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라는 것이 비록 '~해야 한다'는 당위로 '~이다'와 같은 사실로써만 설명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단지 현재 상태와 이상적인 상태,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성찰하며 반성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과 '맥락'으로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별애'는 인간을 이러한 과정과 맥락의 선상에 있는 존재로 바라 봅니다. 즉, 나는 먼저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나의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있어야 비로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현대의 배려윤리적 관점에서도 정당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우리들 각자는 배려의 동심원 안에서, 우리가 배려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사람을 배려 할 수 있으며, 각 개인들의 배려의 경험들이 사슬처럼 이어져 온 사해동포들과 내가 서로 이어지고 연대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배려윤리가 실제적인 차원에서 나와 가까운 이들을 먼저 배려하여 첨차로 확장되는 구조는 유가의 인의 실현 단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차이점으로는 유가적인 배려는 '배려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우리안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성으로, 설령 내가 배려받은 경험이 없을 지라도 타인을 배려 할 수 있는 덕목입니다.
또한 그 실천적인 차원에서 요구되는 충서, 추기급인의 태도 또한 배려윤리와는 다릅니다. 배려윤리에서는 몰두와 전이의 과정을 거쳐 배려자와 피배려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배려의 완성으로 봅니다. 이런점에서 유가의 서(恕)는 전이의 단계까지라고 볼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피배려자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이외의 수없이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하겠지만, 유가의 이론이 현대적으로도 정당화 되어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