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황동혁 주연 : 심은경, 나문희, 박인환, 성동일, 이진욱 개봉 : 2014년 1월 22일 관람 : 2014년 1월 27일 등급 : 15세 관람가
1천원 때문에 영화를 혼자 보게된 사연
몇주전 [수상한 그녀]의 기대평을 썼었습니다. [수상한 그녀]는 혼자의 힘으로 아들을 힘겹게 키우느라 억척 할매가 되어 버린 오말순(나문희)이 청춘 사진관에서 영정 사진을 찍은 이후 20대 꽃처녀 오두리(심은경)가 되어 벌어지는 유쾌한 코미디입니다. 저 역시 이 영화가 기대되었기에 주저없이 [수상한 그녀]의 기대평을 블로그에 쓴 것입니다. 그 덕분에 영화 홍보사로부터 [수상한 그녀]의 영화 예매권 2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굳이 예매권을 선물로 받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내 돈을 내서라도 볼 영화이긴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공짜는 기분이 좋은 법이죠. 아주 좋은 기분으로 [수상한 그녀]의 개봉일만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구피가 "[수상한 그녀]는 엄마하고 보고 싶어!"라고 선언을 하더군요. 그러고보니 2012년 8월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구피와 함께 보신후 영화가 재미있었다며 좋아하시던 장모님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다면 이번주 일요일에 장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수상한 그녀]를 보러 가자!"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장모님에게 "이번 주말에 함께 영화보라 가요~'라며 애교(?)를 떨어서 장모님의 승낙도 받았고(장인어른은 그냥 집에서 TV나 보시겠다고 한사코 거절하시네요.) 선물로 받은 영화 예매권 2장을 사용한다면 영화 관람료도 그다지 부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원대한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수상한 그녀]가 15세 관람가 등급이라는 것이 걸렸습니다. 올해 12세가 된 웅이가 과연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을런지... 게다가 영화 홍보사에서 선물로 보내준 영화 예매권이 안되었습니다. 주말 영화 관람료는 1만원인데(은근슬쩍 전부 올렸네요.) 선물로 받은 영화 예매권은 9천원까지만 예매가 가능하다는 에러 메시지만 떴습니다. 고작 1천원 때문에 좋았던 기분이 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수상한 그녀]는 구피와 장모님만 보러 가고, 저는 집에 남아 웅이의 밀린 방학숙제를 도와줘야 했습니다. 예매권만 되었어도 어떻게든 우겨서 웅이까지 데리고 극장으로 출동하려했는데, 구피가 선물로 받은 영화 예매권이 아깝다며, 영화 관람료가 9천원인 평일에 영화 예매권으로 혼자 [수상한 그녀]를 보라며 제 등을 토닥거립니다. 그리하여 저는 월요일에 선물로 받은 영화 예매권으로 [수상한 그녀]의 영화 티켓을 두 장 예매하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제 옆자리엔 구피 대신 제 옷과 핸드폰을 가지런히 놓고 두 자리를 혼자 차지한채 그렇게 혼자 봤습니다. 차라리 예매권을 선물받지 않았다면 이런 억울한 일도 없었을텐데...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선물하려면 아주 작은 것까지 배려해야합니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어려운 것이겠죠.
바디 체인지는 언제나 유쾌한 판타지를 안겨준다.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은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하지만 [수상한 그녀]를 볼 당시 제 컨디션과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는 야근을 해야 했고, 야근을 하며 볶음밥으로 대충 저녁 끼니를 떼우고 서둘러 극장으로 향했더니 영화를 보는 내내 아랫배가 슬슬 아팠었습니다. 게다가 온 가족이 함께 [수상한 그녀]를 보려던 계획이 고작 1천원 때문에 틀어지고, 이렇게 또다시 혼자 영화를 보게 되니 기분도 상해 있었습니다. 대개 이런 경우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힘듭니다. 컨디션이 안좋으니 영화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상한 기분에 대한 화풀이를 영화에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저는 [수상한 그녀]가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 꼬투리를 잡으려 한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수상한 그녀]에 완벽한 작품성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잖아요. 코미디 영화에 대한 적당한 재미만 갖추고 있다면 [수상한 그녀]는 영화적 소임을 충분히 다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상한 그녀]는 정확히 그러한 코미디 영화적 재미를 채워줬습니다.
[수상한 그녀]는 기본적으로 바디 체인지 영화입니다. 바디 체인지 영화는 주인공의 신체가 바뀌면서 관객에게 묘한 판타지를 안겨주는 장르의 영화입니다. 예를 들어서 바디 체인지 영화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빅]의 경우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년의 판타지를 실현해주는 영화입니다. 우리 영화인 [체인지]의 경우는 남성과 여성의 몸이 바뀌면서 사춘기 소년, 소녀의 성적 판타지를 채워주는 영화이고, 라이언 레이놀즈와 제이슨 베이트먼이 주연을 맡은 [체인지 업]의 경우는 서로 사는 방법이 다른 두 친구의 몸이 바뀌며 다른 삶에 대한 판타지를 충족시킵니다. 그리고 [수상한 그녀]는 칠순 할매 오말순의 몸이 스무살 꽃처녀 시절로 돌아갑니다. 바디 체인지 영화의 기본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바뀐 몸을 통해 해소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몸에서 젊고 탱탱한 어린 몸으로 바뀌는 [수상한 그녀]의 설정은 바디 체인지 장르에 딱 알맞은 최적의 소재인 셈입니다. 영화의 초반, 노인 문제 전문 교수인 말순의 아들 현철(성동일)의 강의가 잠시 나옵니다. 현철은 학생들에게 노인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이에 학생들은 느리다, 냄새난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등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쏟아냅니다. [수상한 그녀]는 바로 그러한 부정적 인식 속에 살아야하는 오말순 할매의 몸이 그녀의 20대 시절로 돌아가는 바디 체인지를 겪으며 판타지를 완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은경, 그녀의 연기가 이 영화 재미의 90%이다.
그렇다면 바디 체인지 영화는 몸이 바뀌는 판타지만으로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바디 체인지 영화가 진정으로 재미있으려면 배우의 연기력이 필수입니다. [빅]이 바디 체인지 영화의 걸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톰 행크스의 명연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30세의 어른이 된 13세 소년 조슈. 톰 행크스는 30세의 몸을 가졌지만 13세의 마음 역시 가진 순수한 어른 조슈를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연기해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수상한 그녀]의 영화적 재미는 전적으로 심은경 덕분입니다. [빅]에 톰 행크스가 있다면 [수상한 그녀]에는 심은경이 있습니다. 만으로 19세 밖에 되지 않은 이 젊은 여배우는 20세의 몸을 가졌지만 70세의 마음을 가진 오두리 역을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해낸 것입니다. 사실 그녀의 연기는 이미 2011년 [써니]에서부터 일취월장했었습니다. 한마디로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셈입니다. 그랬던 그녀가 [수상한 그녀]로 확실히 연기력에 물이 올랐습니다. 제가 심은경의 연기에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이유는 영화 속의 오두리를 보며 그녀가 20대 청춘이 아닌, 70세 할머니로 보였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그녀는 행동 하나, 대사 하나, 완벽하게 칠순 할머니가 되어 오말순과 오두리를 동일 인물화시켰습니다.
그 중에서 최고는 역시 노래할 때였습니다. 오두리는 비록 몸은 20대이지만, 정신은 칠순 할매이기에 요즘과 같은 세련된 노래를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칠순 할매에 어울리는 옛 가요를 불러야 하는데, 이게 또 관객 입장에서 촌스럽게 들리면 영화적 재미가 제대로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심은경은 '나성에 가면', '빗물', '하얀나비' 등 옛 가요를 너무나도 세련되게 부릅니다. 마치 칠순 할매의 정신과 스무살 꽃처녀의 몸이 함께 하고 있는 오두리처럼,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옛 가요의 정취와 요즘의 세련된 감성이 함께 묻어나는 명곡이 됩니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심은경의 자세가 영 어색합니다. 역시 칠순 할매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촌스러운 무대 매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물론 이 모든 것이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 19세의 젊은 여배우가 어떻게 저런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연기해내는 것인지 영화를 보며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후반부에 오두리가 무대에서 '한번더'를 부르는 장면에서 저는 저도 모르게 박수가 튀어 나올 뻔했습니다. 영화의 감동을 최고치로 끌어 올려야 하는 장면에서도 오두리는 칠순 할매의 촌스러운 무대 매너를 고수하는 것입니다. 수 많은 관객 앞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는 오두리. 진정으로 심은경의 연기는 완벽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똑같은 삶을 살련다. (스포 포함)
하지만 우리나라 코미디 영화에서 마지막 감동을 빼면 요즘은 섭섭하죠?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의 코미디는 초반 웃음, 후반 감동이라는 법칙이 딱 정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상한 그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칠순 할매 오말순이 스무살 꽃처녀 오두리로 바디 체인지가 되면서 벌어지는 웃음 만발 해프닝들은 후반부가 되면서 오말순의 손자인 반지하(진영)가 교통사고로 의식 불명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감동 모드로 변환됩니다. 이미 영화의 중반, 피를 뽑으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을 소개한 이 영화는 반지하를 살리기 위해 수혈을 해줘야 하는 오두리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오말순이 젊었을 때는 제대로 누리지 젊음을 맘껏 만끽하는 오두리. 가수의 꿈도 이루었고 방송국 PD 한승우(이진욱)와도 가슴 떨리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손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의 젊음을 포기해야 합니다. 오말순, 그녀의 과거는 비참했습니다.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독일 광부로 돈을 벌러 갔다가 죽었고, 혼자 힘으로 갖난 아기를 키우기 위해 억척같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녀는 자신을 도와준 생명의 은인을 배신하기도 하는 등 악귀와도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말합니다. 후회는 없다고... 다시 내 삶을 살아도 나는 똑같이 살겠다고...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아들인 현철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다음 생에도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의 아빠,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찬란한 청춘 따위는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이죠. 솔직히 오두리의 마지막 선택에 감동의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으신 분이라면 오두리의 선택에 감동을 받으셨을지도 모르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오두리의 선택은 너무나도 당연했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좋은 꿈을 꾸었네... 라며 오두리, 아니 오말순은 말합니다. 가수로 성공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한승우와 달콤한 사랑에 빠진다고 해도, 그것은 손자인 반지하의 목숨과는 절대로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겪는 찬란한 젊음은 그저 한낱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한 것이죠.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구피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다시 태어나면 나와 결혼할거야?" 당연히 구피의 대답은 "내가 미쳤냐?"입니다. 하지만 "나와 결혼 안하면 웅이를 낳지 못할텐데... 그래도 나랑 결혼 안할거야?"라고 되물었습니다. 구피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다시 태어나 저보다 좀 더 멋진 남자를 만나고 싶겠지만, 구피 역시 여전히 웅이의 엄마이고픈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저는 웅이의 아빠이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수상한 그녀]는 제게 감동적인 영화이기 보다는 좋은 꿈과도 같은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P.S.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박씨(박인환)가 청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은 후 20대 젊은 시절로 돌아갑니다. 박씨 노인의 20대 모습은 바로 김수현입니다. 그 장면에서 관객들의 술렁거림... 요즘 김수현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과 고난. 하지만 잘 자라준 웅이를 보면 그러한 과거조차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웅이야, 너의 가장 좋은 효도는 앞으로도 네가 잘 자라주는 것 뿐이란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
출처: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원문보기 글쓴이: 쭈니
첫댓글 한번쯤 돌아가고픈 청춘~
심금을 울립니다
모두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