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의 홍법사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에는 홍법사(弘法寺)라는 사찰이 있다. 마을 이름도 홍법사가 있기에 ‘홍법굴’, ‘홍법동’이라고도 부른다. 홍법사는 1611년 홍(洪)씨 문중에서 창건하였다고 하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홍법사의 약사전(藥師殿) 안에는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등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이 삼존불은 명나라에서 보내왔다고 한다. 또한 약사전 입구 좌우에는 돌배에 실려서 왔다는 '무쇠사공'이 한 개씩 있으며, ‘홍랑각’ 전각 외벽에는 홍랑 설화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명나라는 조선에게 도와준 대가를 요구하였다. 명나라가 요구한 것은 조공뿐만 아니라 조선의 처녀들도 바치라고 했다. 그래서 각 마을마다 명나라에 공녀로 갈 처녀들을 찾기 시작했다. 홍법리에도 관원들과 함께 명나라 사신이 찾아왔다. 관원들은 이미 홍법리에 살고 있는 홍만석의 딸 ‘홍랑’ 이 미모가 뛰어나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결국 홍랑은 명나라로 가야 했다. 홍랑의 부모도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딸을 보내야 했다. 홍랑이 명나라로 떠나는 날, 눈물을 흘리면서 부모님께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저에게 소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래, 말해 보거라.”, “제가 명나라로 떠날 때, 모래 세 말과 물 세 말, 그리고 대추 세 말을 주십시오.”
홍랑은 명나라로 갔고, 그녀는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 되었다. 홍랑은 명나라에 도착할 때부터 말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심지어는 명나라 땅을 밟지도 않으려 하였고, 음식도 먹지 않으려 하였다. 그리고 홍랑은 가는 곳마다 고향을 떠나면서 가져온 모래를 뿌렸다. 그리고는 그 모래를 밟고 다녔다. 배가 고프면 고향에서 가져온 대추를 먹었다. 그리고 목이 마를 때면 고향에서 가져온 물을 마셨다. 시간이 흘러, 홍랑은 점차 수척해지고, 결국 병에 걸렸다. 홍랑은 매일같이 고향만 생각하였다. 그리고 불교경전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명나라 황제는 홍랑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서 가지고 간 대추와 물이 다 떨어졌다. 그 이후로 홍랑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앓다가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런데, 홍랑이 죽고 나서 명나라 황제도 이름 모를 병에 걸렸다.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병이 좋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 황제의 꿈에 홍랑이 나타났다. “폐하! 저를 고향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모든 일이 평안해 질 것입니다.”, “어떻게 너를 고향으로 보낼 수 있느냐?”, “제 혼이 탈 배를 돌로 만드시고, 열두 명의 무쇠사공을 만들어 태우십시오. 그리고 정성을 다해 저의 보살상을 만드십시오.” 잠에서 깬 황제는 바로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시작하고, “석공과 철공들을 불러 배와 사공을 만들게 하라.”라고 하였다.
화성 홍랑각 외벽에 그려진 홍랑각시 설화
시간이 흘러, 돌배와 무쇠사공을 다 만들고, 홍랑의 보살상이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 보살상의 완공을 앞두고, 보살상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 홍랑의 보살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완성되기 직전에 다시 둘로 갈라졌다. 황제는 보살상이 완성되기를 불상 앞에 앉아서 기원하였다. “보살상은 홍랑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새겨야 한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러나 황제는 홍랑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백일기도가 거의 끝나갈 무렵 황제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러던 중 황제의 앞에 홍랑이 나타났다. 황제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진심으로 홍랑에게 빌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황제의 머릿속에 홍랑의 모습 떠올랐다. 그 모습 그대로 보살상을 완성하고, 돌배를 바다에 띄웠다. 돌배는 홍랑의 고향 집 앞 바다에 도착하였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보살상을 ‘홍랑각시 보살’ 이라 불렀다. 그리고 '홍법사'를 세워 보살상을 모셨다고 한다.
영혼이 되어 돌아온 홍랑
조선시대 공녀로 명나라에 간 여성들은 주로 후궁이 되었다. 아니면 황제의 유희를 위해 동원되기도 하고, 궁궐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하였다. 위의 설화 속 주인공인 홍랑의 경우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향에서 가지고 간 모래만 밟았고, 물과 대추만을 먹었다. 결국 육체는 죽고, 영혼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한 홍랑을 위해 홍법사라는 사찰을 지어주었다. 홍랑이 비록 공녀로 가서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 되었지만, 고향인 조선에 대한 절개를 끝까지 지켰다는 것을 강조하는 설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