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2026.05.14.(목) B.
불굴사 가는 길은 와촌 갓바위 가는 길 입구 신한교차로에서 반대편 산길로 접어든다. 덜컹거리는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가면 경사가 있는 아담한 주차장에 얌전히 도착한다. 연등으로 수놓은 거친 돌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불굴사(佛窟寺)가 반긴다. ‘원효가 다녀간 그 길 위에 서다’라는 불굴사와 홍주암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규모는 환성사보다 작지만, 처음에는 매우 큰 사찰이었다. 물레방아도 8개, 암자도 12개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때 호우로 매몰되었다가 영조 때 송광사 노스님의 꿈에 불상 머리가 나타나 그것을 찾아온 곳이 이곳이다. 찾아서 보니 불굴사 터였다.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로 알려진다. 절 위의 용주암에서 원효대사가 득도했고 김유신 장군이 수련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환성사는 대웅전이 먼저 반기고, 불굴사는 적멸보궁이 참배객을 맞이한다. 대표적인 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에서 볼 수 있다. 보통 대웅전에는 부처님을 모시지만,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이 없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약 20개 정도의 사리가 원래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뒤편의 탑에 모셔 놓았다. 전국에 있는 5대 적멸보궁에는 속하지 않지만, 규모가 크고 멋지다. 적멸보궁 유리창으로 보이는 탑을 찾아갔다. 몇몇 신도들이 탑돌이를 하며 염불을 외우고 있다. 깊은 믿음이 없지만 나도 그들 따라 탑돌이를 했다. 현실은 나이가 들수록 믿음이 필요하고, 신에게 빌 것이 많아진다. 탑돌이는 오른쪽 어깨가 탑을 향해 돈다고 한다. 보궁 앞에는 신라 때 건립된 삼층 석탑이 있다. 불굴사에서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탑이다. 2개의 기단으로 7m 정도의 예쁜 삼층 석탑이다. 탑 앞의 석등과 배례석을 보면, 볼수록 모르는 내가 봐도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멋지다.
왼쪽으로 돌아가면 약사보전을 만난다. 여기 또한 독특하다. 보전 안의 석불이 중앙에 우뚝 서 계신다. 전각 안 큰 화강암 위에 서 있다. 대부분 전각을 짓고 불상을 모시지만, 이곳은 불상이 먼저 있고 나중에 전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불상 모습의 머리와 손의 모양이 이상하다. 마침, 지나가던 한 스님이 다가온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시더니 불상에 대해 궁금한 보충 설명을 해 주신다. “조선시대 큰 호우가 나서 땅에 모든 것이 파묻혔어요. 그러다가 한 오륙십 년 전 불사를 하던 중, 땅을 파니까 땅속에서 발견되었어요. 머리가 깨어져서 머리는 복원한 것이지요. 그래서 머리가 색다르게 크지요.” 자상한 스님의 설명을 듣고 석조 입불상을 자세히 감상할 수 있었다. 머리가 크고 몸이 비대한 것은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이라는 다른 사람의 말도 생각난다. 어느 말이 옳든 그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라보고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부처가 있지 않을까?
홍주암(紅珠庵) 가는 길은 가파른 108계단으로 연결된 높은 곳이다. 밑에서 바라보니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 분위기가 구례 사성암과 비슷하다. 여기서 사성암 온 맛을 누릴 수 있다니! 올라가는 내내 즐겁다. 평소 계단 오르기로 체력 단련을 많이 해 놓았기에 힘들지 않고 천천히 경치를 즐기면서 올랐다. 정상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갈 듯 솟아있는 암자가 아닌가? 중턱 바위굴 앞 유리 상자에 모셔진 반가사유상도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암자에 들어서니 ‘원효암’이란 현판 뒤로 석불이 모셔져 있다. 여기서부터 부처님에게 예를 갖추는 공간으로 보면 된다. 양쪽에는 금강역사 두 분이 눈을 부릅뜨고 부처님을 호위한다. 분위기가 경주 석굴암과 흡사하다. 그 당시에 원효대사가 첫 수행 한 곳으로 알려진다. 바위 왼쪽 구석에는 맑은 물이 나오는 샘도 있다.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염원하면서 마신 물이란다. 나도 쪽대로 한 잔 마셔보았다. 크게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김유신 장군이 마시던 물이라는 의미로 생각하니 새삼 달콤하다. 사람의 마음은 이만큼 간사한 것일까? 어디에 의미를 두느냐에 세상만사 이치가 달려있다. 일체유심조를 늘 가슴에 새기지만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 마음이다. 언제쯤 철이 들까? 생각해 보면 영원히 안 들 수가 있다. 뭐, 철없이 살다가 가는 사람이 나뿐일까? 잠시 잡생각에서 벗어나니 옆에 음각으로 새긴 글이 보인다. ‘아동제일약수(我東第一藥水)’ 동쪽에서 최고로 좋은 약수라는 뜻이다.
다시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선본사(禪本寺)로 갔다. 선본사 대웅전은 정상 갓바위 부처님 아래에 있다. 여기가 상단이고 중턱의 공양간 부분이 중단, 그리고 아래 극락전 있는 부분이 하단이라고 한다. 선본사는 갓바위 팔공산 전체가 절집이다. 지난 월요일 갓바위 정상에서 부처님을 참배했기에 오늘은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오전에 환성사와 불굴사를 다녀왔기에 좀 피곤하기도 하다. 하단의 극락전만 참배하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잠시 오르니 가파른 계단 위로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에는 사천왕의 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반기는 절이 극락전이다. 여기는 ‘템플스테이’는 하지만 참배객은 잘 오지 않는다. 대부분 정상의 갓바위를 찾기 때문이다. 극락전 마당에서 정상을 바라보았다. 녹음이 울창하여 갓바위가 보이지 않아 섭섭했다. 겨울에 잎이 앙상할 때면 한쪽 면이 조금 보인다고 한다.
입구에 내려와 삼층 석탑을 찾아갔다. 안내판에는 있지만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이정표를 보니 250m 정도의 거리이다. 여기서 갓바위까지도 거리가 950m 밖에 되지 않는다.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작은 다리와 계곡을 지나 산길로 들어섰다. 응달이고 숲속이라 컴컴하다. 근데 내 앞에 한 여학생이 혼자 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아무도 없는 산길이 무섭지도 않나? 무슨 연유로 혼자 와서 이 삼층 석탑을 찾아가는 것일까?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문다. 뒤따르는 나를 의식하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잘도 올라간다. 10여 분 힘들여 올라가니 멋진 삼층 석탑을 만난다. 석탑에서 바라본 선본사가 푸름으로 폭 감싼 선경으로 보인다. 혼자 무섭지도 않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쌩긋 웃음으로 답한다. 젊음의 힘일까? 기념사진을 서로 찍어주고 천천히 하산했다. 부처님의 가피로 예쁜 선녀와 동행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기적 같은 하루가 가뭇없이 지나갔다. 모든 인연의 시간을 감사의 마음으로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