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맞수의 훈훈한 미담 ‘양호와 육항’
최용현(수필가)
소설 삼국지는 황건적의 난(183년) 때부터 오나라의 멸망(280년) 때까지 거의 100년 동안의 이야기이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숨을 거두는 해(232년)가 딱 중간에 해당된다. 제갈량이 죽고 나서도 50년 정도 더 지속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소설 삼국지는 모두 마지막 제10권에서 제갈량이 죽고 나면 마무리 수순을 밟는다.
제갈량이 죽고 31년 후에 촉이 위에게 멸망하고(263년), 2년 후에 위가 진으로 바뀌고(265년), 다시 15년 후에 오가 진에게 멸망한다(280년). 후반 50년 동안에 새롭게 부각되는 인물은 전반 50년에 비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미미하다.
삼국지 후반부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인물들 중에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진과 오의 두 장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한 사람은 진의 양양을 지키는 도독 양호(羊祜)이고, 또 사람은 오의 명장 육손의 아들이면서 손책의 외손자인 진동장군 육항(陸抗)이다.
양호는 선정을 베풀어 그곳 양양 주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여러 장수들이 오를 얕보고 공격하자고 할 때마다, 적장 육항이 군사 부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양호는 육항이 버티고 있는 한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함부로 망동(妄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장수들과 함께 사냥을 할 때도 자신의 장졸들에게 절대로 국경 경계선을 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역시 국경 부근에서 사냥을 하고 있던 육항도 이 모습을 보고 양호의 군사들은 기율이 잘 서있으니 함부로 넘볼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양호는 사냥이 끝나면 잡은 짐승들 중 오군의 화살에 맞은 짐승들을 따로 골라내어 오군 진영에 돌려주었다. 육항은 적장 양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면서 잘 익은 술 한 말을 딸려 보냈다.
양호는 그 속에 독이라도 탔을지 어떻게 아느냐는 측근들의 우려에도, ‘육항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며 장수들과 함께 기꺼이 그 술을 다 비웠다. 그 후 육항이 감기몸살로 며칠 째 장막 밖을 나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은 양호는 손수 달인 약을 병에 담아 보냈고, 육항 또한 적장이 보낸 약을 의심하지 않고 다 마셔 마침내 병이 나았다.
그 무렵, 오주 손호는 나날이 황음무도(荒淫無道)하고 흉포해져서 충간하는 신하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등 폭정을 일삼았다. 손호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불러 점을 쳐보게 했는데, 점쟁이도 죽고 싶지는 않았는지 아주 멋진(?) 점괘를 내놓았다.
“폐하, 길조입니다. 머지않아 푸른 해가리개가 붙은 수레를 타고 낙양으로 들어가실 것입니다.”
손호는 아주 기꺼워하며 오가 곧 진을 멸망시키고 한(漢)의 옛 땅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을 거라고 해석하였다. 그리하여 국경을 지키는 육항에게 강구에서 군사들을 조련시켜 진의 양양을 공격하여 빼앗으라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적장 양호가 있는 한 양양을 공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육항은 지금은 진을 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오주로서 덕을 쌓아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줄 것을 간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상소문을 읽은 오주 손호는 벌컥 화를 내며 ‘육항이 변경을 지키면서 적과 내통한다더니 오늘 보니 과연 그렇구나!’하면서 육항의 병권을 몰수하고 벼슬도 장군에서 사마로 낮춰버렸다. 그 자리엔 다른 사람을 보냈다. 오의 든든한 기둥이 뽑히고 말았지만 아무도 이의 부당함을 간하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듣고 양호는 드디어 오를 칠 때가 왔다는 표문을 낙양으로 보냈다.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니라며 반대하는 중신들이 많아 흐지부지되었다. 마침내 양호는 병에 걸려 벼슬을 내놓고 낙향했다. 그의 병이 깊어지자 진 황제 사마염은 몸소 양호의 집으로 병문안을 갔다. 그리고 그때 오를 치자는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며 누가 그 뜻을 이을만한지 물었다.
“우장군 두예라면 능히 그 일을 해낼 것입니다.”
양호는 가까스로 그렇게 말하고 숨을 거두었다. 사마염은 양호에게 태부를 추증했다. 양양 사람들은 모두 양호의 죽음을 슬퍼하며 사당을 짓고 비를 세워 철마다 제사를 지냈다.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그 비문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지라 그 비는 타루비(墮淚碑)로 불리었다.
이 무렵 오의 명장 육항도 병이 들었다. 임종이 가까워오자 오주 손호에게 글을 올렸다.
“… 만일 적군이 함선을 띄워 물의 흐름을 타고 쳐내려온다면 다른 곳에서 구원병이 와서 위급한 상황을 풀어주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속히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육항이 죽자, 드디어 진주 사마염은 양호가 천거한대로 두예를 양양으로 보내 오를 공략할 준비를 하게 했다. 두예는 좌구명의 춘추전(春秋傳, 左傳)을 한시도 놓지 않고 끼고 다닌다고 당시 사람들에게 ‘좌전에 미친 사람’ 즉 ‘좌전벽(左傳癖)’으로 불리어진 장수다.
두예와 익주자사 왕준이 양자강을 따라 침공해왔다. 육항의 염려대로였다. 오에서는 장강의 물속에 쇠말뚝을 박아 쇠사슬을 가로질러놓고 진의 함선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진에서 뗏목을 만들어 먼저 떠내려 보내자 쇠말뚝들이 모두 쓰러져버렸고, 쇠사슬들도 모두 물속에 가라앉아버렸다.
진의 대군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고 내려와 황실이 있는 석두성을 포위하자, 오주 손호는 전에 촉주 유선이 그랬듯이 스스로 관을 진 채 신하들을 이끌고 항복했다. 명장 육항이 있었더라면 오나라가 이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손호는 점쟁이의 예언대로 낙양에 들어갔지만, 푸른 해가리개가 붙은 수레를 타는 대신 함거(檻車)를 타고 끌려갔다. 마침내 오를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주 사마염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모두 태부 양호의 공이다. 그가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이 너무도 애석하구나!”
양호와 육항, 두 장수의 역할은 각자 그렇게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두 맞수는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소설 삼국지의 대미(大尾)에서 훈훈한 미담을 남기고 그렇게 사라져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