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임대 아파트단지 복지사업이 혹 부정적 인상을 굳히거나 강화하지 않습니까? 이곳 거주자를 멀리하게 만들고 사회통합을 어렵게 만들지 않습니까? 복지사업 많이 하니 '아, 나도 저곳에 살고 싶다, 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우리 아이 저기 보내고 싶다.' 합니까?
이 부분 읽으며 떠오른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1.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지역의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을 궁리했습니다. 그 복지관이 위치한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성범죄 발생률이 높아 이런 사업을 계획했습니다.
처음 사업계획서에는 우리 지역사회의 성범죄와 관련한 문제를 나열하며 그 심각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캠페인, 서명작업, 방범 치안 활동 강화 등을 제시했습니다.
그 사업계획서를 읽어보니 그 동네에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동네를 '짐승들이 모여 있는 지역'으로 묘사했습니다. 동네의 심각한 문제를 없애려는 마음은 고마우나, 그로 인해 동네 이미지를 더욱 부정적으로 만드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웠습니다.
나중에 계획서를 수정하셨습니다. 이웃 관계가 살아나면 범죄도 줄어들 거라 생각하고, 동네 아이들, 동네 이웃들과 인사하며 지낼 수 있는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놀이터에서 이웃들이 만나고 사귀는 일들을 계획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일들을 잘하고 계십니다.
동네 이웃 관계가 살아나고 인정이 소통되면, 범죄만 줄어들까요?
2.
경기도 한 복지관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습니다. 그 단지 안에 있는 한 공원. 동네 아저씨들이 대낮부터 술 마시고 주정하고 주무시는 곳입니다. 쓰레기가 가득합니다.
담당 선생님께서 궁리하셨습니다. 공원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처음에는 술 드시는 분들을 '문제'로 생각했습니다. 주민과 캠페인을 벌이고, 관련 기관과 회의하면서 문제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지역신문에도 기사를 실었습니다. 술 드시는 분들의 사진이 실리고, 이를 문제로 취급했습니다. 동네 아이들도 나서서 서명 캠페인도 벌였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술 드시는 분들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문제가 잘 해결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술 드시던 분들이 복지관을 찾아와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내 집 앞 공원에서 술 마시고 낮잠 잤다고 범죄인 취급하느냐며 분개하셨습니다.
이후 정중히 사과하고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공원에 가져다 놓은 여러 놀이기구와 운동기구의 관리를 부탁했습니다. 역할이 생기시자 열심히 맡아 관리하셨고, 찾아오는 동네 이웃들이 잘 사용하게 거드셨습니다.
지금도 잘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술 문제도 사라지는 듯 보였습니다.
술 문제뿐일까요?
이 복지관 사회복지사는 '복지현장 희망 여행'의 '한 평 공원' 이야기를 읽고 많이 배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 역시 아파트 단지의 버려진 작은 놀이터를 바꾼 이야기였습니다. 이 놀이터에서 어른들이 술 마시고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런데 이를 변화시킨 건 강력한 규제와 단속이 아닌 환경의 변화였습니다. 상황이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술과 담배란 문제에 직접 대응하여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놀이터를 다시 만들기 위해 지역주민에게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강점을 찾았고 이로써 놀이터 변화를 이뤘습니다.
놀이터만 좋아졌을까요? 당시 담당자 인터뷰에 의하면, 술 문제와 담배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나아가 이웃들이 놀이터를 찾는 일이 증가했고, 놀이터를 구실로 이웃 관계가 생겼다고 합니다.
3.
2010년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지역주민과 한 해 사업을 평가하는 자리에 사회를 맡았습니다. 제가 여러 질문을 주민께 드리고, 이에 주민들이 답했습니다. 담당 사회복지사들은 그 이야기를 잘 정리하여 몇 가지 범주로 만들고 정리하여 평가하는 회의였습니다.
평가회 전에 담당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동네가 어려운 분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주민이 동네에 대한 불만이 많고, 그래서 복지관에 요구하는 일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평가회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주민께 우리 동네에 사는 재미와 즐거움, 좋은 점, 감사했던 점, 인정을 경험했던 이야기를 여쭤었습니다. 회의 내내 이 이야기들만 나눴습니다. 회의 끝에 이런 질문도 드렸습니다.
'만약, 사회복지사가 모르는 이웃의 아이를 몇 시간 맡아달라고 부탁하면 들어주실 수 있는지요?', '가끔 여러분의 집에서 몇몇 이웃들이 부담 없이 모여서 차 마실 수 있으신지요?'
그 자리에 모인 여섯 분의 주민 모두 흔쾌히 동의하셨습니다.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이런 우리 동네의 장점·강점에서 내년 사업을 구상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4.
이런 일도 있습니다.
서울의 한 동네, 범죄가 자주 일어난다고 합니다. 주된 이유는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고 그래서 길이 더욱 낙후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범죄가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했습니다.
시에서는 이곳을 산책하기 좋은 길, 걷기 좋은 길로 만들었습니다. 예전 마을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동네로 소개하고 자랑했습니다.
'복지현장 희망 여행'에서 소개한 깨진 창문 이론의 한 사례.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곳,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문구를 달기도 하고 CCTV를 설치하기도 했으나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화단을 설치하고 예쁜 곳을 심어 놓으니,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쓰레기라는 '문제'를 직접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문구가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동네, 오히려 동네의 격을 떨어뜨릴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