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면 /한용운
사랑의 속박이 꿈이라면
출세의 해탈도 꿈입니다
웃음과 눈물이 꿈이라면
무심(無心)의 광명도 꿈입니다
일체만법(一切萬法)이 꿈이라면
사랑의 꿈에서 불멸을 얻겠습니다
<해설> 1926년에 발간된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의 실린 시이다.
이 시에서 해탈, 일체만법, 불멸은 모두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써 사용되었다. 사랑이 불교의 진리를 의미한다면 불교에서 진리에서 얻으려 한다는 문맥과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이 작가에게는 불교적 섭리를 포한한 모든 것보다도 의미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해야 할 것이다.
작가가 늘 정관(正觀)하고 투시(透視)해 온 구도자적 삶 속에 견지(堅持)하고 있는 깊이있는 불심(佛心)과 더불어, 따스한 인간미의 오묘한 어우러짐을 간과(看過)할 수 없다.
기왕에 모든 것이 모두 꿈만 같은 미망(迷妄)의 세계라면, 차라리 사랑의 꿈에서 불멸(不滅)을 얻겠다는 인간적 호소가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차가운 시대에 사랑마저 없다면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황량(荒凉)하고 쓸쓸할까. (안희선, 내가 읽은 시)
<대전시 중구 보문산 사정공원 한용운 시비, 시제는 '꿈이라면'>
◇ 한용운의 시
◈ 당신을 보았습니다/한용운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구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將軍)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激憤)이 스스로의 슬품으로 화하는 찰나(刹那)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해설> 1926년에 발간된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의 실린 시이다.
이 작품은 기미독립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당신'이란 한용운의 다른 시에 흔히 보이는 님과 같은 존재이다. 그는 '나'를 떠나 있고, '나'는 그를 잊을 수가 없다. '당신'이 없으므로 해서 '나'는 사람다운 삶을 부인당하는 치욕 속에 있기 때문이다. 제2, 3연에서 그 모습이 나타난다.
제2,3연에 보이듯이 '나'에게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며, 집과 민적이 없다. 이러한 '나'에 대해서 부자인 '주인'과 권력자인 '장군'은 인격적 존엄을 거부하고 치욕을 가한다. 이와 같은 대립 관계는 넓게 해석하면 인간 세계의 타락한 모습을 암시하는 것이며, 좁게는 민족의 삶과 존엄이 박탈된 식민지하의 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타락한 세계, 치욕적이 삶 속에서 '나'는, 윤리니 도덕이니 법률이나 하는 것들은 겉으로 그럴싸한 명분을 늘어놓기는 하지만, 사실은 힘센 자와 가진 자들을 위하여 약하고 없는 자들을 억누르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지고, 퇴폐와 허무의 삶 속에 빠져 버리고 싶기도 하고, 삶과 역사 자체를 부정해 버리고도 싶지만, 그러한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넘어서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된다.
임이 떠나서 침묵하는 시대, 즉 일제 식민지시대에 '나'는 거지와 인격이 없는 노예로서 칼과 황금을 가진 압제자에 의해 핍박받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한 싸움이 슬픔으로 화할 때나, 허무로 빠질 때마다 '당신'을 보게 된다. 이 때의 당신(임)은 세상이 현실적으로 아무리 타락하고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사람은 바로 이 현실에서의 어려운 싸움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정의와 선에도 다다를 수 없음을 암시하여 주는 존재이다. 현실의 역사가 모두 정의로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바로 그 역사 안에서 참된 가치를 이루려는 모색의 삶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이 작품에 깃들어 있는 한용운의 역사관이다.(현대시목록, 인터넷)
◈ 나의노래/한용운
나의 노랫가락의 고저장단은 대중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속의 노래곡조와는 조금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노래가 세속 곡조에 맞지 않는 것을 조금도 애달파하지 않습니다.
나의 노래는 세속의 노래와 다르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까닭입니다.
곡조는 노래의 결함을 억지로 조절하려는 것입니다.
곡조는 부자연한 노래를 사람의 망상(妄想)으로 도막쳐 놓는 것입니다.
참된 노래에 곡조를 붙이는 것은 노래의 자연에 치욕입니다.
님의 얼굴에 단장을 하는 것이 도리어 흠이 되는 것과 같이 나의 노래에 곡조를 붙이면
도리어 결점이 됩니다.
나의 노래는 사랑의 신(神)을 울립니다.
나의 노래는 처녀의 청춘을 쥐어짜서 보기도 어려운 맑은 물을 만듭니다.
나의 노래는 님의 귀에 들어가서는 천국의 음악이 되고 님의 꿈에 들어가서는 눈물이
됩니다.
나의 노래가 산과 들을 지나서 멀리 계신 님에게 들리는 줄을 나는 압니다.
나의 노랫가락이 바르르 떨다가 소리를 이르지 못할 때에 나의 노래가 님의 눈물겨운
고요한 환상으로 들어가서 사라지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압니다.
나는 나의 노래가 님에게 들리는 것을 생각할 때에 광영(光榮)에 넘치는 나의 작은 가슴은
발발발 떨면서 침묵의 음보(音譜)를 그립니다.
<해설> 1926년에 발간된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의 실린 시이다.
시적 화자는 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임은 화자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세속적인 것과 신성(神性)의 갈등과 대립을 통해 시인의 초월적 가치의 지향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현대시작품, 인터넷)
◈ 정천한해情天恨海()/한용운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情) 하늘을 따를소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恨) 바다만 못하리라.
높고 높은 정(情) 하늘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손이 낮아서
오르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한(恨) 바다가
병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짧아서
건너지 못한다.
손이 자라서 오를 수만 있으면
정(情) 하늘은 높을 수록 아름답고
다리가 길어서 건널 수만 있다면
한(恨) 바다는 깊을수록 묘하니라.
만일 정(情) 하늘이 무너지고 한(恨) 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정천에 떨어지고 한해에 빠지리라.
아아 정(情) 하늘이 놓은 줄만 았았더니
님의 이마보다는 낮다.
아아 한(恨) 바다가 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무릎보다는 얕다.
손이야 낮든지 다리야 짧든지
정(情) 하늘에 오르고 한(恨) 바다를 건너려면
님에게만 안기리라.
<해설> 1926년에 발간된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의 실린 시이다.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는 '정(情)의 하늘'과 '한(恨)의 바다'이지만, 그 곳은 가을 하늘보다 높고 봄 바다보다 깊어 시적 화자는 결코 갈 수가 없다. 이렇게 제 자신을 미약한 존재로 드러내고 있는 시적 화자의 숨은 의도는 '정천 한해'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이나 미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님'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찬 마음은 가을 하늘보다도 높고, 가슴에 사무친 한은 봄 바다보다도 깊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감정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아름답고 오묘한 것이라 하지만, 사바 세계를 헤매는 인간들로서는 그것을 실천하기 어렵고, 연모의 정으로 깊어진 원한 또한 쉽게 버리지를 못한다. 따라서 시적 화자는 지혜의 높이인 '손'이 낮고, 지혜의 깊이인 '다리'가 짧은 모든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발견하고 절망한다. 그러므로 사랑이 진정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감정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가슴에 사무친 한이 사랑으로 승화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깊을수록 묘한' 것임을 아는 시적 화자는 사랑의 감정이 없어지고, 사무친 한이 사라진다면, 차라리 '정천에 떨어지고 한해에 빠지는' 절망의 질곡에서 고통받겠다고 외친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제시한 것으로, 그리움의 대상이나 원한의 마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사랑의 감정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그리움에 사무친 한이 세상 어느 것보다 깊고 절실한 것인 줄 알았는데, '님'의 초월적 세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님'의 절대성을 인식하게 된 시적 화자는 마침내 '님에게만 안기는' 완전한 귀의의 방법을 통해 정한(情恨)을 극복하고 '님'의 초월적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이 시는 대립적 개념인 '정(情)'과 '한(恨)'이 하나로 통합되어 '님'이라는 초월적 존재로 귀결되는 과정 즉, 대립적 관계에서 합일적(合一的) 경지로의 이행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유한적 정한의 세계를 철저히 부정하고 극복함으로써 초월적 세계로의 승화를 꿈꾸는 시적 화자의 소망이 잘 나타나 있다. (양승국, '한국현대시 300선')
◈ 무제(無題) 13수/한용운
1.
이순신을 사공 삼고
을지문덕을 마부삼아
파사검(破邪劍)높이들고
남선북마(南船北馬)하여 볼까.
아마도 님 찾는 길은
그뿐인가 하노라.
첫댓글 ‘The last rose of summer(여름날의 마지막 장미)’는 아일랜드 시인 토머스 무어(Thomas Moore)가 1805년에 지은 시이다. 이 시에 존 스티븐슨 경(Sir John Stevenson)이 아일랜드 민요에서 따온 아름다운 멜로디를 붙였다. 명시에 날개를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