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11:17~21).
17절. 예슈아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
18절.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리쯤 되매
예슈아 주님은 나사로가 죽은 것을 아시고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머무시고 그곳까지 오시는데 하루가 소유된 것 같다. 주님이 그곳에 오셨을 때는 이미 나사로는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나 되었다. 나흘은 나사로의 병든 사실을 주님께 알리러 오는데 하루 주님이 그 소식을 듣고 머무신 날이 이틀, 주님의 일행이 베다니 나사로의 집까지 오는데 하루가 걸린 것을 말한다. 요한이 나사로의 죽음을 자세하기 기록한 것은 그의 죽음이 확실한 것임을 더욱 분명히 하려는데 그 이유가 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오리(2km)쯤 떨어져 있는 곳이다.
19절.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베다니가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들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찾아와 그 오라비가 죽어서 슬퍼하는 두 자매를 위로하러 왔다. 성령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조문으로 온 것을 기록하고 있다.
20절. 마르다는 예슈아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는 예슈아 주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였지만 마리아는 주님을영접하러 나가지 않았다. 마리아가 왜 주님을 영접하러 나가지 아니하였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 이에 대하여 많은 주석가들이 그 이유를 이러니저러니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한 가지 분명히 하여야 할 것은 주님을 그를 책망하시지 아니하셨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거나 조용히 집에서 주님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그의 개인적인 문제를 자기와 다르다고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주님이 금하시는 것이다(롬14:4).
21절. 마르다가 예슈아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는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께 말씀드렸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그가 죽어 장사지냈으니 슬프고 괴롭고 안타 깝다는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