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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 1 강 아산UBF 메시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말씀 / 마가복음 1:1~15
요절 / 마가복음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은 마가가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전하는 대상은 강한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가혹한 기독교 박해가 있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 했습니다. 실제 그리스도 인들이 사자굴에 던져지기도 하고 화형당해 로마의 밤을 밝히는 일들이 자행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얻은 성도들이 그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어땠을까요? 이를 견딜만한 힘과 나아갈 방향이 필요하였습니다. 저자 마가는 이런 성도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였습니다. 그도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고, 연약함을 노출한 적도 여러번입니다. 마가복음에 예수님이 체포당하시자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한 청년으로 기록된 사람이 바로 마가 자신입니다. 그의 연약함은 사도행전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선교여행 중에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않은 마가와는 같이 못다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마가도 시간이 지나 하나님의 일에 유익한 사람이라 바울이 인정할 만큼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우리가 다 연약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이런 우리가 어떻게 살떨리는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 마가복음 말씀을 통해 그 비밀을 배우고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 말씀은 마가복음 전체의 제목이자 주제로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로마인들은 완전무결하고 현명한 신의 탄생을 묘사할 때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기쁨의 소식을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승리하시고 죄와 사망의 그늘아래에 놓인 우리를 구원해 내셨습니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으니 복음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광야와 같이 메마르고 막막한 길이요 끊임없는 갈등과 싸움의 연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인이 사함받고 죽을 인생이 구원받는 복음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부터 부활하실 때까지의 사역을 복음의 시작이라 본다면 사도들을 통해 복음의 줄기가 형성되어 내려왔고, 주의 사람들을 통해 지금도 복음 역사가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보여주며 지금 우리가 가야할 방향과 그 마지막에 얻을 영광이 어떠한지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시선이 복음의 시작이신 예수님을 향하기를 기도합니다.
1.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2~4절을 보십시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역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복음 역사는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따라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 앞에 주의 길을 준비하는 사자가 먼저 와서 그의 길을 준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언된 대로 세례요한이 예수님 앞에 먼저 왔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성전에 있지 않고 광야로 갔습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주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광야는 완전히 사막화가 된 상태의 땅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광야는 살아갈 어떤 희망도 찾기 어렵습니다. 광야에 가보신 분은 그 막막함에 절망감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광야에는 자신의 허물과 연약함으로 떠밀려 갔거나 스스로 사회를 등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야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곳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
지금 이같은 광야에 살며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지금 우리나라 청년들이 그러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일할만한 괜찮은 일자리가 없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옮겨갔습니다. 몇몇 글로벌 기업들과 관련업체들이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그 곳에 일할 수 있는 인력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청년들은 열심히 공부해도 적당히 들어갈만한 만만한 회사가 없습니다. 임상병리학과 학생들은 처음 입학할 때 서울에 있는 빅파이브 병원에 들어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런데 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규모가 작은 로컬 병원들은 일은 힘들고 페이는 적습니다. 학생들은 3학년, 4학년 올라갈 때 쯤되면 이런 상황을 알고 상담을 요청하고 다른 길을 찾으려 휴학을 합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다시 돌아옵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빨리 대학을 마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를 기대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청년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 아무도 돌보지 않고 관심주지도 않습니다. 메마르고 막막하고 절망스러운 것이 광야와 같은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제대로 잠은 자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 지 모릅니다. 혹시 알게 되어도 실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외면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 시대 양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양들을 위해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원래 세례 요한은 금수저였습니다. 로마의 비호아래 유대교와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에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며 좋은 옷 입고 화려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도 제사장으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고 광야에 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풍요로운 물질문화와 신분의 혜택을 누리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명을 따르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했습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할 때 사람들이 나아와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과 다르게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는 힘이 있었고 은혜가 넘쳤습니다. 5절을 보면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한 소문이 온 유대지역에 퍼졌습니다. 회개는 광야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 유대사회에서 일반적인 삶을 사람들도 죄문제에 시달렸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세례 요한의 메세지는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의 사람들을 깨웠습니다. 전국에서 대대적인 회개 운동이 일어났고, 백성들은 세례 요한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이 일을 하였습니다. 낙타털 옷은 길게 축 늘어진 낙타털로 짠 볼품없는 옷으로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주로 입는 것이었습니다. 옷이 늘어지니 허리에는 가죽 띠를 매어 바람이 세게 불거나 급하게 달려갈 때도 옷이 펄럭거리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메뚜기는 하나님께서 식용으로 허용하신 곤충 중 하나로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나 자연 재해로 소출이 줄어들 때 대용 식품으로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석청은 야생상태의 벌꿀입니다. 이런 것들은 세례 요한의 의식주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생활의 초점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사명 중심이었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많은 사람이 세례 요한에게 와서 세례받기 원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내 뒤에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실 것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였습니다. 주인이 밖에서 돌어오면 가장 낮은 종이 몸을 굽혀 주인의 신발끈을 풀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뒤에 오실 예수님의 종으로서도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생명역사의 비밀입니다.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의 상황이 광야와 같습니다. 이를 알고 그 속에서 함께 문제를 마주하고 도와야할 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좋은 의도나 방법으로는 도울 수 없습니다. 복음 역사는 내가 잘 해보려한다고 해서 할 수 없습니다. 나 역시도 완벽하게 무능하고 썩었고 하나님 앞에 선하거나 의로운 것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본질적으로 아무 소망이 없는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때 오직 은혜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생명이 살아나는 복음 역사는 성령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 세례는 우리의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를 성령과 연합하게 하고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게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생으로 변화되게 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를 알았고 그렇게 그 시대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목자는 말씀에 따라 한 영혼이 자기 죄 문제를 인식하도록 도와야합니다. 죄를 죄인 줄 알아야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오기 때문입니다. 그 때 자기 지혜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이 주시는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합니다. 자신이 그 어떤 선함이나 의로움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탄식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여야합니다. 예수님을 앞에 두고 예수님으로만 구원얻는 은혜의 역사가 지금 우리 가운데 시작되었고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역사에 동참하는 믿음의 가정들, 학생리더들 가운데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복음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고 또 이루어져가기를 기도합니다.
2.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복음 역사의 주체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역사를 어떻게 이루어 가십니까?
9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풀며 예수님을 전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한이 주는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로부터 시작된 회개의 역사를 이어가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죄없으신 예수님이 죄인된 우리와 연합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셨습니다. 또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죄인의 모습이 되셔서 겸손히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을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인증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12,13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광야는 위험의 한 복판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실 복음 사역의 시급성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시기 전에 시험받는 우리와 같이 먼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시험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셔야 했습니다. 이 모습은 로마의 강한 박해를 받는 신자들의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그들은 생사의 위협 가운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에서 끊임없이 시험 받아야 했습니다. 마가는 이런 위험 천만한 길을 가는 이들에게 우리 주 예수님께서 먼저 그 길을 가셨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신자는 사탄의 시험을 이기시고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가운데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도 누가 나의 생계를 책임져주지 않는 절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40, 50대 중년남성도 부업으로 짬짬이 음식 배달을 하고 대리운전을 해야하는 현실입니다. 학생들은 교수라고 잘 버는 줄 아는데 전혀 아닙니다. 저도 조카가 배달일을 할 때 “삼촌도 방학 동안 알바로 해보실래요?” 하는 말을 듣고 잠깐 솔깃하였습니다. 물가는 오르고 기본생활을 해나가기에 버거운 현실을 살면서 예수님을 믿고 주의 일을 하려할 때 생존의 위협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14~1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리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요 목자로 활동하던 요한이 잡혔습니다. 이 후에 그는 헤롯왕에 의해 참수되어 순교하였습니다. 사람의 역사가 마침표를 찍은 것입니다. 사람이 노력하고 힘쓰는 시대는 저물고 바야흐로 예수님의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때가 찼다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에 무르익은 때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탄이 군림하고 사람을 종으로 부리며 사망으로 이끌어 가던 시대가 끝이 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셔서 다스리시고 주의 백성들을 생명얻게 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우리가 할 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일입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사람 중심, 사람이 어떻게 잘 해서 사람이 원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겠다는 모든 생각과 계획과 노력을 철저하게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선하지도 의롭지도 않습니다. 사람 중심의 세상 가치관은 완전히 썩었고 불의하며 불공정 합니다. 이기적인 나의 관점, 편협한 생각의 패턴에 따른 일체의 노력을 내려놓는 것, 이 세상에 속한 죄악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자기 좋은대로 살아갈 때 죄 짓고 죄로 인한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나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예수님께로 방향을 돌릴 때 소망이 있습니다.
복음을 믿으라. 복음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죄로 죽을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구원의 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죄와 사망을 모두 이기시고 주를 믿는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십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한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생명얻고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말씀은 이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주의 백성이 된 사람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눈 앞에 위기가 있고 생존의 두려움으로 방향을 잃어가는 지금 시대가 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 우리 앞에 있는 고난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 중심, 나 중심의 일체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의 도구가 될 때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복음 역사, 생명이 살아나는 일에 쓰임받을 줄 믿습니다.
결론입니다. 죄사함과 구원의 능력이 오직 예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적인 위협과 어려움 앞에 인간적인 길과 방법을 찾으려는 마음을 회개하고, 우리의 구원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광야같은 현실에 놓인 이 시대 캠퍼스 청년들에게 주와 복음을 심는 일에 집중하기를 기도합니다. 주의 복음역사가 우리 캠퍼스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아산 UBF
아산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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