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초 우후죽순…서민 외식장소로 각광 한약재 넣은 양념 '히트'…최근엔 웰빙물결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이춘호기자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연탄 화로 위 석쇠에서 지글지글 타고 있는 돼지갈비.(촬영협조=마당갈비)
50년대 서성로 돼지수육·국밥. 60년대 소갈비·불고기란 거대한 벽을 만나면서 탄생된 게 바로 삼겹살과 돼지갈비 구이다. 그것은 1961년 대구 첫 소숯불갈비집 동산동 진갈비를 벤치마킹한 듯하다. 돼지갈비는 80년대 등장했고 삼겹살은 70년대초 모습을 드러낸다. 82년 프로야구 출범 특수와 맞물려 삼겹살은 '국민의 안주'로 정착된다. 일용직 노동자, 군인, 직장인, 대학생 등에게 소주 한 병과 삼겹살 한 접시는 팍팍한 일상을 잠시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청구, 우방 등 대구의 대표 아파트 건설 업체 현장은 삼겹살 대량 소비처가 되고 금복주 판매량도 폭증한다. 80년대로 접어들면서 도시락 삼겹살은 한물간다. 대팻밥처럼 동글동글하게 말린 냉동 삼겹살 시대가 도래한다. 2000년대로 접어들자 냉동 삼겹살 시대도 퇴조하고 웰빙 삼겹살 시대가 개막된다. 생삼겹살, 제주도 똥돼지, 황토먹인 돼지, 흑돼지, 대나무통 삼겹살 등 체인점을 앞세운 뉴버전이 쇄도한다.
이제 삼겹살 붐에 편승한 흥미진진한 돼지갈비의 화려한 변신을 알아보자.
70년대 중반 대구 돼지숯불갈비업계에 무서운 식당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국세청(현재 중구 밀리오레) 뒤편에 자리잡은 팔군식당이었다. 정모 사장은 기존 삼겹살보다 반발 앞선 요리를 개발한다. 바로 삼겹살보다 저렴한 다리살에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버무린 '돼지 불고기'시대를 주도한다. 이 스타일은 70년초에 동인동에 상륙한 찜갈비를 응용한 것. 팔군식당은 단번에 스타급으로 부상하면서 대구백화점 근처에 2호점을 내면서 돼지 불고기계의 좌장이 된다.
78년 한 여사장이 팔군의 아성에 도전한다. 의성 출신 황희순씨(64)였다. 그녀는 대구시 남구 대명 1동 현 남구CATV 자리에 대원 돼지 숯불갈비집을 연다. 대구 첫 돼지갈비구이집이다. 처음 1년은 팔군 스타일로 가다가 1년뒤 남구 보훈청 맞은편으로 이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런 배경을 안고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80년대 대구 돼지숯불갈비 시대가 화려하게 개막된다. 그 주역은 한약재가 가미된 양념수를 앞세운 남부정류장 근처의 미정(우영조), 달성파출소 옆 마당 갈비(김순필), 갈비 대신 돼지 뒷다리 등을 섞어 우동과 함께 내놓은 북성로 돼지불고기, 80년대 후반 수성구 아서원 근처에서 태동한 서민숯불갈비다. 흥미로운 사실은 돼지갈비 집 개업이 거의 프로야구 출범 원년인 82년쯤에 몰렸다는 점이다. 서민들의 외식수요가 간파된 탓이다.
미정 개업 초창기 일부 손님들은 이곳이 소갈비 집인 줄 착각한다. 계산대 앞에서 이쑤시개를 문 손님이 "미정 소갈비 맛 좋지"라고 말했을 때 주방장 김태근씨(현재 한국조리사협회 대구지회장)는 주방에서 혼자 빙긋이 웃었다. 미정은 대원과 달리 돼지 갈비를 먹기 쉽게 칼로 저며 길다랗게 펴낸 뒤 갈비에 말아 냈다. 그걸 손님들은 '소갈비식'이라고 오해한 것이다. 당시 돼지갈비를 그런 식으로 갈무리한 데는 없었다. 특히 미정은 다른 데보다 반 발 앞서갔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한방 재료를 사용한 것이다. 계피와 감초, 생강을 왜간장에 섞어 끓여 식혔다. 그 아이디어는 김태근씨한테서 나왔다. 그에게 한약재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 준 건 약전골목 대방약업사 강희수 사장. 김태근씨는 시간만 나면 강 사장을 붙들고
대구 한방돼지숯불갈비의 신지평을 연 한국조리사협회 대구지회장 김태근씨가 2005 들안길 맛축제장에서 직접 돼지갈비를 굽고 있다.
돼지와 소와 궁합이 맞는 한약재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이 약재, 저 약재를 넣어 끓인 뒤 맛을 보고 돼지 고기 양에 알맞은 양념양을 계산했다.
미정은 89년쯤 100m 동쪽으로 이전한다. 처음 문을 연 것에 비해 엄청난 규모였다. 대지 273평에 건평 100평. 1층 테이블 수만 53개. 2층은 2군사령부, 경산 코오롱, 한일합섬, 조폐공사 직원들의 회식장으로 변한다. 영남대 졸업식 때는 오전 10시~밤 10시까지 풀가동돼 홀 종업원들이 실신하기도 했다. 미정은 대구 숯불갈비집으로선 처음으로 미정식품이란 갈비공장을 만촌 3동 영남공고 앞에 설립한다. 숯불갈비 체인사업에 뛰어 든 것이다. 김태근은 97년 독립해 대봉동에서 대구 첫 한방요리집을 오픈한다.
◇ 마당갈비집의 '찜'탄생
천하장사 이봉걸 '소 갈비찜 마니아' 힌트 얻은 女주인 "돼지로 한번 해봐?"
마당 찜돼지갈비 얘기를 하려면 천하장사 이봉걸을 등장시켜야 된다.
80년대 중반 동인동 찜갈비 골목 내 C 식당. 이봉길이 한턱 쏘려고 한 선배 내외를 전화로 불러낸다. 이봉걸은 갈비찜 마니아. 시간만 나면 동인동 찜갈비 골목에 나타난다. 그의 부름을 받은 김순필씨(52)가 남편과 함께 약속 장소로 나갔다. 당시 마당갈비 여주인 김씨는 찜갈비를 다 먹고난 뒤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돼지갈비로 찜을 만들어 봐야지.'
그때까지만 해도 찜갈비하면, 으레 소갈비 찜만 연상했다. 찜갈비는 마당 초창기 등장했지만 연탄돼지갈비 보다 덜 유명했다. 그런데 최근들면서 찜갈비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고 현재는 돼지갈비 인기를 능가한다.
마당 돼지갈비는 숯불돼지갈비와 북성로 돼지 불고기를 절충한 스타일이다. 북성로의 옛날 연탄 화로와 돼지갈비를 결합한 것이다. 마당 양념은 김순필씨의 작품. 요리교본대로 요리한 게 아니라 시행착오의 산물.
양념만들기 1단계는 약물 빚기. 감초, 오가피, 산수유 등 4종류 한약재를 넣고 끓인다. 준비된 약수(藥水)에 마늘 생강 설탕 참기름 캐러멜을 넣고 만든 양념수에 생갈비를 재운다. 방금 갖고 들어온 생갈비는 숙성되고 양념수에 재어져 도축된 뒤 약 4일만에 식탁에 오른다. 개업 초기 요리가 뭔지 잘 몰랐던 김씨. 남 말만 듣고 육질 무르게 만드는 연육수도 넣어보고, 물 대신 콜라, 사이다는 물론 계피, 새우까지 넣었지만 맛은 별로였다. 고민 끝에 김태근씨처럼 약전골목 한약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엔 육질은 문제가 안됐다. 손님들은 그냥 달콤한 맛만 풍기면 족했다. 돼지갈비구이가 생소했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점차 단골들 입맛이 까다로워진다. 양념빚기 악전고투, 드디어 마당갈비 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찜갈비는 양념맛으로 먹는다. 물론 고기와 양념이 잘 교감돼야 한다. 상당수 식당은 양념 통닭처럼 물에 삶은 갈비에 양념을 묻혀 내놓는다. 그럼 십중팔구 양념과 고기가 따로 논다. 그건 찜갈비가 아니다. 마당은 일단 연탄불에 갈비를 잘 구운 뒤 양은 냄비에 넣고 마늘, 생강, 고춧가루만 넣고 버무린다. 잔열이 스며든 갈비는 양념 기운을 속으로 끌고 들어오니 혀 끝에 벙그는 맛은 불문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