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연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기대에 못미치고, 실망스럽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 같은데, 저는 좀 다른 의견이어서 늦었지만 간단하게 리뷰를 올립니다. 기존에 올라온 리뷰에 대한 반박이나 반론은 절대 아닙니다(사실 그럴만한 수준도 못됩니다ㅋㅋ). 다만 '이렇게 감상한 관객도 있구나'라고 편하게 생각해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건강함이 우리 말러 카페의 특징이라 생각되기에 용기를 내어 써봅니다(이후 존칭은 생략하고 써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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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 어느 평론가의 기사처럼 미리 예습까지 하며 기다려온 공연이었다. 인발은 자타가 공인하는 현존 최고의 말러 해석가이고, 그가 녹음한 말러 7번은 평단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어서 내심 기대가 컸었다. 최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와 브람스 교향곡으로 우리에게 호감을 더해준 인발이 모습을 나타내자 환대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도 환한 미소로 답례를 해주었다.
그러나 정적을 깨고 1악장 인트로 트레몰로 선율이 시작되자 살짝 어긋나는 앙상블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휘자와 연주자간 합이 잘 맞지 않아 곳곳에서 균열이 드러났다. 으스스한 밤안개 속에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기묘한 정체를 표현해야 하는 금관악기(테너호른, 트럼펫)는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고, 투명한 신비감을 더해 주어야하는 현악기도 충분히 받쳐주지 못해 중간계로의 진입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목관악기들이 선전하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지막 총주 부분에서는 어둠 속으로 행진하는 사람들의 떠들썩한 느낌을 표현하고자 지휘자와 연주자 모두 열심이어서 가슴 깊이 응원의 기도가 나왔다.
기도의 응답을 받아서인지 2악장부터는 앙상블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오보에, 클라리넷, 플릇 등의 목관악기가 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잘 살려 주었고, 하프와 호른, 트럼펫도 한결 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게다가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중저음이 무게중심을 잘 잡아 준 결과 몽환적인 신비감이 충분히 전달되었다. 콜레뇨와 소방울 소리도 인상적이었다. 장조와 단조가 교체되면서 밤의 이중적인 대비가 극명해지고 후반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군중들은 춤을 추는 것인지 축제를 벌이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연주가 활발해진다. 조금만 지나쳐도 어수선하고 산만할텐데 이 정도면 말러의 의도를 살렸다고 생각되어 내심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으로 전체적으로 왈츠풍이다. 춤을 추면서 기괴한 소리를 내는 밤도깨비처럼 중간중간 날카로운 현의 선율이 그로데스크함을 더해준다. 마치 신경쇠약증에 걸린 현대인의 이중성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팀파니는 조금 약했지만 비올라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4악장에서 한층 여유가 생긴 지휘자와 연주자는 시작부터 바이올린 솔로의 유려한 선율을 선사한다. 밤의 세레나데답게 사랑스럽고 부드럽다. 기타, 만돌린, 하프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목관과 금관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살린다. 음감회 때 "4악장 마지막은 세레나데를 들으면서 잠이 들고 깨어보니 현실이다. 이 지점에서 바로 5악장이 시작된다"고 들었는데 연주를 들으면서 이말을 떠올려보니 4악장에서 5악장 전이부분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상하게도 여기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우디알렌의 미드나잇인파리, 장자의 호접몽, 모짜르트의 Serenata Notturna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5악장은 7번 중 가장 좋아하는 악장이고 이번 예습시간을 통해 더욱 좋아진 부분이다. 무엇보다 현실의 다양한 소리를 한 자리에서 교향곡으로 표현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꿈에서 현실로 하강하여 동이 트고 날이 밝으면서 점점 뜨거워지는 위대한 정오 앞에 선 인간의 현세를 찬양하고, 더욱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말러의 7번은 모든 세계를 품고 있는 꼴라쥬"라는 율리시즈님의 표현은 5악장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 연주를 들으면서 무릅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인발과 서울시향은 5악장에서 긴장/이완의 적절한 균형감과 전체/부분의 치밀한 디테일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 피날레 총주 부분에서는 질주하는 템포로 현실을 종교적 반열로 승화시키고 찬란하게 마무리하고자 온 힘을 다했다고 느꼈다.
끝이 좋으면 뭐든지 좋은 것일까? 5악장을 들으면서 이전 악장의 실수나 만족스럽지 못했던 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가슴 벅찬 감동만 남아 끊임없이 박수를 보냈다.
첫댓글 잘읽었어요 ^^ 저도 뒤로 갈수록 좋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통영에서 <마태수난곡>은 잘 보셨는지요?
@pure 정말 좋았어요 ^^ 스즈키선생님 짱이셔요~
@rhone 오우~대박!!^^V 동양출신 바로크 음악단체로 유럽에서 인정받기 어려운데 스즈키+바흐콜레기움재팬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흠..... 이렇게 깊이 들은 푸어님 덕에 다시 그 시간을 느낍니다.
어떤 시간은 현재보다 추체험하는 시간이 더 잘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인발의 말러 7번도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푸어님의 덕이 아닐까 싶네요. 고맙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따듯한 눈과 깊이있는 느낌을 가진 퓨어님......
읽어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 정성스런 과찬의 댓글까지 남겨주시다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 그날 공연 보고 내려오면서 가을아침님과 나눈 이야기들에 조금 덧붙여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었어요 ㅎㅎ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는 당시 자리가 1층 사이드(E블럭)이어서 그랬는지 모든 소리가 저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제가 이날 공연에 부정적인 소견을 갖고있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할 수 있겠네요. 시작부터 연주 자체가 제 마음을 떠나있었기에 공연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는데 퓨어님의 글을 읽으니 일견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많네요. 늘 감성어린 따뜻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퓨어님...^^
고맙습니다. 가라얀님의 리뷰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저도 처음 시작부분에서 적잖이 실망을 해서 깜짝 놀랬어요. 불과 며칠 전 리오넬 브랑기에와 같이 연주했던 서울시향이 아니었어요.그래서 기대수준을 낮춰버리고,순도높은 연주보다는 곡이 전달해주는 의미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바꿨지요. 음감회 때 들었던 강의내용을 떠올리며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다행히 연주자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준 덕분에 후반부는 그런대로 만족스러웠지요. 이번 음감회가 없었다면 저도 자리를 지키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가라얀님!! 음감회와 같은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당 콘서트홀은 같은 연주라도 자리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는데 1층 A,E블럭은 무조건 피해서 도망가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율리시즈 네...ㅠㅠ 아마 제가 예매했으면 1층은 아예 안갔을 겁니다. 차라리 2층 사이드로 갔겠죠.^^
@Karajan 저도 언제부터인가 3층을 주로 애용하는데 1층이나 2층의 비싼자리보다 가성비가 높고 만족스러울 때가 많더라구요..1층 A.E 열은 절대 안가겠습니다...
아, 제가 팔짱을 끼며 음악을 듣는 편이 아닌데...이번 공연 1악장은 팔짱이 놓아지지 않더군요.저도 4,5악장 좋았어요,그리고 합창석 정면에서 지휘자 인발을 바라보며 '참 애쓰시네...'라고 느꼈고요.^^여러 상념이 드는 게...제가 곡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을 거라 생각되면서도 아쉬움이 컸습니다.그래도..그나마 말러7번을 실연으로 보게 된 영광으로 자축을 하며 아쉬움을 접고 기립했습니다.인발 지휘자와 저를 위해, 그리고 서울 시향을 위해서도요...저도 퓨어님처럼 저도 따뜻하게 감상할 수 있어 기억에 두고두고 남을 거 같아요.^^
그날 예당에서 건너편에 앉은 사랑이님을 보았어요. 처음에는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나중에는 기립하여 박수를 치고 또 치는 모습을 보고 저랑 비슷한 느낌이었을 거라 추측만했습니다. 혹시나했는데 역시나이군요ㅋㅋ 그날 인발은 젊은이못지 않은 파워와 열정을 보여주었는데 단원들이 못따라간다는 느낌이었습니다ㅠㅠ 사랑이님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pure 어머나!합창석에 있는 저를 발견하셨다고요?!!이거 정말 서프라이즈한걸요~ㅎㅎ제가 왜소하고 눈에 띄는 편이 아닌데..^^엘리아후 인발님~ 정말 멋졌어요!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 그럼요. 대번에 알아봤죠ㅋㅋ 멀리서도 사랑이님은 딱 알아볼 수 있죠. 아우라가 남다르시잖아요 ㅎㅎ
@pure 헉,아우라까진 아닐건데..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저도 공연후기 쓰려다가 퓨어님 글 기다렸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여러 복잡한 요소에서 하나만 빠져도 느슨하게 들릴수 있는데 이날 공연은 나사가 살짝 빠졌든지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단원들 모두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든지 하는 부분이 있었을 겁니다. 인발 특유의 즉물성과 건조성이 취향의 호불호가 있는 표현이지만 전 재밌게 즐겼습니다. 퓨어님의 신경쇠약증에 걸린 현대인의 이중성이라는 부분과 에드워드 호퍼, 우디 알렌, 장자, 모차르트의 언급은 저도 영감을 느낄 정도로 인상적인 구절입니다~
지상에서 쓰이고 있는 언어 중 가장 수준 높게 고마움을 전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드리고 싶습니다^^
전 이 공연에 대해 어떠한 곳에서도 별도로 리뷰가 감상문을 남길 생각이 없기에 여기에 간단히 적겠습니다. 형편없는 연주를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 "왜 이 곡이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근래 이만큼 절박하게 다가왔던 공연은 달리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휘자와 악단원 여러분, 그리고 공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관계자분들 각자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을 것이고 그건 제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모든 요인을 떠나서,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제가 듣는 모든 공연에 대해 작곡가의 입장에서 환호하고 또 분노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제가 그간 공연 이후에 보이는 반응이 다소 극단적이었던 것은 이런 사고가 기저에 깔려 있었던 탓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유치한 소아병적 사고라고 지적할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누가 그렇게 주장한다 하더라도 어떤 이의도 제기할 마음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며, 동시에 그것이 제 안에서 음악을 살아 있게 하는 한 방법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이상의 모든 글은 일종의 푸념이고, 퓨어님의 배려심 깊은 따뜻한 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달리 마땅히 쓸 만한 데가 없어 어색함을 무릅쓴 것이니 너른 마음으로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Dorian 별말씀을요...제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상기시켜 주셔서 오히려 고개가 숙연해집니다.
완성도 높은 순수음악을 지향하는 도리안님의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댓글이라 생각합니다.
존경스럽네요...그리고 감사합니다^^
@pure 서울 시향의 연주력에 대한 문제는 이미 지휘자 정명훈의 부재와 악장 루세브, 팀파니스트 페뤼송등
핵심단원들의 이탈에서 이미 예견된 일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은 잘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단원들의 세대교체나 충원에 소홀하면 하루아침에 탈이 납니다. 베를린 필을 보면 우리는 실감 할 수
있습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령탑인 정명훈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10여년 간 공들여 가꾼 서울 시향의 연주력은 서서히 눈에 띄게
퇴보 할 것입니다. 상임지휘자 초빙 실무단이 만들어 졌다니 기대를 해 봐야 겠지만
무슨 비밀이 그리도 많은지 실무단 명단은 비밀에 부친다고 하니 의아할 뿐입니다.
@sangyoung 우리 말러 카페에서 좋은 토론을 통해 서울 시향 발전 우리나라 음악발전에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무척이나 기쁨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한가지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크리틱커는 연주홀을 꽤 뚫코 있어야 합니다.
예술에 전당 콘서트 홀 처럼 편차가 심한 홀에서 오케스트라를 평할려면 가장 합리적인
좌석에서 공연 관람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케스트라 뒷자리에서
관람은 금기 일 것입니다. 지휘자의 밀도있는 분석이라면 모를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카페내에서 좋은 토론이 있었으면 합니다. 베를린 필 홀, 빈 무직페어라인 홀,
암스텔담 콘서트 홀, 젬퍼 오퍼 등 많은 좋은 홀에서도 나쁜 좌석은 존재합니다. 이런 세계적 홀에서도
잘못된 곳에서 연주를 보고 평을 하면 많은 차이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유럽의 크리티커들은
홀마다 지정석을 두고있습니다.
그날의 연주를 다시 느껴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을 빛내며 손짓을 하면서 이야기하시는 퓨어님의 열정이 전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