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을 열다
금우동
늘 흔들리며 살아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했던가? 청년기에는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일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란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말 그대로 피폐한 삶이었다. 재능이나 역량과 자원은 특별하지 않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갈증과 목마름은 있었다. 인생 3막을 시작하며 주어진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굽이굽이 굴곡 많은 길을 뚜벅뚜벅 우직하게 걸어왔다. 천직이라 여겼던 직장이 금융 위기를 맞아 파산하면서 내 삶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실직하고 보니 막막했다. 평생직장이라 생각하고 오직 한길만 걸어왔기에 할 줄 아는 거라곤 신협 금융업무밖에 없었다. 급류에 휘말린 것처럼 내가 나를 내몰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공고 화공과가 최종학력이다. 제일합섬 염색가공과 현장 사원으로 6년간 일한 것 외에 18년간 신협 금융업무가 경력의 전부다. 세상은 금융위기와 함께 대단위 구조조정과 명퇴 바람, 고용의 유연화, 고용 없는 성장 등 암울하고 냉혹한 사회 분위기가 삶을 지치게 했다. 밀레니엄의 희망을 노래한 지가 엊그제인데.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가 회자 되면서 대규모 실업자가 쏟아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대로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각오로 취업과 실직을 반복했다. 하루살이 인생 같아 불안 초조했다. 자괴감마져 나를 옥죄었다. 삶의 수단인 자격증도 없고 학벌마저 초라하니 부르는 곳도 없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으려면 특별한 재능이나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늦게야서 깨달았다. 정보에 안테나 망을 세우고 공부할 방법을 탐색했다. 고용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내일배움카드'를 통하여 '직업능력개발계좌제' 훈련을 거쳐 직업상담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때의 기쁨은 형언할 수 없었다. 마치 과거에 급제한 것 처럼. 이것이 허물어져 가던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만학으로 청소년 복지를 전공하여 준학사가 되었다. 사회복지사, 청소년지도사, 평생 교육사 자격을 취득했다. 한 번 공부를 시작하니 연관된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거라는 계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었기에. 특수재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학사가 되면서 장애인 재활상담사, 장애인 활동 지원사,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장애인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의 고충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밑바탕에 깔렸으리라.
아내가 파킨슨으로 투병한 지 20년이 넘었다. 양쪽 무릎과 발목, 왼쪽 고관절이 인공관절이다. 오른쪽 발목은 통증이 심해 50m 걷기도 힘들다. 허리도 아프고 숨이 차서 침대에 누워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아내는 스물두 살, 꽃다운 나이에 나에게 시집 왔다. 8남매 맏이다. 내가 결혼 할 때는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호구지책이 막연한 스물다섯 살 청년이었다. 연탄값이 부족하여 어머니 방과 살림방은 연탄 하나로 버텼다. 결혼 직후 장인어른께서 처음 우리집을 방문, 하룻밤을 묶고 돌아가시면서 아내에게 연탄 100장 값을 주고 가셨다는 걸 훗날 알게 되었다. 나는 딸 셋을 낳아 둘을 출가시켰다.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중년의 딸은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아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한 준학사지만, 취업을 못하고 있다. 그 후, 나와 함께 특수재활교육을 전공하고 학사가 되었다. 장애인 재활상담사, 장애인 활동 지원사, 요양보호사자격을 추가로 취득하였다. 지금은 꾸준히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생활지원사로 활동중이다. 가정에서 나의 재가???? 가족 요양보호사 일을 돕고 있어 든든하다. 아내가 몸져 눕기 전 까지 집안 일은 대부분 아내 몫이었다. 인형 눈 붙이기, 밤 까기, 재봉틀 삯 바느질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모든 가족의 옷은 아내가 직접 만들고 고쳐 입혔다. 시장에서 사서 입힌 것보다 훨씬 많았다. 아내의 노고와 희생은 인생의 선물 같은 사랑이었다. 우리 가정을 위한 수많은 헌신을 모두 형언할 수 없다. 지금까지 겪어낸 어려움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은 바 없다. 말 못 할 숱한 인고의 삶이었지만, 나를 원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내가 일궈온 모든 삶의 자산을 우리 것이라고 말한다. 작고 일상적인 것 속에서 함께하는 삶의 소중함을 끊임없이 나에게 깨우쳤다. 이제 아내는 파킨슨과 관절통, 숨쉬기 조차 버거운 고통과 전쟁 중이다. 지병이 깊어지면서 앞으로 통증을 어떻게 이겨내야할지 모를 일이다. 아내는 내가 옆에 없으면 불안하다고 말한다. 나와 함께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아픔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게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그래도 원망을 속으로 삭이고 견뎌내면서 나와 동행하고 있다. 이제야 아내와 같이한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지금의 아내가 건사해온 가정과 아이들의 성가 이후 오늘까지의 삶의 가치를 알 것 같다. 아내의 땀으로 지키고 가꾸어 온 우리 가정의 행복을 황혼에 이르러서야 깨닫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부족한 나를 만나 갖은 고생을 뒤로하고 요만큼이라도 지킨 우리 가정이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 아내는 세상 모두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나의 대지이고 하늘이다. 어머니이고, 누이며, 동반자이고, 친구이다. 참으로 염치없고 미안한 일이지만, 수많은 구비의 인생살이에서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잘못을 사랑의 언어로 치유하고 싶다. 안타까운 회한의 심정으로 후반기 인생을 갈무리하고 싶다. 아내에게 사랑을 전하고 지금까지의 과오에 대한 용서를 서둘러야 할 일이다./// 마지막 단락으로 배치 반성하자면 안타까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젊은 시절 함께 하지 못하고 내 생각에만 빠져 있었던 것이 후회된다. 젊은 시절에는 자상하게 살펴주지 못한 것에 불만이 많았다. 변명하자면, 나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바쁜 나날이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동분서주했기에 귀가시간은 자정이 넘기기 일쑤였다. 아내와 함께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인정하는 말에도 너무 서툴렀다. 별것 아닌 사소한 것에도 감싸기보다 상처 주는 말이 훨씬 많았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불편한 심기를 보일 때, 아내는 참고 또 참았다. 그에 비해 나는 조그만 불만에도 불편한 심기를 금방 드러냈다. 일상의 작은 조언에도 옳고 그름을 떠나 짜증부터 냈다. 고함치고 닥치는 대로 화풀이했다. 지금까지 빈약한 영혼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의 더께만큼 퇴행해온 노슬아치의 욕망을 푸념해본다. 관료들을 낮추어 부를 때 벼슬아치라고 한다. 이에 빚 대어 노인들을 조롱할 때 노슬아치라고 하기도 한다. 과연 나는 노슬아치가 아니었지. 나이가 들면서 도무지 내세울 게 없는 척박한 인생살이였다. 사고는 협소하고 폐쇄적이며 경직되어간다. 세상에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 모든 게 지겹고 답답하다. 내가 보기에는 세상 사람이 몰염치하고 몰상식하고 몰지각한데 세상은 나를 그렇게 취급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노슬아치임이 분명하다. 인생 100세시대, 초고령사회가 눈앞에 와있다. 무한정 확대되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수용되는 노인들을 일상으로 보면서, 노령화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앞선다. 9회 말 투아웃의 종반전 인생이 절박하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같은 길을 걷는 벗들이 함께하니 가능하지 않을까. 피폐한 나의 토양에 거름도 주고 물도 주며 실한 결실을 보기를 갈망하지만 빈약한 들 어찌하겠는가. 회한으로 얻을 마지막 수확이 될 것이다. 이제 재가??? 가족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잘 사는 일보다 잘 죽는 일이 정말 필요하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히 느낀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남은 삶을 얼마나 잘 엮어 나갈는지가 노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지난날을 반성하고 속에 맺힌 것들을 배설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쌓아두기만 하면 절대 소화되지 못 하는 일도 있는 법 아닌가. 뒤늦게 수필 공부를 시작했다. 수필은 부단한 훈련을 통하여 언어를 조탁하고 성찰하여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다. 요양보호사를 하며 느낀 것들과 맥락이 잇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남은 삶은 수필이라는 토양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싶다. 회한의 감정들, 용서와 화해가 필요한 일들을 되새겨 지나온 삶을 잘 갈무리하리라. 좋은 글쓰기에 앞서 좋은 인품과 영혼을 지닌 인격으로 거듭나야 하리라. 성숙한 품성으로 잘 갈무리되고 다듬어지고 훈련된 내공을 키워야 하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좀 더 마음의 밭을 열심히 갈고 시대적 소명과 사회적 양심에 부합하는 삶이 되도록 좀 더 말랑한 사고를 가지는 노력이 필요할 노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