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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링
“여보게, 벌레들이 많이 생겨서 약을 쳐 주어야겠네.”
"어떤 벌레인데요?"
"큰 깨망아지가 있고 작고 노르스름한 벌레가 들끓고 있네. 이러다 깨고 뭐고 다 글러버릴 것 같아."
장모의 전화였다. 오랜만에 듣는 긴급 SOS였다. 평소에는 안부전화를 삼 사일에 한번씩 주고 받았으나 농장에 매달려 산다는 것 뿐 그렇게 다급해 하지 않는 눈치라 꾼은 자기 농사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런데 칠월 초에 시작한 비가 주말과 휴일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덕분에 꾼의 콩밭도 풀밭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장모님 요즘은 날씨가 도와주질 않네요. 비가 평일에는 맑았다가도 주말과 휴일이 되면 비가 질금거려 당최 시간이 나야 말이죠.”
“나도 처음에는 손으로 잡아 죽이긴 했지만 너무 많아져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벌레들이 참깨를 자빠뜨리고 있어. 빨리 좀 도와주게.”
“그 넓은 밭에 벌레를 손으로 해결하신다구요? 장모님이 손으로 잡아 없애기에는 밭이 너무 넓어요. 그 밭은 친환경농사로 할 수 있는 밭이 아니란 말씀이에요. 농약사에서 약을 사놓고 기회를 볼게요. 비가 오지않는 날에 달려 가지요.”
병이든 벌레든 초기에 해결하면 약이 적게 들여서 금방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꾼의 장모는 초기대응을 손으로 하여 벌레를 키우는 셈이었으니 온밭에 벌레들이 참깨대를 먹어치워 넘어가게 할 정도면 이미 중증으로 발전한 터였다. 꾼은 다급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장님, 깨밭에 깨망아지들이 드글거리는데 좋은 약을 주세요.”
강원도 최대 규모라는 S농약사를 찾아갔다.
“깨망아지라면 박각시나방 유충이지요. 잘 듣는 약을 드리지요. 전번에 이야기하던 멸강나방 유충은 어찌 퇴치했나요?"
“네 사장님이 골라준 친환경약제를 뿌렸더니 말끔히 없어졌습니다. <잎살림>이라는 약제를 뿌린 후 벌레가 여전하게 붙어 있어서 걱정했는데 식독으로 죽는다고 하더니 대단한 약제더군요.”
"깨망아지약으로 비싼게 있고 저렴한 게 있는데 어떤 거 드릴까요?"
"글쎄요. 웬만한 것으로 싸고 좋은 것으로주세요.
꾼의 실수였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게 어디있을까. 대머리도 안 벗겨진 사람이 싸고 좋은 걸 찾다니.
“이 약제를 써 보세요. 벌레가 어리다면 잘 죽을 겁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참깨 역병 예방 살균제지요."
사장은 두 가지 약제를 꾼에게 주었다.
그 주의 토요일 아침 4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본능적으로 밖을 나와 보니 새벽달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것이 맑은 날이었다. 길고 지루한 장마중에 새벽달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애장품인 엔진 분무기를 챙기고 S농약사에서 구입한 약제를 챙겼다.
“여보 처가에 다녀오겠소.”
“당신은 햇빛 알레르기가 심하니 선크림을 바르고 가세요.”
꾼은 끈적거리는 것을 몸에 바르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으나 아내의 정성인지라 못이기는 체하고 발랐다.
“벌써 왔나? 고맙네.”
장모가 반색을 했다. 꾼의 집에서 장모의 밭 까지는 한 시간 거리였다. 아침 여섯시에 이른 아침을 먹은 후 밭으로 향했다.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은 때라 살충제를 뿌리지 못하고 작물들이 자라는 밭을 둘러보았다.
집 앞의 밭에는 고추와 고구마, 콩, 옥수수들이 도열해 있었다. 비닐멀칭위에 심어진 그들은 가지런한 자태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가끔 김을 맸는지 헛골에 풀 한포기없이 깨끗했다.
다릿골에 이르렀다.
육백평의 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하얀 참깨가 자라고 있었다.
작은 뼘 하나의 간격으로 한 포기 서너대씩 솟구치고 있었는데 종 모양의 꽃들을 달고 있었다.
“장모님 포기 하나에 서너개는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한 개나 두 개 정도 서 있어야 통풍이 잘되고 병이 없다던데요.”
“누가 그런 잘난 소리를 하던가? 한 두개 놓았다가 병 걸려 죽으면 어떻게 하게.”
“그래도 이만큼 자랐으니 솎아주어도 될 텐데요.”
“난 내 방식대로 기른다네.”
백번 옳은 말씀이다.
참깨는 묘가 어릴 때부터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병에 시달린다. 싹이 나면서 고온다습하면 입고병이 생겨 어렸을 때 살균제로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지 않으면 그 병균이 잠복해 있다가 아무 때나 재발하여 멀쩡한 것들이 픽픽 쓰러진다. 시들음병이 생기기도 하고 장마철 배수불량일 때는 역병으로 죽기도 하며 꽃과 이삭이 달리면 흰가루병이 생기기도 한다.
“참깨는 어릴 적부터 벤레이트를 끼고 살아야 농사를 잘 하지요.”
언젠가 꾼에게 들려 준 홍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아침이슬이 반은 말랐으니 이제 쳐 보아야겠어요. 벤레이트 두 숟가락과 살충제 뚜껑 두개 넣어서 타시면 되요.”
“그거 타서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기왕 칠 바엔 반을 더 넣게.”
“장모님 약병에 적혀 있는대로 적량을 타면 됩니다. 너무 많이 타면 약해를 입을 수 있고 낭비일 수도 있거든요.”
“에이, 그래도 동네사람들 그렇게 타서 문제없던데 뭘 그래.”
“알았어요. 장모님 그렇게 하지요.”
농사에 대해서는 장모의 경력이 더 많으니 꾼이 져줄 도리밖에 없었다. 육백평의 밭은 둘이서 40여 분 만에 살포가 끝났다. 다시 육천평의 밭으로 향했다.
육천평은 정말 넓은 면적이었다.
다릿골의 밭이 산 밑에 있는 연못이라면 육천평의 밭은 망망대해였다. 이 끝에서 저 끝에 있는 장모가 가물거릴 만큼이나 사래가 길었다. 밭이 위아래로 나뉘어져 있었고 윗밭을 먼저 살포했다. 두 시간이 걸렸다. 아랫밭을 살포해 보니 사래가 너무 길어 한번 나가면 약통이 비어 다시 채워 시작하곤 했다. 약을 맞으니 육중한 깨망아지의 몸체가 우드득 땅에 떨어졌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큰 깨벌레를 왜 깨망아지라고 부르는지 의아했다.
깨망아지를 사전에서 찾아보아도 찾지 못한 것을 보면 박각시나방 애벌레가 표준말인 듯 싶었다. 하지만 꾼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깨망아지라 불렀고 장모도 깨망아지라고 부른 것을 보면 강원도 지방에서만 통용되는 이름일 것이다.
다른 이름 다 내버리고 망아지라 불렀을까? 꾼이 살펴보니 온통 녹색 몸체에 노란색의 줄 무늬가 있고 꼬리 쪽에 뿔이 나 있다. 아무리 보아도 망아지를 닮은 곳이 전혀 없다. 꾼은 약치다 말고 깨망아지를 포기에서 떼어냈다. 그랬더니 녀석이 별안간 펄떡펄떡 거린다. 펄떡거리는 폼이 흡사 못된 망아지 지얄하듯 했다.
"옳거니, 그래서 네 이름이 망아지구나! 깨에 붙어사니 깨망아지로군."
대단한 진리를 발견한 듯 꾼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깨망아지는 꾼에게 특별한 추억이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놀잇감이라는 것이 TV나 컴퓨터 오락이지만 꾼의 어린 시절에는 풀밭 여기저기서 잡아온 개미 두 마리 싸움 붙여놓고 다음날에 개미 시체가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곧잘 했었다. 송충이 같은 벌레를 잡아 개미굴에 넣어 놓고는 개미들이 물어 뜯으면 꿈틀거리는 벌레 구경하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송충이를 잘게 찢어 가져가려고 개미들이 많이 몰려 있었을 때 송충이 시체를 발로 문대서 개미들까지 몰살시켰다.
그러나 특별한 재미는 따로 있었다.
떡먹지(큰 개구리의 별칭)를 사로잡아 밀대궁을 똥꼬에 꽂아넣고 바람을 불어 넣으면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두 마리를 풀밭에 풀어놓고 개구리 경주를 시키는 놀이를 했다. 경주에서 진 놈은 사형감이고 조금이라도 더 간 놈은 풀밭에 방생했다. 그게 시들해지면 칼을 갖고 대들었다. 자연 시간에 보았던 내장 그림이 떠올랐고 직접 배를 갈라 내장을 확인해 보곤 했었다.
“놀러 가지 않을래?”
“아부지가 꼴 베어오라 했는데.”
아이 꾼은 머뭇거렸다.
“넌 아부지 밖에 모르더라. 싫으면 우리끼리 가지 뭐.”
혼자 떨어지는 게 아쉬웠지만 아이 꾼은 외톨이가 되었다.
아이 꾼은 무심코 큼지막한 떡먹지를 사로잡았다. 뭘 먹었는지 배가 뚱뚱해져 있었다.
“재밌겠는 걸.”
개구리를 패대기쳐서 기절시킨 다음 주머니에서 연필용 칼을 꺼내어 배를 갈랐다. 뭔가 큼직한 주머니가 나왔다.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한 꾼은 칼로 갈랐다.
“으아악!”
너무 놀란 꾼은 뒤로 벌렁 자빠졌다.
큰 주머니에는 초록색에 몸체를 따라 사선으로 노란 줄무늬들이 새겨진 애벌레가 구부리고 있었다. 깨망아지였다.
꽈르릉 꽈당
시꺼먼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하느님 목숨만 살려주세요.”
어린 꾼은 앙앙 울부짖으며 하늘에 사죄하며 쏟아지는 소나기를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크큭.”
“자네 실성했나? 쉬다 말고 왜 웃는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장모님. 어릴 적 개구리 배 가르고 놀 때 이 놈의 깨망아지가 들어있길래 얼마나 놀랬는지요. 어린 마음에 하늘에 대고 사죄했었지요.”
“멀쩡한 개구리 배를 가르다니 자네도 꽤 개구쟁이였던 모양이군.”
작년 이맘 때 풍접초 꽃사진을 찍을 때 호랑나비만큼 큰 나비를 무심코 찍은 적이 있었다.
<아싸 호랑나비>란 제목으로 풍접초와 호랑나비에 대한 글을 카페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건 호랑나비가 아니라 박각시나방이란 겁니다.”
글을 읽은 수제비님이 정정해 주었다.
<어쩐지 작은 새 같더라니. 징그럽게 큰 깨망아지가 변태를 거쳐 우화하면 고운 박각시나방이 되는구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쯤에 살충제 살포가 끝났다.
“수고했네. 저녁은 근사한 것으로 먹으러 가세.”
“아니에요. 장모님이 해 주시는 밥이면 모두 좋은 걸요. 굳이 사먹으러 갈 필요가 있나요.”
“아닐세. 집에 반찬을 만든 것이 없어서 그런다네.”
“그래도 밭둑에 있는 푸성귀 뜯어다가 맛좋은 고추장 넣고 쌈을 싸면 얼마나 좋은데요.”
“알았네. 내가 오늘은 자네에게 졌네.”
밭둑에 있는 싱애(왕고들빼기의 강원도말)의 새 순을 뜯었다. 어느결에 장모는 싱애를 데쳐서 고추장과 식초를 넣고 맛좋은 나물로 만들었다. 쌉싸름한 맛을 가진 싱애나물로 먹는 쌈밥이 꿀맛이었다. 집에 도착한 것을 알았는지 하늘에서 장대한 빗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아이고 하느님 약을 무사히 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건 꾼의 생각에 불과했다.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이야기는 훗날에 이어질 것이다.
77부에 계속합니다.
첫댓글 에고~글을 읽을때마다 왜이리 가슴이 조마조마한지.....같은 농부의 마음이라서 그런가요.
그러게요. 서정남님 오랫만에 댓글 다셨군요.
제가 사는게 바뻐서리/오기는 자주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