텅 비어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고 어떤 형태로도 이루지 않음이 없다고 한다.
지극히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곳에 있지 않다. 지극히 아름다운 곳은 지극한 곳에 있지 않다. 그곳은 아름답지 않으며 지극하지 않으며 그래서 더욱 지극하고 아름답다. 시가 누리는 공간이 이와 같다. 시가 누리는 공간은 절대적 미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청청한 하늘빛이고 청청한 슬픔의 시간적 흐름이 이어져 있는 곳이다. 또한 지상의 것을 똑똑히 보는 살아있는 생명의 눈빛이다. 이 절대적 아름다움은 존재와 비존재가 어우러진 명상적 세상이다.
어제 모 시인과 문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시에는 정신의 깊이가 없다고 한다. 머리로 궁글리고 모방하고 비슷하게 짜깁기 해놓은 것이 태반이다. 아무 감동이 없다. 시를 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렵고 재미없는 게 시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쓰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한 권의 시집을 다 읽고 난 후에 오는 것이 무엇인가? 문학 전문지에 수록된 시들을 읽고 난 후에도 다가오는 것은 쓸쓸한 비애의 그림자 뿐이다. ‘어떻게 하면 남의 눈에 들려나’하는 인상도 짙다. 더욱 머리를 헷갈리게 하는 것은 좋은 문학상을 받은 사람의 시집이나 작품을 읽으면서 마음에 닿는 것이 없는 황당함을 느끼는 것이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럴 때엔 분노마저 느낀다.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는가?’하는 자성의 물음이 앞선다.
시를 읽고 쓰기 전에 인간과 사물에 대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시공을 꿰뚫으려 하는 형형한 눈빛이 있어야 한다. 끝없이 들어가도 그 깊이를 모르는 블랙홀처럼 시인은 ‘사유’라는 블랙홀을 거느리고 있어야 한다.
선정주 시백의 비시(非詩 )는 그 제목부터 시가 아님을 강력하게 내세운다. (우리들에게 던지는 강한 물음표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청청한 하늘빛은 그냥 그대로 청청하기만 하면 맛이 없다.(얼굴 예쁜 여자를 자꾸 보고 있으면 매력이 없어지는 것처럼…) 청청함에는 종소리의 울림 같은 여운이 들려와야 하는 법. 그것이 ‘청청한 슬픔’이다. 시를 다 읽지 않고‘청청한 슬픔’한 귀절 만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온통 두근거림으로 가득찬다. 조용히 전해지는 색 없는 종소리 그 울림처럼 말이다.
모든 계절이 다 좋지만 여름 뒤를 이어 오는 가을은 더욱 좋다. 물소리의 청량함도 기쁨이지만 달빛 아래 다듬이 소리는 또 어떤 가? 그 소리를 이젠 듣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달빛이 내리꽂히듯, 이 지상에 머무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가을 밤, 깊어가는 정취에 젖어 비시(非詩)를 읽는다.
비어 있어도 존재하지 않은 곳이 없고 어떤 모양으로도 이루지 못함이 없는 하늘은 바로 비인(非人), 비시(非詩)의 세상이다. 그곳에서 진정한 인간과 사물의 깊은 마음이 만나게 된다.
청청한 슬픔을 만나는 자리, 비시(非詩)가 있고 진정한 시가 있었다. 비시(非詩)여, 켜켜이 쌓아둘 수 있는 가득한 공(空), 간(間)에 있음이여. 거기에는 슬퍼할 수 있는 청청한 즐거움이 있었지. 그것은 우주와의 깊은 숨쉬기였다.
비시非詩 . 75•
• -저 靑靑한 슬픔은-
선정주
지극히 깊은 것은
청청한 빛을 띤다.
지극히 거룩한 것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지극히 아름다운 것은
형용할 수가 없다.
이 創造에 들지 아니한 청청한 하늘빛은
지상의 것을 똑똑히 보는 살아있는 視線이다.
구름도 맞설 수 없어 왔다가 되돌아간다.
아무 微動도 없고
退色도 않는 것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저 청청한 슬픔을
켜켜이 쌓아 둘 수 있는
空間으로 서 있다.
6. 인생은 외로움이라
※ 정완영 ‘고향생각’
‘望山記’
날이 갈수록 집안에 쌓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차가운 허전함과 외로움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만히 헤아려보면 따뜻함이 없어서이다. 집 안에 들어앉아도 딱히 대화할 사람이 없다.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 가고 사람이 있어도 대화가 없다. 대부분 컴퓨터 앞에 앉아 열중하고 있다. 심지어 화투도 인터넷으로 친다.
문 밖을 나서면 자동차들이 휑하니 달려가고 있다. 엄청 바쁘다. 자동차들이 서거나 달리는 걸 보면 차갑다. 자동차에 치여 죽던지 아니면 타던지 둘 중의 하나다. 덕분에 자동차 회사와 보험회사는 부자가 되었지만…. 길바닥은 모두 시멘트로 포장했거나 아스팔트로 포장하였다. 땅이 숨쉬기 거북하여 답답할 지경이다. 모두가 서로를 소통되지 못하게 닫아놓았다.
어렸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겨울밤이면 심심하여 새끼를 꼬기도 하고 그도 심심하면 이웃집을 찾아갔다. 밤에 이웃집에 놀러가는 것을 ‘마실돌이’라고 한다. 남의 집을 찾아가서 잡담을 늘어놓기도 하고 웃기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불시에 쳐들어가도 그날 저녁엔 그 집에선 먹을 것을 내놓는다. 옥수수엿을 내놓기도 하고 국수를 삶아주며 환대를 하였다. 이렇게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사람 사이 따듯한 정을 익혔다.
한마디로 사람의 정(情)이 살아 움직이는 때였다. 그래서 무심히 피는 봉숭아꽃 한 송이도 무심치 않았고 언덕배기를 내려오는 한가한 송아지 울음소리에도 저녁노을 같은 그리움이 묻어있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 식물과의 관계, 동물과의 관계는 모두‘정(情)’이란 이름으로 소통되었다.
우리네는 서러운 일이 있으면 달을 보고 서러움을 토로하였고 사는 게 고달프면 사람을 붙들고 목 놓아 울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이랴 텁텁한 막걸리 한잔에 시름을 훌쩍 털어 넣으며 세상을 포용하는 멋이 있었다.
마을 이야기를 늘어놓자니 고갯마루를 그냥 지나치면 안 되겠다. 지금은 그놈 도로가 정든 길을 다 망가뜨려놓았다. 휑하니 길을 뚫어서 터널인가 뭔가로 맨들어 버렸으니 고갯마루가 있을 리 없지. 옛날에 있던 고갯마루는 그냥 고갯마루가 아니었지. 이 마을 저 마을을 연결시키는 지킴이였지.
고갯마루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당이 있었고 사람들은 훠이훠이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잠시 쉬어가곤 하였다. 내가 살던 고향 마을에도 이웃마을을 가려면 재를 넘어야 하는데 그게 은고개 재다. 은고개 재에는 서낭당이 있었고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돌탑이 있었고 아름드리 고목나무가 있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이웃인 토산 마을이 보인다. 당나라 이세민이 양만춘을 치기 위해 만든 그런 토산이 아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생긴 토산이다. 지금도 은고개재가 있는 그 언덕을 토산이라고 한다. 고갯마루에 있는 돌탑은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고개를 오르며 주워쌓은 돌무더기다. 힘든 고갯길에 넘어지지 말라고 길에 있는 돌을 주워 쌓아놓은 게 탑이 되었다.
쓸모없다고 하던 돌들도 사람의 마음이 얹히면 힘을 내는 법이란다. 어머니도 버려진 돌 한개, 나도 버려진 돌 한 개에 오고 가는 사람들의 복을 빌면서 돌을 얹었다. 아, 이렇게 쌓여지는 돌탑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작은 돌 큰 돌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우뚝한 탑을 이루었네. 소용없다고 여기던 돌과 돌이 모여서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네. 이젠 아무도 저 작은 돌멩이 하나가 버려졌던 것이라고 생각지 못할 것이다.
- 돌탑 -
사람들은 서낭당처럼 돌에다 사람의 마음을 얹어 복을 빌기도 하고 안녕을 기원하며 돌탑을 쌓았다.
은고개 재를 오르는 옆에는 돌이 많은 비탈밭이 있었다. 그곳에는 연약해 보이는 듯한 도라지꽃이 억세게 피어있었다. 서러움과 눈물의 상징처럼 피어난 도라지꽃. 자식을 군대에 떠나보내는 어미의 슬픔이 서려있었고 꽃가마 타고 시집가는 순희의 아픔이 묻어있었다
나는 이따금 그 옛날의 고향을 생각하고 도라지꽃을 생각하면서 행복에 잠긴다. 거기에는 따뜻한 서러움과 쓸쓸함이 있기 때문이다. 백수 정완영 선생의 시조 ‘고향생각’을 잊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고향생각
정완영
오솔길 갑사 댕기 서러워도 달은 뜨네
꽃가마 울고 넘는 서낭당 제 철이면
생각다 생각다 못해 물이 들던 도라지꽃
- 고향생각 ‘넷째 수’ -
이 시조에서 가장 백미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은 종장이다. 이 종장 한 대목은 읽으면 읽을수록 멋이 있다. 도라지꽃의 모습을 이토록 연한 그리움과 애닲음 그리고 은근한 멋스러움으로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옛날부터 나무와 꽃에 관한 시는 퍽 많이 다루어져 왔다. 그 중에서 버들잎과 복사꽃에 관한 시를 쓴 게 있다.
고려의 문신 김부식이‘버들잎은 천개의 실처럼 푸르고 복사꽃은 만개의 점처럼 붉다’(柳色千絲綠 桃花滿點紅)라고 한 시(詩)를, 죽은 정지상이 꿈에 나타나 ‘버들잎은 실실이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다’(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 라고 고치라고 한 얘기가 전해진다.
이 시구(詩句) 보다 ‘생각다 생각다 못해 물이 들던 도라지꽃’ 이 한 장의 시구가 더 멋지지 않은가. 무릎을 치며 막걸리 잔을 들고 싶은 대목이다.
이 시와 함께 백수 선생의 또 다른 작품 망산기(望山記) 첫수, ‘초장’을 읽으면 달관한 경지가 절로 느껴진다.
망산기望山記
정완영
살아도 또 살아도 인생은 외로움이랴
저 산도 세월이 많아 저리 지쳐 누웠는데
十月嶺 억새풀만큼 내 백발도 피었고나.
- 망산기(望山記) ‘첫 수’ -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살이는 기쁨 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외로움이 더 많다. 그래서 푸쉬킨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백수 선생의 망산기 첫 수 초장은 마음을 삭이고 달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여 외로움을 사랑하고 외로움을 껴안는 모습이다. ‘지극한 사랑’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원초적으로 외롭다. 많은 사람들은 그 외로움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사람들 숲에 끼어 잊으려 한다. 그러나 이 시의 첫 부분 ‘살아도 또 살아도 인생은 외로움이랴’ 이 얼마나 당당하고 멋지게 외로움을 외치고 있느냐! 외로움을 느낄 때 이 시 한 장을 읊으면 외로움의 소통 속에 잠기게 된다. 진짜 술맛 나는 말이다.
백발은 단순한 흰색이 아니다. 백수 선생은‘저 산도 세월이 많아 저리 지쳐 누웠는데 十月嶺 억새풀만큼 내 백발도 피었다’고 노래한다. 이 백발의 꽃에는 희로애락의 처연한 정이 담겨 있다. 우담바라처럼 피어난 것이 백발의 꽃이다.
시 한 구절에서 따뜻한 외로움을 만들어내는 작품을 읽으면 행복 속에 빠진다. 나 역시도 물질의 탐욕 속에서 살아가는 중생일진대, 내일 또다시 이런 시 한 구절을 얻는다면 법구경보다 큰 해인(海印)을 얻었다고 할 것이다.
메모 --
7. 평안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시
※ 박병순의 ‘눈이 쌓이는 밤에’
‘낙조처럼 ․ 5’
좋은 시는 좋은 땅과 같다. 땅을 보면 그 생김새에 따라 나무의 자람을 보게 되고 기세의 형편에 따라 뭇 생명이 드나드는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어떤 곳은 잠시도 있기 어려운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절로 편안해지는 곳이 있다. 자연의 형세가 이러하고 사람의 형세 또한 이러하다.
사람들은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풍수지리 사상이다. 풍수지리란 무엇인가? 사람의 생활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방편이다. 바람과 물과 땅의 이치를 잘 알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철학이 풍수지리의 철학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풍수지리사상을 잘 못 알고 있다. 풍수에서 찾는 것은 최고의 돈과 명예와 권력이다. 무엇이든 최고를 원한다. 돈도 최고로 많이 벌고 공부도 1등을 해야 하고 학벌도 일류가 되어야 한다. 무엇이든 최고로 만들고자 한 것이 오늘날 문명을 살찌게 한 원인이 되었지만 그것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다.
풍수가 좋은 곳은 돈을 잘 버는 곳이고 높은 벼슬을 할 수 있고 집안이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가장 좋은 풍수는 아주 평범한 땅이다. 물이 적당히 흐르고 바람이 잘 통하고 때로는 막아주기도 하고 나무도 그저 그렇게 없는 듯 있는 듯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곳이 명당이라는 곳이다. 모두가 눈독을 들이지 않는 허름한 곳에 진명당이 있는 것이다.
만법 귀일이라고 모든 것은 한가지로 통하게 되어있다. 유명한 시라는 것 또한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편안하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들으면 위안이 되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듯 기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작품을 만나기란 쉬운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어렵다. 평범하면서도 비범하고 졸작 같으면서 깊은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편하면 탁한 기운이 없어지고 맑은 기운이 모아진다. 그 기운이 운행을 하면 오장육부가 제 모습을 찾아 사람의 삶은 활력을 갖게 된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 그래서 행복을 주는 시는 명당자리처럼 좋은 시이다.
내가 처음 시 공부를 할 때에 문학전문지를 자주 읽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유독 ‘아, 이 분의 시는 참 편안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온 시조시인이 계시다. 그 분이 구름재 박병순 선생이시다. 어느 문학잡지에서라도 이 분의 시조를 읽으면 정말 마음 한편이 훈훈해지는 느낌을 가졌다.
눈이 쌓이는 밤에
박병순
눈이 소리 없이 사뭇 쌓이는 밤에,
오순도순 옛 이야기 상기도 꽃이 피는,
산갓집 지붕 밑에는 꿈이 남아 좋구나.
이웃집 호롱불 하나 둘 마저 꺼지고,
눈이 길로 쌓이는 괴괴한 이 밤은,
원수도 내 사랑으로 속삭이고 싶구나.
차도 사람도 날새도 그친 막막한 밤에,
한 등잔 심지가 타다 타다 절로 꺼진,
들창에 눈보라 스쳐라, 눈 눈발이 참 밝아라.
위의 시조 작품을 읽고 있으면 그리운 고향의 겨울 풍경이 꿈결처럼 다가온다. 여름날 울밑에 오순도순 모여 피던 봉숭아꽃의 아름다운 모습은 김상옥 선생의 ‘봉숭아’시조에서 그리움의 정서를 불러오게 하였는데 차가움 속에서 푸근한 정서는 박병순 선생으로부터 떠올릴 수 있었다.
고향집의 겨울밤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법이다. 눈이 소리 없이 쌓이는 밤은 오히려 근심과 걱정에서 헤어날 수 있었지. 지금은 눈이 50Cm만 내려도 먼저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큰일 났다고 호들갑을 떨어댄다. 산골의 교통이 막혔다고 난리 법썩을 떤다. 지금처럼 잘 살지도 못한 옛날엔 왜 그리 지금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았는지 참 궁금하다. 그땐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눈이 많이 오면 슬슬 눈을 치면 되었고 교통이 막혀도 집에 있는 양식으로 허기를 메울 수 있으면 그만이다. 전깃불조차 없었던 그 옛날은 불편하기는 했어도 불평하지는 않았다. 요즘은 조금만 어긋나도 생지랄을 떨어댄다. 돈이 적다고 돈 많은 놈들이 데모를 해가며 생지랄을 하지 않나…, 오히려 없는 사람들은 입도 쩍 못하고 사는데.
어쨌든 푹푹 눈이 쌓이면 군불 지핀 방에서 몸을 뒹굴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면 그게 행복이고 사람 사는 재미였다. 이웃집 호롱불이 다 꺼져도 눈이 내린 후면 대낮처럼이나 밝았다. 그 아름답고 적막한 밤을 잊지 않는다. 눈은 축복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참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살다 죽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살다 가느냐 하는 것이다. 구름재 선생의 작품 <낙조처럼 . 5>는 깊은 삶의 헤아림에서 나온 글이어서 ‘정말 나도 이래야 겠구나’하는 마음을 갖게 하였다.
낙조처럼 . 5
박병순
내 생애 아무리 서럽고 괴로웠대도,
임종만큼은 저 - 낙조처럼 고와야지…
저녁놀 헤치고 깜박 숨지는 황홀황홀한 저 한 점.
사람이 임종 할 때에 만큼 중요한 순간은 없다. 도가 높은 선사들이야 앉아서도 죽고, 서서도 죽고, 거꾸로 서서도 죽는다지만 범인인 우리네야 죽음 자체도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하물며 그 임종을 곱게 맞이하려는 마음을 어찌 갖을 수 있단 말인가. <낙조처럼 .5>의 시조를 읽으면 마음에 잔잔히 와 닿는 것은 죽음에 대한 모습이다. 이 시조의 빼어난 점은 초장에 있다. ‘내 생애 아무리 서럽고 괴로웠대도’ 이 장이다. 그렇다. 내 삶이 아무리 괴로워도 임종 자체를 낙조처럼 맞이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감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어디 사람일이 뜻대로 되던가. 길거리에서 모르게 죽어가는 객사, 온갖 병에 몇 년을 시달리다가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는 삶, 싸움질하다가 맞아죽는 사람,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사람 등등 죽음 또한 삶만큼 각양각색이다. 그 중에서도 인생길을 망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비운의 삶은 누구나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 교훈을 이 한편의 시조가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옛날 오나라 왕 부차는 월왕 구천을 사로잡아놓고도 돌려보내었다. 월왕 구천은 권토중래하며 오나라를 침략할 힘을 길렀다. 한편으로는 월나라 대부 범려는 미인을 오나라에 바치기로 하고 전국에 있는 미녀를 찾아다녔다. 그가 발견해 낸 여인은 월나라의 한 농촌에 사는 촌녀 이광이라는 여자였다. 그 여인이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끈 중국의 대표적인 미녀 ‘서시’이다. 범려는 서시를 부차에게 보내니 부차는 서시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결국 부차는 구천의 공격을 받아 망하게 돠고 그는 도망치다가 고소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최후를 마친다.
구름재 선생의 시조를 읽으며 부차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나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함이다. 어찌 지내온 삶을 뒤죽박죽으로 해놓고 죽을 때 편히 가기를 바라겠는가.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맑은 정신과 기운으로 자신을 낮추며 살아가야 하리. 구름재 선생의 시조 한 수는 낮아짐의 끝없는 블랙홀에 빠지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나의 작은 다짐이다.
8. 무채색 경전
※ 김장생의 ‘십년을 경영하여…’
서숙희의 ‘물소리를 듣다’
십년을 경영하야 초려 한 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을 드릴 데 없으니 둘너 두고 보리라.
- 김장생 -
이 시조는 조선 명종 인조 연간의 학자 김장생의 글이다. 그는 31세에 학행이 뛰어나 벼슬에 천거될 만큼 정직하고 성품이 담백하였다. 영남학파와 쌍벽을 이루는 기호학파로 이름을 드러냈지만, 그 보다 그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것은 그의 시조에 담긴 생각의 여울목이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작품 중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처럼 멋진 시조 작품을 만난 것은 손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어떤 스님은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땡볕 쬐는 한여름 날에 퍼붓는 빗줄기 보다 시원한, 한 소식을 얻는다면야 …. 더 일러 무엇 하리. 그러나 구태여 저녁까지 기다릴 것은 또 무엔가.
김장생은 시조를 들고 지금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나는 수시로 틈만 나면 논술과 글짓기 강의로 눈 코 뜰 새 없이 돌아다닌다. 크게 돈 되는 것은 없다 해도, 아이들을 만나는 즐거움과 천리관산(天理關山)을 독자발섭(獨自跋涉)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남대천강을 지나고 들길을 지나고 때로 산행을 하다보면 김장생의 청풍과 명월과 강산이 눈에 들어온다.
옛말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다’고 하였다. 지금은 진짜 옛말이 되었다. 자고 나면 강산이 변하기 때문이다. 10년은 그 만큼 오랜 세월의 흐름이다.
초장에서, 십년을 경영하여 집 한 채를 짓는다고 하였으니, 그것도 두 간도 아니고 한 간 짜리 초려를 말이다. 가히 선비다운 이야기이다. 일반 목수들은 열흘이나 보름이면 지을 초려를 이 선비는 10년이나 걸리니 그 솜씨와 사유에 수긍이 간다.
초려(草廬)는 지붕을 짚이나 풀로 이은 아주 작은 집을 말한다. 중국의 유비가 제갈량을 군사로 모시기 위해 제갈량의 초려를 찾아갔다. 두 번이나 찾아가도 받아주지 않았는데 세 번째 가니 받아주었다. 제갈량은 초려에서 숨어살다가 뛰쳐나와 세상을 위해 활약하였다. 거기에서 나온 말이 삼고초려(三顧草廬)이다. 그런데 김장생은 초려에서 나온 게 아니라 초려에서 살기 위해 10년이나 집을 짓는 것이다. 초려는 심심산골, 닫힌 공간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닫힌 공간이다. 그는 과연 자유로움에서 속박당하기 위하여 초려를 지었던 것인가? 그것이 현실적인 초려이든 마음의 초려이든 말이다. 시조를 읽으면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닫힌 공간이면서 또한 우주를 향해 열려있는 가장 큰 자유의 세상이다. 성큼 중장으로 들어가 보자. 한 간을 둘로 나누어 반 간은 청풍을 들이고 반 간은 명월을 들인다고 하였다. 그리고 종장에서는 그의 심사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강산은 들여놓을 데가 없으니 둘러놓고 그냥 본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유쾌하고 멋들어진 모습인가.
내가 존경하는 문우 조희균님이 책 한권을 냈는데 그 책이 ‘장자의 길’이다 장자의 글을 옮긴 책인데 글 속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순(舜)이 선권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하는데 선권이 받지 않는다. 받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넓은 우주의 중심에서 살고 있는데, 겨울에는 털가죽 옷을 입고 여름에는 갈포 옷을 입으며 봄에는 밭을 갈고 씨뿌려서 몸은 움직여 일할 만하고, 가을에는 곡식을 거두어들였으니 심신은 휴식하기에 충분하다. 해 나면 일하고 해 지면 들어와 쉬면서 천지 사이에 소요하며 마음은 저절로 자득하여 흡족한데 내가 천하를 받아 뭘 어찌 하겠다는 것인가?” 하고 대답한다. 한마디로 ‘천지 사이에서 소요하는데 천하를 받아 어쩌겠다는 말이냐?’하고 일축하는 내용이다. 선권이 천하를 받지 않기로 한 모습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놓고 보겠다는 김장생의 생각은 천지를 소요하는 대자유인의 모습이다. 요즘 대권 다툼이 한창이다. 서로 자신이 적임자라 하고 상대방의 도덕성을 흠집 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참으로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십년을 경영하야…’의 시조에서 초려를 짓는 본래의 목적은 무엇인가? 노년에 정계에서 은퇴하여 닫힌 세상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정권의 음모와 야욕, 암투에서 벗어나 대 자유의 품에서 노니는 신선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 시사(詩史)에 이처럼 활달한 품격을 지닌 시조를 본 적이 없다. 옛 선비들이 술 찌꺼기 같은 위세를 풍기며 정자에서, 혹은 나무 그늘 밑에서 한 잔 술과 여흥을 즐기며 음풍농월을 하는 시구들과 어찌 감히 비교할 수 있는 글이겠는가.
그 옛날, 고요한 천지 강산을 호흡하며 살아온 김장생이 있었다면 오늘날엔 냇가에 앉아 물소리를 건지며 맑은 영혼의 숨결을 내려놓는 성자의 모습, 서숙희가 있다.
물소리를 듣다
서숙희
때론 보이지 않을 때 열려오는 귀가 있다
달 없는 밤 냇가에 앉아 듣는 물소리는
세상의 옹이며 모서리를 둥근 율로 풀어낸다
물과 돌이 빚어내는 저 무구함의 세계는
제 길 막는 돌에게 제 살 깎는 돌에게
서로가 서로의 길 열어주려 몸 낮추는 소리다
누군가를 향해 세운 익명의 날(刀)이 있다면
냇가에 앉아 물소리에 귀를 맡길 일이다
무채색 순한 경전이 가슴에 돌아들 것이니.
며칠 전 남대천강변을 따라 올라갔다. 성산 쪽을 향해 한참 오르다 보면 소주 공장(술 이름이 ‘처음 처럼’이다)이 나온다. 그곳까지 가기 전에 돌돌 구르는 여울을 만난다. 여울은 시골 강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여울 물소리는 어느 개울가에서나 들을 수 있는 물소리다. 그런데 그날따라 여울에 관심이 쏠렸다. 여울이 만들어내는 소리도 소리려니와 그 무늬가 다채로웠다. 그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물 밑을 흐르는 돌들이었다. 작은 돌과 물의 만남이 빚어내는 소리와 부드러움의 조화!
‘물소리를 듣다’라는 시조 생각이 났다. 나도 잠시 눈을 감고 물소리 곁에 앉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좋았다. 정말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또한 볼 수 없는 곳에서 듣는 것은 어둠을 여는 빛이었다. 눈을 감고 귀를 열어놓고 들을 수 없는 그 너머의 무엇을 듣고 있었다. 그것은 김장생이 만난 ‘들일 데 없는 강산’ 이고 세상의 옹이를 둥글게 풀어내는 물소리의 말씀이었다. 물과 돌이 만나 만들어내는 세계는 부드러움의 세계이고 서로의 길을 열어주려 하는 몸 낮추는 세계이다.
서로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몸을 낮추는 그 아름다운 이치를 서숙희는 물과 돌에서 찾아 들어내 놓고 있다. 그러면서 조용히 전한다. 누군가를 향해 익명의 날을 세우지 말라고 …. 허나 세상 일이 어디 그런가? 나는 오늘도 누군가를 향해 위의 시조처럼 익명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어리석은 중생의 길을 걸으며 나의 무지와 형세의 변화를 따를 뿐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다.
앞서 살펴 본 김장생의 시조, ‘강산을 들일 데 없어 둘러놓고 보리라’는 시구에서 풍겨오는 그 뱃심과 여유는 대자재천의 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낮아짐의 법’을 전하는 서숙희의 시조는 우리 모두를 둥글게 감싸 안는 대자대비의 모습이다. 이 두 편의 시조는 어느 경전 보다 가슴에 와 닿고, 어느 진리의 말씀 보다 진한 울림을 주는 그야말로 은은한 경전이다. 나는 이 두 편의 시조를 읽고 느끼면서 내 가슴에도 무채색의 경전이 돌아들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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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숙희(1959 - ) 경북 포항 출생으로 1990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한 뒤 1992년 부산일보, 매일신문에 신춘문예 당선 시인. 한국시조작품상, 이영도시조문학상, 열린시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0년에 시집 『그대 아니라도 꽃은 피어』(혜화당), 2010년에 시집 『손이 작은 그 여자』(동학사) 등이 있다.
9. 아름다운 한의 덩어리와 검은 소
※ 민병도의 ‘북소리’
박영교의 ‘징’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1, 2, 3의 숫자 개념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천부경의 첫 구절은 모든 것이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일시(一始)’이다. 연리지(連理枝)라는 나뭇가지는 둘이면서 하나의 나무가 되었듯이 옛부터 사람들은 자연과 내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늘과 땅이 둘이면서 하나이고 남자와 여자가 둘이면서 하나임을 인식하며 원형적인 삶을 지향해 왔다. 그것은 3이라는 수 개념으로 발전되어 일체를 이루고 있다. 사람의 몸이 ‘머리 가슴 다리’라는 셋으로 이루어졌으면서 하나이듯이 하늘 땅 사람이 셋이듯 하나이고 바람, 물, 불이 3이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기(氣)라 할 수 있다.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식 또한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임을 지향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다. 천제(天祭)는 하늘을 공경하는 의식이면서 동시에 자연과 사람에 대한 공경임을 알 수 있다. 이미 고대사회에서 선인들은 이렇듯 생활양식에서 조화를 누리며 살았다. 이 조화를 누리는 방법 중의 하나가, 소리를 통해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이었고 그 표현방법은 징을 치고 북을 쳐서 소리를 보내어 하나로 섞이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소리보다 북소리나 징소리를 좋아한다. 북이나 징소리에서는 은은하면서도 깊은 내공을 느낀다. 펑화의 삶을 기원하는 그 소리는 둥글게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우주를 가득히 메운다. 인간의 마음을 신에게 보내는 방법 중에 이 보다 더 예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징이나 북에 얹는 인간의 마음은 행복에 대한 기원, 아픔에 대한 눈물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어 더욱 감동적이다. 사찰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을 일깨우며 불국정토에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종을 치고 북을 울린다.
내가 읽은 시조 중에서 민병도의 ‘북’과 박영교의 ‘징’은 나를 일깨우고 울리는 마음의 등(燈)이었다.
때로는 북소리만 남는 진실 그 자욱마다
먼 지평 낙일(洛日)을 거두며 신앙을 밝혀 뜬 달
한 매듭 구원 밖에서 그 옛날을 태운다.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민병도의 시조 작품 ‘마을’의 둘째수이다. 이 시조의 둘째 수는 북소리로 시작한다. ‘때로는 북소리만 남는 진실 그 자욱마다’ 라는 초장은 은은한 불빛처럼 다가온다. 북소리가 남는 그 자욱에 신앙처럼 뜬 달을 연상하면 관음보살의 현신을 보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북은 짐승 중에 큰 짐승을 잡아 그 가죽으로 만든 악기이다. 고대사회에서 신을 축복하기 위한 희생의 상징물이다. 희생이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은 거리낌 없이 바칠 수 있는 기쁨 때문이다. 아무 주저 없이 줄 수 있는 마음이라면 희생은 이미 희생이 아니며 자신에 대한 축복이기도하다. 그래서 북소리는 천상과 지상을 이어줄 수 있다는 소통과 믿음의 전달자가 되었다.
북의 이미지는 다양하다. 북은 믿음의 전달 기능 이외에 자신의 어려움을 알리는 중요한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또 죽은 생명을 살려내는 위력을 가졌다고 믿었고 귀신이나 액을 쫓고 복을 바라는 제액초복(除厄招福)의 권능을 가졌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민병도의 시조에 나타나는 북의 이미지는 천상과 지상을 넘나드는 깨달음의 소리로 다가온다.
시조 ‘북’에서는 검은 소의 죽음, 죽음을 넘어서서야 얻는 법구경과 물고기의 은유적 변환과정이 그려져 있다.
북
민병도
1
한 때 長劍으로 지상을 다스리려던
녹이 슨 시간 속의 꿈 일시에 헐어버리고
저무는 절문을 나서는 검은 소를 보았네.
2
굴레 벗은 소는 그러나 별안간 숲길을 열어
빈 들녘 가로지르며 서산을 넘어가고…
이윽고 法句經 한 귀절 천상에서 들렸네.
3
어지러운 세상 모서리 가로등 세로로 눕고
소가 떠난 빈 자리에 빈혈처럼 어둠이 깊지만
한 마리 은빛 물고기 소를 따라 가고 있었네.
- 한국시조 1995 가을호 -
이 작품에서 소는 북이 되고 그것은 은빛 물고기가 되어 다시 소를 따라 가고 있다. 무성불자가 깨우침을 얻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불가에서 검은 소는 제대로 살핌이 없는 거친 마음을 가진 중생을 뜻한다. 그 검은 소가 굴레를 벗고 서산을 넘어가고, 법구경 한 구절이 하늘에서 들렸다는 환상적 이미지는 여울물소리처럼 떠돈다.
여담이기는 하지만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중들이 사찰의 주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검은 돈이 오고간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또 중들이 종단의 세력을 위해 폭력과 무력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몸만 가사장삼을 걸쳤지, 짐승보다 못한 소행들을 접하면서 개탄스러워했다. 성철의 봉암사 결사나 서옹의 무위진인(無位眞人)결사는 못할망정 종단의 일부 중들이 가사장삼을 걸친 채 검은 소가 되어 삼독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새삼 민병도의 ‘북이 떠올랐다.
이 시조의 마지막 연에서 북소리는 은빛 물고기가 되어 소를 따라가고 있다. 깨우침의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을 열어 보이고 있다. 물고기는 물속에 잠잘 때에도 눈을 뜨고 있다. 불가에서는 늘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의 상징적 징표이다.
나는 민병도의 ‘북’을 자주 읊조린다. 민병도의 ‘북’은 인간이 살아가는 탁류에서 한줄기 빛으로 다가와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불성에서 나는 소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친구처럼 마주하는 것이다.
징
박영교
1
삼천리 그 몇 천리를 세월 그 몇 구비를 돌아
길고 서린 한을 풀어 가을 하늘을 돌고 있네.
수수한 울음 하나로 한 평생을 돌고 있네.
2
아홉 마당 열 두 타작으로 잔등을 후리쳐라.
주름살 골을 따라 갈갈이 찢긴 한을
한평생 돌다 지치면 내 전신을 두들겨라.
3
울거라 울거라 밤새도록 울거라 너는,
한세상 끝날까지 닿도록 울거라 너는,
낙동강 홍수가 되어 범람토록 울거라.
- 한국시조큰 사전 수록 -
박영교의 시조 ‘징’이다. 제1회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시조 ‘징’을 읽으면 울음을 느낀다. 울음 속에는 빛깔이 있다. ‘한(恨)’이라는 빛깔! 이 시조의 아름다움은 한을 감추려 들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놓은 점이다. 슬픈 빛깔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점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괴로움이나 번뇌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심지어는 산속에서 수행하는 스님도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정진을 한다. 우리나라 선지식(禪智識)의 한분인 경봉은 마음을 거울에 닦으라 이르며 거짓은 물소리에 흐르게 하고 괴로움은 나뭇가지에 걸어두라고 하였다. 대승과 소승을 넘나들었던 경봉마저 고통 밖에서 나를 찾고 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징소리는 가을 하늘에 한을 풀어놓고 수수한 울음소리로 돌고 있다. 그 울음소리는 그칠 수 없다. 영겁을 우는 것이다. 한의 빛깔은 열락(悅樂)처럼 다가오고 한의 빛깔은 법음(法音)처럼 들린다. 아름답고 즐겁고 달콤함에 빠져 있는 것은 누구나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아픔과 고통 속에서 편안함을 갖기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이 시조의 아름다움에 물드는 것은 가을 하늘에 색 고운 한(恨)의 덩어리가 수수한 울음소리로 흘러 다니는 것 때문이다. ‘나무소가 불속을 걸어 들어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고 주장자로 ‘할’을 외치던 소리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나는 이따금 북소리와 징소리를 듣기 위해 산을 찾는다. 내가 듣는 북소리와 징소리는 산이 내는 소리다. 산의 흙과 나무와 풀은 북의 가죽이며 징이다. 산은 땅 속 깊은 곳으로부터 잔잔히, 때로는 강하게 소리를 전해준다. 그 소리는 산과 어우러지며 산 속에 스며들고 내 마음에 스며든다. 푸르고 맑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하늘이 내는 징소리 또는 북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원을 그리며 은은하게 휘도는 한의 덩어리처럼….
산을 오른다. 하늘에 제사 지내는 기도의 의식처럼 나도, 산도, 나무도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산굽이를 돌아 감도는 안개는 눈물처럼 뽀오얀 한의 덩어리이지 싶고, 산을 오르는 나 또한 하늘에다 무색의 한(恨)을 징소리로 전하는 한 마리 검은 소가 되어 있었다.
10. 삶의 곡진함
※ 조식의 ‘삼동에 베옷입고’
홍랑의 ‘묏버들 갈아 것거’
리강룡 ‘강가에서’
박필상 ‘지렁이’
매일 바쁘게 일을 끝내고나면 곧 찾아드는 어둠,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보다가 손을 몇 번 쥐었다 펴 보면 해가 지는 것을 본다. 늘상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자시를 넘겨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하루하루를 이렇듯 분주하게 지내다보면 어느새 인생의 해도 서산마루에 걸린다. 그러나 모두 미완의 상태이다.
이런 걸 미리 겪은 선인은 주역의 괘중에 맨 마지막의 괘를 화수미재(火水未濟)로 둔 것일까. 불이 물 위에 있으니 물이 따뜻해지기는 그른 일이다. 우리네 일상이 이렇듯 어긋나 있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미완은 새로운 변화를 항상 내포하고 있으니 이 또한 신바람이 날 일이 아닌가. 성리학의 대가 조식은 서산에 해진다 하며 눈물겨워 하였다. 그 또한 햇빛 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미완의 일 때문에 슬퍼한 것은 아니었을까.
三冬에 뵈옷 닙고 岩穴에 눈비 마자
구름 낀 볏 뉘도 쬔 적이 업건마
西山에 l지다 하니 눈물겨워 노라
- 조식 (甁歌) -
시대를 초월하여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남명 조식의 시조이다.
삼동에 베옷을 입고 암혈에 눈비를 맞으며 지내는 청빈한 선비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따뜻한 햇볕은 고사하고 구름에 낀 볕살조차 쬐지 못했을망정, 해가 져서 슬퍼한다는, 장엄한 슬픔이 담겨있다.
나는 겨울이 오면 풍상을 이겨내는 나무를 생각한다. 그리고 남명의 시조를 생각한다. 그의 시 초장에서는 참으로 희비애환을 겪는 삶의 진면목이 처연하게 드러난다.
그의 삶은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를 맞는 삶이었다. 삶의 의연함과 기개가 없이는 이리 할 수 없는 일이다. 단순히 가난하고 헐벗게 살아가는 거렁뱅이의 삶이 아니라, 절개를 지닌 지사가 살아가는 삶이기에 스스로 삼동에 베옷입고 암혈에 눈비를 맞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초장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보면 우리네 인생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이다. 겉으로는 부유해 보이고 위세 등등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희비애환이 드러나는 것이다. 단순히 고단한 생활을 노래한다기보다 파란의 삶을 한 줄로 뽑아낸 명 구절이라고 생각된다. 기실, 우리네 인생사,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는 삶이 아니겠는가.
둘째 수에 이르면 고단한 삶이 절정을 이룬다. ‘따뜻한 햇볕을 쬐어도 성이 차지 않을 일인데 하물며 구름에 가린 햇볕조차 쬔 적이 없다고 하였으니 치열하고 극한적인 삶을 살았다는 반증이기도 한다.
종장의 반전은 점입가경이다. ‘서산에 해진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햇빛도 못 받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지만 해가 진다하니 서글퍼진다는 말은 얼마나 휴머니즘적인가. 미움과 시기, 질투로 얼룩진 세상에서 그래도 미워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밝음이 꺼져 가는 데 대한 아픔을 나타낸 남명의 인간적인 신뢰와 믿음은 또 다른 햇빛으로 비춰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곡진하게 살아가는 면모를 읽고 숙연함마저 느낀다. 남명은 성리학자로 이황과 함께 우뚝한 경지를 이룬 분이다. 그러나 사화(士禍)의 진저리나는 정치판을 이미 어릴 때 체험한 남명 조식은 왕의 부름이 수차례 있었지만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정철과는 대조를 이룬다. 송강 정철은 어릴 때 당쟁과 사화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벼슬길에 나아가 정적을 가차 없이 베어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가 탈리오의 법칙을 알았든 몰랐든 거기에 이미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정치가 실패로 돌아간 원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남명은 벼슬 자체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가 벼슬에 매달리지 않았음을 꼭 잘한 일이라고만 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평생을 학문에 힘쓰며 후학에게 실천덕목을 전한 조식의 교육자적 위상은 만고에 길이 빛날 위대한 스승의 상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끝내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서게 하였고 많은 지식인을 조정에 출사하게 하여 나라를 이롭게 하였다. 그의 몸가짐이 청정한 가난함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리학의 대가, 남명이 시조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는 것은 당시 시조가 얼마나 우리 민족의 얼을 대변하는 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란 제목으로 쓴 백석의 시 끝부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 아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이 피붙이 하나 없이 외로운 신의주의 구석진 방에서, 눈 오는 날 화로를 끼고 앉아 있다. 마른 잎새에서 들리는 바람소리와 갈매나무를 생각하는, 화안하고 멍청한 백석의 아름다움이나,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는 조식의 모습은 모두 맑은 슬픔으로 동색을 띠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행위는 일반 짐승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 연유는 따뜻함과 삶의 곡진함이 있기 때문이다. 남명의 시조를 현대적인 의미에서 돌아보았을 때 거기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개와 따뜻함이 스며있다. 인생사 힘겨워도 관심과 배려 사랑이라는 따뜻함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진리를 따른다 해도 어디에서 편안함을 구할 것인가.
삶의 곡진함을 이야기한다면, 남명의 시조에 못지않은 시조가 전해지니 그것은 바로 홍랑의 시조이다.
묏버들 갈l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l
자시 창밧긔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홍랑 (吳氏藏傳寫本) -
위 시조는 조선 시대 기녀 홍랑의 작품이다. 산버들의 가지를 꺾어 님이 계신 곳에 보내니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아 달란다. 혹시 밤에 비가 내려 심어둔 버드나무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거든 나 인줄로 여겨달라는 뜻이다.
홍랑이 삼당시인으로 알려진 최경창에 대한 연모의 정을 그린 작품이다. 최경창은 북도평사라는 벼슬을 받고 북쪽 지방인 경성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홍원의 관기였던 홍랑은 따라가서 시중을 들었다. 그때 최경창을 사랑한 홍랑은 최경창이 서울로 돌아가자, 쌍성까지 따라가 배웅하였는데 돌아가는 길에 함관령에 이르러 날이 저물고 마침 비가 내렸다. 그때 버들을 보고 최경창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써서 보냈는데 그 시가 ‘묏버들…’이란 시조이다. 그 후 최경창이 병으로 죽자, 홍랑은 다른 사내들이 자신을 넘볼까 우려하여 얼굴을 못 쓰게 만들고 그의 무덤을 지키며 일생을 보냈다. 홍랑이 죽자, 최경창의 무덤 아래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오늘, 다시 홍랑의 시조를 읽는 뜻은 무엇인가. 한 생을 이어가던 그의 삶이 곡진한데 있는 것이다. 남명의 시조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랑의 곡진함이 담겨 있다. 홍랑의 시조가 속삭임처럼 다가오는 명시조 임을 일러 무엇하리. 그의 시조를 오늘날 다시 돌아볼 수 있음은 그 은근한 정서를 대변한 것 뿐 만 아니라 신선한 미적 충격에 있다. 묏버들 가지를 꺾어 임이 계신 곳에 보내려는 구절에서 인생의 싱싱함과 약동하는 봄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버들은 물이 있는 곳에서 자란다. 버들을 보낸다는 것은 사랑의 생명을 흘러 보낸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멋들어지고 간절한 마음의 표징인가.
인간사, 힘들어도 그저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산다고 하지만 그 안에는 곡진함이 묻어 있는 것이다. 내 오늘 홍랑의 시조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뜻은 삶의 곡진함 만은 아니다. 홍랑이 이루어놓은 미완의 사랑과 그 이면에 깔린 생명의 환희로움을 보기 때문이다.
삶의 곡진함은 청빈한 마음에서 비롯되지만 그 맑음은 너 나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가 되는 귀일의 법에 닿는다. 그 마음은 어디에도 미련이 없는 허허로움의 표상이다.
강가에서. 1
리강룡
처서 무렵 맑은 강을 눈여겨 바라보아라
쉼 없는 몸짓으로 두런거리며 가고 있는
투명한 그들만의 언어를 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뒷물이 앞물을 밀어 흐르게 하는 것이냐
앞물이 스스로 비워 채우게 하는 것이더냐
아니다. 그들은 그들끼리 그저
몸을 섞으며 가는 것이다.
(새시대시조 2007년 겨울호)
지렁이
박필상
애초에 눈도 귀도
버리고 태어났네
손발도 무거워서
그냥 두고 왔다네
분별할 마음 없으니
알몸인들 어떠랴.
어느 여름날 오후
소나기 그친 뒤에
젖은 땅 온 몸으로
꿈틀꿈틀 기어가다
한적한 길섶 어디쯤
한 벌 목숨 벗으리.
뙤약볕 내리쬐어
꼬드러져 누운 육신
개미 떼 온갖 벌레
배불리 먹고 나면
겨자씨 한 알 만큼의
거름이야 늘겠지.
(새시대시조 2007년 겨울호)
리강룡의 ‘강가에서’를 읽으면 사람살이의 묘법을 배운다. 뒷물이 앞물을 밀어 흐르는 것이 아니고 앞물이 스스로 비워 채우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끼리 그저 몸을 섞으며 간다는 시간의 동행, 사물의 동행, 너와 내가 없는 섞임의 경지는, 저 신라시대 고운 선생이 말한 현묘지도이다. 그저 앞 사람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오르려는 군상들, 자리 보존에 급급하다가 쫓겨나는 무리들, 그 보다 점잖은 축들은 스스로 자리를 비우고 후배에게 물려준다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군상들. 이 모두가 욕심의 덩어리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저 몸을 기대며 함께 흐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건네주게 되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워주고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그것은 우주의 질서 속에 분별하지 않고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 또는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된다. 사실, 이들 모두 끝 모르는 미완의 행렬이다.
박필상의 ‘지렁이’ 첫수와 둘째 수는 손뼉을 밤새도록 쳐도 부족한 작품이다.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전광석화 같이 답하였다. 그리고 그 넉넉함은 우주에 가득 차서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한적한 길섶 어디 쯤 한 벌 목숨 벗으리’ 이 한대목만 읽어도 콱 막혀 있던 속이 툭 터진다. 지렁이가 한 벌 목숨을 벗는 그때야 말로 또 다른 미완이 아닐까.
삶의 곡진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그 무늬가 순수하고 투명하다. 마치 겨울 유리창에 끼인 성에처럼 더러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손으로 휘젓는 시가 아니라 영혼의 맑은 눈으로 보여주는 네 편의 시조는 시간을 초월하여 힘든 생의 무게를 덜어주고 있다. 미완의 아름다움이 있기에 오늘도 생에 대한 의욕이 미련한 욕심으로 남아 미완의 삶을 빛나게 한다.
11. 입명立命을 따르는 시심詩心
※ 정완영의 ‘만리심萬里心’
윤지원의 ‘장미’
만리심萬里心
정완영
흰 구름 한 자락을
눈망울에 담고 살면
철 따라 피는 꽃도
빈 가슴엔 그늘지고
이길 수 없는 정이야
강물 실어 보낸다.
명(命)을 반듯하게 하는 것이 안심입명(安心立命)이다.
사람의 목숨을 반듯하게 하기가 어렵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도 죽을 때에 명을 반듯이 할 수 없는 게 우리 네 삶이다. 그러나 또한 가장 쉬운 것이 입명이다.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있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말 편안하게 사는 것은 어렵다. 편안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명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사랑과 미움에 대한 욕심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미움이 짙으면 이미 편안하기가 글렀다.
장자 외편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흘러와서 자신의 배에 부딪친다면 아무리 속이 좁은 자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빈 배를 보고 화를 내는 자는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배 안에 한 사람이라도 타고 있으면 아무리 속이 넓은 자라도 언짢아한다. 속이 막힌 자라면 화를 내거나 더 심하면 욕을 퍼부어 꾸짖을 것이다. 사실, 빈 배가 와서 부딪쳤다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을, 사람이 있음에 연유하여, 스스로 번거로움을 일으켜 괴로운 일에 말려들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도 자신을 비우고 세상을 거닐 수 있다면 누가 해를 끼칠 것이냐고 묻는다.
백수 선생의 시조 ‘만리심(萬里心)’을 읽고 있으면, 희로애락을 잠재운 빈 배를 보는 듯하다. 나이의 무게가 짙어질수록 가슴에 와 닿는 시조이다. 나도 이 시조를 빈 배 보듯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외로움과 편안함을 느낀다.
흰 구름 한 자락을 눈망울에 담고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눈은 마음과 닿아 있어 희로애락의 맛을 여는 생각의 문이다. 세상사 일들은 세월의 흐름 따라 피고 지는 꽃처럼 무성하지만 인생의 모습을 담담하고 담백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안심입명의 경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바쁜 생활이 되면서 하늘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어쩌다가 이웃집 담 밖으로 화사한 목숨을 내민 목단 꽃을 보면 그제야, 생각난 듯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위에 둥둥 떠 있는 구름을 찾아본다. 목단 꽃과 구름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데도 왜 하늘을 보며 구름을 찾는 것일까?
목단은 풍요와 부, 그리고 명예를 상징하는 꽃이다. 양반집 처자들이 수를 놓을 때엔 화려한 목단 꽃을 새겼다. 흰 구름은 청결과 맑음을 상징하여, 화려한 목단과 대비를 이룬다.
이 시조의 초장은 부와 맑음, 화려함과 청빈이 함께 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초장에서 중장으로 이어지는 이미지를 따라 내려오면 쓸쓸한 미학의 정서가 화사하게 피어난다. 구체적으로는 계절적인 배경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고향의 푸른 하늘과 흘러가는 흰 구름, 장독대 옆에 피어나는 작약꽃 등이 떠오른다. 이따금 만 리 밖에 머무르는 내 마음처럼 고향을 찾아 떠나는 나그네, 그게 흘러가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봄이면 좁은 길옆으로 민들레꽃이 노랗게 길을 열었다. 심심할 때면 순한 여자 애처럼 노랑나비가 홀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황토 냄새가 짙게 밴 길옆으로 왕창왕창 옥수수가 자랐다. 여름 낮 한 때 매미 울음소리도 잦아질 무렵이면 파란 하늘 사이로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갔다. 울타리를 죽데기로 둘러싼 집이었지만 울 밑에는 대추나무 짙은 그늘이 내리고 거기엔 예쁘게 작약꽃이 피어났다.
이제 다시 찾을 수 없는 그리운 그 때의 얼굴들이 고향집으로 들어가면 살아 움직인다.
어느 시골집 모퉁이엔 봉숭아와 해바라기가 무더기로 피어 햇빛이 부시던 날의 청청한 그림자가 지금도 젖은 채 반짝인다.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그 얼마였던가. 빈 가슴에 그늘로 내리는 오후, 아프고 예쁜 그늘 자국을 조심스럽게 안아본다. 그러면 또다시 꽃이 핀다. 마음의 뜰에 무리지어 피어오르는 정(情)의 꽃, 꽃, 꽃….
종장에 오면 정을 강물에 실어 보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구름과 눈(眼), 꽃과 그늘, 정과 강물은 서로 이어지면서 한 시인의 내적 공간을 유려하게 만들어간다.
비어 있음과 편안함은 ‘떠나보냄’이란 수순을 거친다.
이길 수 없는 정이야
강물 실어 보낸다.
이 시조 종장을 읽으면 ‘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라는 왕방연의 시조가 떠오른다. 그도 단종의 유배지에서 돌아 나오면서 냇가에 앉아 시름을 물에 흘려보내야 했던 것이다.
물은 모든 것을 씻어내는 정화의 역할을 한다. 몸이 아프면 산속으로 들어가지만 화가 나거나 마음이 아프면 냇가를 찾는다. 물은 뜨거운 불을 씻어내기 때문이다. 물과 불이 잘 어우러지면 수화기재란 한다. 차가운 물을 많이 가진 사람은 따뜻한 불을 만나지 못하면 평생 춥고 배고프게 산다. 또 몸에 불기운만 가득한 사람은 물을 만나지 못하면 화가 끓어 화산처럼 폭발하여 생명의 위험을 느낀다. 물과 불은 원수지간 같지만 물은 불을 필요로 하고 불은 또 물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삶 또한 예서 더 다른 게 무어란 말인가.
정(情)은 화기(火氣:따뜻한 불기운)이다. 사실 정은 은은한 게 제멋이지만 은은한 정이 더 아프다. 은근히 타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 정을 떼어내야 하는 아픔을 누군 들 겪어 보지 않았겠는가. 알면서도 떨쳐버리지 못하니 물에 씻어서라도 흘러 보내야 하는 것이다. 부부 싸움을 하고 강가에 나와 앉으면 후련해지는 것은 마음의 불을 물이 식혀주기 때문이다. 그 뜨겁고 은은한 정을 강물에 씻어 보낸다는 종장의 구절은 가히 아름다움을 넘어 신기에 가깝다. ‘이길 수 없는 정이야 강물 실어 보낸다’ 는 표현에서 외로움과 은은함이 담뿍 배어 나온다. 백수 선생은 언어의 달인이다. 생각의 정제가 가혹할 정도로 이루어진 다음에 그걸 언어로 다스리는 법은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다. 백수 선생의 시를 읽으면 고달픔도 아픔도 아늑하고 따뜻하게 녹아 있다. 그야말로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세계를 보는 듯하다.
장미
윤지원
차돌로 굳어진 정(情)
오늘에야 문 엽니다
피맺힌 가시 줄기
맨발로 밟아 올라
머금은 아침 햇살에
송이로나 앉습니다.
서녘해 지는 노을
무너지는 하늘가에
걸어둔 아픔이야
타고 남을 재인 것을
한 타래 휘어진 가지
그림자를 심습니다.
세상은 고요하지도 요란하지도 않다. 그저 사물의 움직임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 속에서 분별심 없는 분별심을 갖는 것은 얽매이지 않는 자재로움 때문이다.
많은 禪客들이 무소유와 자유로움을 손으로 가리키기도 하고 허공에 들어내 보였다. 하지만 활달한 세상 대신, 힘겨워하는 부자유스러움의 진실 앞에 더욱 손을 모으게 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윤지원의 시조 <장미> 첫수를 읽으면 장미의 모습 속에 비치는 아픔은 한 소리, ‘할’로 들려온다.
차돌로 굳어진 정 / 오늘에야 문 엽니다// 피맺힌 가시 줄기 / 맨발로 밟아 올라 // 머금은 아침 햇살에 / 송이로나 앉습니다.
장미꽃이 피어남은 자연의 이치이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시조에서는 이미 장미꽃이 아니다. 반야의 꽃으로 다시 환생하였다. 그래서 차돌로 굳어진 情이 오늘 문을 연다고 하였다. 문을 여는 것은 지혜의 꽃이다. 여기서는 情이라는 지혜의 꽃이 그 자리에 들어앉았다.
정으로 문을 열면 세상이 따뜻하다.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피맺힌 가시 줄기를 맨발로 밟고 올라서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아침 햇살을 받고 장미꽃 한 송이로 피어나는 꽃, 그 꽃은 色이며 또한 반야의 꽃이다.
서녘해 지는 노을 / 무너지는 하늘가에 // 걸어둔 아픔이야 / 타고 남을 재인 것을 // 한 타래 휘어진 가지 / 그림자를 심습니다.
첫째 수는 탄생의 있음 또는 色을 말한 것이라면 둘째 수는 없음 또는 空의 세계를 나타내었다.
무너지는 하늘, 타고 남은 재, 그림자로 이어지는 흐름은 존재의 사멸을 보여준다. 이는 空이요, 또 다른 하나의 꽃이다.
장미에서 보여주는 삶에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 생명의 불꽃이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난 것이라면, 장미가 보여주는 그림자는 슬픔이다. 색 즉 공이요, 공 즉 색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꽃 피는 것을 보고 웃고, 지는 꽃을 못내 아쉬워한다.
사람들은 슬픔 보다는 환희로움을 더욱 원하지만 인생살이는 그 반대이다. 어느 사이에 슬픔은 사람들의 친근한 벗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슬픔과 진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한 타래 휘어진 가지로 그림자를 드리우듯, 부자유스러움의 진실 앞에, 오늘도 착한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들이 힘겨운 삶의 현장에서 쓸쓸하면서도 청청한 그림자를 진하게 만들어가고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다. 이 또한 입명(立命)이 아니겠는가.
12. 무욕빈자無慾貧者의 시
※ 김민정 ‘눈 오는 아침’
임춘자 ‘낙화’
1.무욕빈자의 구도
가을이면 유난히 맑은 것이 있고, 유난히 밝은 것이 있다. 계곡 틈새로 흐르는 물소리가 유난히 맑은 것이요, 둥두렷이 떠오르는 8월 보름달이 유난히 밝은 것이다. 맑은 물과 밝은 달을 보면 마음 또한 신비의 계곡에 들어선 듯 청량해진다. 선인(仙人)들이 산을 찾는 이유는 바위와 소나무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을 씻고 밝은 달을 거울삼아 씻긴 마음을 비춰보기 위함이었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허허롭게 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청량함도 세속의 번잡함을 겪지 않으면 절실히 느끼기 어려운 법이다. 도가선풍의 특징은 세속과 비속을 구분하지 않으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또한 산을 찾기도 하고, 시정잡배(市井雜輩)와 어울리기도 하면서도 속됨이 없는 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가을이 되면 몸살이 난다. 조용한 산을 찾아가기 위함이다. 굳이 산중에 절(寺)이 있을 필요는 없다. 허름한 산 집 하나 있으면 족하다. 작은 물소리도 들을 수 있고 산위로 내미는 달빛을 볼 수 있으면 족하다. 그곳에서 며칠 지내면서 차를 끓여 먹으며 나무와 숲과 풀벌레 소리에 마냥 귀를 기울인다. 번잡한 곳에 있다가 호젓한 산에 들어오면 이곳이 선가에서 말하는 무릉이요, 불가에서 말하는 서방정토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에덴 동산이다.
산에 살면서 쓴 시조 한 수 ‘산방에서’가 떠오른다.
가을 산방에서 차를 끓이다가
달을 벗 삼아 문밖에 나서니
달빛에 청산도 한 채 俗을 벗고 떠오른다.
- 남진원의 ‘산방에서’ -
조용히 녹차를 맛보며 달을 보고 물소리를 듣는, 참으로 은은한 즐거움을 누렸다. 녹차의 맛은 시간이 지날수록 쓴맛에서 단맛으로 나타난다.
산속에서 음미하는 녹차 향기처럼 반가운 시조 한 편을 만났다. 김민정 시인이 근래에 펴낸 시조집 ‘사랑하고 싶던 날’에 수록되어 있는 시조 작품 ‘눈오는 아침’이다. ‘눈오는 아침’은 불가의 색채가 은은하게 어리듯 겸허하게 서 있는 구도자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불가에서는 선(禪)과 교(敎)가 둘이면서 하나이다. 부처의 마음을 전한 것이 선이라면 부처의 말을 전한 것이 교(敎)이다. 없는 말로 말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은 선이고 있는 말로 말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은 교(敎)다. 선법과 교법이 하나의 불법인 것은 이런 연유이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서산, 즉 휴정 스님이 쓴 글인데 법정 스님이 해석해 놓은 책이다. 그 글 속에는 육조가 대중에게 물은 말이 나온다. 육조 혜능 선사는 선종을 창시한 달마의 6대 제자이다.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너희들은 알겠느냐?”
그때 신회 스님이 대답했다.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부처 성품입니다.” 이 말로 육조 혜능선사의 서자(庶子)가 되었다.
회양스님이 육조 혜능선사를 찾아오자, 물었다.
“무슨 물건이 이리 왔는가?”
그때 회양 스님은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 매었다. 그 후 8년이 지난 후에야 육조 혜능선사에게 “가령 한 물건이라해도 맞지 않습니다.” 라고 하여 육조 혜능선사의 맏아들이 되었다.
깨우침의 방편으로 문답하는 불가의 세계는 마음을 찾아가는 구도의 길이다. 본시 없는 마음을 찾아간다는 것 또한 어긋나지만 어긋나기 때문에 어긋나지 않음을 또한 헤아릴 수 있다. 말로써는 어긋나지 않았다고 하여 깨우쳤다고 하지만 온전히 깨우쳤다고 볼 수 없는 것은, 그 성품이 말과 다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많은 사람들은 깨우침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가. 참으로 모를 일이다. 다만 무지한 범부가 아는 것은 편안함과 즐거움이 오면 좋고, 힘든 일은 괴롭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찌 괴로움 밖에서 즐거움을 구할 것인가.
시조의 여러 작품을 보면 희비애오욕의 물상을 대한다. 그 속에서 인간의 섬세한 마음을 접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얻는다.
김민정 시인의 단시조 ‘눈오는 아침’ 는 담담한 구도자(禪)의 모습을 느낀다.
눈 오는 아침
김민정
이 아침
내리는 눈으로
세상은
온통 환해
떨어뜨릴
잎도 없는
겨울 나무
그가 되어
내 중심
들여다보며
눈과 귀를
씻습니다
참으로 귀한 선지(禪旨)가 아닌가.
어디 쯤에서 와서 어느 곳에 서 있는지는 모르지만 겨울나무 앞에 하얀 눈이 내렸다.
달마 선문의 3조 승찬대사는 ‘마음 새기는 말’에 이르기를, ‘허공과 같이 둥글어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고 하였다. 깨친 바가 있는 그 자리는 이미 부처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석가여래도 모르고 조사(祖師)들도 모르고 그 법을 전하거나 받지도 못한다. ‘아는 것이나 알지 못하는 것’에서 뛰쳐나와야 하고 그 ‘부처’ 에서까지 뛰쳐나와야 한다. 이것이 일원상의 이치다. 일원상의 이치를 알면 팔만대장경이나 모든 성인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한다.
깨우침에 대한 소중한 선지(禪旨)를 읽으면서도 나는 일원상(一圓相)의 이치도 모르고 팔만대장경도 성인도 다 모르는 것 밖에는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잎 떨어진 나무의 고독과 물 흐르는 빈 울림에서 계절의 무상함은 느낄 수 있다. 나는 무식하고 무지하다. 부처의 법을 깨달아 윤회가 끊어진 곳, 극락에 가는 것 보다 고통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아픔이 있는 이곳이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김민정 시인의 시 ‘눈오는 아침’이 그래서 나에게는 눈을 씻게 해주는 명품이다. 일원상에 다가가는 무욕빈자(無慾貧者)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날, 폭설로 교통체증이 일어나고 무원고립의 세계가 되지만 그러면 좀 어떠랴.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모처럼 눈 내리는 날의 모습은 오히려 밝은 세상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다.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어수선하던 것들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내려앉는 과정에서 만나는 그윽한 안정감은 찻물에 고인 침묵과도 같다.
창밖을 내다보면 거기에, 잎을 떨군 나무가 서 있다. 잎을 모두 비우고 나서 더 비울 것도 없는 겨울나무! 담담하게 눈을 맞는 나무의 모습은 그대로 성자의 모습이다. 겨울나무의 침묵 속에서 듣는 무언의 언어, 겨울나무가 되어 눈과 귀를 씻으며 자신을 성찰하고 있는 무광선사(無光禪寺) 같은 시인. 그가 바로 김민정 시인인 것 같다.
2. 평범한 비범
꽃은 예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상징되었다.
미당의 시 ‘국화 옆에서’는 지금도 가을이 오면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는 명작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하는 국화 옆에서의 작품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에서 절정을 이룬다.
국화꽃의 여인상은 삶의 희비애락을 겪고 난 여인의 모습이다. 거울 앞에선 여인의 모습은 젊은 날의 아름답고 싱싱하던 모습이 아니라, 아픔과 멍에가 깃든 삶의 회한을 가슴에 간직한 여인이다. 슬픔과 설움이 배어있다. 한이 응어리져 있다. 속절없는 삶의 고갯마루를 넘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던 삶이다. 이러한 한과 설움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조 작품이 있다.
임춘자 시인의 시조 ‘낙화’이다.
낙화
임춘자
피는 꽃 곱다고야 누군들 말 못할까
한 시절 내 청춘도 속절없이 흘렀구나
분분히 날리는 꽃잎 두 손으로 받아보네
쉽고도 평범한 언어로 한과 슬픔을 절묘하게 담았다. 이 시조 작품은 강호시조문학회(강릉평생정보관과 강릉여성문화센터에서 시 공부를 한 시조시인들의 문학회)에서 매월 여는 시조 시회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좌중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이 시조를 들으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흐름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을 흐름을 뽑아 올리는 기법이 일품이다. 쉬우면서도, 크고 감동적인 내용을 짧은 단시조의 시형에 담아낸 묘미를 느낀다.
꽃이 피는 것도 한 시절이요, 내 인생이 흘러가는 것도 한 시절이라, 꽃 피는 아름다움이야 누구에게나 있는 법. 그러나 꽃잎이 흩날리듯 내 청춘 속절없이 흘렀음을 되돌아볼 때 인생의 완미(完美) 보다는 미완(未完)의 아픔에 더욱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 그 아픔, 설움이야 그야말로 일구지난설(一口之難說)이다.
중장은 가히, 기가 막힌 내용이다. 누구나 인생을 되돌아보면 한 시절 내 청춘이 속절없이 흘렀다는 기구한 삶의 탄식 아닌 탄식이 절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꽃이 필 때에는 누군들 예쁜지 않은 꽃이 없고 즐거움에 취해 금세 지리라는 생각을 어찌 할 수 있으랴.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그 화려한 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모습을 보고 어찌 인생의 감회가 새롭지 않으랴. 시인은 분분히 날리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 본다. 인고의 세월이 묻어나는 꽃잎을 손에 담아 느끼는 그 모습은 인생의 연륜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평범한 언어들로 비범한 삶의 무게를 그려낸 작품 ‘낙화’는 우리네 마음 거문고에 남아있는 작품이 되리라.
13. 적출적멸寂出寂滅의 도
※ 원천석 ‘흥망이 유수하니’
유재영 ‘가을이순耳順’
(1)
고요함이 모였다가 흩어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텅 빈, 공허가 남는다. 그 곁에는 무엇이 있는가? 운수가 있다. 늘 가까이 하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마음 아픈 것은 운수가 다했기 때문이다. 만화방창의 봄날이면 화원에는 나비와 벌이 쉼 없이 날아들지만 입추가 지나 입동과 동지에 접어들면 적막과 쓸쓸함이 감돈다. 계절의 운수가 다 했기 때문이다. 계절이 지나가면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이 남는다. 그리움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사람을 따듯하게 한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 겨워하노라.
- 원천석 -
조선 태종 임금의 스승이었던 원천석의 시조이다. 원천석은 고려 임금을 모시던 사람으로 조선이 개국하자,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에 은거하였다.
어느 가을날, 원천석은 고려의 수도인 개성을 찾아가 보니 화려 하던 고려의 왕궁은 간 곳 없고 그 자리에 풀만 우거진 것을 보고 시절의 변화와 왕조의 덧없음을 노래하였다. 원천석이 본 것은 운수였다. 오백년의 왕조도 운수가 다해 왕궁 터엔 풀만 무성하고 목동의 피리소리만 스치고 있는 것이다. 운수(運數)는 소리가 없이 다가와서는 흔적도 없이 가버린다. 적출(寂出) 적멸(寂滅)의 도(道)이다.
삶과 죽음, 가고 오는 것, 기쁨과 슬픔 모두가 운수에 의해 일어난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 운수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다. 애틋한 심사를 달랠 수 없는 것은 운수가 박(薄)하여 그 시절의 모습이 너무 깊이 삶의 뿌리에 박혀 떠나지 않기 때문이고 기쁨이 큰 것은 운수가 대발(大發)했기 때문이다.
도로는 곳곳마다 포장 되어 가는 곳 마다 땅의 기운이 죽어가고 여기저기에서는 산업쓰레기가 배출되어 환경오염으로 치닫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또한 문명이란 운수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간에서 그나마 기쁨이 있다면, 원천석이 고려 궁터를 찾은 것처럼 옛것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세월이 무상하게 변해도, 한 번 맺은 인연의 고삐를 놓지 않는 작자의 아름다운 심지를 읽을 수 있다. 그렇다. 세월이 변해도 곧은 지조를 마음에 새기면서 살았던 사람들은 오늘 우리들의 마음에서도 새롭게 살아나고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마음의 뼈에 새기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들은 바람결에 티끌처럼 흘려보낸다.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뼈에 새길 수 있는 사람도 몇이 되지 않는다. 운수 따라 세월이 변하고 운수 따라 사람이 떠나가도 아름다운 사람은 빛과 그림자처럼 남아 그리움을 불러온다.
그래서 그리움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누구나 세월에 대한 그리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원천석이 고요한 그리움을 찾아 나선 것처럼 ….
(2)
화담(花潭)이 논한 글 가운데에 태허설(太虛說)에 관한 부분이 있다. 태허는 크게 비어있다는 뜻인데, 비어있으면서도 비어있지 않음이라 하였다. 허(虛)를 기(氣)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虛)는 무궁무외(無窮無外), 즉 끝도 없고 밖도 없다는 것이다. 기(氣) 역시 무궁무외(無窮無外)라 한다. 기의 본체가 ‘비고 고요함’이며 그 작용이 ‘모이고 흩어짐’이라 여긴 까닭이다.
비어있으면서도 비어있지 않음은 그 움직임에 연유한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 고요함(죽음)에서 시작되어 혼돈을 거쳐 새로운 생명의 모습을 띄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꽃 피우고 열매를 맺은 후에 다시 죽음의 자리(옛 자리, 또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화담이 이야기한 태허는 이 모두를 뜻하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잠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피해 조용히 머무는 자리, ‘비고 고요함(虛靜)’의 상태에 있을 때 맑고 깨끗함, 아름답고 순수한 것들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이때의 도(道)는 ‘지극히 고요하고 아름다운 상태’라 할 수 있다.
월간문학 2008년 9월호에서 유재영의 시조 ‘가을 이순(耳順)’을 만났다. 이 분은 태허(太虛)의 진경(眞境)에서 노닐고 계셨다.
가을 이순耳順
유재영
접미사가 아름다운 누구의 운문이냐
맑게 고인 어둠 저편 난초 휘인 창문 하나
잔 가득 고요를 부어 절반쯤 마셔 본다
귀얄무늬 잠길 듯 남겨 둔 향기처럼
내 생각 마른 대궁 가만히 와 흔드는 이
오늘 밤 잎 지는 소리 적막보다 크구나
가을을 한 줄로 빼내는 가락이 얼마나 멋진가, 천 마디의 생각과 만 가지의 풍광을 단 한 줄로 그려내고 있다.
‘접미사가 아름다운 누구의 운문이냐’
언어의 울림이 주는 효과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름다운’이란, 진부하고도 흔하게 사용 하는 말에다 이처럼 생명감을 불어넣어주는 절묘함을 몇 마디의 언어로 그려 넣을 수 있다니, 손뼉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중장에 들어서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맑게 고인 어둠 저편 난초 휘인 창문 하나’
창문에 난초의 그림자가 어려 있다. 그 난초의 잎이 생각에 잠긴 듯 비스듬히 휘어져 있다. 실물의 난초 잎을 보는 것 보다 더 맑은 심상을 전해 준다. 이미지가 대립적인 구도를 갖으면서도 상호 조화를 이루었다. 한 편에서는 맑은 어둠이 고여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난초 잎이 휘어져 하나의 생명감 있는 영상물로 다가 온다.
가을의 영상을 초장에 드러내고 중장에서 구체적인 창문의 이미지를 통해 태허(太虛)를 그려내고 있다. 실제로 휘어진 난초 잎이 비어있지 않음의 세계라면, 창문에 휘어진 난초 잎은 비어있는 고요함의 미적 세계이다.
이 시조가 주는 품격은 첫 수 종장에 있다.
‘잔 가득 고요를 부어 절반 쯤 마셔 본다’
반 쯤 깊어지는 어둠 앞에 난초 잎이 놓여 있다. 난초 잎은 창문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곁에서 호젓이 술을 마시는 어느 선비의 모습을 그리고 있노라면 세상의 영욕과 부귀를 논할 일이 아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선가(仙家)의 풍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시조 종장의 묘미는 ‘가득’이란 말과 ‘절반’이란 말의 어울림이다. 고요는 가득한데 그 고요를 모두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절반은 남겨 두려 한다. 다 채우지 않고 다 비우지 않는 여유와 너그러움을 옆에 벗처럼 두었다.
‘귀얄무늬’는 풀이나 옻을 칠할 때에 쓰는 솔인데 그 솔로 낸 무늬를 귀얄무늬라 한다. 주로 도자기에 많이 드러나는 무늬이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솔의 자취가 속되지도 않고 화려하지 않으면서 담백한 미를 맛볼 수 있다.
이 시조의 둘째 수 초장은 ‘귀얄무늬 잠길 듯 남겨 둔 향기처럼’ 이라 하여 하나의 의미 구를 형성하였다. 즉 향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함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 정체는 뒤로 한 채, 향기 같은 그 무엇은 생각의 마른 대궁을 가만히 와서 흔들어 놓는다.
시제(詩題)의 ‘가을이순(耳順)’이란 말이 다시 떠올려지는 부분이다. 이순(耳順)은 사람의 나이 60을 가리킨다. 나이 60이 되면 세상의 쓴 이야기를 들어도 귀가 부드러워진다는 뜻이다. 세상을 살 만큼 살아 마음이 넉넉하니 미운 말을 들어도 그저 담담하게 넘길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가을 이순’은 작자가 어떤 뜻으로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가을 또한 인생의 나이로 치면 이순(耳順)에 들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을은 오행으로 보면 금(金)에 해당한다. 금은 숙살(肅殺)의 기운을 띄는데 만물을 자르고 다듬는 공이 있다. 가을이 되어야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판가름 나고, 가을이 되어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가을은 풍요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에 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을 절기 중에는 백로와 한로가 들어있다. 희고 차가운 모습을 띄는 게 가을이다. 그래서 가을은 색으로 치면 흰색에 속하고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방위는 서방이요, 불가에서는 서방정토라 한다. 서방 정토는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고 깨끗하게 하여 들어가는 영혼의 거처이다. 인생의 가을 길목 또한 반성을 통해 정신을 고양시키는 공간이요, 시간의 거소이다.
따라서, 향기처럼 ‘내 생각 마른 대궁 가만히 와 흔드는 이’에 대한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이 시조가 갖는 무게는 당연히 둘 째 수 종장이다.
‘ 오늘 밤 잎 지는 소리가 적막 보다 크구나’
잎 지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잎 지는 소리를 듣는 것은 이순에 닿아 있는 시인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귀 때문에 그 소리는 적막보다도 크게 들리는 것이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는 대우주(大宇宙)의 마음속에서 ‘쿵!’ 하고 우주의 짐을 덜어내는 나무의 소리인지도 모른다.
가을 이순에 들어서 적막을 벗 삼아, 적막을 통해 말하고 적막을 통해 듣는 유재영 시백님의 귀가 어찌 부럽지 않으랴. 이분의 작품 ‘가을 이순(耳順)’은 그 아름다움이 적(寂)을 멸(滅)하는 자리에도 자라고, 적(寂)이 나오는(出) 자리에도 자라니, 난초 휘인 창문의 그림자를 내 외로움의 창에도 드리워볼 일이다.
14. 여유와 여백의 자유로움
※ 황희의 ‘대추볼 붉은 골에’
김육의 ‘자네 집에 술 익거든’
한호의 ‘짚방석 내지 마라’
박기섭의‘할머니 혼자’
스스로 그렇게 자라고 흘러가는 것을 자연(自然)이라 했던가. 작은 씨앗이 싹이 트고 줄기와 잎이 무성해지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가 다시 싹이 트고 무성해지며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반복한다. 반복을 하면 따분하고 지루하다. 그러나 매우 단조로운 이러한 일들이 실상은 가장 중요한 일이란 것을 잊고 사는 때가 많다. 숨쉬기는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가장 단조로운 일이지만 살아있다는 증거는 숨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 매일 같이 밥 먹고 잠자는 일은 일상의 되풀이지만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우리 들의 삶이다. 이런 인생의 반복법이 거대한 자연과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문학 예술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먼 시절부터 이어져 온 지금의 문학과 예술은 그 모양과 빛깔과 음색이 다를 뿐이지 인간 삶의 양태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돌고 돌아도 늘 그 자리요,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불교 선종의 큰 맥을 이은 대종사 월산스님의 임종게(臨終揭)는 사람의 반복되는 삶에서, 인간의 근원자리를 밝히는 진리의 깨우침을 주었다.
-일생을 돌고 돌아도 한 발자국도 옮기지 않았으니 본래 그 자리는 천지 이전의 자리였네. - (廻廻 一生 未移一步 本來其位 天地以前: 회회일생 미이일보 본래기위 천지이전)
모든 것이 하나로 되어있으면서도 그 하나가 무한대로 이어지는 열림의 반복적인 세계, 그것을 일원상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천부경(天符經:하늘의 상서로움을 적은 말씀)에서는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이란 말로 짚어냈다.
무한의 세계는 열림의 세상이며, 활달함과 여백의 풍요로운 모습이다. 이는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동양의 대 자유인이며 사상가인 장자는 곤(鯤)과 붕(鵬)으로 생각의 활달함을 펼쳐보였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사는데 이름이 곤(鯤)이다. 곤은 매우 크다. 그 크기가 수천리나 되어 넓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곤(鯤)이 변해서 새가되었는데 이름이 붕(鵬)이다. 붕이 날면 날개가 하늘에 구름을 드리운 것 같다. 바람이 불면 이 새는 남쪽 바다로 날아가는데 그곳을 천지(天池)라 한다.
(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地雲 是鳥 海運而將徙於南冥 南冥天池 :북명유어 기명위곤 곤지대 부지기기천리야 노이비 기익약수천지운 시조 해운이장사어남명 남명천지)
선가(仙家)의 최고 경지 또한 습속을 떠난 자유로움과 활달함에 있다. 선가(仙家)의 백미(白眉)는 가난한 것을 부(富)로 삼고 추(醜)한 것을 평안하게여기는 것이다. 부귀와 권세를 쫓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의 진수를 찾아낸다.
시 또한 습속을 떠난 자유로움이 살아 있어야 시인을 시인답고 행복하게 한다. 형식은 갖추되 형식에서 떠나야 시조의 격이 높아지듯이 사유의 활달함과 여백이 없으면 답답한 작품이 된다. 문인 가운데 뛰어난 글을 써서 동서고금에 회자하는 인물이 꽤 많이 있다. 고려의 이규보, 조선의 이달, 임제, 김육이나 중국의 이백 같은 문사는 그 기개가 활달하여 작품에 문기(文氣)가 서려 있다. 문사는 아니지만 서예가로 이름을 날린 한호도 문기가 뛰어나다. 문기(文氣)는 해와 달을 희롱하고 세상을 조롱하는 풍류지도(風流之道)가 있어야 한다.
풍류의 도백(道伯)을 들자면 조선의 황희도 빼놓을 수 없다. 황희는 90세로 풍진 세상을 꽤나 넉넉하게 산 사람이다. 조선 태조 때부터 세종까지 4대의 임금을 모신 명재상이기도 하다. 60여 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18년간을 영의정을 지냈으니 그의 인품과 덕망을 가히 알아볼 만하다.
대추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듣들으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내리는고
술 익자 체 장수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 황희-
초장과 중장 종장 모두 만추의 가을을 배경으로 한다. 스스로 그렇게 흘러가는 이치를 자연의 대추와 밤, 벼 벤 그루와 게로 연결 지으면서 종장에서 술과 체 장수를 대비시켜 풍요를 노래하고 있다. 술이 익어갈 무렵, 때 맞춰 체 장수가 체를 사라고 한다. 체로 술을 걸러서 잘 익은 농주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억지로 마시는 술이 아니라, 체장수가 옴으로 해서 절로 술을 먹지 않을 수가 없다. 자연스러움과 자유스러움이 시조 속에 담겨 있다. 인생을 시절에 맞추어 사는 노련함은 그의 정치 인생에도 긴 생명력을 갖게 한 모양이었다. 자유롭고 걸림 없이 사는 지혜로움은 단연 김육과 한호가 한 발 앞선다.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초당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하음세
백년 덧 시름 잊을 일 의논코저 하노라
- 김육 -
참 멋이 깃든 한 편의 시조이다. 백년 동안의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기 위해 술을 먹자는 것은 핑계일 수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처럼 사람이 많아도 사람이 귀한 때는 드문 것 같다. 형상이야 뜯어고쳐 기막히게 예쁜 얼굴이지만, 어디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이던가. 근심걱정 부귀영화 모두 벗어던지고 그냥 술 익으면 불러달라는 호쾌한 말은 그대로 가슴을 울리는 마음의 소리이다. 꽃 피면 친구를 청하여 함께 술잔을 나누겠다는 것 또한 호방하고 다정하면서도 담대하다.
황희가 영의정을 지낸 것처럼 김육 또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두루 거친 관리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탁월한 능력이 있어 대동법을 실시하였고 천문 지리 복서(卜書)에도 정통하였다. 세상이치에 능통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풍(時風) 또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럽다.
선풍(仙風)을 드날리는 시조 작가로 또 한 사람, 조선의 명필 한 호가 있다. 어머니는 떡을 썰고 한호는 글씨를 쓰는 <떡 썰기와 글씨쓰기 겨루기>는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어머니의 독실한 사랑과 지도가 그를 위대한 조선의 명필로 만들 수 있었고, 그 깊은 사랑은 자유로운 선풍을 진작시키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유재건이 펴낸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시골에서 생활하는 하층민들 중에서 걸출한 인물의 행적을 모아놓은 글)’에 한호의 한시가 전하고 있다. 그 내용을 옮겨 본다.
- 석봉 아래가 바로 내 집일세
만길 연꽃 봉우리 자줏빛 하늘 가운데 솟았구나
흰 구름 자욱한 소나무 아래에 누워 보네.
풍진의 세상일 아득히 멀고
가을 달 희롱하노라니
세속의 일이야 어찌 근심할 바인가-
이렇듯 걸림이 없는 시를 읽으면 답답하던 사람의 마음도 개운하게 씻어준다.
나는 소나무 아래에 누웠다는 이야기에 은근히 매료되었다. 소나무는 예부터 불로장생의 십장생에 드는 신성한 나무이다. 소나무를 생각하니 산에서 사는 시인이 생각난다. 소나무를 소재로 하여 시를 쓴 최명길 시백(詩伯)이다. 이 분이 쓴 ‘적송 숲에 누워’라는 시가 떠오른다. 마음에 드는 시라서 옮겨 보았다.
아름드리 적송 숲에 누웠다. / 야간산행 중에 / 솔가지 일렁거리는 사이로 산별들 많다. / 그 건너가 장엄 무등등계인가 / 애총에서 나온 해골 같은 별이, 별 때문에 / 솔잎에 광채가 서려 있다. / 수만 개의 은못 뭉치가 / 일시에 날아들어가 박힌 밤 하늘 천장 / 솔가지 사이 그 흔적, // 간간히 딱, 하고 / 나무삭다리가 부러졌다.
- 최명길의 ‘적송 숲에 누워’( 2008.12 월간문학) -
최명길의 ‘적송 숲에 누워’에서 ‘수만개의 은못 뭉치’ 라는 비유가 신선한 충격을 준다. ‘간간히, 딱 하고 나무삭다리가 부러졌다’라는 부분은 이 시 전체를 뒤흔드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짚방석 내지마라, 낙엽엔들 못 안즈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도다온다
아희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 망정 업다 말고 내어라
-한호-
위의 시조는 한호의 작품이다. 사람과 자연물 사이에는 부귀도 영화도 가난함도 아무 것도 없다. 한마디로 걸림이 없다. 짚방석이란 인위적인 것은 필요 없다. 차라리 낙엽에 앉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한다. 일부러 불도 켜지 마라고 한다. 달빛에 술잔을 기울이는 게 더 운치가 있지 않으랴. 형식과 명리를 뛰어넘어 달을 벗 삼으며 박주산채(薄酒山菜: 거친 술과 산나물)에 취하고 싶은 넉넉함은 모든 시름을 뛰어넘는 저쪽의 세계이다.
옛사람들은 이처럼 여유와 여백을 세상에 깔고 살았다. 인간의 삶이 위대한 것은 그 생각이 열려있고 그 마음이 자연과 하나의 흐름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흐름대로 놓아두고 그 진경 속에 노니는 시조 작품을 읽으며 나 또한, 선경의 세계를 노닐다 온 느낌이다
현대 시조에서 여백과 자유로움을 그린 시조 작품 중에 하나가 박기섭 시백의 ‘할머니 혼자’이다.
할머니 혼자
박기섭
이 저승의 환한 문살 다 열어 놓은 채로
칠순 할머니 혼자 파리를 잡으신다
조선의 낡은 가을 볕, 잡다 문득 놓치신다.
- 박기섭의 시집 <묵언집> 중에서 ‘시편. 2’의 첫째 수 -
박기섭 시백(詩伯)의 시조에서 ‘칠순 할머니’라는 시구를 대하면 웃음이 나온다. 이 작품을 쓸 때만 해도 칠순이 그리 흔하지는 않았다. 요즘 칠순할머니는 참 많다. 우스개로 말해 보면, 앞으로는 ‘팔순 할머니’ 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79세라고 하니 말이다. 남자 보다 여자가 훨씬 더 오래 산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
시조 ‘할머니 혼자’는 할머니 혼자 조선의 모든 여백과 자유를 차지한 듯이 보인다. 이 시조를 읽으면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여백의 미가 풀풀 넘친다. 할머니가 파리를 잡는 모습은 또 어떤가, 조선의 문살처럼 환하다. 가을 볕이 드는 오후에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파리를 잡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감춰진 희비애락의 모습을 여유롭게 만날 수 있지 않는가. 자유시가 갖지 못한 시조라는 형식미의 큰 위력을 박기섭 시백의 시조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세상은 슬프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꽃이 아름답지만 그것은 인간이 꽃에게 붙여준 사치일 뿐인 것처럼. 그게 어디 꽃의 뜻이겠는가. 꽃은 그저 피고 질 뿐 뜻을 말하지 않는다. 나 또한 여러 명현의 시조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내 뜻대로 주절거리는 빈 말인지도 모른다. 허나 어쩌겠는가. 그 또한 내 생김새대로 노는 것인 것을.
선가 시풍이 담긴 시조들을 읽어 보았다. 이 모두가 현대를 사는 각박함과 욕심으로 가득 찬 내 탐욕을 비워내기 위함이었다. 많은 시조를 대하지는 못하지만 간혹 일련의 시조를 읽으면서 활달함과 여유, 여백이 갖는 아름다움을 보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확 트인 시보다는 가슴이 답답한 올망졸망한 시들이 더 많다.
옛 시인들이 남긴 시조의 한 면목을 보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면면히 성장해 온 우리의 시조 중에 박기섭 시백의 시조 ‘할머니 혼자’에서 여백과 한가로움의 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숨쉬기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찾아낸 소중한 시조 한 수 였다.
15. 허허진경虛虛眞境의 세계
※ 이방원의 ‘하여가’
정몽주의 ‘단심가’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
이영도의 ‘무제.1
문학의 장르 중에서 일정한 대상을 향해 쓰는 글을 편지라고 한다. 그러나 시 또한 일정한 대상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쓰기도 하고, 옛날에는 임금에 대한 충정을 시로 나타내기도 하였다.
특히 우리의 민족시인 시조의 경우에는 읽어주기를 바라는 특정한 대상이 있었던 작품이 있다. 상대방에게 나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 일반적인 편지 보다는 감동적 언어인 시를 통해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한다는 것은 충분히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1]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조는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몽주가 지었다는 ‘단심가(丹心歌)’와 이방원이 지었다는 ‘하여가(何如歌)’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대조적인 시조 작품이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 이방원의 ‘하여가’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정몽주의 ‘단심가’ -
이 작품은 널리 알려진 작품이고 왜 쓰여 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이 두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좀 다르다.
이방원이 정몽주의 의중을 떠 보기 위하여 펼쳐 보인 시조가 ‘하여가’ 이다. 정몽주는 변함없는 충정의 마음을 시조로 답변하였다. 단순히 이런 얘기로만 이 시를 읽는다면 한계가 없을 수 없다. 단순하고 재미가 없다. 그냥 우리 편으로 오는 게 어떠냐? 난 죽어도 싫다. 어찌 두 임금을 섬기겠는가? 라는 뜻의 시조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역사적인 배경을 잠시 밀쳐두고 읽어보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앞의 이방원의 시조는 중국 남송의 선승 무문혜개(無門慧開)의 선어록에 나오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의 글을 연상한다. 물론 이방원이 쓸 때에는 정몽주의 마음을 떠 보기 위해 쓴 시이지만 굳이 거기에 한계를 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大道無門(대도무문) 큰 도는 문이 없다.
千差有路(천차유로) 아니 모든 것이 문이다.
透得此關(투득차관) 이 문을 통과 해야
乾坤獨步(건곤독보) 천하에서 자유로워지리라
여기에 나오는 문은 대도(大道)의 문이다. 대도(大道)는 글자 그대로 큰 도이다. 큰 도는 문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문이 없는 게 아니라 그 문을 드나드는 게 자유롭다는 말이다.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들어오고 나갈 사람 또한 자유롭게 나가는 문이다. 걸림이 없는 문, 그게 대도의 문이다. ‘하여가’의 초장을 보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라고 시작하고 있다. 만약 정몽주와의 시비를 논하지 않았고, 태종 또한 권력의 야심이 없었던 자라고 한다면 이 시는 그야말로 대도무문의 시임에 틀림이 없다. 중장에서는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하고 다시 강조를 하고 있다. 걸림 없음의 자유로움을 강조하였다. 종장에 오면 얽혀서 백년을 누리겠다고 한다. 미운 사람, 고운 사람, 못난 사람, 잘 생긴 사람 할 것 없이 얽히고 설켜서 살겠다는 것이다. 시만 본다면야 얼마나 따뜻하고 자유로운 시문인가. 난 그래서 이 시조를 가끔은 있는 그대로 읽으며 자유스러움의 상징으로 벗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정몽주의 시조 또한 일품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신의 일에 열성을 다해야 한다.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정신은 고귀하고 값진 것이다. 정몽주의 시조 ‘단심가’ 또한 역사적 배경을 제외하고 읽는다면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새로운 면모의 시조이다. 내가 스스로 게을러질 때면 이 시조를 생각하면서 나를 담금질한다.
[2]
야은(冶隱) 길재는 고려말의 학자이다.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것을 눈치 채고, 늙은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란 나라가 세워진 어느 날, 그는 한 필의 말을 타고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찾아간다. 그곳에서는 옛날의 영화와 사람의 자취는 찾을 길 없고 폐허가 된 고려 왕궁 터를 보며 시 한 수를 남긴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 -
불교의 법어 중에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다. 그러니 너무 집착하지 말고 살라는 뜻이지만 어디 세상살이가 그렇던가.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하며 지내다 보면 어느새 머리엔 이슬이 내리고 몸은 병이 들어 제멋대로여서 걷기도 힘든 날이 태반이 된다. 문득 돌아보면 한낱 신기루 같은 세상살이가 아니던가. 야은 길재는 불사이군의 충정으로 벼슬을 버린 채 고향에 내려가 살았지만 고려의 수도 개경을 찾아가 보고 역사의 허무를 느꼈다. 모든 게 한 순간의 꿈이란 걸 그도 느꼈던 것이다.
내가 사는 옆에는 작은 산 하나가 있다. ‘월대산’이라 하는데 아침이나 한낮의 산행으로 딱 좋은 곳이다. 그곳을 가려면 폐가 한 채를 만나야 하는데 사람이 살지 않아서 문이 다 떨어져 나가고 휑뎅그레하다. 자주 스쳐지나다 보니 그 폐가와 무언의 정이 들었다.
지난해에는 마당에 쑥이 자라서 아이들의 키를 넘길 정도였다. 산을 향해 가다 보니 그 폐가가 눈에 들어왔다. 저 집도 처음 새로 지었을 때에는 희망과 꿈에 부푼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찌하여 저렇게 폐가가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며 지나간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 폐가가 오히려 정겨운 것은 그 집이야말로 대도무문의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는 바람 막지 않고 가는 바람 잡지 않으니 그 얼마나 허허롭고 자유로운가.
그런데 오늘 아침 산을 향해 가는데 보니 그 폐가가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그 자리는 말끔이 정돈되어 씨앗을 심을 밭이 되어 있었다. 그 폐가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서운해 하였다. 폐가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던 것일 게다. ‘누가 여기를 지나가면 남루한 집 한 채가 이곳에 있었으리라고 생각이나 할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떠올릴 수도 없는 일이 지금 일어난 사건에 대해 참으로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 폐가뿐이겠는가. ‘인생의 자취 또한 이러한 것이 아닌가.’ 그 동안 지내온 인생 역정에서 모두 흩어져, 자취도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 얼마인가. 폐가와 인간이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참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길재 또한 옛 사람들이 그리웠던 것일 게다. 야은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 ...’ 이란 시조가 그래서 마음에 와 닿는다.
쓸쓸함을 더 해주고 적막감을 전하는 시조, 인간사 부질없음을 깨닫게 하고 허허진경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문, 그것이 ‘오백년 도읍지’ 였다. 옛 자취에 스민 향수를 달래며 ‘오백년 도읍지를’ 다시 읊조린다면 아마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감회가 찾아오리라.
[3]
현대에 들어서서 인물에 대한 대상을 중심으로 쓴 시가 이영도와 청마 유치환이다. 단아한 성품의 소유자 이영도를 그리워한 청마는 정운 이영도에게 장문의 시를 쓰며 사랑의 마음을 전하였다.
-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의 ‘행복’ -
처음에는 부인이 있는 청마의 사랑을 거절했지만 열정적인 그의 모습과 사랑의 시편에 이영도 또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청마가 찾아왔을 때의 심경을 이영도 또한 시조로 나타내었다.
무제 . 1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가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그리움과 괴로움이 절절이 녹아있는 시조 작품을 읽으면서 지순한 영혼의 아픔을 만나볼 수 있다.
돌아보면 밉지 않은 사람 없고 괴롭지 않은 일 없다. 또한 돌이켜 보면 고마운 사람과 사물이 없을 수 없다. 미움과 증오, 괴로움과 원망, 탄식, 기다림, 그리움, 사랑, 즐거움, 행복 이런 것들 속에서 시인은 시를 쓰며 쉴 사이 없이 흔들리면서 저물어간다. 그러기에 따뜻한 시조 한 수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위로가 되고 값진 것이겠는가.
16. 무위 • 사랑 • 삶
※ 김인후의 ‘청산도 절로절로’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신완묵의 ‘산다는 게 알고 보니’
1.
만물은 스스로 나고 자라고 꽃 피어 열매 맺고 다시 나고 자라며 그 순환을 반복해나간다. 누가 옆에서 더 자라라고 하지 않아도 자랄 때가 되면 자라고 열매 맺을 때면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법칙이다. 사람 또한 이와 같다면 모든 게 평온하게 진행되어 갈 것이다.
청산도 저절로 자라고 푸른 물도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사람의 마음도 이 같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노자 역시 인위를 가하지 않고 무위로 다스려나가는 세상을 바랐다.
억지스러움은 강제적인 힘을 동반한다. 강제로 하는 힘은 딱딱하고 강하며 단단하다. 그러나 부드러운 것은 갓난아이와 같이 연약하다. 강하고 딱딱한 것은 죽은 것들의 특징이며 연하고 부드러운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특징이다. 노자의 무위는 간섭과 지배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움직여간다. 그것은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며 살아있는 생명적인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것은 억지스럽다. 자연스러운 것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다. 예로써 치장하지 않는다. 진실한 마음으로 대한다. 진실함 앞에는 덕이 없어도 덕이 자리하고 인이 보이지 않아도 인이 스며있고 예가 없어 보여도 가장 훌륭한 예가 나타난다. 겉으로는 남루해 보여도 무위의 생활은 마음 속에 향기를 품은 듯 향이 난다.
동양화에는 그림 속에 나오는 경물도 경물이지만 여백에서 비춰지는 이미지가 더욱 마음을 끌어당긴다. 안개 같은 여백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은 것도 유위가 아닌 무위에 가까운 자연스러움 때문이리라. 이러한 노자 사상은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우리 고유의 풍류사상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며 탐욕을 멀리하는 신선사상으로 이어진다.
김인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유학자이다. 그의 학식은 해박하여 해동18현의 한 사람으로 불리워졌을 정도이다. 그러한 그는 35세 이후에는 고향에 돌아가 주자학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자연친화적이고 무위의 도가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김인후가 남긴 아래의 시조 한 수는 무위로 살아가는 자연인의 모습으로 편안함을 준다.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 김인후 -
현대인은 바쁘고 고달프다. 이제는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어디로 그렇게 가는지 달려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조급함과 각종 스트레스로 병이 생기고 약을 음식처럼 먹어대야 하고 병원 신세를 지고 살아간다. 김인후의 시조는 가뭄에 내리는 비처럼 여유와 평화를 느끼게 한다. 청산도 절로 자라고 녹수로 절로 흐르고 있으니, 사람도 자연을 닮아 절로 살아가려는 몸짓, 얼마나 멋진 시조인가.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더욱 절실한 목소리로 다가온다. 나는 각종 스트레스로 마음이 무거우면 김인후의 시조를 읊조린다. 김인후의 시조 안에는 가장 아름다운 산천의 모습과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소리가 살아서 울려퍼지고 있다. 이 시조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종장이다.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는 말이다. 요즘 나이 든 늙이이 중에서도 청년기로 되돌아가려는 듯, 옷차림이나 화장을 어울리지 않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혹자에게는 매우 대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꼴불견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세월이 지나면 그 세월만큼의 무게와 모습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건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얼굴이다. 늙어가는 모습도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다. 나이가 점점 들어 노인이 되어가거나, 아니면 바쁘고 힘들 때엔 김인후의 ‘청산도 절로절로’를 읽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게 좋겠다.‘아름다운 젊음’은 인위가 아닌 진실한 삶과 자연스러움에 있지 않을까.
2.
황진이는 조선 중종때 사람으로 개성의 명기로 알려져 있다. 재색을 겸비하여 조선 최고의 기녀이며 박연폭포, 서경덕과 함께 송도3절(松都三絶)이라 일컫는다. 선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문을 겨루었고 그 음색이 청아하여 많은 선비들을 경탄하게 하였다.
성격이 활달하여 협객의 기상을 갖추었다고도 전해진다. 30년간 벽만을 바라보고 수도 정진하는 지족선사를 미색으로 굴복시켰다는 말은 유명하다. 또 돈냥이나 있는 한량들이 천금을 가지고 유혹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러나 화담 서경덕의 인품이 높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유혹하려다가 오히려 그의 인품에 감동되어 평생 서경덕을 사모했다고도 전해진다.
그녀는 일찍이 황진사의 서녀라고도 하고 맹인의 딸이라는 말도 전해온다. 15세 때 이웃의 한 총각이 황진이를 사모하다 병으로 상사병으로 죽게 되고 총각의 영구가 황진이의 집앞을 당도하게 된다. 그러자 말이 관이 움직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고 하였다. 황진이가 속옷을 벗어 관을 덮어주자 영구가 움직이며 나아갔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황진이는 기생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인가. 그의 아름다운 시조에는 쓸쓸한 가을 꽃같은 처연함이 묻어나오고 있다.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에서도 쓸쓸한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종실의 한 사람인 벽계수는 황진이 때문에 안달이 났다. 친구인 이달을 찾아가 어찌하면 좋으냐고 청했다. 그러자 이달은 진이의 집을 지나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타라고 했다. 그러면 황진이가 옆에 올 것이데 그때 슬쩍 일어나 본체만체하고 말을 타고 가라고 일렀다. 벽계수가 그렇게 하자 진이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하고 시를 읊조렸다. 그 소리를 들은 벽계수가 귀가 번쩍 뜨여 돌아보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황진이는 그 모습을 보고 “명사가 아니라 풍류객이구려.” 하고 웃으며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돌아서는 황진이의 모습에서 쓸쓸함과 허전함을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 황진이의 내면에 깃든 깊은 고독과 아픔이 한으로 묻어나오는 것을 시조를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 황진이 -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꿈이 얼마나 깊었으면 동짓달 긴 밤의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밑에 감으려고 한단 말인가. 어른 님 오셨을 때 굽이굽이 펴겠다는 것은 자신의 열망이지 실제는 아닌 것이다. 겉으로 볼 때는 쾌활하고 거리낌 없어 보였지만 그 황진이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이 동짓달의 긴 밤처럼 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랑의 한을 이처럼 아름답고도 슬프게 묘사한 서정시조는 지금까지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3.
우리의 인생사는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지금도 슬픔과 우수와 허망함이 태반이다. 만남은 곧 이별이 되고 기쁨은 슬픔으로 이어지는 인생사, 별 것이던가. 원당 신완묵 시인은 이러한 모든 삶의 굴곡을 한 편의 시조 <산다는 게 알고보니>를 통해 제시하면서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였다.
산다는 게 알고 보니
신완묵
시간에 날줄 걸고 공간에 씨줄 꿰어
베 한 필 짰다 허는 덧없는 일 같은 것
한 생을 살아보아도 남는 것이 없나니
엮어진 인연 틀에 실타래 걸쳐놓고
무심코 흩뜨렸다 올가미 얽혀 매여
되돌아 벗어나려도 시작과 끝 모르네
먼저 간 물줄기가 바다에 몸 풀어도
떠난 듯 남아있고 남은 듯 떠나가며
낯선 길 굽은 여울목 돌아가는 그 물결
우리 생활은 너나 할 것 없이 힘들고 고달프다. 생활이 고달픈 것이야 열심히 노력하며 살면 되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좀처럼 치유가 되지 않는다. 불가에서는 수행의 근본 자리를 자기에게로 돌려 보라고 하며 무소의 뿔처럼 가라고 하지만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그렇게 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허무와 고통을 함께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나 그 무엇이 필요하다.
첫 수의 종장 ‘한 생을 살아보아도 남는 것이 없나니’ 이 얼마나 가슴을 치는 아픈 말인가. 그렇지만 그 말을 되뇌이고 있으면 마음이 호수 가에 있는 것처럼 잔잔해지며 평안을 느낀다. ‘그렇구나!’ 아등바등하며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 봐도 역시 손에 쥔 것을 보면 우수와 아픔의 그림자만 놓여 있는 것이다.
또한 둘째 수의 종장 ‘되돌아 벗어나려도 시작과 끝 모르네’라는 진솔한 마음이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셋째 수에서는 중장 ‘떠난 듯 남아 있고 남은 듯 떠나가며’ 라는 구절은 우뚝하게 솟아있다. 그리움, 사랑, 아픔, 괴로움 등 그 모든 것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떠난듯 하면서도 남아 있고 남아있는 듯하면서도 자취가 없다. 산다는 것도 알고 보면 남는 것도 없고 시작과 끝도 모른 채이고 낯선 길 굽은 여울목을 돌아가는 물결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17. 눈물은 슬플 때 할 수 있는 큰 말
※ 허 일의 단장시조
‘적요’, ‘하회탈이 대포 한 잔 걸치자며’, ‘병마에게’
일본에는 하이쿠라는 짧은 단시가 있다.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언어이다. 하이쿠의 대표적 시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단연 마쓰오 바쇼이다. 마쓰오 바쇼가 쓴 작품은 짧은 시 중에서는 동양의 고전이라고 불릴만하다. 그의 시 작품이 널리 알려지고 또 큰 감흥을 불러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과 그의 문학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행을 할 때에 말이나 가마를 이용하지 말라고 하였다. 여행하기 힘들면 지팡이를 자신의 또 하나 다리로 생각하며 지팡이를 이용하라고 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수고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철저히 금욕주의적인 삶을 살았다. 이러한 생활의 바탕에서 바쇼 문학의 특징이 이루어졌다.
바쇼 문학의 특징 중에 하나가 비움과 버림의 정신이다. 그것은 불교 선종과 맥을 같이 하고 카톨릭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시와의 소통을 꾀한 사람이다. 당시 형식에 치우친 하이쿠 시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한 것은 글로벌적인 표상을 단순하게 표현해 내는 데 있었다. 그 단순성은 버림과 내려놓음의 미학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버림과 내려놓음을 실천함으로써 올 곧은 삶의 향기와 시의 향기를 피워 올렸다.
지금 항간에 떠도는 시들의 기법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재미없는 짓거리는 시의 말장난이다. 좋게 말하면 언어의 유희성이라 할 수 있겠지만 말장난의 정도가 너무 심해지고 있다. 내용이 없기 때문에 겉치장을 요란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서글픔을 느낀다. 이것은 요즘 사회의 만능 물질주의와도 상통한다. 바쇼는 이런 말장난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말에서는 향기가 나야 한다. 그것이 좋은 시가 갖는 특징일 것이다. 그는 옛스러운 것이나 한적하고 빛바래고 은은한 것에서 향기를 뽑아 올렸다. 쉰 살이라는 짧은 나이에 비해 그의 시 무게는 짧지만 천년을 넘나든다. 바쇼를 하이쿠의 성인으로 받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시 몇 편을 보자.
한적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연못의 한적함과 고요, 그 고요를 깨며 개구리가 뛰어드는 파격의 미를 느낄 수 있다.
얼마나 놀라운가
번개를 보라
삶이 한 순간인 걸
짧은 하나의 글귀에서 우주를 통째로 꿰뚫는 언어의 칼을 볼 수 있다.
한밤중 잠 깨니
물 항아리
얼면서 금 가는 소리
이 작품 또한 혼돈과 혼돈을 깨우는 소리의 대구를 통하여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같은 미를 들려주고 있다.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직지인심(直旨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했던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깨달음에 이르는 말이다. 가히 견성성불의 대도를 이루는 솜씨가 아니고 무엇이랴.
지금까지 일본의 하이쿠와 하이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바쇼의 시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뚝한 하이쿠를 능가하는 시가 있으니 바로 우리의 단장시조인 3.5.4.3의 시구이다. 단장시조는 일찍이 노산 이은상 선생이 부르짖고 직접 단장시조를 쓰며 그 시원을 열었다. 또한 단장시조는 일본의 하이쿠 보다도 글자수가 적은 세계 최고의 짧은 정형시 형식이다. 이러한 단장시조 쓰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음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이번에 허 일 박사께서 단장시조집을 내면서 단장시조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았다.
단장시조야말로 촌철살인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촌철살인(寸鐵殺人), 조그만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 간단한 말로 사물의 가장 중요한 곳을 가리켜서 감동하게 만드는 데 그 묘미가 있다. 허 일 박사께서 쓴 단장시조는 촌철살인의 묘가 담긴 작품이다.
적요
허일
소나기
지나간 자리
청개구리 한 마리
한차례 소나기가 내리고 날이 활짝 개일 때가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어둑한 사이로 저녁달이 활짝 얼굴을 내민다. 그야말로 피부에 닿는 상큼한 느낌을 어디에다 비기랴. 위의 단장 시조는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단장시조이다. 짧은 시이면서도 강렬하게 전달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가 정서의 회귀내지 정서의 일깨우기라고 한다면 이런 시를 대하면 누구나 삶에 있어서 단아하고 맑았던 때를 떠올리며 인생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네 삶이 어디 단아하고 맑기만 하던가. 나이를 먹을수록 잘한 일보다는 잘못한 일로 회한에 사무치고, 고독은 중첩 되어 인생길을 더욱 피곤하고 허무하게 만든다. 정녕, 삶은 물결에 흔들리는 어지럼증 같은 것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강물이 흐르고
강물에 어리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삶은 저 물결에 흔들리는 어지럼증 같은 것
사랑이 깊어 갈수록
희끗 희끗 눈발 같은 속울음 깊어지고
어제가 힘겨울수록
지는 해처럼 하루가 가볍다고 하네
그래,
누가 삶을 부질없다고 했던가
백년의 삶이 하루처럼,
어느새 흰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사람아.
그래도 강을 건너오며 마주하는 선한 눈빛이 있어,
함께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
나는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읽지 않아도 무릉의 꽃나무 밑을 거닐며 행복에 잠길 수 있었네.
그러나, 우리네 인생사
슬픔의 긴 구렁 없이
어찌 즐거움을 말하랴
행복의 속을 열어보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서로의 살을 다독이던 아픔이라네
슬픔의 속도 열어보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서로를 미워하던 애정이라네
때로는 손을 흔들며 억울해 하기도 하고
더러는 포옹을 하며 기쁨에 떨다가
고개 숙이고 나는 말 못하네
세월을 먹고 살아가는 삶은
그렁한 눈물인 것을
눈물을 먹고 살아가는 삶은
마디마디 아픔인 것을
그래서 아름다운가!
아름다운가….
- 남진원의 시 ‘삶은’ 전문 -
나는 졸시 ‘삶은’ 이란 시를 읽으며 힘들고 지칠 때에 삶의 위안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허 일 박사의 단장시조집을 읽으며 놀랐다. 단장 시조 ‘하회탈이 대포 한 잔 걸치자며’를 읽으면서 짧은 시구에 큰 뜻이 담긴데 대해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하회탈이 대포 한 잔 걸치자며
허일
강물이
만리를 굽이친들
눈물보다 깊으리야
눈물은 슬플 때 할 수 있는 가장 큰 말이다. 눈물이 있기에 사람들은 아픔을 인내하고 삭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눈물, 거기에는 얼마나 하고 싶은 말들이 담겨 있는가. 눈물 속에는 비장함과 처연함이 담겨있다. 온갖 슬픔의 말이 응어리져 있다. 눈물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삶의 실체를 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일 것이다.
나는 요즘 집사람이 아파서 병원에 자주 들락거린다. 6층과 7층은 암병동이다. 집사람의 항암치료 때문에 61병동과 72병동을 번갈아 드나든다. 침대 옆에 쪼그려 잠에 들다가도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같은 울음소리에 눈이 떠진다. 또 한 사람이 떠나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놀라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2, 3일이 멀다 하고 들려오는 죽음에 대한 비통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애써 바라면서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그래, 강물이 만리를 굽이친들 저 순후(淳厚)하고 애끓는 눈물보다 깊을 것인가.
병과 투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일 보면 세상이 아프고 허공마저 아프다. 그러나 어쩌랴, 병이 찾아오는 것 또한 자연의 순리임에.
허 일 박사의 ‘병마에게’ 라는 단장시조는 단연, 삶의 경계를 뛰어넘은 한 편의 걸작이었다.
병마에게
허일
알겠네
내가 넋을 놓거든
푹 쉬게나 애 썼네
병마의 고통 속에서도 담담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그려가는 노 시인의 모습에 존경을 금할 수 없다. 또한 허 일 박사의 단장 시조집 머리글에서도 나와 있듯이, 우리의 단장시조가 널리 애송되고 즐겨 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18. 백아절현伯牙絶絃과 용담지촉龍潭紙燭
※ 유재영의 ‘오동꽃’
정경화의 ‘석등’
일전에 유재영 선생의 시조 <가을 이순>에 대하여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오늘 또 유재영 선생의 시조 작품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시조가 갖는 가락과 멋 그리고 격을 유감없이 뽑아내는 분으로는 정완영 선생과 유재영 선생을 외람되나마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 선배 시조시인과 동료 후배 문인 들 중에서도 대단한 시조를 쓰시는 분이 많지만 시조의 음보율만을 생각한 결과, 자수율에서는 파형을 이루고 있다. 시조는 정격율의 틀 안에서 자유로움을 얻어야 한다고 여긴다. 우리가 지구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 것처럼 시조라는 정형율 속에서 무한의 자유로움을 터득해야만 시조가 시조의 품과 격을 모두 살릴 수 있다고 여겨진다.
[시조 21] 2009년 상반기호에는 <내가 읽은 좋은 시조>란이 있는데 그곳에 권혁모 시인이 추천한 시조 유재영의 <오동꽃>이 재수록 되어 있었다. 그 <오동꽃> 시조를 읽으면서 참으로 좋은 시조라고 여겼다. 또 신작 특집으로 정경화 시인의 시조가 실렸는데 그 중에서 <석등(石燈)>은 마음을 움직였다.
유재영 선생은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그러나 1976년 무렵 삼장시 동인활동을 하실 때에 나는 시조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회원이 된 적이 있다. 그때 이름만 걸어놓고 작품은 쓰지 못하였다. 다만 선배 원로 선생님들이 쓰신 작품을 읽으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의 시인으로 기억에 남는 분은 유재영 선생과 이기라 선생이시다. 두 분의 시조를 읽으면 우선 재미가 있고 무엇인가를 전해 받는 묘미가 있었다. 현대적인 감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이든 시조이든 좋은 작품은 마음을 즐겁고 편안하게 해 준다.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펴서 장자가 말한 대붕이 되어 장천을 날아다니는 환상의 새를 보게 된다.
오동꽃
유재영
언제였나 간이역 앞 삐걱대는 목조 2층
찻잔에 잠긴 침묵 들었다 다시 놓고
조용히 바라 본 창밖 속절없이 흔들리던
멀리서 바라보면 는개 속 등불 같은
청음도 탁음도 아닌 수더분한 목소리로
해질녘 삭은 바람결 불러 앉힌 보랏빛
누구 삶이 저리 모가 나지 않았던가
자름한 고, 어깨를 툭 치면 울먹일 듯
오디새 울다간 가지 등 돌리고 피는 꽃
이 시조 작품은 시조의 수(首)를 구분하지 않고 이어서 써놓았다. 그러나 3수로 된 연시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목이 오동꽃인데 오동꽃 자체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읽는 나를 사로잡았다.
첫 수에서는 목조 2층집 방안에서 차를 마시다가 바라본 오동꽃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속절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오동꽃이다. 오동꽃을 바라보는 작자도 오동꽃처럼 가냘파 보인다. 2층집 삐걱대는 목조 건물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오동꽃과 2층집 목조 건물, 그것도 삐걱이는 건물이기 때문에 똥집이 잘 들어맞은 것이다. 또 조용하고 쓸쓸하기 조차 한 간이역 앞이다. 그런 상황 설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속절없이 흔들리는 오동꽃이다. 시조 첫 수의 빼어남은 또 있다. 찻잔에 잠긴 침묵을 들었다 다시 놓는다 했다. 그리고 조용히 바라보는 오동꽃, 고요와 그윽함의 극치를 예서 더 말할 수 있으랴.
오동나무는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나무이지만 여기에는 전설이 담겨 있다. 옥잔에 고인 물이 아니면 마시지를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전설의 새, 그 봉황새는 또한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을 들지 않는다고 한다. 상상 속의 새로 알려진 봉황은 용과 학이 낳았다는 새이다. 태양을 마주하는 조양(朝陽)의 골짜기 단혈(丹穴)에서 산다고 한다.
이런 오동나무이고 보면, 음률을 자아내는 거문고와 가야금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이 당연하지 모른다. 오동나무 자체를 보면 무늬가 아름답고 연하면서도 뒤틀리지가 않는다. 또 오동나무의 꽃은 은은하면서도 보라색 슬픔을 띄고 있다. 오동꽃 시조가 갖는 정조(情調)는 저, 중국의 춘추시대 속절없이 들려오던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연상하게 한다.
「유백아(兪伯牙), 그는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大夫)이고 거문고의 달인이었다. 그가 사신이 되어 고향인 초나라로 갔는데 마침 보름이었다. 그는 은은한 달빛 아래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그의 거문고는 거친 산악을 지나는 것처럼 힘차고 거센가 하면 어느새 장강을 흐르는 물살처럼 힘이 있었다. 그때 그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의형제를 맺은 종자기라는 사람이다. 종자기는 그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백아가 고산준령을 마음에 품고 거문고를 뜯으면 있으면 종자기는 태산준령을 넘는다고 하였고 백아가 장강의 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양자강 배 위에서 닻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백아는 종자기를 보고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천하에서 내 노래를 알아주는 유일한 지음(知音)이요.”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천년 벗이 되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가끔 만나 한 사람은 거문고를 타고 또 한 사람은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음악에 심취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백아는 종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백아는 거문고를 메고 종자기의 무덤가에 갔다. 그곳에서 최후로 거문고를 타고 거문고 줄을 끊었다. 」
시조 ‘오동꽃’은 사람들의 가슴 속을 파고드는 백아절현의 거문고 소리 같이 아름다운 시조이다. 둘째 수에서는 ‘는개’라는 말이 나온다. 는개는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조금 가는 비다. ‘안개’가 떠 있는 작은 물방울이라면 ‘는개’는 내려오는 비에 속한다. 가늘고 작은 비속에서 오동꽃은 등불처럼 떠 있다. 오동꽃의 은은함을 절묘하게 드러내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우수에 젖게 한다. 이런 꽃은 가까이 가서 보면 재미가 없다 조금 멀리서 봐야 오동꽃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오동꽃이 목소리를 낸다면 어떤 소리일까? 아주 예쁘고 맑은 목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탁한 목소리도 아니다. 그 중간 쯤의 목소리가 오동꽃이다. 수더분한 목소리, 수더분한 사람 같다. 그래서 더 친근한 정이 드는 것이다. 오동꽃에 불어오는 바람은 해질녘 삭은 바람소리이다.
이 시조의 셋 째 수는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울림을 준다. 자름한 고, 어깨를 툭 치면 울먹일 듯 한 사람, 그리움의 보따리를 안고 선 한국의 여인이다. 요, 얼마나 맛깔스럽고 감동적인 표현인가. 셋 째 수에서는 새가 한 마리 등장하는 데 오디새이다. 오디새는 오디가 익을 무렵 뽕나무에 앉아 해충을 없애주는 여름 철새이다. 오디새 머리는 인디안 추장의 머리깃과 비슷하다고 하여 추장새라 부르기도 한다. 오디새가 오동나무에 와서 울고 갔다. 뽕나무는 신선사상과도 관계가 있다. 신선의 왕인 서왕모는 삼신산에 산다. 삼신산은 동해에 있는데 동해 바다 속에는 신선이 사는 정원이 있다. 그 정원이 상원(桑園)이다. 상원은 뽕나무가 심어진 정원이다. 오디새는 뽕나무에 날아와 앉는 새이다. 그러니 선계의 새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오디새가 오동나무에 날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디새가 울다간 가지에 등을 돌리고 오동꽃이 피는 것은 왜일까? 여운을 주고있다.
간이역, 삐걱대는 목조 건물, 찻잔, 는개, 등불, 삭은 바람결, 오디새 등이 주는 이미지는 모나지 않는 삶과 수더분한 삶으로 이어지며 잔잔한 서정의 늪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시조 ‘오동꽃’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또 한 편의 시조 정경화 시인의‘석등(石燈)’도 감명 깊은 시조이다.
석등
정경화
천년의 시간 앞에 빈손으로 마주 서면
불은 이미 꺼져도 생각만은 환하여
읽다만 경전을 덮고 눈에 묻힌 등 하나
한 줌 불빛을 위해 창을 내던 몸이더니
절망이 깊은 뒤에야 마음은 외려 밝아
어둠에 갇힌 이 세상, 길을 찾아 주는가
- 석등 ‘첫 수’, ‘둘 째 수’ -
정경화 시인의 시조를 읽으면 금강경 소초를 둘러메고 다니면서 호기를 부리던 덕산 스님의 용담지촉(龍潭紙燭)일화가 생각난다.
「덕산은 금강경 읽기를 매우 좋아하여 금강경이야말로 부처님의 법을 받드는 제일 중요한 경전으로 삼고 어디를 갈 때도 꼭 금강경소초를 둘러메고 다녔다. 그런 일로 덕산을 금강경이라 부를 정도로 알려졌다.
어느 여름 날 그는 남방불교의 선지식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의 기를 꺾으려는 생각으로 남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점심 무렵이 되자 배가 고파 허기를 면하여야 했는데 마침 한 노파가 떡을 부치고 있었다. 덕산은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군침을 넘겼다. 그 모습을 본 노파는 걸망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덕산은 금강경이라 대답하니 노파가 아주 반색을 하며 반긴다. 금강경 한 구절을 모르는데 대답해 주면 떡을 그냥 드리겠다고 하였다. 덕산은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공부가 금강경인데 잘 됐다 싶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하였다. 노파가 물었다. “금강경 중에 과법심불가득(過法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이란 말이 있는데 스님은 조금 전에 점심을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점심의 점(點)자는 점 찍을 점이고 심(心)은 마음 심(心)입니다. 삼세심불가득(三世心不可得)이라 하였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습니까?”
덕산은 머리가 갑자기 띵해졌다. 금강경 구절을 풀이해달라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물으니 할 말을 잃었던 것이다. 30년 금강경 공부가 물거품이 된다고 자책하였다. 그 모습을 본 노파는 떡을 구워주며 허기를 면하게 하고는 참 공부를 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곳을 가리켜주었다.
덕산이 그곳에서 10여리 더 내려가니 노파가 말하던 용담원(龍潭院)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숭신(崇信)스님이 계셨다. 덕산이 절안으로 들어서니 아무도 나와 반겨주지 않았다. 그는 노파에게 망신을 당한 생각도 잊은 채 또다시 호기를 부리며 말했다. “용담에 와 보니 용도 없고 물도 없구나! (是到龍潭龍不見潭不見:시도용담용불견담불견)”그 말을 듣고 어린 중이 나와 그를 객승이 머무는 방으로 인도하였다. 숭신 스님을 뵈러 왔다고 하니 쉬었다가 저녁에 방문하라고 하였다. 덕산은 저녁이 되어 숭신 스님을 만나게 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 세상 이야기이지, 법담은 한 마디도 없다. 덕산은 못 내 아쉬워하며 방을 나서는데 어두워 신발을 신을 수 없다. 이리 저리 허둥거리는데 숭신 스님이 시자를 불러 빨리 등불을 밝히라 하였다. 시자가 종이 등을 밝히니 주위가 환하여 신발을 찾아 신을 수 있었다. 길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숭신스님, 확 불을 꺼 버렸다. 다시 주위는 깜깜한 어둠 세상이 되었다. 그 때 덕산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정경화 시인의 시 구절 ‘불은 이미 꺼져도 생각만은 환하여’라든가 ‘절망이 깊은 뒤에야 마음은 외려 밝아’ 등은 덕산의 깨달음을 연상하게 해 주는 대목이다.
둘째 수 초장도 의미심장하다.‘한 줌 불빛을 위해 창을 내던 몸이더니’이 대목에서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진다.‘내 언제 불빛을 내기 위해 창이라도 내어볼 생각을 했던가?’
길을 찾아주기 위해 침묵의 법문을 내린 숭신 스님처럼 석등은 어둠에 갇힌 세상에, 길을 밝히는 자리 하나를 내어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이 마음이 ‘석등’을 쓴 정경화 시인의 마음이 아닐까. 고요하게 천천히 자꾸 자꾸 읽고 싶은 시조이다.
19. 무릉도원 이야기와 어떤 가난
※ 조식의 ‘두류산 양단수를…
박재두의 ‘어떤 가난’
1.
두류산 양단수를 녜 듯고 이제 보니
도화 뜬 은 물에 山影조차 잠겼셰라
아희야 武陵이 어디메뇨 나는 옌가 노라
- 조식 (甁歌) -
이 시조는 남명 조식(曺植 )선생의 시조이다. 남명 조식 선생의 위대함은 민족 고유의 시조를 절창으로 빼어나게 쓴 점도 있지만 그의 철학과 인품이다. 그의 철학은 모두가 우러러봐도 부족함이 있다. 학문이 실제 생활에 쓰이지 않는다면 유익함이 없다고 할 정도로 현실을 중시하신 분이다. 그 분의 인품이 훌륭한 것은 겸손의 덕이다. 겸손의 덕은 땅과 하늘까지 차서 그 덕이 무극의 지경에 이르렀다.
제자의 운이 불우하여 그 당시 크게 이름을 떨치지 못한 애석함은 있지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늘 그는 영남학파의 거두 이황이나 기호학파의 태산이라 불리는 이이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분으로 쌩쌩하게 살아나고 있으니 말이다.
두류산은 지리산을 일컫는 이쁜 이름이다. 양단수는 두 갈래 갈라지는 물줄기, 여기서는 지리산 폭포를 말하고 있다. 지리산 기암절벽에서 흐르는 두 갈래 폭포를 말만 들었는데 지금 이곳에 와서 보니 넋이 나갈 정도이다.
그런데 어디 그뿐이랴 맑은 물 위로 복숭아꽃이 동동 떠가고 산 그림자마저 물 속에 보인다네. 무릉도원이 다른 곳에 있더냐? 바로 여기가 도원이라네. 남명 선생의 이 작품은 산수의 아름다움과 초탈한 선비의 마음을 그린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도화 뜬 맑은 물'이다.
무릉도원 하면 그 중심에는 복사꽃이 있다. 봄이 되니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복사꽃은 복숭아나무의 꽃이다. 복숭아 중에 ‘천도(天桃)’라는 복숭아가 있다. 선가(仙家)에서 말하기를 이 복숭아는 하늘나라에서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고 하였다.
옛날에 한 여인이 살았는데 지아비가 중병에 걸렸다. 겨울인데 지아비는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여인은 사흘 밤낮을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뒤뜰에 나가 보니 복숭아가 떨어져 있었다. 옥황상제가 감동하여 하늘에 있는 복숭아를 내려 보냈던 것이다. 지아비는 이 복숭아를 먹고 기운을 차려 병이 나았다. 이 복숭아가 ‘천도’이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옥황상제께서 사람들을 위해 과일나무를 내려 보냈는데 그것이 지금의 복숭아나무라고 한다.
음양의 기운을 볼 때 하늘을 양이라 하고 땅을 음이라 한다. 복숭아나무는 하늘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양기가 강하다. 하늘의 기운을 받은 나무라서 귀신이 무서워한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사람들이 큰 병 없이 아프거나 정신이 이상해지면 귀신을 몰아내야 한다고 복숭아 나뭇가지를 꺾어 때린다. 이때의 복숭아나무는 동쪽으로 뻗은 가지가 으뜸이다. 동방은 목의 기운이 있고 태양이 뜨는 곳이기 때문에 강한 양기가 있기 때문이다.
복사꽃잎은 아주 예쁘다. 예뻐지고 싶은 여인들은 복사꽃잎을 머리에 꽂고 다니기도 하였다. 복사꽃이 핀 마을을 ‘도원’이라 하고 도원을 사람이 살기 좋은 이상향이라 하는 것도 복사꽃이 천상의 세계에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병이 없고 오래 오래 살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여기에 더해 기화요초가 만발하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노닐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복사꽃은 이런 아름다움을 전하는 꽃이다.
내가 당나라 이백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시 산중문답에 복사꽃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가 이 시를 쓴 것은 아마도 안녹산의 난이 일어난 직후 감방에 살다가 59세 때 풀려나 방랑생활을 하면서부터 일 것이다. 당 현종의 인정을 받아 궁궐에서 벼슬을 받아 고관대작 부럽지 않게 살 때에야 ‘산중 문답’ 같은 시를 꿈이나 꾸었겠는가. 그는 방랑생활을 하면서부터 진정성이 있는 시를 썼을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신성한 자유를 누렸을 것이다.
問余何事棲碧山 / 笑而不答心自閑 / 桃花流水杳然去 / 別有天地非人間
어이해 청산에 사느냐고 물었더니 / 노인은 대답대신 미소만 짓네 / 복사꽃 고운 물빛 아득히 흘러가니 / 인간세상 아닌 곳에 사시는구려.
이백의 시에 답해 ‘복사꽃’ 시 한수를 마음의 물결 위에 띄운다.
그리울수록/아득해지는가//술잔에 꽃잎/떨어지는 밤//그때마다 마음도/한 잎 띄우고//고요로이 술을 마신다.//날이 새도록/한가로워라//내가 제왕이었다면/스스로 나라를 버렸으리.
(남진원의 시 ‘복사꽃’)
무속 신앙에서는 복사꽃나무가 귀신을 쫓는 나무이다. 잡귀를 쫓아내는 나무가 가득히 들어찬 곳 또한, 이상향이 아니겠는가.
도화는 명리학에서는 살(殺)이다. 일명 도화살(桃花殺)! 도화살은 12지 중에 자오묘유에 해당한다. 사주 어디에든 자오묘유(子午卯酉)가 있으면 도화살을 가지고 있다. 도화살이 있는 사람은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능숙하다. 리더쉽이 출중하다. 좋게 말하면 성적 에너지가 충만해 있다.
도화는 복숭아꽃이지만 그 상징성은 절세의 미모를 갖춘 여인이다. 지금은 절세의 미모를 갖춘 남성도 해당한다. 도화 뜬 맑은 물은 '깊은 남녀간의 운우의 정'을 말한다.
두류산의 단수가 아니고 왜 양단수이겠는가. 이는 음양의 원리에 따라 남여가 조화를 이룬 형상을 노래함이다.
이런 의미를 갖고 남명 선생의 작품을 읽으면 훨씬 싱싱하고 생명력이 있는 작품이 아닐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무릉과 도화에 대한 얘기를 잠시 더 부연해 보자. 계절 중의 봄은 만물을 생육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인간 세상을 떠난 별천지인 무릉 또한 봄에 피어나는 꽃 속에 있는 듯하다. 중국 호남성 동정호의 서남쪽에 무릉산이 있다. 그 산기슭에 있는 강변을 원강(沅江)이라 하는데 무릉도원은 그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진나라 때에 무릉의 한 어부가 배를 저어가다가 복사꽃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계속 올라갔더니 굴이 있었다. 굴을 따라가니 한 마을이 나타났는데 복사꽃이 핀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너무 살기 좋아 바깥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른 채 살았다고 한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무릉이 어디 동정호의 서남쪽 원강과 지리산 양단수 뿐이겠는가? 무릉이라는 말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많이 쓰이는 지명이다. 강원도 동해시에는 무릉계곡이 이는가 하면 정선군 남면에는 무릉리가 있다. 이 두 곳은 모두 경관이 빼어나 사람이 살지 않는 선경을 방불하게 한다. 이 두 곳 모두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아름다운 기화요초와 기암괴석이 사람의 혼을 빼앗을 정도이다.
‘무릉도원’ 하면 또 강릉아산병원이 떠오른다. 강릉아산병원은 강원도에서는 종합병원으로 손색이 없는 병원이다. 규모도 규모이지만 간호사나 의사들의 친절도 면에서도 단연 손꼽을 정도이다. 또한 병실의 쾌적함이랄까 깨끗함이랄까 아무튼 실내 환경이 매우 양호한 편이다. 겨울철 찬바람을 맞다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따뜻한 온기가 마음까지 녹게 만든다.
이런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매일 탄생의 울음소리를 듣기도 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자주 접하게 된다. 나는 젊을 때에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다가 나이 60 고개를 쳐다보면서 죽음에 직면하는 일을 자주 당하였다. 그러다보니 삶 자체가 황망하고 두렵기조차 하다. 불과 어제까지만해도 병실에서 대화를 하던 사람이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당혹한 일이 있는가. 그러나 그게 현실이었다. 병원에는 축복같은 탄생과 상처를 치유한 환자의 기쁨이 있는가 하면 죽음 또한 늘상 도사리고 있는 불안의 공간이다.
춘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백성들은 전쟁으로 인해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진(秦)나라가 통일을 한 후에도 무리한 통치와 폭압으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곤 하였다. 당시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일어나 사람들은 살기가 참혹한 지경이었다. 마을에는 시체가 뒹굴고 밤이면 버려진 시체를 먹기 위하여 쏘다니는 짐승들을 목격하여야 했다.
몇 명의 동료 병사들이 부상자를 이끌고 시체로 이루어진 무덤을 지나다 보니 어디선가 바람결에 아름다운 꽃 향기가 퍼져나오는 것을 알았다. 향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복사꽃이 만발한 곳이 나타났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만 보던 사람들에게 이 보다 더 반가운 일이 있을까. 만발한 복사꽃 마을에서 그들은 마음을 놓고 농사를 지으며 편안하게 살았다. 그곳이 무릉도원이다. 무릉(武陵)은 임금의 무덤이나 큰 언덕 또는 병사들의 무덤을 뜻한다.
그러나 무릉도원은 아름다움과 참혹함이 함께 있는 곳이라는 걸 안다면, 무릉도원이야말로 어느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실 공간이야말로 불행과 행복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밀하게 보면 행복을 행복이라고 할 수 없고 불행을 불행이라고만 할 수 없다. 삶을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죽음은 불행이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죽음이 행복이라면 삶 또한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옛부터 생사는 여일(如一) 하다고 하지 않던가. 슬픔과 기쁨이 함께 있는 우리네 삶의 현장, 무릉도원이야말로 생사여일한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일전에 강릉의 복사꽃 축제를 보면서 내 고향 정선 어느 시골의 도랑물소리를 떠올리며 행복해 했다. 그리고 복사꽃잎 물결에 떠내려가는 그곳에서 나무를 패며 살아가는 한 노인을 기억해내며 시조 한 수를 썼다.
맑은 하늘빛이 멀어서 더 은은한 날
복사꽃 지고 나니 봄도 이리 풀려나네
물결에 떠가는 꽃잎 도원인줄 알거나
그대 혹여 꽃잎 보고 내 집을 찾아들면
큰 박주 항아리에 세속을 띄우리라
근심도 맛들이기 나름, 함께 취해 보세나
(남진원의 ‘도원의 봄’)
2.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바쁜 게 요즘의 삶이다. 무엇 때문인가? 다 돈 때문이다. 바쁘게 살아야 하는 것도 돈 때문이지만, 돈 때문에 친하던 사람과 멀어지고 돈 때문에 가족과도 헤어지고 돈 때문에 곳곳에서 투쟁을 벌이고 돈 때문에 생활이 죽어나간다. 그러나 돈이 사람도 살리고 돈이 웃음과 즐거움도 준다.
이 희한한 돈을 옛 사람들은 구름에 비유했다. 한꺼번에 뭉쳤다가 졸지에 흩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람조차 죽을 때 돈방석에 앉아 죽었다는 사람은 못 들어봤다.
사람의 삶이 물결 같다. 평생 돈을 벌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어느새 부초처럼 흘러내려와 혼자 있는 자신과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 외로움의 물살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가난’이란 굴레이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인 사람, 그리고 귀하고 천한 사람은 어느 정도 운명의 큰 틀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일은 행복과 불행이 그 어디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난하면 모두 불행하고 부자이면 모두 행복하다면 그야말로 공평하지 못한 세상살이가 아니겠는가. 행복은 오히려 부유한 곳보다 가난함 속에서 더 발견할 수 있으니 이는 그 고통이 마음을 정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속의 무지를 벗어버리면 속기를 벗었다고 한다. 부유하면 속기를 벗으려 하지 않는다. 가난 또한 속기를 벗기 어렵다. 그러나 가난이 속기를 벗으면 삶의 진정성을 찾을 수 있다.
어떤 가난
박재두
가난도 때 오르면 영화보다 사치롭고
한 고개 넘어서면 극락 같이 열린 하늘
그 하늘 별 뜨는 가난, 맨발로 우러러 서리
박재두 시조시인의 ‘어떤 가난’은 분별심을 넘어서서 행복에 닿아 있다. 세상은 고요하지도 요란하지도 않다. 그저 사물의 움직임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맨발로 서서 별을 보는 청정심은 가난함이 주는 소중한 행복이다.
많은 선객(禪客)들이 무소유와 자유로움을 손으로 가리키기도 하고 허공에 들어내 보였다. 하지만 허허공공한 세상 대신, 힘겨워하는 진실 앞에 더욱 손을 모으게 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삶을 일구어가는 생활의 현장은 금강경의 그 어떤 구절보다 강한 울림과 전달을 주는 진실이 있다. 그곳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의 숨소리를 온 몸으로 들을 수 있다.
한 송이 꽃의 그림자가 진면목이라면 피어난 꽃은 또 다른 생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 우리는 꽃 피는 것을 보며 웃고, 지는 꽃을 보며 못내 아쉬워한다. 장자는 호접몽이란 글에서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꿈속의 나비가 진짜 나인가, 내가 진짜 나인가? 라고 반문하였다.
갑자기 날씨가 무더워졌다. 봄이 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여름이 되었다. 산수유 꽃 핀 것이 엊그제런 듯 한데 녹음이 무성하니 말이다. 여름 꽃은 더 한층 요염하고 진한 웃음을 발하고 있다. 피고 지는 꽃을 보면서, 가난이 있어 오히려 행복함을 느낀다.
요즘에는 피는 꽃을 보고 오히려 아파할 수 있고, 지는 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여유와 넉넉함을 배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