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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빌리 엘리어트 - Billy Eliot >
그 누가 말했던가요.
"세상은 아비를 울리고,
자식은 그 눈물을 마신다..."
여기,
'꿈과 용기'를 선사하는...
우리 모두의 인생 영화가 있지요.
탄광 노조의 파업이 한창인 1984년
영국 북동부의 더럼.
티 렉스(T. Rex)의 'Cosmic Dancer' 에 맞춰,
장밋빛 환희로 주근깨 투성이 양볼을 물들인
사내아이가 공중으로 솟구칩니다.
천국에라도 닿을 듯이, 두번 세번,
높게 더 높게...
하지만, 황홀한 도약의 순간이 끝나면 우리는
소년의 머리 위에 드리운 꾀죄죄한 천장과
발 밑에 깔린 낡은 침대 매트리스를 보게
되지요.
감독 스티븐 달드리가 발레 슈즈 ‘분홍신’의
포로가 된 탄광촌 소년의 동화를 담아낸
< 빌리 엘리어트 >...
영화는 힘겨운 팍팍함에 목이 메는 현실에
대해서는 너그러우며,
꿈과 판타지에 대해서는 의연한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이 제목인 영화가 흔히
그러하듯, <빌리 엘리어트 > 를 짊어지는
것은,
열한 살 소년 빌리(제이미 벨 분)의 채
여물지 않은 어깨이지요.
이처럼 남루한 현실과 예술의 환희가 서로
부딪히고 깨지지 않게,
같은 바구니에 함께 담고자 한 스티븐 달드리...
그는 영화 속 빌리를 통해 뮤즈의 속삭임과
궁핍에 지친 가족의 바램을 화해시키려고
애씁니다.
'불우했던 천재 예술가의 입지전적 출세기'
라는,
진부한 소재의 예상 가능한 드라마에 대한
구원 역시 빌리의 입체적 캐릭터에서 나오고
있지요.
일찍 아내를 잃고 무기력한 아버지 재키
(게리 루이스 분),
어린 동생이 자기의 전축을 틀었다고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는, 격하고
무뚝뚝하기만 한 형 토니(제이미 드레이븐
분),
그리고 치매를 앓는 할머니(진 헤이우드 분)를
부축하며 살아가야 하는 빌리...
호기심 천국의 소년은 형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냐고 생뚱맞게 물어봅니다만,
"닥쳐" 라는 퉁명스런 답만 돌아오지요.
어느 날 권투연습을 하던 빌리는 체육관
한 귀퉁이에서 실시되는 발레 수업을 우연히
구경하다,
발레 선생님인 윌킨슨 부인(줄리 월터스 분)의
권유로 간단한 레슨을 받게 되고,
순식간에 우아한 발레의 매력에 푹 빠져들죠.
빌리에게 재능보다도 먼저 드러난 것은
황홀과 매혹이었습니다.
윌킨슨 선생님의 감미로운 발레 구령 소리는,
마치 영혼에 대고 속삭이며, 주술에 걸린 듯
몸을 감각적으로 움직이게 하지요.
- 'Why Don't You Join In?' 장면
https://youtu.be/i0p2X2rQ6Ag
급기야 빌리는 권투를 배우라고 준 50 펜스로
발레 레슨에 몰래 등록합니다.
낡고 오래된 아버지의 권투 글로브를 내려놓는
대신, 새로운 감성의 발레 토슈즈를 택한 게죠.
하지만,
빌리의 아버지는 권투도장에 간 빌리가
글로브 대신 분홍색 발레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보자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 됩니다.
그가 보기에 남자의 육체는 광산에서 석탄을
캐거나 파업에 참여해서 경찰을 두들겨팰
수는 있어도,
여자아이들 틈에 끼어 춤을 추도록 되어
있지는 않은 것이죠.
아니, 그에 앞서 육체란 노동이나 정치를 위한
것이지 감각과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며,
천상에 이르는 통로는 이성이지, 육체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급기야, 아버지의 단호한 반대로 빌리의
발레 수업은 중단돼 버리고 맙니다.
광부로서 힘든 노동과 시위를 일상으로 살아온
아버지에게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것은,
느닷없는 일탈이나 반항으로 여겨지거나
'게이'나 하는 수치스러움의 대상일 뿐이죠.
무엇보다도 싸나이(?)답게 사는 것이 중요한
아버지와,
발레의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갓 눈뜬
아들은 원초적으로 부딪힐 수 밖에 없을 터...
아버지는 사양산업인 탄광을 반강제로
폐쇄하려는 영국 정부와 대립하고,
아들은 권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아버지와
첨예하게 갈등합니다.
빌리를 둘러싼 드라마엔 두 개의 전선(戰線)이
대치하고 있는 셈이죠.
아버지는 강조하지요.
"남자들은 축구나 권투를 하는 거야!
그런데 발레를 한다고?"
불같은 성격을 가진 아버지를 둔 빌리 역시
한 성격하긴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대들며
뛰쳐나가고 맙니다.
빌리는 찾아간 윌킨슨 선생님으로부터
발레학교의 오디션을 받아볼 것을 권유받죠.
그는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위한 연습에
몰두합니다만 ...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불안해하던
빌리는 그만 선생님에게 당돌하게 대들기도
하지요.
"선생님 인생이 실패한 걸 나한테 뒤집어
씌우지 말아요!"
그러나 선생님은 빌리를 끝내 포기하지
않으며, 빌리 또한 그런 선생님을 믿고
따릅니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 '정경'(Scene)을
처음 듣고 감동하는 빌리...
그에게 윌킨슨 선생님은 동화같은 '백조의 호수'
줄거리를 꿈꾸듯 이야기해주지요.
성탄절 밤 체육관,
뜻밖에도 빌리는 아버지 앞에서 스텝을
밟으며 그동안 갈고 닦은 춤 실력을
선보이게 됩니다.
절도있는 스텝, 자유로운 몸놀림, 그리고
역동적인 동작 하나하나에 아버지는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바라 보지요.
평소 자신의 의견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빌리는,
'춤'이라는 언어를 통해 비로소 본인의 꿈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빌리의 천부적인 소질을 알아본 아버지는
곧바로 윌킨슨 선생의 집을 찾아가죠.
정부가 자신들을 억압한다고 생각해 왔던
아버지는,
오히려 자신이 아들의 천재성과 꿈을
억누르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윌킨슨 선생님에게 마지막
자존심으로 외치지요.
"발레를 배우는데 돈이 얼마나 들지요?
빌리는 제 아들입니다.
이제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티-렉스로 대표되는 '70년대 '글램 록'
(glam rock) 넘버들과,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 '백조의 호수' 속
'정경',
그리고 슈베르트의 '피아노 즉흥곡'
(Impromptu)을 엮은 OST 음악들은,
갑자기 폭발하는가 하면, 누군가 턴 테이블에서
바늘을 거둔 듯 중단되면서,
소년의 혼란과 격앙을 듣는 이의 심장에
곧바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영국인에게 죄책감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마가렛 대처 시대의 민영화 정책을
다시금 스크린에 소환해 낸 <빌리 엘리어트>...
영화는 이른바 ‘키친 싱크 리얼리즘
시네마’, 곧, 영국 노동계급 현실을 그린
전통 시네마의 끝자락에 서 있지요.
할아버지로부터 3대째 물려받은 권투
글러브를 밀어두고 발레 수업에 몰두하는
빌리의 모습과 파업 시위 장면을 교차 편집한
시퀀스는,
산업사회가 노동계급에 요구해온 전통적
남성상의 붕괴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파업의 기억이 시종
스크린 언저리를 맴돌되,
어린 빌리의 눈높이와 시야 안에 머물게 하고
있죠.
시위 진압 경찰의 방패 대열에 막대기를
긁으며 어린이들이 등교하는 장면은
그 한 예일 것입니다.
감독은 장중내내 화면 속에서 계층(Class)별
상승과 하강의 시퀀스를 시소처럼 교차시키며
정교하게 변주합니다.
질곡(桎梏) 어린 밑바닥 현실과 우아한
예술적 고양(高揚)의 이미지가 서로 맞물리는
식의...
권투 수업과 발레 수업, 광부의 파업 중단과
빌리의 로열발레학교 합격 등으로 대조되는
연출 신이 그리하지요.
로열발레아카데미의 합격 소식에 아버지는
날듯이 기뻐하며 사무실에 알리기 위해,
뒤에 보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언덕길을 달려
'올라'갑니다.
반면, 노조 일을 하는 형은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골목길을 전력을 다해 뛰어
'내려'가지요.
빌리가 오디션을 보러 처음 런던에 와
(빌리의 아버지도 난생 처음이지만)
로열발레아카데미 스쿨의 장대한 규모에
압도되는 상황 또한,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모습으로
형상화됩니다.
결국, 빌리의 아버지는 탄광 출근버스를 타러
나오죠.
아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그러나, "이 배반자들!" 을 격렬히 부르짖으며
시위대 선두에 끼어 있다 버스 속 아버지를
발견한 빌리의 형...
아버지는 복귀를 말리는 큰아들에게
울부짖으며 말하죠.
"어쩌면 빌리는 발레 천재일지도 몰라.
우리 막내에게 기회를 주자꾸나!"
결국 아버지와 형은 빌리를 위해 힘쓰기로
합니다.
항상 빌리를 나무라던 형은 아버지 말이 맞다며
엄마라면 하게 했을 거라고 얘기하지요.
돈이 부족했기에 아빠는 엄마의 유품까지
팔러 갑니다.
그러나 피아노를 부술 때처럼 절망스럽지는
않지요.
아들을 위한 일이니까요.
런던 로열발레학교로 떠나기 전, 작별인사를
올리는 빌리에게 윌킨슨 선생님은 말해줍니다.
" 이제 더 큰 세상에 나가는 거란다.
인생의 많은 걸 배우게 될거야...
행운을 빈다, 빌리! "
천신만고의 우여곡절 끝에 런던으로 떠나는
빌리의 버스는 자연스럽게 15년의 세월을
지나보내며,
어느덧 아버지와 형이 탄 지하철의 도착으로
이어집니다.
빌리를 위해 지하 갱도로 내려가야 했던
아버지와 형은, 이제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지요.
한데,
아버지의 몸은 올라가는 방향의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려가는 것' 에 익숙한 늙은 아버지는,
‘올라가는 것’이 어색하기만 한 것이죠.
그리고 웅혼스레 비춰지는 런던 코벤트가든의
로열오페라발레하우스...
자랑스런 아들 빌리가 무대에 등장하기 전부터
아버지는 감격에 벅차서 눈물이 고이지요.
'아버지의 술잔엔 눈물이 반' 이라더니...
이젠 모두가 부러워하는 프린시펄 발레리노로
어엿하게 성장한 빌리(애담 쿠퍼 분).
그는 매튜 본의 드라마 발레 < 백조의 호수>
주인공 역으로,
자유로운 한마리 '새'처럼 무대 위의 허공을
가르며 힘차게 비상(飛翔)하지요.
화면은 그토록 큰 의미가 있는 상승으로
은유된 발레 점프를 한 상태 그대로
정지됩니다.
꿈을 이룬 빌리이기에 하강을 보여주지않는
엔딩 신인 것이지요.
아울러, 점프와 동시에 스틸 컷으로 잡힌
아빠의 표정은 지나온 모든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 李 忠 植 -
1. 영화 < 빌리 엘리어트 > 예고편
https://youtu.be/hbIzgALUztI
한 아버지가 있었죠.
광부로 평생을 살았으나 탄광촌도, 그의 삶도
이제 마른 석탄조각처럼 부서져갈 것입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소년 빌리는 발레리노를
꿈꾸지요.
하지만 번번이 가로막힙니다.
태어나긴 했지만, 세상은 이들에게 불친절을
거둔 적이 없지요.
< 빌리 엘리어트 > 는 그 상처를 쓰다듬으며
삶을 껴안는 영화입니다.
상처없이 삶을 포옹하는 길은 없다고
아프게 말하는 드라마인 게지요.
하여,
결국 희망을 말하지만, 그래서 슬픈,
진심어린 위안의 서사로 울려옵니다.
조용히 찾아와, 그러나 깊숙이 마음의 문을
두드린 이 착한, 영혼의 작품으로 말이지요.
앙증맞은 꼬마 빌리는 결코 변명하거나
울지 않는,
조그마하면서도 자못 의젓한 현실주의자로
자리합니다.
한밤중에 우유를 병째 들이켜다가 홀연히
마주하는 죽은 엄마의 잔소리가 귓전에
들려올 때도 빌리는 결코 울지 않지요.
가느다란 한숨이 전부입니다.
"엄마가 참 특별한 분이셨던 모양이구나" 라는
선생님의 말에도 소년 빌리는 눈물을 떨구지
않지요.
그저 공중을 바라보며, "아뇨, 그냥 평범한
엄마셨어요"라고 가만히 도리질을 칠 뿐입니다.
빌리는 선생님에게 고이 간직해온
엄마 편지를 처음으로 보여주지요.
빌리는 18살이 될 때를 위해 쓴 그 편지
내용을 이미 읽어 다 외우고 있는지라,
선생님이 한 구절 읽으면, 빌리가 다음
구절을 이어받아 읊습니다.
이는 마치 뮤지컬에서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이중창같은 느낌으로 전해져 오지요.
'내 아들 빌리에게'
- 윌킨슨 선생님
"빌리 이미 너에게 멀어진 기억으로 남은
나일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몰라,
오랜 시간이 지났을테고.
네가 자라난 모습과 울고 웃고 소리치는 모든
모습들을 다 놓쳤겠구나."
- 빌리
"너와의 대화 시간도 다 놓쳤겠지만 한가지만
기억해다오. "
- 윌킨슨 선생님
"난 항상 너와 함께 있단다."
- 빌리
"너와 함께 있단다, 늘 영원토록...
너를 알았다는게 자랑스럽고,
네가 내 아들이라 자랑스럽단다.
늘 자신에게 충실하거라.
영원히 사랑한다.
엄마가..."
2. 권투 글로브의 치욕(A Disgrace to
the Gloves) 장면
https://youtu.be/qyLJCNyRov0?list=PLZbXA4lyCtqrU4WWamVsJIzvaRGesWaPz
투쟁과 권투로 대표되는 남성성과 발레로
나타나는 여성성, 그것의 대립과 공존...
이 역설적인 모순의 구도 덕분에 탄광 마을
'더럼'은,
억압의 장소이면서도 소년에게 소중한 성장의
배경으로 자리합니다.
발레의 꿈을 억압하면서도, 그 꿈이 이뤄지게
한 공간말이죠.
현실과 이상이 함께하는 무대인 것입니다.
3. '피루엣'(Piroutte) 연습 장면
https://youtu.be/69RNNex-sig
아역 배우의 깜찍한 춤 솜씨를 넘어, 더욱
강렬한 힘으로 관객을 잡아끄는 것은,
바로 예술의 품에 처음 안긴, '어린 영혼의
멈칫거림'이지요.
아직 자신의 피를 요동치게 하는 기운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빌리의
가슴은,
리듬이 자기를 들어올릴 때마다 성취나
정복의 쾌감이 아닌 '자아 소멸의 해방감'에
수줍게 떨립니다.
하여,
관객들 또한 최초의 피루엣을 성공한 빌리의
입가에 번지는, 시월의 하늘보다 청아한
미소에 그만 가슴이 설레여 오지요.
4. '아빠를 향한 춤' ('Dancing for Dad') 장면
https://youtu.be/CH8HV5gXQB4
'켄 로치가 만든 <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 같은
작품' 이라는 한 평론가의 표현처럼,
< 빌리 엘리어트 > 는 일종의 뮤지컬
영화면서도 환상을 위해 그저 무지개빛
세상으로만 날아가지 않습니다.
대신 < 빌리 엘리어트 > 의 판타지는 현실의
갈피에 슬쩍 섞여들며 초라한 골목길 위로
살그머니 내려앉지요.
빌리가 허름한 담벼락을 따라 달리고 도약하는
장면에서 시간을 단숨에 압축하며 조용히
내리는 눈처럼,
그리고 동네 언덕길 너머 바다에 아련히
떠있는 흰 돛배처럼 말이지요.
< 쉘로우 그레이브 >, < 트레인스포팅 > 의
촬영 감독 브라이언 투파노의 카메라는 시종
진중함을 견지하면서도,
중요한 순간들은 더없이 적절한 거리에서
적확하게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아들을 알지 못하는 세계로 막 떠나보내는
아빠가 빌리를 번쩍 들어올려 으스러지게
끌어안는 한컷의 화면은,
백마디 대사보다 마음을 휘저어 내고 있지요.
5. 로열발레 아카데미 오디션 장면
https://youtu.be/Q7wHV0r256A
6. "춤을 출때 어떤 기분이 드니?" 시퀀스
https://youtu.be/VSOfDu7dEQ4
잔뜩 긴장한 채 면접관 앞에서 오디션을
치룬 빌리는 자신의 춤이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다 대기실에서 속없는 위로를 하는
학생을 때리고 말지요.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이곳에 온 빌리에겐
다음 기회란 없는 것입니다.
싸움 소동으로 경고를 받아 풀이 죽은 빌리...
어깨가 축 처진 채, 아빠와 함께 오디션장을
나서는 그에게 한 여성 심사위원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지요.
" 마지막 질문 하나만요,
빌리에게 묻고 싶은데...
네가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 드니?"
뜻밖의 물음에 머뭇거리던 빌리는 조용히
화답합니다.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번 춤을 시작하면
모든 걸 잊게 되고...
그리고, 사라져버려요.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죠.
몸에 불이라도 붙은 느낌이에요.
전 그저 한마리의 날으는 새가 되죠.
마치 전기(Electricity)처럼,
네, 전기처럼요..."
7. 피날레 신
- 메튜 본 < 백조의 호수 > 애담 쿠퍼의 점프
https://youtu.be/1mAreOe6e-A
< 빌리 엘리어트 > 에서는,
시위 진압 경찰과 파업 노동자들,
아버지와 아들, 여자아이 속 남자아이,
그리고 형의 체포로 무산되는 첫 오디션,
빌리의 합격과 파업 실패 등
'긍정과 부정', '상승과 하강' 이미지의 교차라는
정서적 대비가 절묘하게 풀어집니다.
그럼에도,
꼬마 빌리가 침대에서 신나게 뛰어 오르는
오프닝 신과,
성장한 빌리가 메튜 본의 < 백조의 호수 > 속
왕자의 홀로서기 구원자로서 허공을 향해
도약하는 엔딩 신,
곧, 영화의 시작과 끝은, 모두 '상승
(Ascending)' 의 시퀀스로 펼쳐지죠.
엔딩 크레딧,
상징적인 제목인 티 렉스의 'Ride a white
swan' 이 종료 화면을 감싸안으며 흐릅니다.
빌리는 이제 '흑조(Black Swan)' 가 아닌,
'백조(White Swan)'를 타고 날아오르는
게지요...
8. 차이콥스키 < 백조의 호수> 중 '정경'(Scene)
- 제임스 레바인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https://youtu.be/TMfXM9QgUGU
< 빌리 엘리어트 > 가 헌사하는 최고의 감동은,
빌리의 아버지가 자신의 몸에 수십년간
배어있던 믿음의 체계를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깨부수었다는 사실에서 오지요.
감독은 그 '깨어지고 난 다음의 아름다움' 을,
성인이 된 빌리가 차이콥스키의 발레
< 백조의 호수 > 중 '정경' 음악에 맞추어
무대 위를 도약하는 단 하나의 찬연스런
이미지로 압축했습니다.
영화가 우리를 그토록 감격스럽게 하는 것은,
담담하지만 끈질기게 자기 삶에 대한 마지막
존중을 포기하지 않는 빌리와 그의 가족,
그리고 선생님, 또한 친구들의 가쁜 숨결
덕분이 아닐런지요.
달드리는 < 빌리 엘리어트 > 를 통해
얘기합니다.
“영화 만들기란 믿음이 가는 연기, 아울러
감정적 잠재력을 지닌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죠.
연극과 달리 많은 위대한 영화들은 잠재의식의
차원에서 작동합니다.
영화의 방언은 바로 꿈의 언어이지요."
9. 슈베르트의 즉흥곡(Impromptu), D.935
Op.142 - 3번 - 에브게니 키신 피아노
https://youtu.be/H5mfwckBLWM
설레임과 두려움이 엇갈리며 어렵사리 도착한
로열발레아카데미.
그곳에선 연수생들이 슈베르트의 '즉흥곡
D.935, 작품 142의 3, B플랫장조' 에 맞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10. 티 렉스(T Rex)의 'Cosmic dancer'
https://youtu.be/abZVZvjGiRE
11. 티 렉스의 'Love to boogie'
https://youtu.be/vHuqNaJxQgc
빌리가 엄마의 환각을 본 직후,
티 렉스의 경쾌한 리듬 'Love to boogies' 에
맞춰 엄마같은 윌킨슨 선생님과의 레슨으로
넘어가는 설정이나,
빌리와의 이별 후, 탄광 리프트를 타고
칠흑같은 지하 탄광으로 내려가는 형과
아빠의 검은 얼굴을 이어붙인 대목은,
객석의 감정선을 파악하는 감독의 예민한
촉각을 실감케 해줍니다.
12. 티 렉스의 'Bang a gong(Get It on)'
https://youtu.be/TVEhDrJzM8E
13. 티 렉스의 'Children of the Revolution'
https://youtu.be/pu3-ZGbqUyk
14. 티 렉스의 'Ride A White Swan'
https://youtu.be/skjvDLpeh4c
15. 더 클래시(The Clash) 의 'London Calling'
https://youtu.be/EfK-WX2pa8c
< 빌리 엘리어트 > 는 볼 때마다 매번 달라지는
영화입니다.
처음엔 성장영화로 비춰지죠.
아버지와 아들이 거기 있었던,
또한 음악영화로 울려옵니다.
70년대 글램 록과 클래식이 거기 있었던,
아울러 연대에 대한 영화로 자리하지요.
공동체가 거기 있었던...
극 중반,
파업을 주도한 빌리의 형 토니가 도망치는
시퀀스에서,
'구조조정 합리화' 라는 미명하에 집행되는
공권력의 폭력을 익살스레 꼬집는,
더 클래시의 'London Calling' 이 흐릅니다.
주민들은 쪽문을 열어 길을 열어주지만 이내
토니는 기마경찰의 곤봉에 얻어맞고 개처럼
끌려가지요.
그 앞에서 빌리는 고개를 숙이고,
치열했던 저항은 그만 좌절되고 맙니다.
하지만 얼마 뒤, 주민들은 빌리의 오디션을
위해 돈을 모으지요.
곧 사라질 탄광촌에서 그들은 미래의 뭔가를
위해 주머니의 몇 페니를 꺼내고 또 손을
맞잡은 것입니다.
'빌리, 네가 희망' 이라고 얘기하며 말이죠...
< 빌리 엘리어트 > 는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된 1984년의 팩션(Faction)
입니다.
펑크 록 'London Calling' 은 “진짜 좋았던
적은 결코 없었어” 로 끝을 맺지만,
그 직전에 “이게 다 지나가면 한번 웃어주겠니?”
라고 눙치지요.
"이게 다 지날 때까지, 그러니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때까지 당신들과 함께 하겠다" 고...
< 빌리 엘리어트 > 는 무연스레 되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의 심장을 통렬하게 꽤뚫는
하이라이트 신은,
아버지와 형, 그리고 선생님이 심하게 싸운 후
참다못한 빌리가 뛰쳐나가,
분노의 스텝으로 미친듯이 화장실, 담장과
옥상, 골목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A town called malice' 에 맞춰 격렬하게
춤추는 장면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빌리가 결국 마주한 곳은 현실적으로
뛰어넘기 어려운 '막다른 길' 로 암유됩니다.
16. 더 잼(The Jam)의
'A town called malice' 장면
https://youtu.be/JZSdcjyH89g
아울러 빌리가 아빠 몰래 발레 슈즈를
침대 밑에 숨길 때 은밀한 톤으로 흐르는
'Bang a gong(Get it on)'과 함께,
밴드 티 렉스가 노래하는 'Cosmic Dancer' 는
여성 전유물인 발레를 하는 남성을 빗대고
있습니다.
17. 스티븐 게이틀리의 'I Believe (Live)'
https://youtu.be/CDbwBlN7pF0
18. 이글 아이 체리의 'Burning Up'
https://youtu.be/PFutocKtt4o
19. 더 스타일 카운실의 'Shout To The Top'
https://youtu.be/i_MRcnomWOQ
20. 더 스타일 카운실의
'Walls come tumbling down!'
https://youtu.be/pbuBGTVEjQ
첫댓글 더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는 최후방의
일꾼인 광부야말로 '막장 노동자'의
대명사일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1984년 이후 25만명이 넘는
광부가 일자리를 잃었다지요.
< 빌리 엘리어트 > 의 작은 광산촌
'더럼' 에도 대처리즘의 철퇴가 내리칩니다.
빌리의 아버지는 집 안팎에서 등골이
휘어지죠.
아내가 일찍 죽은 데다 늙은 어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탄광 노조위원장인 큰아들은 날마다
경찰과 숨바꼭질을 하고,
둘째놈 빌리는 권투를 때려치운 뒤
계집애들에 섞여 이상한 춤만 추지요.
소리죽여 울던...
'근육 하나만 믿고 살아온' 아버지는,
마침내 ‘사내답지 못한’ 빌리의 손을
들어줍니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라
불꽃으로 소용돌이친다는 아들의 고백에
아버지가 무너지고 만 것이죠.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목숨처럼 지켜온 한가닥 자존심마저
꺾어버립니다.
배신자의 대열에 합류하기로 작정한 그가
큰아들과 승강이를 하며 흐느끼지요.
노동자에게 세상은 여전히 잿빛입니다.
면접을 마친 빌리와 함께 나가는 아버지에게
시험관이 한마디를 던지지요
“파업에 행운이 있기를!”
얄궂게도 아버지는 광부들이 투항하는 날에
빌리의 합격통지서를 받습니다.
하지만,
영화 < 빌리 엘리어트 > 는 쉽게 관객을
놓아주지 않지요.
빌리의 합격 덕분에 최고조에 이른
영화의 분위기는,
파업의 실패 소식으로 순식간에
바닥까지 떨어집니다.
이 추락의 이미지는,
지하 엘리베이터를 타고 캄캄한 지하
갱도로 내려가는 아버지와 형의 검은
얼굴,
또한 거기에 드리워진 참담한 표정으로
그려지지요.
25세의 늠름한 청년이 된 빌리가
매튜 본의 드라마 발레 를 멋지게 연기하자,
아버지는 또다시 웁니다.
가엾은 아버지답게 눈물도 참 많네요.
하지만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눈물을
찍어내지 않습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아버지의 눈물이
'삶의 마지막 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영화 < 빌리 엘리어트 > 예고편
https://youtu.be/hbIzgALUz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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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빌리 엘리어트 > 오프닝 크레딧
- 티 렉스(T Rex)의 'Cosmic Dancer'
https://youtu.be/abZVZvjG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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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엘리어트 >
- 'Dancing for Dad' scene
https://youtu.be/CH8HV5gXQ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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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글로브의 치욕' 장면
('A Disgrace to the Gloves' Scene)
https://youtu.be/qyLJCNyRov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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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on't You Join In?' 장면
https://youtu.be/i0p2X2rQ6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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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루엣 연습'(Pirouette Practice) 장면
https://youtu.be/69RNNex-s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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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교습'(Private Lessons) 장면
https://youtu.be/uDISBx2Ry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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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e not concentrating' scene
https://youtu.be/HuKVUxMp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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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n called malice' scene
https://youtu.be/dp7yjqSTw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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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형)의 절규' 시퀀스
(Give the boy a chance!)
https://youtu.be/TLZClsaDE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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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발레 오디션'(Royal Ballet
Audition) 장면
https://youtu.be/Q7wHV0r25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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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발레 면접관의 질문 시퀀스
- 'What dancing feels like?'
https://youtu.be/U0tTT_87H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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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발레아카데미 합격통지'
(Acceptance) 씬
https://youtu.be/8TOTUOFMj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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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가 고향을 떠날 때...'
(Billy says goodbye)
https://youtu.be/FboJePoCA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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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엘리어트 >의 피날레 신
- 성인 발레리노 빌리의 '도약'
https://youtu.be/rFYFxyMgd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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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수업이 끝나고 혼자 남아 샌드백을
치고 있던 빌리는 옆에서 진행되던 발레
수업에 관심을 보입니다.
얼떨결에 발레 수업에 한번 참여했고
나름 재미도 있을 거 같았지만,
빌리는 애써 외면하지요
발레는 여자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아버지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권투와
달리 발레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하고
싶습니다.
결국 빌리는 다시 발레 수업에 나가고
이 사실을 친한 친구 마이클에게만
알려주지요.
버스 도서관에서 훔쳐온 발레 책을 보며,
욕조에 빠질 정도로 연습하는 등 빌리는
점점 발레에 빠져듭니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것이죠.
그렇게 발레를 배우던 중 체육관을 찾아온
아버지에게 들키고 맙니다.
아버지는 사내아이가 어떻게 발레를
하냐며 빌리를 격하게 나무라지요.
윌킨슨 선생님은 어렵사리 빌리의
아버지와 형을 만나 설득하지만,
극렬한 반대에 부딪치고 맙니다.
선생님과 가족들의 싸움에 화가 난 빌리는
격렬한 분노와 반항을 은유하는 'A town
called malice' 를 추지요.
- 'Not for Lads' scene
https://youtu.be/jmgV3OFn0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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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의 아버지와 형을 비롯한 파업
광부들을 위해 체육관 아래층을 무료
급식소로 활용하면서,
빌리가 권투 수업을 듣던 공간에서 어린
소녀들의 발레 수업이 함께 진행됩니다.
이 우연한 일로 발레의 매력에 빠지게 된
빌리는 강사였던 윌킨슨 부인의 도움으로
춤을 배우고,
그의 권유에 따라 로열발레학교 오디션을
보게 되지요.
처음에는 그를 반대하던 아버지는 파업의
배신자가 되는 결단을 내리면서까지 아들이
발레리노가 되는 것을 응원합니다.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총리가 탄광 인력
감축을 감행하며 촉발된 80년대 광부 대파업을
배경으로 하면서,
빌리의 갈등은 보다 현실적인 무게를 얻게
되죠.
아버지가 “남자는 축구나 권투, 레슬링을
하는 거다. 발레는 남자가 하는 게 아니다”
라며 고정관념을 내비치는 것은,
'소년의 발레' 라는 설정을 더 신선하게
만드는 동시에,
말없이 아버지 앞에서 춤을 선보이며,
자신의 꿈을 설득하는 잘 짜여진
명장면으로 이어집니다.
하여,
< 빌리 엘리어트 > 는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이룬다는,
'진부한 소재로 예상 가능한 스토리' 라는
약점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관객의
마음에 와닿는 기술에 대한 교과서로
자리매김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