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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지 않는 마침표 / 박영만
<유명인사 102인의 그들이 묘비에 남길 말>
뜻은 길고 명은 짧다.
서산대사는 인생의 허무함을 구름에 비유
삶은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다
뜬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법
나 죽고 가고 오는 것 역시 이와 같도다.
우리말 무덤은 원래 무(無)의 더미에서 유래되었다.
어원 그대로라면 아무것도 없음의 더미가 곧 무덤인 것이다.
로마의 어느 묘비에 새겨진 묘비명에...
아주 옛날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존재했다
이제 다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려면 어떻단 말인가
영국의 흑태자 에드워드의 묘비에 프랑스어로 새겨진 묘비명에
지나가는 이여, 나를 기억하라.
지금 그대가 살아있듯이
한 때는 나 또한 살아 있었노라
내가 지금 잠들어 있듯이
그대 또한 반드시 잠들리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묘비에,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는지……
묘비명은 죽은 자에 대한 또는 죽은 자의 짧은 글과 수사이다.
어찌 그 정분과 슬픔을 짧은 묘비명으로 이루 다 형용할 수 있겠는가?
송나라 주신중은 훌륭한 죽음으로서 5멸(滅)의 실현을 내세웠다.
1. 滅財 - 재산을 남기지 말 것.
2. 滅怨- 원한을 남기지 말 것.
3. 滅情 - 정분을 남기지 말 것.
4. 滅債 - 빚을 남기지 말 것.
5. 滅亡 -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을 것.
알렉산더 대왕
내가 죽거든 나를 땅에 묻을 때 손은 땅 밖으로 내놓고 묻어라.
그 이유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를 손에 쥐었던 이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갔다는 것을 교훈으로 알려주기 위함이다.
토마스 모어
로버트 볼트는 모어를 전천후 인간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이처럼 다재다능한 인간이었다.
판사 중에 판사였고 법률가 중에 법률가였으며
외교관 중에 외교관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나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고 해로운 말도 한 적도 없다.
오히려 나는 모든 사람들의 행운을 빈다.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그 때문에 살 수 없다면
나는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처음에 법정은 모어에게 사형을 언도할 만한 충분한 구실을 찾아내지 못했고
나중에 그가 반역을 꾀했다는 구실을 찾아냈다.
그가 죽은 지 400년이 지난 1935년에 로마 교황은 그에게 성자의 칭호를 내렸고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겼다.
[고결한 양심, 불멸의 영혼]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의 no + place에서 유래한 것으로써
문자 그대로 ‘아무데도 없는 나라’라는 뜻이다.
엘리자베스 1세
‘오직 한순간 동안만 나의 것이었던 그 모든 것들’
아우랑 제브
인도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은 5천명의 첩 가운데 셋째 왕비 ‘뭄타즈 마할’을
무척 사랑했는데 그녀가 산후열로 숨지자 자신의 애끓는 사랑을 기리기 위하여
타지마할 건설에 착수.
국가가 기우는 줄 모르고 22년간 묘지건설작업에 착수,
보다 못한 그의 아들 아우랑 제브가 아버지를 유폐한 다음 공사를 중단시켰으나
무국제국은 그 후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는 살아있는 성자로 불리며 전장에 나가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며
88세에 그가 죽을 때는 그의 유언대로 간소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비명을 새기지 않은 길이 3미터 넓이 2미터의 붉은 석판이 세워졌다.
그 붉은 석판은 한때 광활한 제국을 지배했던 무굴 황제의
마지막 땅 넓이를 의미하는 묘비였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아무랑 제브’의 묘비는
크기나 내용면에 있어 어느 묘비명보다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굳이 침묵을 훼손하여 붉은 묘비 석판에 묘비명을 적어 넣기를 바랐다면
그는 이렇게 새기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여,
나와 나의 아버지를 보라
소유하려는 만큼 회한도 늘어난다.
지나친 욕심은 부자유와 화를 부르고 고통스런 회한을 남긴다.
진작 빈 마음은 가지 못해서 빈 묘비를 남긴 무굴황제의 무덤 앞에
마음의 빈 잔을 올린다.
퐁파두르 부인
1721년 파리에서 징세 도급인 딸로 태어났으나
어머니가 바람을 많이 피워 여러명의 애인이 있어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머니의 애인이었던 투르넘은 성품이 좋아 친아버지처럼 대해주고
일류가정교사를 붙여 교양 있는 처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배려.
처녀가 된 그녀는 자신의 미모와 투르넘의 후광덕분에 사교계의 꽃으로 등장.
21세 때 투르넘의 조카인 르 노르망테 티올과 결혼,
투르넘은 이때 그녀에게 결혼축하선물로 상당한 액수의 연금과
세나르 숲의 별장을 선사했고, 그의 여생은 보장되었으나,
그녀는 만족하지 못하고 국왕 루이 15세에 접근하여 성공,
연애를 시작하면서 마침내 후작부인의 칭호를 받음.
일단 왕의 칭호를 받기 시작하면서 차츰 궁정의 재정과 권세는
퐁파두르의 치마폭으로 들어감.
성이나 보석을 사들여 극도의 사치생활에 들어감.
뒤늦게서야 그녀에 대해 싫증을 내기 시작했고 1751년 이후에는
잠자리를 함께 할 기회마저 잃음.
일이 이렇게 변하자
베르사이유 한 숲속에 ‘사슴정원’이라는 저택을 지어놓고 전국에서 선발한 서민 출신
처녀들을 선발해 모아 국왕의 성적 노리개 감으로 제공했다.
이에 국왕은 또 만족 해 했으며
사슴정원의 처녀들은 국왕의 사생아를 60여명이나 낳았다.
이 사슴정원 덕분에 그녀는 국왕의 영원한 여자 친구요, 애인으로 남아
국왕을 조정해 정치 경제 외교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4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그녀의 묘비에는
잔 앙투아네트 포와송 퐁파두르 후작부인.
20년간은 처녀로,
15년간은 청부로,
7년간은 뚜쟁이로 보낸 사람.
영국의 극작가 토마스 미들턴은
여자를 선택하는 것은 전쟁계획과 유사하다.
일단 실패하면 모든 것들을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다.
루이 15세는 퐁파두르 부인을 애인으로 선택함으로써
막대한 국고를 낭비했고 7년간 전쟁에서 큰 타격을 입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과오를 남겼다.
벤자민 프랭클린
그가 만든 13훈은
겸손 침묵 규율 절약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보건 평정 순결 결단 이다.
스토브와 피뢰침을 발명하고 안경을 만들고 인쇄기를 개량하는 등
과학과 발명분야에서도 유감없이 재능을 발휘.
미국 프랑스의원들도 그의 회화술을 배우려고 했다.
그의 묘비에는
그의 프랑스인 친구인 달랑베르가 헌사한 말.
이 사람은 하늘로부터 번개를, 폭군으로 부터는 옥띠를 빼앗았다. 라는 말이 새겨졌다.
품위 있게 늙어 복되게 죽는 것은 모든 인간의 바램이다.
잘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요,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자신의 묘비명에 새길 단 한가지의 뚜렷한 업적도
이루지 못한 채 죽는다.
일찍이 토마스 제퍼슨은
무지가 과오보다 낫다. 그릇된 것을 믿는 자보다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자가 훨씬 진리에 가깝다.
조만식
네가 죽거든 묘비에다 아무것도 쓰지 말고 단지 두 눈만 새겨두어라
한 눈으로는 일본이 망하는 것을 보아야 하겠고
다른 한 눈으로는 우리 조선이 독립하는 것을 보기 위함이다.
아더 쇼펜하우어
가장 좋은 예술로는 음악을
가장 좋은 종교로는 불교를 꼽았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지만 특수한 집단혼을 모범적인 결혼으로 제안
먼저 두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고
그 여인이 나이를 먹으면 그 남자 둘 은 다시 두 번째 부인으로 젊은 부인을 들인다.
이런 결혼방식을 쇼펜하우어는 4명의 남녀가 결합하는 결혼이란 의미에서
‘테트라가미’ 라 이름 붙였는데 테트라는 그리스어로 4 라는 뜻이다.
생의 주체인 인간 자체가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이인 존재인데
어찌 인생이 불완전하지 않고 모순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종교가 생겨나고 철학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프리드리히 니체
1869년 니체는 24세의 젊은 나이에 스위스 바젤대학 교수가 되어
그곳에서 고전문학을 강의.
독일 시인 벤은
현대인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문제는
이미 니체에 의해서 모든 검토를 끝냈다.
그는 평생 병고에 시달렸다.
1865년 그는 조기 매독성 골수막염을 앓고 있었다.
신은 죽었다고 외친 56세의 철학자는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
데이비드 리빙스턴
25세 되던 1838년 런던 선교회의 인정을 받아 처음 중국으로 가려했으나
아편전쟁으로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봉사의 일터로 결정.
애초부터 탐험을 위한 아프리카 여행이 아니다.
동료 선교사 딸고 결혼 여섯아이를 두었으나 여행중 딸이 병이들자
가족들은 영국으로 돌아 감.
서산대사 휴정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이지
중국 명나라 말기 유학자로 1527년에 태어남
자신을 한 마리 개라고 말한 [성교소인]을 씀
나는 무엇을 추구했던가? 라는 회의와 함께
다만 한 가지 인생이라는 이 큰 문제를 아직 분명히 깨닫지 못해
마음 한구석에 항상 <번민과 우울>이 있었습니다.
64세에 [분서]를 씀
분서는 전국 말년부터 원년까지 1천여 년 간 인문 8백 명을 들어 독특한 사관에 따라
종횡무진하게 평전한 사전(史傳)이다.
기성의 지식을 전복하고 지식인의 위선을 까발리는 내용으로 인해
당연히 분서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중이 되었지만 박해는 계속되었고
머리를 깎는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분서에는 가히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그래서 그의 묘비명이 되어야만 할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나이 오십까지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 댄 것일 뿐,
왜 그리 짖어 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나는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다.
그의 다른 저서에서도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백 마리의 개가
다 그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따라 짖는다.
이지의 전기를 쓴 그의 제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지는 세상에 너무 이르게 나왔었다.
마타하리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여자 스파이로 유명했던 마타하리는 1917년 10월 15일
프랑스 정부에 체포되어 총살형을 언도 받았다.
그녀의 나이 41세 때이다.
그녀 자신이 상당히 음탕한 여자여서 그녀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고관대작들을 상대로 잠자리를 함께하고 정보를 캐 냈는데 섹스가 지나쳐
그곳에 반창고를 붙이고 일을 쉬어야 하기도 했다.
마타하리 라는 이름은 새벽의 눈동자란 듯의 예명이고
스파이 암호명은 H-21호 이다.
미모를 겸비한 스파이였던 마타하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프랑스 당국이 당신을 죽이는 것은 형식상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다
총알이 공포탄이니 소리가 나거든 죽은 채 하라 목숨은 보장되어 있다. 라고
거짓 안심시킨 탓이라고 한다.
남자가 유명해지면 명함에 쓸 것이 많아지고
여자가 유명해지면 핸드백 속에 남자의 명함이 많아진다. 라는 말이 있다.
에필로그
묘비명으로 국제연합으로부터 문화유적지로 지정받은
루마니아 북부지방의 ‘사푼다 묘지’에 있는 묘비명 들.
- 죽은 것이 아니라 다만 잠들어있을 뿐입니다.
일어나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바람만 피우다 죽은 나의 남편, 당신은 떠났지만 그래도 용서 못함.
서부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존 포드 감독의 명작 황야의 결투 마지막 장면
배경무대는 애리조나주 텀스톤이다.
텀스톤 교외에 ‘부트 힐’ 이라는 유명한 공동묘지가 있는데
- 여기 버치가 묻히다. 우리는 그를 생매장 했다.
그는 쏘는 것은 빨랐지만 뽑는 것은 느렸다.
- 사랑과 의리, 사랑의 장화를 매달고 달려와 여기서 죽다
- 등 뒤로부터 총을 맞음
- 굿 브라운 인디언의 습격을 받고 사망함.
구한말 대학자 김균이 그의 저서에서 남긴 말
독립불구 영예극종 (獨立不懼 榮譽克終)
홀로서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오래도록 명예롭고 끝이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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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만식 선생님 말씀이 심금을 울리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