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PVyYGW0SJ8
“여호와여 도우소서.”
[시편 12:1]
이 기도는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아주 놀라운 기도입니다. 비록 짧긴 하지만 때에 맞고, 지혜로우며, 시사하는 바가 많은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주변에 신실한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통탄하며 눈을 들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낙심이 된 그는 창조주에게
달려갔습니다. 물론 자신의 연약함을 느꼈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그와 함께 진리를 위해 노력할 셈이었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도우소서”라고만 기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두 단어에 불과한 이 간청 속에는 단도 직입적이며 분명한 통찰력과 명료한 발언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신앙고백자들이 중언 부언하며 장황하게 늘어놓는 기도보다 훨씬 더 단도 직입적이며 분명합니다. 다윗은 심사 숙고한 끝에 얻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자기 하나님께로 곧바로 달려간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어디 가서 구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여 저희들도 이와 똑같이 복된 방식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소서.
“이 기도를 사용해야 할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고난을 당하면서, 다른 모든 도움이 소용없음을 발견한 지치고 곤한 성도들이 하기에 아주 좋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해 고민에 빠져 있는 학생들도 종종 눈을 들어 위대한 교사이신 성령님을 바라보며 “여호와여 도우소서”라고 부르짖으면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영적인 전사들도 은혜의 보좌로 이 기도를 쏘아 올려 보냄으로써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천국 일을 하느라 바쁜 일꾼들은 이 기도를 통해 필요한 때 은혜를 받을 수 있으며, 의심과 불안에 빠져 그리스도를 구하고 있는 죄인들도 하나님께 이 기도를 드려 도우심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비단 이런 경우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소생시켜 주는 기도입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라는 기도는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고난을 당할 때나 수고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느 경우에나 다 드릴 수 있는 기도입니다. 여호와 안에서 도움을 발견할 수 있으니 여호와께 부르짖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맙시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진지하게 드리기만 한다면 그 기도는 분명히 응답됩니다. 하나님의 성품 자체가, 우리에게 그가 절대 그의 백성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의 남편이라는 그 관계가 우리에게 그의 도우심을 보증해 줍니다. 사실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한 것을 모두 다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엄숙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는 친히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칭찬의 생활화 2020년 7월 4일 토요일
매일매일 전개되는 당신의 운명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두말할 것 없이 필연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하나하나 선택한 당신의 모든 것이 모여서 운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운명이 반드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있도록 해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의 운명의 설계자는 타인도 아니고 바로 당신입니다. ‘운명에는 우연이 없다. 인간은 어떤 운명을 만나기 전에 스스로 그것을 만들고 있다.’ 영국의 교육자 토머스 윌슨입니다.
인생의 밭에 2020년 6월 20일 토요일
우리들의 일상은 원인과 결과를 반복하며 이루어집니다. 당신이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가 씨를 뿌리는 일과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 삶의 막바지에서 당신은 추수를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인생이라는 밭에 어떤 씨앗을 뿌리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과 같은 긍정의 씨앗이 있다.’ 베트남의 명상가 틱 낫한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