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의 삼시세끼
요즘 종편 프로그램 가운데 삼시세끼란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저도 몇 번 보았는데, 특히 출연자들의 의외의 요리솜씨와 임기 응변, 그리고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모아져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 해주는 것 같습니다. 삼시세끼를 보며 대학시절 때의 일이 생각나서.....
88서울 올림픽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던 88년 여름, 난 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를 알차게? 보내려고 기숙사 연장 신청을 했다 떨어지는 바람에 신대원을 준비하는 친구5명과 자취를 하게 되었다. 그 중엔 한 명은 학번은 같았지만 나이가 10살이나 차이가 나서 우리가 늘 00형님으로 불렀으니 정확하게는 친구 넷에 형님 한 분과 함께 한 셈입니다. 원래 두 사람이 자취를 하던 방에 6명이 지내다 보니 머리맡에 책과 가방을 놓고 6명이 눕고 나면 발 디딜 데가 없을 정도로 좁아서 그 해 여름은 순회연주 때 잤던 지방의 낡은 여관방이 일급호텔처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00형님은 작은 교회에서 새벽기도, 금요철야 때 교회차량을 운전해주며 받는 장학금으로 생활과 학업을 하셔서 제때 식사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사정을 아시는 어머니가 추석 때이던가? 갈비찜을 한 솥 해 주셔서 00형님과 나눠먹을 생각으로 하루 일찍 자취방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왠 일인지 00형님은 안 계시고 다음날 온다던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저를 반기더니 이내 갈비찜과 추석 음식을 발견하자마자 말릴 사이도 없이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다렸다가 저녁밥 해서 먹었으면 한끼는 해결 했을 텐데,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밥하기도 전에 다 먹어 버리는 바람에 저녁 당번인 저는 저녁에 뭐 해 먹을까?를 고민하며 부엌엘 나가는데 마침, 형님이 들어 오셔서 갈비뼈만 가득 쌓인걸 보시곤 상황을 파악하셨습니다. '너희들이라도 잘 먹었으니 됐다'고 하시며 본인은 점심으로 라면 끓여 먹었다고, 괜찮다고 하시는데 형님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납니다. 저는 압니다. 형님은 하도 라면만 먹고 살아서 라면을 왠 만하면 안 드시는 걸.....보아하니 점심도 못 드신 것 같습니다. 아! 이 자식들 왜 하필이면 약속이나 한 듯 하루 일찍 와가지고는.....
아!하나님 어떻게 하지요?.................................
그때였습니다 '고기 한 점 붙어있지 않지만 갈비뼈만 넣고 끓여도 갈비탕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언뜻 스쳐갔습니다. "야! 이거 우리가 먹은 거니까 이 뼈다귀 가지고 갈비탕 끓여 먹을까?" 내 제안에 다들 눈이 휘둥그래 졌습니다. "그게 되겠냐?" 한 친구가 안될 것처럼 얘기를 합니다. 친구의 말을 뒤로한 채 뼈다귀를 가지고 나가, 수돗가에서 뼈를 씻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주인 아주머니가 지나가시며 "학생 뭐해?" 하며 물어보십니다. "아...예, 갈비탕 끓여 먹을려구요." "갈비탕? 이걸루?" 아! 그때 아주머니의 눈 빛이란!........요즘 말로 멘붕이 되신 것 같습니다. 정신이 드셨는지 집으로 들어 가시더니 무와 대파, 그리고 김치와 깍두기를 가져다 주십니다. 어찌나 고마운지.....
일단 끓는 물에 뼈를 넣고 푹 끓였습니다. 잠시 후에 생각했던 대로 그럴싸한 고깃국 냄새가 납니다. 휴!~ 큰 소린 쳤지만 될지 안될지 몰랐는데, 일단 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좀더 끓이니 맛도 그럴싸합니다. 무와 대파를 넣고 조금 끓인 후 간을 하니, 제 입엔 담백한 것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걱정스러워 나오신 주인집 아주머니가 드셔보시더니 기대 이상이라며 자기 일처럼 좋아하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여섯이서 갈비탕 한 그릇씩을 깍두기의 임재와 김치의 도우심으로 깨끗이 비워냈습니다. 00형님은 두 그릇을 드셨구요.
버려야 하는 줄 알았던 갈비뼈로 맛있는 갈비탕을 끓여 먹는 것에 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말입니다. "이게 되네!"를 연발하며 다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는지? 미안했던 상황이 반전되어 맛있게 느껴졌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에게 얼마나 감사하고,행복한 한끼 식사였는지 모릅니다. 다음날 아침도 갈비탕으로 먹었으니 갈비찜하나로 점심,저녁,아침을 먹은 셈입니다.
가끔 그런 생각 해봅니다. 우리가 다시 모이면 먹고 남은 갈비뼈로 끓인
갈비탕을 그때처럼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다시 먹을 수 있을까?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이 기도가 더 없이 크게 감사하게 다가옵니다!
꿈쟁이 드림