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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어온 가랑잎 유진오
긁어온 가랑잎
앉으라 앉어 아궁이 앞에
긁어온 가랑잎이 빨갛게 타는
늦은 가을 이슥한 밤에!
앉으라 앉어 타는 불 옆에
그리곤 쫓으라 쫓아 머언 옛날로
지난 날의 모질던 꿈과 사람들
그대에겐 그대를 받드는 힘이 있나니
학대와 설움에도 굽힘없이 되찾은
하늘가 멀리멀리 잃었던 자유(自由)로의 힘이라네
이제 그네에게 돌아옴은
여름날 싸움터에 빛나는 땀방울
오월(五月)의 꽃봉오리 피는 듯한 새 희망(希望)
이슬 젖은 풀잎에 가시돋힌 가지처럼
독 오른 눈동자와 주둥이들 속에서
신비(神秘)한 비밀(秘密)처럼 찾어 오리니
그대 이 모든 즐거움을 위하여
힘으로 마음으로 타는 불 되어서
솥 안에 무르익는 혁명(革命)을 노래하세!
창(窓), 정음사, 1948
나는야 거기 이름없는 풀잎이 되어 유진오
나는야 거기 이름없는 풀잎이 되어
나는야 이우러져 자라났다
그늘져 후미진 석축(石築) 밑을 걸을 때마다
번질거리는 돌 문패 서껀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
눌르며 달래며 자라왔다
개나리 피어 휘늘어지면
안개 같은 먼지를 풍기며
요정(料亭)으로 달리는 자동차(自動車)를
눈물 어린 눈으로 흘겨만 보던
나는야 이젠
불꽃 이는 가슴을 안고
산맥(山脈)처럼 부풀어 오르는 혈관(血管)을 움킨 채
마구 마구 달려간다
새나라의 이름으로
시경을 닦는 찬란한 마당으로
나는야 동무들의 앞장을 서서
미칠 듯이 달려간다
오오 새나라야 새나라야 우리 나라야
송이 송이 꽃송이가 피어날 때엔
나는야 거기 이름없는 풀잎이 되어
조심스리 모시리라 정성스리 받들리라
창(窓), 정음사, 1948
눈이 멀도록 유진오
눈이 멀도록
불빛조차 없는 방(房)
그리움이 한결 짙어간다
보채며 설레이며 잠들어 누운 자리
쪽지 한장 써 놓고
살랏이 다녀간 이
아픈 숨결이
상한 벌레처럼
왼 몸에 꿈틀거리면
맥없는 팔길을 가슴에 얹고
몸을 틀어 돌아 눕는다
눈이 멀도록 기두리마
눈이 멀도록 기두린다
창(窓), 정음사, 1948
달 유진오
달&
눈알 마다 마다 정(精)채가 돌고
불고래 상기한 얼굴 얼굴들이
잠긴 듯 가뿐 숨결을 지니던 모임에서
어깨 나란히 가슴을 물들이며
돌아오던 밤길
붉은 기와 상기한 얼굴과 온몸의 피와
어느 것이 붉고 빨간 빛조차 헤이지도 못하며
고개 다소곳이 넓은 길 걸어오던 밤
발자취 얼은 땅에 소리 높으매
문득 밝은 빛 넘치는 길 우에서
밤도 겨울도 어느듯 짙었고나
스사로 고요히 생각하며 너를 보았노라
비스듬히 구름을 헤치고
이우러져 갸웃동 솟은 새하얀 네 얼굴은
이날따라 유심히 곱고 고왔다
손아귀에 땀을 쥐고 말소리 우렁차던
어제도 오늘도의 흩흩한 날에
네 얼굴에 홀리운 듯 빼앗기는
그지없는 아름다움이 고마웠다
지난 날 망명(亡命)의 길 우
눈보라치던 밤길 우에 그림자 수연(愁然)히
차마 한숨 없이 보지 못하던 네 얼굴
철창(鐵窓)에 바람소리 섞여 엿보이던
눈물 없이 보지 못한 네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보는 네 얼골
어찌도 그리 차거운 아름다움이냐
이 끓는 가슴 안에 부여안어
속속들이 포근하게 녹혀주고 싶고나
다시금 현실(現實)과는 동떨어진 듯이
머얼리 으스름히 바라만 보듯 비치고
그렇다고 너 없는 밤엔
어둡고 쓸쓸한 갑갑증을 더하던 너
무수한 별들을
반겼다 저어하며 끝없이 돌고 돌고
바뀌고 또 바뀌는
따를 수도 잡을 수도 영영 없는 너
저 빛나는 태양(太陽)이 우리의 정열(情熱)이라면
너는 잠겼다 선하고 선했다 다시 잠기는
우리의 이성(理性)일까보냐 달아!
지새움이 훤할 때
너는 서천(西天)에 이윽히 걸리기도 하고
저녁놀이 화려할 때 일찌기 솟아
동트기 전 새벽별을 호올로 남기는 너
지붕도 담장도 없는 우리집 안에
때때론 등잔불도 되고
호롱불 켜들고 고개 넘어 논밭 넘어
밤일하고 돌아오는 우리를 맞아주기도 하던 너
너는 우리네 살림살이에
홀홀 빨갛게 타는 모닥불이 되라!
웃음 가득 머금고 반가히 맞는
얌전한 아낙네가 되라!
또한 너는 우리 가슴 속에
거울이 되라!
분수(噴水)가 되라!
연못이 되라!
창(窓), 정음사, 1948
들국화 유진오
들국화(菊花)&
너는
내가 또 붙들려 가면
어떡허느냐고 했다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붙들리지 않는 것만은 못하다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것은 네가
들국화(菊花)를 한아름 안고 온 날이다
누가 꺾을까봐서
정신없이 꺾었노라고
신발을 이슬에 적시고
향기에 취해서 안어다 놓고는
안방 건너방 마루
병이란 병에는 다 꽂아놓고
심지어는 사이다 병에다 꽂아서
툇마루 부엌에까지 놓고
그 사이를 좋아서
왔다갔다 한다구
나는 욕심쟁이라 했다
네가 꽃을 좋아하듯이
나를 좋아할까봐 겁이 난다구
독차지 하려 들지 않을가
네가 꽃과 나를 좋아하듯이
나는 너와 또 무수한 너와
꽃과 자유(自由)와
정말로 자유(自由)로운 자유(自由)
꽃보다도 귀한 목숨들
내 일과 내 젊음을 사랑한다
꽃과 너와 자유(自由)와
일과 너와 젊음……
꽃은 향기롭다
그러나 꽃은 시드는것이다
일은 좋은것이다
그러나 부즈런해야 한다
너는 알었다 했다
그렇지만 정말로 알기까지엔
우리는 괴로움을 먼저 알어야 한다
들국화(菊花)
하아얀 어여뿐 송이엔
이슬이 맺혔더라
네 눈에도 그렇게
몇 번이고 이슬이 맺혀야 할 것이다
하아얀 들국화(菊花)송이처럼
창(窓), 정음사, 1948
만가 유진오
만가(輓歌)&
―꼭 또 오세요 하는 말에
저도 모르게 끌려가곤 하던
그 길과 밤과 계집일랑 탓하지 말자
잔을 기울여 눈알을 흘리던
패리한 인테리
감상(感傷)에 젖던 그날이야
거기 증오(憎惡)와 함께 묻어두라
허덕이며 매질하던
언제나 역시 회오(悔悟)로만 끄치던
값없는 자책(自責)만으로
이 문턱을 더럽혀서는 못쓴다
아아 까마득히 물러나는구나
어두운 침상(寢床) 우에 괴로운 꿈아
불논 잔디 우에 새싹이 돋아나듯이
가슴 풀어헤쳐 태양(太陽)을 안고서
역사(歷史)의 부름 앞에 나는야 일어섰다
숨가뿐 가슴아!
오월(五月)의 제비처럼 날고 싶어도
매서운 표(豹)범처럼 울고 싶어도
너는 먼저 노상(老象)의 지혜(智慧)를 배워야 한다
왼갖 화상(華想)이 너를 꼬여도
환한 미소(微笑)로서 물리쳐 버리고
길들인 소시민(小市民)이 파묻힌 터에
진리(眞理)로 무장(武裝)한 투사(鬪士)가 서야 한다
창(窓), 정음사, 1948
무엇을 가르쳐야 옳으냐 유진오
무엇을 가르쳐야 옳으냐
어두운 밤 하늘에
불인 듯 깃더오르는
그리움이여!
입맞춤조차
서툴고 수집은 너야
나는 너에게
헛되인 문명(文明)을 가르치야 하느냐
네 미명(迷明)의 그윽한 그늘 속
아무의 손도 그림자도
닿지 않은 곳
내 슬픈 듯 간지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리 헤매이자
나는 네 눈을 찾을 건 없다
나의 떨리는 시선(視線)이 너를
찾어 헤매일 때
푸르르 날러 가버릴 소심(小心)한 새인 양
얼골 붉히고
고개를 숙이는 너
너는 바람결에 흘러오는
비오롱처럼 안타까웁다
떨리는 입술
옷고름이나 손수건이나
치마자락 같은 것을 무시로 더듬는 손
불시에 아무거나
눈가로 가져가는
네 손
네 얼골
ꡒ그럴 때면 의례히 능금처럼 붉드라ꡓ
나는 너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옳으냐
때로 그리움에 사모쳐
못 견디게 괴로울 양이면
그만 영 너를 잊어버리고 싶어진다
너는 사늘한 가을 밤 하늘에
조각달인 양 눈물겨웁다
창(窓), 정음사, 1948
밤 유진오
밤&
어머니는 자기(自己)보다 더 많이
아들을 위하여
혼담(婚談)을 끄내시면
아들은 어머니를 위하여
웃음의 소리로 혼담(婚談)을 끄내고
이러다간 성인(聖人)들의 말씀
효자(孝子) 열녀(烈女) 이야기를
하시던 어머니는
아들이 속삭이는 이단(異端)의 말에
차츰 차츰 끌려들어
눈을 깜박이며 들으시다가
분(憤)개한 어조(語調)로
아들을 격려(激勵)하시다간
팔 다리가 아프고
뼛골이 쑤시면
불연듯 혼담(婚談)을
끄내시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너털웃음으로 대답(對答)하면
어머니는 다시
옛 이야기로 돌아가는
밤 이러한 밤도 있느니라
창(窓), 정음사, 1948
버섯 유진오
버섯
붉은 담 너머
드문드문 시드는
소나무 숲 사이로
누우런 초가(草家) 지붕이
버섯처럼 보이는구나
가치운 몸이다
아아
마음에 파고 드는 미움
차라리
살이 되고 뼈가 되라
알알이 구석 구석을 채워
미움의 화신(化身)이 되어
빨간 독(毒)버섯처럼 되거라
창(窓), 정음사, 1948
봄 유진오
봄&
거리는 무서웁도록 어두워도
꽃가루 날리는 곳엔
불을 밝혀야 한다고
놀이터 앞엔 촉광(燭光)
촉광(燭光)이 눈을 쏘아 본다
집에선 보채는 아이를
매질하면서
배는 고파도 구경은 해야 한다고
단장은 늘어 늘어
나는 그만 슬퍼야 한다
봄이란 이렇게
어수선하게 맞어들어야 하는
아아 그들 속에
나는 누구를 찾어야 하느냐
철마다 바꿔야 하는
옷이랑 마음이랑
나에겐 모두가 지나간
꿈의 풍습(風習)이니라
봄
꽃가루 날리는 그 속엔
내가 찾는 이는 아무도 없노니
꽃가루 날리는 그 속엔
창(窓), 정음사, 1948
불길 유진오
불길
그리운 사람이 있음으로 해
더 한층 쓸쓸해지는 가을밤인가보다
내사 퍽으나 무뚝뚝한 사나이
그러나 마음 속 숨은 불길이
사뭇 치밀려오면
하늘도 땅도 불꽃에 쌓인다
아마 이 불길이 너를 태우리라
이 불길로 해
나는 쓸쓸하고
안타까운 맘은 숨막힐 듯 기인가보다
불길이 스러진 뒤엔
재만 남을 뿐이라고
유식한 사람들은 말하더라만
더러운 돼지 구융같이 더러운 것
징글맞게 미운 것들을
모조리 집어 생키는 불길!
이것은 승리가 아니고 무엇이냐
나는 일찌기 이렇게
신명나는 그리고 아름다운
불길을 사랑한다
낡은 도덕(道德)이나
점잖은 이성(理性)은 가르친다
그것은 너무나 두렵고
위험(危險)하지 않느냐고
어리석은 사람아
싸늘한 이성(理性) 뒤에 숨은
네 거짓과 비겁을
허물치 말가보냐
네가 생각지도 못한
꿈조차 꿀 수 없던 그런것이
젊은이 가슴에 손에 담겨서
그득히 앞으로만 향해 간다
외곬으로 타는 마음이 있어
괴로운 밤
나의 사랑 나의 자랑아
나는 불길에 싸여 버린다
창(窓), 정음사, 1948
비 오는 날 유진오
비 오는 날&
못자리를 내어놓고
비를 기다리는 농민처럼
깨끗이 방을 치어놓고
행여 날 찾아주는 이 없는가
처마 끝에 빗방울이 들으면
바시시 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며
이만하면 눈물은 충분(充分)할텐데
비에 막혀 못오는 사람이
자꾸만 그리워지면
그만 하늘을 주먹으로
쥐어질르고 싶어진다
―아냐 비는 더 와야 해
농민은 비를 기다리거든―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호졸곤히 비를 맞으며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동무들이 민망해지면서도
일어날 기력도 없이
호올로 누워있는 이 방을
환하게 채워주는 그런 사람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창(窓), 정음사, 1948
설화 유진오
설화(雪花)
끝대인 곳 모르는 눈 속에 사모친 들
낙조(落照)를 가슴 가득히 받으며
사각 사각 소리 보드라운 눈을 밟고
거닐어 보는 들
옆으로 앞으로 우로
모오든 숲 가지 가지 나무 가지에
눈은 뒤덮이어 빛나고 있다
모오든 것을 덮어 싸고도 오히려 남는
이 팃기 없는 순백(純白)함은
이제 마지막 빛을 받고
붉으스레한 빛을 밝히나니
아아 끝없는 번쩍임이로다
대일 곳 없는 순결(純潔)한 빛남이로다
들장미(薔薇) 가지는 피어 만발한 꽃을 속이고
능금나무 앵두나무 복송나무
드문 드문 미루나무
또한 풀잎 끝까지 꽃은 피어 만발하였다.
그러나 아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싸아늘함이여
울타리도 장독대도 나무도 없는
오막살이 같구나
얼음장 같은 찬 바람이
팃기 없는 꽃들을 불어헤친다
이 꽃심지 가까이 손가락을 대이면
이내 얼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다지 맑고 이다지도 사상(死相)을 품은 꽃은
마치 우리네 가슴 속에 잠자는
안타까이 발버둥치던 쓰거운 옛날이로다
그 속에서 그래도 식지 않은 피가
허덕이며 삶을 그리고 봄을
청춘을 찾고 찾으며
근근히 짙어왔던 옛날이로다 옛날이로다
우리의 지난 날은 펄펄 날려 쌓이어
짐즛이 결정(結晶)하는 눈인가보다
그러나 아직도 찾지 못한 웃음이 있다
아직도 면(免)치 못한 가난뱅이란다
우리의 지난 날의 정열(情熱)은 경치(景致) 같기만 하다
쪼들린 살림살이
우리의 걸어온 생활(生活)의 발자취가
덧없는 세상 우에
이제껏 고시란히 남어 있고나
세월(歲月)의 눈 밑에 잠긴 채로
아직껏 살어 있고나
창(窓), 정음사, 1948
소 유진오
소&
기울어진 담장 밑
재 쓰러기 쌓인 터전에
닭 소리 드레박 소리 들려오는데
무념히 앉어 염불(念佛)을
읊조리는 중 마냥
눈 비스듬히 반만 감은 채
무릎꿇고 방울을 흔들며
잠착히 되씹는 소
소는 농민의 마음
농민의 한숨과 함께
소는 늙어 왔다
방울은 슬픈 요령(搖鈴)이 되어
팔려가는 날
농민은 눈물도 없이 흐느끼는데
땅을 향하여 굽은 뿔이 하늘을 치받고
피 흘려 뜻아닌 배를 불려야 하는 소
소는 농민의 마음
농민의 한숨과 함께
소는 팔려갔다
창(窓), 정음사, 1948
순이 유진오
순(順)이
그리움이여―
천리(千里) 길을 내달었도다
얼굴도 말소리도 모르는
이따금 날려드는 평범(平凡)한 엽서(葉書) 조각에
홀리운 듯 팔리운 듯 그리웠던 이
꿈결같은 이야기……
지난날 허고 많은 주림과 슬픔
목마른 바램의 끝없는 새암줄기
이제는 새 새악씨 얌전한 안악
도란 도란 이야기는 웃음에 차서……
머얼리 바라만 보듯 듣기만 하고
눈섭 하나 까딱이지 못한 채
사뿐히 놓여지지 않는 발길은
천리(千里) 길을 되가야 하나니
배운 건 한가지나
잃은 건 열가지나 되는 듯
절름거리는 마음 무척 서글퍼
안타까움이여……
천리 길은 아득하도다
창(窓), 정음사, 1948
어머니 유진오
어머니&
거칠은 손 부드러웁고
왼 얼굴이 홈초록이 주름살에 싸여
까만 눈알이 멀리 바라뵈는 곳에
어머니 당신의 아들은 있오이다
깨끗한 새옷을 입히고 싶어하는
아들은 아직도 누추하다고
어머니 당신의 눈은 따라옵니까
갓 스물도 두어해 전
때묻은 바느질 그릇 옆에
아들은 있지 않었습니다
그때부터 당신의 눈은
바라만 보는 습관(習慣)이 들었지요
머리칼이 하얗게 시었어도
열여덟 새새악씨 그때 보담도
부엌일은 자꾸만 서투르신데
바라보는 습관(習慣)은 익숙해지십니다
꿈자리에서도
그렇게 바라만 뵈신다구요
어머니―
당신의 눈에 깃드린 불안(不安)한 표정(表情)은
언제나 가셔질가요
창(窓), 정음사, 1948
이대루 가자 유진오
이대루 가자
죽엄인들 대수로우냐
이데루 가자
괴로움이면 차라리
뼈를 앗으라
사나운 바람 속에
눈물 어려 살아왔다
가야만 할 길이다
꽃잎처럼 떨어지자
하나 둘
헤일수 없이
짓밟혀간다
아까운 목숨들이
악착스리 짓밟힌다
사나운 발굽 밑에
꽃잎이 있다.
번쩍이는 총칼 밑에
목숨이 있다
꽃같은 목숨이
땅 위에 떨어졌다
떨어진다
허수히 죽는게 아니다
그냥 스러지는
꽃 같은 목숨이 아니다
땅 속에 흙 속에
다시 피리라
죽어도 떨어져도
꽃은 피고
꽃은 남는다
죽엄인들 대수로우냐
이대루 가자
괴로움이면 차라리
뼈를 앗으라
창(窓), 정음사, 1948
재생 유진오
재생(再生)
화강석(花崗石)으로 영을 올린 무덤
그 우에 칡덩쿨이 얽히고
잡초(雜草) 우거져 싸늘한 달빛에
호늑이는 그림자
금시에 느끼는 소리 들릴 듯한
슬픈 무덤
어둡고 사나운 이윽한 밤과 밤
끝없는 고요를 허덕이며
집어삼키는 두더쥐처럼
산송장이 되어서 누워있던 그 무덤
그저 막막(莫莫)한 한숨이 터져나오는
바위 틈에 풀포기 보담도
더 괴로운 호흡(呼吸)을 지니며
옛날처럼 도까비 이야기처럼
심장(心臟)을 달삭거리며
그래도 실낱 같은 목숨이
질어져 왔었다
어느 태고연(太古然)한 밤
유성(流星)의 흐름이 신화(神話)처럼
바위를 무너트리고
나무를 부러트려서
아름다운 포물선(抛物線)에
무덤은 첩첩(疊疊)한 무덤은
부서져 폐허(廢墟)처럼
허물어져 버렸다
혼미(昏迷)한 꿈결 속에서
새어드는 음향(音響)과 넘쳐드는 바람결에
기적(奇蹟)처럼 뚫어진 판자(板子)를 벗어나
허둥거리는 발
충혈(充血)된 눈
호흡(呼吸)을 이루지 못하는 심장(心臟)……
생(生)도 사(死)도 아닌 순간(瞬間)에서
ꡒ오! 드디어 살었고나!!ꡓ
가냘핀 신경(神經)이 부르짖는 소리
불보다도 뜨거웠다
광선(光線)이 따가웁고 눈부셔
발뿌리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멍먹하고 안타까운 마음!
걸음걸이마저 잊은 듯이
더듬어 내어 드디는 발뿌리에
유물(遺物)스런 돌조각 나무가지
기나긴 세월(歲月)에 슬픈 중량(重量)을 더하던
추억(追憶)보담도 서글픈 사념(思念)
화석(化石)처럼 우득히 선 양자
앙상한 뼈만이 우중중 하고
지나치게 창백(蒼白)한 얼굴
이마 우에 커다랗게 티여 충혈(充血)된 눈은
허공(虛空)을 응시(凝視)하나
하늘 따는 눈앞에 혼란(混亂)할 뿐이었다
깍말른 땅에 무성(茂盛)하는
군풀 뎅쿠리마냥
얼크러져 허여센 머리칼과 수염은
우수수 부는 가을 바람에
허트러져 찢어진 기(旗)폭처럼 퍼덕인다
무심(無心)한 돌뿌리 나무가지는
뉘라서 갖추어졌던가
한줌 흙을 더하던 과거(過去)는
어느뉘 가져왔던가
실연(失戀)보담도 비애(悲哀)보담도
더 슬프고 악착스런 현실(現實)이었다
잠자코 말없이 마시기엔
엄청나게 많은 독배(毒杯)였다
채찍에 시달려 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가난에 쪼들리고
굶주림에 매말랐던 이들에겐
더욱 더 쓰라린 아픔이었다
생각보다도 더 원통(怨痛)한 무덤 속에서
이미 나서기는 하였다
허나 눈 앞은 역시 어둠이다
아무리 크게 뜨나 역시 어둠이다
생리적(生理的)으로 반(半)틈이나 파괴(破壞)된
억울한 육체(肉體)였다
으스름한 시야(視野)엔
대지(大地)는 광란(狂亂)하는 파도(波濤)처럼 뒤설레고
하늘은 그 우에 고함(高喊)치며 뛰어들 듯하여
비명(悲鳴)조차 지르지도 못하고
휩쓸려가서 또다시 지난 날의
슬픈 일과(日課)를 반추(反芻)한 것 같다
쏟아지는 듯한 동공(瞳孔)의 아픔을 알자
차라리 안맹(眼盲)하기를 한(限)없이 바라기도 했으나
새로운 삶의 비애(悲哀)가 굳이 눈을 갖추기에
역시 이 호흡(呼吸)이 있는 한(限)
횃불 같은 눈을 안타깝도록 원(願)했다
드디어 부유스름한 안개 차츰 가고
날러갈 듯 나붓끼는 파아란 하늘이 보이듯이
눈앞을 가리웠던 어둠이 으스름 스러지고
문득 팔랑거리는
들국(菊) 한송이 눈에 띄이매
저승길 되살아온 희안한 느낌에
맘놓고 길게 뽑아보는 한숨을 쉬고
기쁨아! 소용대는 가슴에 두손을 얹고
성급(性急)히 파닥이는 날개를 가다듬어
마음껏 활개치며 어디를 가야 옳으냐?
정녕코 거짓 아닌 저 하늘 아래
목놓아 울고 싶고나
얼기 설기 얽혔던 울적(鬱寂)의 피를
화산(火山)처럼 고래처럼 토(吐)하고 싶고나!
부는 바람 간지러운
수집은 살이 송두리채 바치고 싶은
달가운 유혹(誘惑)도 받어들이자
야생화(野生花) 드문드문 방싯 웃는 들판을
맨발로 달리자 미칠듯이 달리자
얼싸안고 뺨을 부빌 그리운 이 찾어서
그리고 이 몸의 끓는 피를
압다랗게 멋들어지게 바쳐버리자
저 빛나는 태양(太陽) 아래
발길도 우렁차라 숨소리 고요해라
두 주먹 불끈 쥐고 머리를 높이 들자
바위틈에 샘물도 콸콸 솟으라
온갖 새 지저귀어 보금자리 따뜻하라
봉오리 봉오리 새봄이 오는
이 고개 넘어스자 마중 나가자
슬픔도 가라!
가난도 가라!
이몸은 죽었다 살아난 몸이로다
우리는 살기 위해 죽고
죽기 위해 살리라
반가워라 이 노래
어이 다 부르오리
들판에 곡식은 무르익었고나
동녘에 붉게 타는
새아침에 돋는 해가 솟아 오르는
누리에 빛나는 다사로움 속에서
그 모습을 보리라 잃었던 모습을
새날의 새터를 닦는 그 모습을
그러면 나도 달려가 끼이리라
가슴에 붉은 피를 가르치고
두 손에 옹이를 어루만지며
얼굴 가득히 웃음을 담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보자
정든 땅 그리웠던 사람들을 찾아
아람드리 꽃다발을 꺾어들고서
마음이 바쁘면 걸음걸이 더욱 늦추며
가는 길 고비고비 샅샅이 눈익혀보자
아름다운 저 달이
구름을 달래며 지나는구나
멀리서 늑대 여우 산짐승이 우는데
뻐꾹이 너도야 울으려므나
저 멀리 고개 넘어
등잔불이 가물가물 조을고 있고나
창(窓), 정음사, 1948
창 유진오
창(窓)&
□ Ⅰ
어둠을 향(向)하여
정기 없는 눈처럼
뻐꿈히 열린 창(窓)
이그러진 담베락을 의지하고
조으는 듯 까부라질 듯
덤덤히 말이 없다
아지 못할 냄새를 풍기며
가슴을 조이게 하는
낡은 성(城) 밑 군풀 우거진 곳에
해와 바람은 등져도
비에는 명색도 없는 창(窓)
성(城)너머 해사한 지붕 아래
쏘는 듯 화끈하는
제마다 주실 달은
아름다운 창(窓)들
성(城)을 사이에 터를 잘라
창(窓)들과 창(窓)들은
어제도 오늘도 바라만 보고 있다
□ Ⅱ
여름내 뿌려치는 비바람 속에
간간히 울음 소리마저 풀끼없는
어린것 소리에 시달려
한여름 가고
퍼어런 눈자위
고달픈 얼굴이
한숨을 내품는 창(窓)으로
성벽(城壁) 돌틈에
부스러지는 모래와 함께
삐라처럼 가랑잎이 날러들어 가고
가랑잎처럼 삐라가 날러들어 가고
얕은 하늘 고요한 밤에
솜눈이 송이 송이
히멀건 창(窓)을
녹힐 듯 얼어붙일 듯이 두다릴 무렵
창(窓) 안에선
어둠을 타서 그림자인 양
미끄러져 들어간 사나이
굵은 목소리 영남(嶺南) 사투리가
섞여 들리는
이날부터
종이 소리
무엇을 굴리는 소리
밤을 도와 그치지 않고
밤마다 저녁마다
힘차고 무거운 노래 소리
나즉히 들리기 시작한 후엔
창(窓)은 어둠을 뚫고
멀리 험한 풍랑을 헤아리는
등대(燈臺)처럼 자꾸 높아만 갔다
때로는 흐린 밤
구름 속에 빛나는
별인 양 떨렸고
혹시는 미움에 치떨려
핏발선 눈처럼
성(城) 너머 휘창한 창(窓)들을
달려들 듯 쏘아보며
사나이와 사나이
에미나의 눈길이 마주칠 때
싸늘한 비수(匕首)의 흐름이
미운 놈의 가슴팍에
금을 그어 놓는다
□ Ⅲ
엔진 소리 나면
헤트라이트 불길이
굶주린 이리처럼
굽은 성(城) 윗길로 달려왔고
대문(大門) 소리 찌르릉
여닫는 소리와 함께
혀 꼬부라진 소리 들린 뒤
이내 석류(石榴)를 터트린 듯
기녀(妓女)의 웃음소리
취한 마음 흔들리는 노래 소리
연이어 나고
평안도(平安道) 함경도(咸鏡道) 사투리
비―루 거품처럼
호화로이 떠돌고
비오는 날
눈오는 밤
철을 잊은 밤마다의
명절(名節)이 불을 밝히고
노랫가락이 잦으면
째즈가 풍척이자
치마 꼬리 휘감고
얼싸안은 사람들의
그림자 그림자
눈부시는 창(窓)너머
무쇠 난간(欄杆) 베란다
성(城) 위 송림(松林)길에
어즈러이 맴돌아 간다
때론 회의(會議)가 있어
우와― 물결처럼 이는
환호(歡呼)와 박수(拍手) 소리
그리곤 술잔 부딪는 소리
장고 소리 웃음 소리
눈물도 한숨도 없고
눈 비 바람 모오두
헤아려 지내가는 무풍지대(無風地帶)
울음 소리라곤
대문(大門) 안과 밖에 있는
귀를 찌르는 세파트의 울음뿐
그러나 이것도 울음은 아니어
아름다운 창(窓) 취한 듯 어른거리는 창 너머로
흘러나오는 평안도(平安道) 사투리와
남한(南韓)을 방송(放送)하는 라디오 소리
창(窓)앞 베란다 쇠난간 우엔
포기 포기 꽃나무
시들을 듯 조을고
창(窓)마다 포도넝쿨마냥
쇠넝쿨이 세라어
바람도 비도 고양이도
도적도 피해버리는
이 창(窓)으로 해
밤마다 마을 사람들의 잠은
늘 설어도
창(窓)은 취한 듯 노(怒)한 눈길로
성(城)아래 초라한
창(窓)들을 굽어다 본다.
□ IV
낡은 성(城) 너머
무딘 연륜(年輪)이 돌아간 숲길
여기 무서운 권력(權力)이
눈을 부릅뜬 창(窓)과
성(城) 밑 무시로
바스러져 내리는 모래와
천년(千年) 묵은 예속(隸屬)의 도덕(道德)으로
이내 찍어 눌릴 듯한
무수한 창(窓)들과 창(窓)들은
성(城)을 사이에 터를 갈라
말이 있을 수 없고
말 쓸데없어
거기 반짝이는 불빛이
부딪쳐 불꽃을 일으켜
하늘과 땅
낡은 성(城)과 숲길이
파아랗게 타오를 날
이 날을 바래
묵묵한 침묵이
어두운 밤과 밤을 밝힌다.
미어진 문풍지 파닥이는
쇠넝쿨도 나무 토막도 가리지 않은
초라한 창(窓)들은
이젠 아무것도 잃을 것 없기에
미움과 함께
은연히 견디어 가고
세파트와 쇠넝쿨과
서슬 푸른 권력(權力)이
겹겹이 에워싼 창(窓)들은
불안(不安)하기에
저녁마다 촉광(燭光)을 돋군다
아아 그러나
도적과 불안(不安)을 막기 위하야
쇠줄 늘인 창(窓)들은
실상은
비와 바람에 떨며
쥐와 빈대로 더불어
설움에 찌들은
저 창(窓) 안에서
얼마나 악착스리
알찌게 빼앗어 갔던 것인가
나의 사랑하는
불상한 동무들은
이러한 창(窓) 안에서
굶주려 숨넘어갔다.
그러기에
도적이 두려워
어둠이 무서운 아름다운 창(窓)들엔
권력(權力)과 함께
부유(富裕)한 도적이 살지 않느냐
부딪쳐 파아랗게
타오를 날
이날이사 나즉한 목소리는
우렁찬 나팔처럼 울리고
하늘을 찌르는 불꽃은
우리의 기(旗)발
어둠을 뚫고
아름다운 창(窓)들
그들이 사랑하는 창(窓)들은
철창(鐵窓)이 되리라
아아 이것은 우연(偶然)이 아니다
강도(强盜)와 부자(富者)에겐
철창(鐵窓)을 주라.
창(窓), 정음사, 1948
초상 유진오
초상(肖像)&
해어진 옷자락이 가이 없어서
그러는게 아니란다 아가야!
네 부르는 노래가 구슬퍼서
그러는 것도 아니란다
고무신 한 켜레 얻어신지도 못한
네 맨발이 부릍고 찢기어서
혹시는 네 얼굴 네 눈이
핏기 없고 초라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네 어버이가 그러하고
또 네 조상이 그러했던 탓으로
너도 또한 그 자손(子孫)의 혈통(血統)으로만도
언제나 굶주리는 종족(種族)이라서
그러는 것도 물론 아니다
네 속에 감추어진
슬픈 역사(歷史)의 구김새를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도 아니란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남모르게 흘리는 네 눈물을 알기에
내 모습을 네게서 보고
잊었던 나를 찾는 것 같애서
그러는 것으로 알아다오 아가야
일찌기 내가 사랑하기를 배운 것도
너와 같은 이에게 배웠고
내 슬픈 버릇도 그러했느리라
내 속에 깃들이는 먼 옛날과
네 모습이 가지는 아련한 느낌은
내가 너를 사랑케 하고 슬프게 한다
때로는 미워도 하느리라
굳이 억누르는 속삭임이 튀어나올 때
나는 너를 주저(呪咀)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는 씰개를 깨미는 듯한
회오(悔悟)로 혀를 채웠느니라
그러나 이제는
네 모습이 향(向)할 길이 틔었다
기쁨보담도 다사로운 곳에 이르는 길이
내 사랑도 님의 모습을 머얼리 뵈온 듯이
걸음걸이 바빠져 간다
돌뿌리에 채일 줄도 모르고
뛰고 싶다 날으고 싶다
허나 너는 그 가냘핀 몸 안에
날카로운 이지(理智)를 갖추고
조심성스럽고 침착하다
그 위엄 아래 능히 나를 누르고
네 가슴 속에 불룩한 봉우리가
피어 오르는 그 길 우에
내 모습 또한 따러 피리라
오! 아가야 그 길 우에
창(窓), 정음사, 1948
한없는 노래 유진오
한없는 노래
어매여
한없는 노래여
나는 시방
ꡒ자식은 애물ꡓ이라는
옛말을 생각하고 있다.
세치 앞이 안보이는 어매는
왜 그리 자꾸 속을 태우는가
그러다간 영 그 눈을
못쓰게 맹글지 않겠는가
골목 길을 골라서
행여 뒤따를 놈 있을가봐
뺑뺑 돌아서
아주 생판 딴 길을 갔다간
겨우 겨우 찾어서
남의 집 사랑방에 숨어 있는
ꡒ애물ꡓ을 찾어온 어매
ꡒ이자식아
네가 왜 그리 보구 싶으냐ꡒ
어매야
인젠 제발 나스지 마라
눈 어둡고 귀도 어두운 어매
돌아가는 길에
무엇에 칠가봐 정말 겁이 난다
요전에도
옷보퉁이를 들고
유치장(留置場) 문 밖에 와
쭈그리고 앉었더구나
취조(取調)를 나가는 길에
내가 부르지 않었더라면
ꡒ애물ꡓ을 알어 보지도 못할
어매야
다음부턴 아예
경찰서(警察署) 문(門) 앞에 얼씬도 마라
경찰서(警察署)로 감옥(監獄)으로
어매야 무던히도 다녔구나
백발(白髮)이 성성한 어매야
꿈자리가 사납더라고
걱정 끝에 점치러 가고
오오 어매야
그게 무슨 짓이냐
그렇지만
어매여
나의 자랑 나의 노래여
망보러 나갔을 때의
어매는 천리안(千里眼)이다
그리고
시골서 온 일가가
무어라고 무어라고
허튼 소리 지껄였을 때
어매는 훌륭히 해설(解說)을 했다
동네 여편네들이
주접을 떨 때
어매는 차근 차근
타일르구 가르쳐서
모오두 동무가 된 것을
어매야 아무리 숨겨도
나는 알았다
어매야
나는 어깨가 그만 으쓱해지더라
나는 어매가 바라보는
눈초리가 괴롭다
말없이 감박이며
어디까지나 따라오는
어매의 눈이 귀하기 때문에
몹시도 괴롭다
어매야
인젠 이 자식을 잊어버려라
그래도 어매는 못 잊을게다
아무리 나오지 말래도
무데기 옷 입고 비척 비척
ꡒ애물ꡓ을 찾아 나올게다
내가 안된다고 들어 가시라면
염려 말고 가라고 보내 놓고는
내 사라지는 뒷 모습을
넋없이 바라보다간
눈도 귀도 아조 영 못쓰게
상해버릴게다
그렇지만 어매야
나는 간다
그리기에 어매야
나는 잊고 쉬어다오
어매여
한없는 나의 노래여
창(窓), 정음사, 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