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噫), 홍서(弘誓)의 강연(强緣)은 다생(多生)에도 만나기 어렵고 진실(眞實)의 정신(淨信)은 억겁(億劫)에도 얻기 어렵다. 때마침 행신(行信)을 얻거든 멀리 숙연(宿緣)을 기뻐하라.
만약 또다시 이번에 의망(疑網)에 덮여 가리게 되면 되돌아 다시금 광겁(曠劫)을 경력(逕歷)할 것이다
진실이었다 섭취불사(攝取不捨)의 진언(眞言) 초세희유(超世希有)의 정법(正法) 문사(聞思)하여 지려(遲慮)하지 말라 (「敎行信証」)
용어 해설
○ 홍서(弘誓) ― 아미타불의 본원 (서원・약속)
○ 강연(强緣) ― 아미타불과의 강한 인연.
○ 정신(淨信) ― 타력의 신심을 말함.
○ 행신(行信) ― 타력의 본원을 듣고 신심을 받는 일. 진실의 정신(淨信).
○ 숙연(宿緣) ― 아미타불과의 과거세의 인연.
○ 의망(疑網) ― 의심. (여기에서는 무명의 어둠을 말함)
○ 경력(逕歷) ― 세월을 경과함.
○ 섭취불사(攝取不捨) ―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불어로서, 아미타여래의 광명 속에 염불의 중생을 거두어 버리지 않음. 구제함을 뜻함.
○ 진언(眞言) ― 진실의 말씀.
○ 초세희유(超世希有) ― 세상을 초월함.
○ 문사(聞思) ― 듣고 생각함.
○ 지려(遲慮) ― 게을리 생각함
아아 …… 어찌된 불가사의인가. 親鸞은 지금 다생억겁의 오랜 동안 구해왔던 환희의 생명을 얻었다. 이는 전적으로 미타의 강한 힘에 의해서였다.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금생에도 무명의 어둠이 개지 않은 채 끝나게 되면 미래 영원토록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떠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속히 이 진실을 모두에게 전해야만 하겠다. 알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러한 광대무변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일반 독자에게는 귀에 미숙한 말이 늘어 놓아져 납득하기 어려울것 같아 조금 자세히 설명할까 한다.
「아아!」라는 감탄은 일찍이 체험한 일이 없는 놀람과 기쁨이 언어로 형용될 수 없는 말이다.
「홍서(弘誓)의 강연(强緣)」이란 “어떻게 해서든 고뇌의 근원을 단절하고 인생의 목적을 달성시켜 주고 싶다”는 강렬한 미타의 서원을 말함이요, 그 맹서대로 고뇌의 근원이 단절되고 인생의 목적을 성취한 환희의 생명을 진실(眞實)의 정신(淨信)으로 일컫는다.
그것은 이제 백 년이나 이백 년을 구해서 얻어지는 사소한 행복이 아니었다고 알게 되므로「다생(多生)에도 만날 수 없는 것을 만났다, 억겁(億劫)에도 얻기 힘든 것을 얻었다」고 말한 것이다. 다생 억겁동안 구해도 얻어지지 못한 것이 얻어졌기 때문에「아아!」하고 경탄한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절실히, 어떤 먼 과거서부터의 미타의 배려가 있었던가 하고,
「때마침 행신(行信)을 얻거든 먼 과거의 숙연(宿緣)을 기뻐하라」고 감읍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구제된 산이 높은만큼 무명의 골의 깊이에 전율하고 이렇게 탄식도 한다.
「만약 또다시 이번에 의망(疑網)에 덮여 가리게 되면 되돌아 다시금 광겁(曠劫)을 경력(逕歷) 할 것이다」
고뇌의 근원「무명의 어둠」을 여기에서는 의망(疑網)이라 말하고,
「만약 또다시 금생에도 무명의 어둠이 개지 않은 채 끝나게 되면 미래 영겁 고통의 계속에 시달릴 것이 틀림이 없다. 위험한 장면이었다」
눈감아 합장하고, 법열(法悅)의 기쁨에 에워싸인 聖人이 눈에 선하다.
「진실이었다 섭취불사(攝取不捨)의 진언(眞言) 초세희유(超世希有)의 정법(正法) 문사(聞思)하여 지려(遲慮)하지 말라」
「진실이었다! 정말이었다. 미타의 맹서에 거짓은 없었다. 모두 들어 주기를 바란다 이 親鸞이 산 증인이다. 속히 미타의 서원 진실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인생의 목적 정도가 아니다. 다생영겁(多生永劫)의 목적을 달성해 받았다는 멋진 감격에 찬 고백임을 알 수 있다.
비(大悲)의 원선(願船)을 타고 광명(光明)의 광해(廣海)에 뜨면 지덕(至德)의 바람 조용히 중화(衆禍)의 파도 바뀌다
『(敎行信証)』
용어 해설
○ 대비(大悲) ― 아미타불의 대자비.
○ 원선(願船) ― 아미타불의 본원(서원)을 배에 비유한 것.
○ 지덕(至德) ― 아미타불의 위에 없는 공덕(나무아미타불의 명호를 지칭)
○ 중화(衆禍) ― 모든 화근
대비(大悲)의 원선(願船)을 타고서 보는 인생의 고해는, 천파만파 빛나는 밝은 광해가 아닌가. 순풍에 돛을 올린 항해와 같이 얼마나 산다는 것이 멋진 일인가」
이는 확실히 聖人의 눈부시게 빛나는 승선기라 할 수 있다.
「대비(大悲)의 원선을 타고」란「아미타불의 서약대로 인생의 목적을 성취한」명랑한 선언이다.
인생의 목적은 결코 애매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다.
「광명(光明)의 광해(廣海)에 뜨면」이란 어두운 인생이 밝게 바뀐 기쁨이다.「어둠」에 울었던 자만이「빛」을 만난 웃음이 있고「가라앉은」자만이「떠오른」환희가 있다.
쓰라린 고통에도 왜 살아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른다. 단지 살기 위한 삶이라면 요정의 활어조에 헤엄치는 물고기와 어디가 다를 것인가. 죽음을 기다릴 뿐인 생(生)이라면 가라앉아 있다 해도 당연하다.
태어난 의미를 모르고 번민에 괴로워한 聖人이 “아, 태어났기에 좋았다”고 떠오른 광명의 광해란 어떠한 인생이었던가.
성인의 대답은 확신에 차있고 간결하다.
「지덕(至德)의 바람 조용히 중화(衆禍)의 파도 바뀌다」
넘치는 기쁨에 빛나고 어떤 고난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늠름한 모습이 명확하게 내세워져 있다.
「지덕(至德)의 바람 조용」한 세계를 다음과 같이도 말하였다.
참으로 불은(佛恩)의 심중(深重)함을 염(念)하고 인륜(人倫)의 농언(哢言)을 부끄러이 하지 않는다 (『敎行信証』)
용어 해설
○ 인륜(人倫) ― 인간
○ 농언(哢言) ― 지껄임. 무턱대고 하는 말.
「광대무변한 미타의 은혜를 입으면서 대해에 물 한 방울 만큼도 보답 못하는 親鸞은 귀신인가 악마인가.세간의 비난중상 따위로 뒷걸음질 치겠는가」
한층 더 세차게 덮쳐드는 난도해의 파도도 심원한 불은(佛恩)에 감읍하고 참회와 환희로 극복하는 聖人의 전진을 막지는 못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고통스러워야 할 파란만장도 행복으로 기뻐하는 원인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독석(愚禿釋)의 신란(親鸞) 참으로 기쁘도다. 서번(西蕃)․월씨(月氏)의 성전(聖典), 동하(東夏)․일역(日域)의 사석(師釋)에 만나기 힘든 것을 지금 만나게 되었다. 듣기 힘든 것을 이미 듣게 되었다. 진종(眞宗)의 교․행․ 증 (敎․行․証)을 경신(敬信)하고 더욱이 여래(如來)의 은덕(恩德)의 깊음을 알았노라
이로써 들은 바를 기뻐하고 얻은 바를 감탄하노라
(『(敎行信証)』總序)
용어 해설
○ 우독석(愚禿釋) ― 우독(愚禿)은 극악 최하의 어리석은 자라는 뜻이며, 석 가모니불의 제자로서의 법명.
○ 서번․ 월씨(西蕃․月氏) ― 중국에서 서쪽에 있는 나라 즉 인도 등 서역 을 지칭.
○ 동하(東夏) ― 지나(支那) 즉 중국.
○ 일역(日域) ― 일본.
○ 사석(師釋) ― 스승들의 경전의 논석.
「아아 참으로 행복하도다 親鸞. 어떤 실수에서인가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것을 지금 만나게 되었다. 절대 들을 수 없는 것을 지금 듣게 되었다. 석가께서 아무리 미타의 서원을 가르치셨다 해도 전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무명의 어둠이 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널리 불법은 전해져 있지만 미타의 서원 불가사의를 가르치는 사람은 드물다. 그 희유한, 미타의 서원을 설한 인도․중국․일본의 고승들의 교도(敎導)를 지금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행복 무엇에 비유할 것인가. 아무리 기뻐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알게 된 것은 아미타여래의 깊은 자비의 은덕이다. 어떻게 이를 전할 수 없는 것인가」
비로소 『敎行信証』을 기초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심정을 이렇게 말하고 6권의『교행신증』은 쓰기 시작 되었다.
기쁘도다. 마음을 홍서(弘誓)의 불지(佛地)에 세우고 생각(念)을 난사(難思)의 법해(法海)에 흘리다.
깊이 여래(如來)의 긍애(矜哀)를 알고 진심으로 사교(師敎)의 온후(溫厚)을 우러르다.
경희(慶喜) 마침내 이르러 지효(至孝) 더욱더 무겁다. (중략)
오직 불은(佛恩)의 깊음을 염(念)하고 인륜(人倫)의 비웃음(嘲)을 부끄러이 하지 않는다(不恥)
혹여 이 글을 견문(見聞)한 사람은 신순(信順)을 인(因)으로 하고 의방(疑謗)을 연(緣)으로 하여 신요(信樂)를 원력(願力)에 나타내 묘과(妙果)를 안양(安養)에 나타낼지어다 (『敎行信証』後序)
용어 해설
○ 홍서(弘誓) ― 미타의 넓은 서약. 즉 미타의 본원(서원).
○ 불지(佛地) ― 본원 타력의 대지. 즉 본원을 지칭함
○ 난사(難思) ― 상상도 할 수 없는.
○ 법해(法海) ― 본원의 깊음을 바다에 비유한 것.
○ 여래(如來) ― 眞如 에서 來現한 사람. 즉 부처. 佛 = 如來.
○ 긍애(矜哀) ― 가련하게 여김.
○ 사교(師敎) ― 스승의 가르침.
○ 온후(溫厚) ― 온화하고 정이 두터움.
○ 경희(慶喜) ― 기쁨.
○ 지효(至孝) ― 지극한 효성.
○ 신순(信順) ― 믿고 따름.
○ 의방(疑謗) ― 의심하고 비방함.
○ 신요(信樂) ― 미타의 섭취불사(攝取不捨)의 구제에 의한 대안심(信), 대 만족(樂)의 마음. 즉 절대의 행복・무애의 일도(無碍一道)․무명의 어둠이 깨지고 정토 왕생이 결정된 경지.
○ 원력(願力) ― 본원력(本願力)이라고도 하며 원력의 힘.
○ 묘과(妙果) ― 미타에 구제된 신묘한 결과. 신요(信樂)로 이루어진 결과.
○ 안양(安養) ― 아미타불 극락 정토의 별칭.
「옛날 중국 초(楚)나라의 한 어리석은 자가 가보인 양날검을 몰래 가지고 나와 급류에 띄운 배 위에서 잘리는 시험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치게 잘리는 힘의 반동에 칼은 날아가 수중으로 풍덩 떨어지고 말았다. 배는 자꾸 흘러간다. 놀란 그는 즉시 칼이 떨어진 뱃전에다 주머니칼로 표시를 깊이 새기고 “어휴, 이제 칼의 소재는 안심이다” 라며 중얼거렸다고 한다. 새긴 표시의 이동이 염두에 없는 어리석음을 웃었던 이야기 일 것이다.
돈과 재산을 힘으로 하는 사람은 돈과 재산을 잃었을 때 전도(顚倒)한다. 명예와 지위를 힘으로 하는 사람은 그것들이 없어졌을 때 실추(失墜)한다. 부모와 자식을 힘으로 하는 사람은 부모와 자식을 여의였을 때 도괴(倒壞)된다.
신념을 힘으로 하는 사람도 신념이 흔들렸을 때 또한 붕괴(崩壞)한다.
허물어지는 것에다 세우는 인생은 박빙을 밟는 거와 같이 불안하지만, 마음을 쓰러지지 않는 불지(佛地)에 세워 불가사의의 세계에 소생한 親鸞은 얼마나 행복한 자란 말인가. 더욱더 아미타여래의 자애의 깊이를 알게 돼 스승의 가르침, 높은 은혜를 추앙하지 않을 수 없다.
무한의 기쁨은 보답할 수 없는 親鸞을 울리고 있다. 이 미타의 대은을 생각할 때 세간의 치욕 같은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사람에는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비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쪽이나 그것을 인(因)으로 하고 연(緣)으로 하여 미타의 구제를 만나 미래 영원의 행복을 획득하여 주었으면 한다. 그리 염원할 뿐이다」
이렇게 기술하고 『敎行信証』은 붓을 놓았다.
「만나기 힘들게 지금 만나게 되었다」
「듣기 힘들게 이미 듣게 되었다」
「얻은 바를 감탄한다」
「경희(慶喜:기쁨) 마침내 이르러 지효(至孝)더욱더 무겁다」
등의 확언은「그렇게 생각한다」든가「그렇게 안다」와 같은 애매한 것이 아닐 것이다. 타는 듯한 정열의 기쁨이 몸에 가득 넘쳐 있음이 씽씽하게 전달되어 온다. 그래서 다음의 은덕찬(恩德讚)도 신선하고 아름답게 다가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