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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온 들판이 황금들녘으로 바뀌는 풍요로운 계절입니다. 이번에는 이런 계절에 잘 어울리는 한자인 벼 내지는 쌀과 관련된 글자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쌀나무라고 하는 벼입니다. 줄기가 있고 이삭은 알곡이 꽉 차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수입니다. 밥을 지을 때 놓아서 섞어 먹으면 정말 맛있죠. 벼 화(禾)자는 위 사진처럼 벼의 모습이 아니면 아래 사진과 같은 수수를 본떠서 만든 글자라고 합니다. 「벼 화」(禾)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많이 닮았죠? 벼는 일단 수확을 하면 한묶음씩 묶어서 논둑에다 서로 기대어 세워놓았습니다. 벼를 묶은 것을 볏단이라하고 합니다.
이런 볏단은 일단 탈곡을 하기 전에 한곳으로 모읍니다. 옛날 의좋은 형제가 밤에 서로 형과 아우를 위해 볏단을 몰래 나르다 만난 동화가 있습니다. 어릴 때 교과서에 그림으로 나왔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은 라면의 봉지에 그린 그림밖에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도 흑백으로...
생각만 해도 정겹고 흐뭇한 광경입니다. 저렇게 볏단을 나르려면 일단 풍년이 들어야겠죠? 그래서 볏단을 이고 이동하는 모습을 표현한 한자가 나오게 되었는데 바로 해 년(年, 秊)자 입니다.
「해 년」(年)자의 갑골-금문-소전
해 년(年)자는 달리 「秊」이라고도 썼는데 등에 벼를 지어나르는 모양이 더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해 년」(年)자의 첫 번째 뜻은 풍년입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고대사회에서 수확은 일모작, 즉 1년에 한 번 밖에 못했으므로 1년이란 뜻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1년에 한 살씩 나이를 먹기 때문에 나이라는 뜻이 또 추가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삭이 그대로 붙어 있는 곡식단을 낟가리라고 합니다. 이 낟가리는 일단 탈곡을 할 때까지는 노천(露天)에 야적(野積)을 해두게 됩니다. 이것을 한자로 노적(露積)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노적가리라고 합니다. 우리 말이라고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한자에서 나왔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노적은 위와 같이 안쪽에다 낟가리를 쌓아서 겉을 짚으로 싸서 대충 묶어놓았습니다. 도둑을 맞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죠. 저렇게 쌓아놓은 노적가리를 한 자로 표현하면 곳집 유(庾)라고 합니다. 요즘은 추수를 하는 풍경이 많이 바뀌어 저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한편 이런 모습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련뿐만 아니라 루앙 성당 등의 연작으로 유명한 모네의 그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는 그냥 탈곡을 끝낸 볏짚단을 야적해 놓은 것도 노적가리라 하였습니다.
옛날은 지금에 비하면 생산성이 퍽 떨어진 사회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먹고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적가리처럼 생긴 산봉우리에 노적봉이라는 이름을 많이 붙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울산 동구에 있는 노적봉이라는 봉우리입니다. 아마 전국에 있는 노적봉이라는 이름을 찾으면 수십 개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사정은 일본도 우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래도록 지속된 전국시대 때문에 서민들의 생활은 더 팍팍했을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일본 아소산 기슭에 있는 코미츠카(米塚)라고 하는 화산으로 생성된 산입니다. 쌀무덤이라는 표현이 우리네 노적봉보다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일단 추수를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탈곡기로 볏단에서 낟알을 떼어내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떼어낸 낟알을 나락(稻)라고 합니다. 이 나락을 보관하는 창고는 한자로 창(倉)이라고 합니다.
요새는 농촌에 가면 웬만한 집에는 저렇게 탈피기가 있는 것 같더군요. 위의 것은 나락이고 왕겨라고 하는 껍질이 벗겨진 상태를 우리는 쌀이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미(米)라고 합니다. 이 쌀[米]을 보관하는 창고를 한자로 름(廩)이라고 합니다. 『관자(管子)』에 보면 "倉廩實而知禮節"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나락 창고와 미곡 창고가 꽉 차야 예절을 안다"는 뜻입니다. 즉 경제적으로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예절을 차리게 된다는 말이지요.
되에 담긴 쌀이 정말 먹음직스럽습니다. 쌀이 종류가 하나라면 보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죠? 그냥 한데 모두 넣어서 보관을 하면 될 테니까요. 그러나 쌀만 해도 멥쌀과 찹쌀, 햅쌀과 묵은 쌀 등 품종별 수확 연도별로 구분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으레 따로 보관을 하게 되지요.
도시농업박람회에서 쌀을 구분해놓은 것입니다. 왼쪽이 국산 오른쪽은 중국산이라네요. 어쨌거나 쌀 미(米)자는 이렇게 벼를 구획하여 보관하는 모습을 본뜬 글자라고 합니다.
「쌀 미」(米)자의 갑골-금문대전-소전
잘 익은 벼 한포기를 한 손으로 잡고 있는 모양이네요. 이렇게 한 포기의 벼를 잡고 있는 모양의 한자가 바로 잡을 병(秉)자입니다.
「잡을 병」(秉)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한 손으로 벼를 움켜잡고 있는 모습이 완연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한 손으로 여러 포기의 벼를 한꺼번에 쥐고 있는 모습은 한자로 어떻게 표현하였을까요?
농부가 일년 내내 정성들여 지은 벼를 한 웅큼 잡고 기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정말 보기에도 흐뭇한 모습입니다. 이렇게 한 손으로 여러 포기의 벼를 쥐고 있는 한자가 바로 겸할 겸(兼)자입니다.
「겸할 겸」(兼)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그런데 다같이 벼에서 파생된 글자인데도 옥편에서 찾으려면 헷갈립니다. 잡을 병(秉)자는 벼 화(禾)부에서 찾으면 나오는데 겸할 겸(兼)자는 분명 벼 화(禾)부에서 찾아야 할 것 같은데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겸할 겸(兼)자는 엉뚱하게도 여덟 팔(八)자 부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는 한자가 세월을 거치는 동안 형체소가 되어야 할 부수가 점차 검색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줄어드는 현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한나라 때 허신이 최초로 부수배열법을 적용한 자전인 『설문해자』에는 540부수자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강희자전』의 모태가 되는 『자휘』에서는 214부로 줄었습니다. 지금 가장 많이 보는 『한어대자전』과 『한어대사전』에는 200부수로까지 줄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줄 가능성은 있어도 늘어날 가능성은 없겠지요. |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진도 글도 예술입니다.
그렇게 지향하고 있습니다만... 퍼온 것도 많고...
@沙月 사월 선생님!
부탁 말씀 드립니다.
여기 올려진 자료를 제 수업에 활용을 해도 될지요?
허락을 해 주시면 ppt자료로 만들면 좋은 한자 뿌리 이해 방법이 될 것 같아 부탁드립니다.
예, 변변찮은 자료가 교육에 도움이 된다니 송구스럽네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다만 나중에 혹 책으로 엮일지도 모르니 출처는 좀 밝혀주셨으면 좋겠네요. ppt자료로 만든 결과물이 어떨까 저도 궁금해집니다. 기대됩니다...
고맙습니다.
출처는 반드시 밝히겠습니다.
ppt자료가 만들어지면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