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낙하(whale fall)
거룩한 어르신의 영면
죽음의 미학
바다를 향해
33톤의 탄소를 해저로
고래 낙하(whale fall)는 죽은 고래의 사체가 해저면으로 가라앉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룩한 의식이다. 눈물을 흘리지도 친지들을 불러 모으지도 않는다. 임종을 누군가 지켜주길 바라며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자연에서 스스로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수십 년 동안 심해 생물들에게 영양분을 무료 나눔 한다.
수심 1,000미터 이상의 점심해수층이나 심해원양대, 해저면에서 발생한다. 고래의 사체는 수십 년 동안 심해 생물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위대한 업무를 수행한다.
하루 종일 고래를 생각했다. 삶도 죽음도 거룩하게 받아들이는 지구상 가장 큰 어르신이다. 고래는 죽음이 다가오면 자연이 준 모든 것들을 다시 돌려주고자 깊고 깊은 바다로 향한다.
모든 동물들은 고독사를 사랑한다. 인간만이 죽음을 공포처럼 여기고 홀로 죽어가는 것을 비극으로 받아들인다. 고래는 죽는 순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과감하게 죽음을 누린다.
최신 장비 주렁주렁 가슴에 달고 호화로운 병동에서 도우미들이 시중든다고 해서 죽어가는 자를 우리는 부러워하지 않는다. 더위와 부패를 막아주는 신비로운 보석, 야명주를 입에 문 죽은 서태후를 질투하는 자는 없다. 죽으면 그냥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날아가는 것이 더 자유롭다. 음습하고 더러운 육체가 남아 영화를 누리지는 않는다.
묻지 마 관광차를 타고 신나게 춤추고 노래 부르고 단체로 죽어도 고독 사인 것이다. 순장당한 수많은 시중과 장신구, 수많은 호위병들과 함께 죽어도 고독 사이다. 죽음은 언제나 혼자 가는 길이다. 이 세상에 고독사 아닌 죽음은 없다. 동반 죽음마저도 고독 사인 것이다.
먼 옛날, 고래는 먹는 것을 사랑했다. 신이 준 땅에서 탐스러운 과일과 초록 초록의 잎들을 좋아했다. 기름지고 탱탱한 피부는 보드랍다 못해 미끈거렸다. 초고도비만의 터질 듯이 팽팽한 가슴과 매끄러운 피부의 자신을 사랑했다.
신이 준 풍만한 몸매를 뽐냈다. 남편 고래도 아내 고래의 비대한 몸을 자랑스러워했다. 아기 고래를 안고 터질듯한 가슴으로 젖을 먹였다. 산기슭에 기대어 살던 고래들은 어느 날 굳은 결심을 한다. 바다에 소풍 갔다 온 아기 고래가 바다의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 바다의 손길이 그리워 바다로 간다.
그들은 혹독한 다이어트를 통해 땅 위에 살 수도 있었다. 고래는 자신의 점점 비대해지는 몸을 몹시도 사랑했다. 바다의 일렁임과 속삭임이 좋았다. 결국 고래 가족들은 바다로 이민을 선택했다.
자칫하면 익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고래는 왜 바다를 동경했을까? 아버지 고래에게 묻고 싶어진다. 아련한 희망을 품은 바다의 토닥거림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달빛을 받으며 바다로 바다로 가는 고래 가족들은 행복한 행진을 계속했다.
죽음을 직감한 고래는 바다를 떠돌다가 심해로 향한다. 며칠 동안 바다를 헤매다 죽고 천천히 해저로 향한다. 때가 되면 깊은 수심으로 내려간다.
수십 톤에서 수 톤가량의 탄소를 낙하를 통해 해저로 이동시킨다. 해양 생명체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거룩한 작업이다. 배려와 나눔을 실천한다. 고래는 자연사한다. 한 마리의 고래가 죽어서 백 년 동안 수많은 해저 생물들이 축제를 한다. 그는 모든 것을 주고 가는 산처럼 큰 어르신이었다.
고래는 죽음을 마주하러 길을 나선다.
위대한 생물에게 삶을 배운다. 가장 경박한 수단인 언어를 버리고 그들과 교감하고 싶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과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많은 가설들이 뒤집어지는 순간이 오면, 완벽한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겸손과 진리와 삶의 숭고함을 가르쳐 주는 자연에게 우린 배워야 한다. 우주 너머보다 심해를 알기는 더욱 어렵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