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한중수교 다음해인 1993년 여름에 중국을 처음 방문했다.
인천에서 여객선을 타고 천진으로 들어가 가까운 베이징은 물론,
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 등정도 했던 의미 있는 일정이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백두산을 10여 번 올랐으니, 나는 천지 복은 타고난 셈이다.
그해 여행에서 북한과 국경을 이루는 조선족마을인 ‘도문시’에서 일박을 했다.
호랑이를 세 마리나 잡았다는 유명한 김포수댁에서 그분과 밤새 얘기를 나눈 기억도 있고,
첫 중국여행이라서 그런지 잊지 못할 추억이나 장면들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두만강변에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회상할 증기기관차를 보았던 것이다.
기적소리에 돌아보니 하얀 수증기를 꾸역꾸역 뿜어내며 느릿느릿 역사로 들어오는 기차!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인 젊은 친구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야! 여명의 눈동자다!”
드라마에서 첫 회 처음부터 인상적으로 방영됐던 기차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두만강 건너 북녘 땅에서는 그때까지도 전기가 아닌 증기기관차를 운송수단으로 썼다.
중국여행을 하면서 [여명의 눈동자]를 떠올렸던 장면이 또 있다.
여옥의 강물 투신후 떠오른 장면은 그 유명한 계림의 리강이다.
또한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뒤로 하고 팔로군에 들어가 여러 활동을 전개하는 최대치,
그곳이 바로 경치가 천하에 으뜸이라는 계림인데, 2000년 겨울에 거기에서 여러 날 묵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독립운동가 여옥의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를 전개하던 상해,
731부대, 곤명, 소주 등 많은 장소를 다녔다. 물론 방영 이후에 이루어진 여행이다.
나 역시 이 수목드라마에 흠뻑 빠졌었는데, 30년 가까이 지나서
[여명의 눈동자]를 다시금 감상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것도 뮤지컬로 말이다.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은 독주회 등 서너번 갔었는데, 대강당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1998년 이덕화 주연의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에 부모님을 모셨으니 20년이 훌쩍 넘었다.
하여간 포토존에는 철조망도 설치해 놓았다. 대치와 여옥의 격렬한 철조망 키스는
대치의 뱀 잡아먹는 모습, 눈 속 지리산에서의 여옥과 대치의 죽음과 함께 3대 명장면이다.
뮤지컬에서는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있으니 주요사건 위주로 흐름을 재구성했다.
여옥이 대치에게 약을 주려고 산에 오르다가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으로 막을 올렸는데,
그 장면은 140분 후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는 순간에 재연된다.
대치의 품에 안겨 “그저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어째서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드라마에서도 여옥은 힘겹게 말한다. “왜.. 떠났어요?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여옥은 사랑하는 대치의 품에서 눈을 감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표정도 담았던 명장면이다.
드라마와 뮤지컬 사이에 여옥의 마지막 대사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한 남자를 사랑한 여옥의 소박한 꿈인 동시에, 시대의 아픔을 토한 항변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막바지인 1943년부터 시작해서 지리산에서의 빨치산 토벌로 마무리되는
격동의 시대 10년간을 읊은 대서사시로, 시대의 질곡을 여옥의 삶으로 응축시킨 작품이다.
배우들의 가창력과 연기에 감동하면서도 민족의 아픔인 만큼 마음 또한 무거웠다.
‘코로나19’ 때문인지 만석은 아니었지만, 막을 내릴 때는 객석 모두가 기립하였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유튜브로 다시 봤다.
대치가 죽어가면서 하림에게 남기는 말, “난 여옥이에게 해 준 게 하나도 없어.”
“난 열심히 살았어. 다시 산다 해도 그렇게밖엔 할 수 없을 거야”
“자네가 와줘서 고마워” “여옥이 아직 내 곁에 있지?” “그래, 그만 쉬고 싶어”
하림의 독백으로 36부작은 막을 내린다.
‘그해 겨울, 지리산 골짜기에 나는 사랑했던 여인과 내가 결코 미워할 수 없었던 친구를 묻었다.
그들은 가고 나는 남았다... 남은 나에겐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건 희망이라...
희망을 포기하지 하지 않는 사람은 이 무정한 세월을 이겨나갈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