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저만치 유난히 다정스럽게 손을 꼬옥 쥐고 쇼핑을 하고 있는 한 부부를 보았다.
멀리서 봐도 남편은 머리가 희긋희긋 하면서 미남형 얼굴에 신사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부인은 50후반에 보통 체격에 평범한 한국의 아낙네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유난히 두 사람은 무엇을 해도 손을 놓을 줄 모른다.
“특별하다”라고 생각하면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백화점의 오후는 붐비고 있었다.
오고가는 사람 물결에 정신이 없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이 노부부를 바라보고 ‘안됐다! 측은하다’는 표정들이다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과일을 고르고 있는 그 부인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앗!”하는 소리가
금방 입밖으로 나올 듯 깜짝 놀랐다.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노부부의 부인 얼굴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세상에 저런 얼굴이 어디 있단 말인가?
왼쪽 광대뼈 부근이 움푹 파여진 얼굴!
얼굴 균형이 언발란스가 나 흉해 보였다.
나의 두발은 땅에 굳어 버린듯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과일 박스에서 과일을 담고 있는 노부부의 행동이 너무 태연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주변의 분위기에는 아예 신경 자체를 쓰지 않는 듯 했다.
웃고 있지는 않아도 얼굴 표정에는 그냥 행복하다는 듯 잔잔한 미소까지 흐르고 있었다.
아니! 어찌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백화점은 제마다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남편의 모습은 영국 신사 같은데
부인의 그 얼굴은 감히 상상조차 어려운 광경이 벌어져 있는 것이다.
다정스럽고 평온해 보이는 이 아름다운 모습을 남의 일이라 지나가 버리면 되겠지만
나는 도저히 스쳐 지나버릴 수 없었다.
백화점 화장실 부근에서 그 남편과 대화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남편은 60대 초반에 섬유회사의 임원으로 있다
정년퇴임후 경주 외동읍 냉천공단에 조그마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1년쯤 되었을 무렵 어느날 부인이 왼쪽 잇몸이 아파 치과에 가서 진찰을 하였으나
치과 질병이 아니다는 진단에 이비후과를 찾아 검사한 결과 ‘비강암 말기’라고 하는 결과가 나왔다.
비강암이란 광대뼈 아래 공기 주머니 내에 생긴 암으로 말기까지
특별한 증세가 없는 특이한 암이라고 했다.
청천 하늘에 벼락이 떨어진 듯 세상이 캄캄하고 공포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단다.
1남 3녀의 자식에 많은 시동생 시누이 시부모를 봉양하고 입히고 먹이고 공부가르치고
결혼시켜 살림내어놓을 때 까지 앞만 보고 살아온 한 많은 세월 앞에 비강암 말기라니
정말 이럴 수는 없다고 날마다 날마다 비통함에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늦었지만 수술을 해보자는 의사의 말을 따라 광대뼈를 제거하고 전위된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그런데 수술을 끝내고 붕대를 풀었을때
자식들과 남편은 한번더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감내해야 했다.
차마 바라볼 수 없는 듯 흉하게 변해 버린 부인의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어려움이 생기면 단호한 결단이 생기듯이 좌절과 절망에 눈물만 쏟을 것이 아니라
내 앞에 놓여진 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다짐과 각오가 남편에게 강하게 전해왔다.
남편은 그때부터 아내의 얼굴을 그대로
수술전 얼굴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수없이 많이 하고 또 하고 한 결과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는
대인기피 증세가 보이던 아내를 설득하고 또 설득하고 정성을 쏟은 결과
미혼의 두 딸을 2008년 봄에 일개월에 두 번 혼사를 치루고 식장에도 당당하게
그 얼굴로 참석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또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남편은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내와의 스킨쉽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등산을 가도 먼저 가거나 떨어져 다닐 정도로 고지식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앞에 놓여진 가혹한 현실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남편은 아내의 그런 모습을 숨기려 하면 할 수록 더 이상 사람을 대할 수 없고
더 어색하고 이상하여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을 쳐다 볼 수 없다는 것을 남편은 깨닫고
가족들과 친척 이웃부터 그대로 그 얼굴을 보여주는 연습을 실시했다.
말이 그렇지 이것은 대단히 어렵고 힘든 일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key'는 남편이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하는 것으로 출발 하였다 .
흉한 얼굴의 아내 모습은 나에게는 천사요 여왕이다라는 마음을 다져먹고 또 다져먹고 실행하였다.
남편의 고향은 경남 창녕 이방이라는 곳이다.
아내는 이 빈촌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오늘날까지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주지 않았는데
남편이 그런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손을 잡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을 찾아다니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일이라고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아내 열심히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가련한 아내
오늘 백화점에서 과일을 담으면서 미소를 띄울 수 있는
고운 그 부인의 얼굴과
한손에 쇼핑백을 들고 또 한손은 아내의 손을 잡고
백화점 문으로 걸어가는 저 부부의 뒷모습은
천사보다 아름답고 이세상 어떤 사람보다도
행복하고 밝은 광채가 가득 하였다
하느님의 은총과 부처님의 가피로 기적이 일어나
정말 백합보다 더 고운
사랑의 꽃이 피어나길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 본다
부디 행복 하소서
나이들어 함께 손잡고 다니는 부부를 뵈면 참 행복해보여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존경스럽단 생각이 들어요.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지라도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며 한평생을 채워갈 수 있다면 행복한 거겠죠. 훌륭하신 부부의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이렇게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게 배웠어요.
첫댓글 하늘소님
가슴 뭉클한 사연 글로 다 표현 할수 없는 후렴이 상상 됩니다. 남편의 당당한 노력이 사랑으로 승화되고 있군요. 기도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분께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비옵나이다


감사 합니다 .이렇게 이쁘게 봐주셔서 병으로 인해 이쁘시던 모습은 어디 간곳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이야기 했습니다 아픈건 죄가 아니라고 , 아파서 생긴 변한모습은 부끄러울게 없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은 없을겁니다 화이팅

나이들어 함께 손잡고 다니는 부부를 뵈면 참 행복해보여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존경스럽단 생각이 들어요.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지라도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며 한평생을 채워갈 수 있다면 행복한 거겠죠. 훌륭하신 부부의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이렇게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게 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